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HOME > 문답 > '장님의 세계'란 무엇입니까?


Published: June 30. 2017  Updated: June 30,July 1,2,17,August 18. 2017


 

: 본문 내용 중에서,

여래가 활동하던 때,
여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그 [처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물며, [다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전혀 믿겨지지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 제가 알기로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래 주변 사람들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여래도 처음부터 크게 기대는 안한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장님들이 가진 인연과 소망, 그 실력에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먼저, 여래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멀고 먼 길 찾아 온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외로운 님 찾아 나선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세상에 찾아 와서

주인 찾는 나그네

 

1984년 11월, 여래가 출현한 이래,
당신이 지고 있는,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의 주인공,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1987년 10월, 여래가 소연을 만남으로써 활동을 시작한 지 3년만에 비로소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고 주변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1992년 11월 15일, 여래가 츨현한 지 8년만에 실상학회가 설립되어, 2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그러나 여래 주변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여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고,
깨닫고자 노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 소개한 깨달음의 3단계 외에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은 자를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거짓을 버리기가 어렵다.)

두 번째, 있는 일을 알아 봐야 한다.

세 번째, 양심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다음, 자기 의식 속에 끝없는 사랑이 존재해야 한다.
(이 사랑으로 자기에게 있는 업을 소멸시켜야 한다. 업이 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있는 일이 있는 그대로 보이게 된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깨닫기 위한 단계를 자주 말했는데,
표현을 조금씩 다르게 했을 뿐, 언제나 같은 내용의 단계를 말했습니다.

 


 

여래는 이 뿐만 아니라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여래가 보고, 본 것을 말했을 뿐,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여래의 어떤 이론을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여래의 말씀을 듣고, 외우고, 평가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여래가 말한 깨달음의 단계조차도 들은 대로 외우기에 급급했을 뿐,
말 속에 있는 의미를 알아보는 일에는 캄캄한 장님의 수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여래를 만난 날짜를 기준으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거나,
날짜가 늦은 사람은 날짜가 빠른 상대를 두고 비평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햇수가 2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깨달을 년수만 남았다거나,
급기야 예수 수준 정도는 이미 넘어섰다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물론 자신들 스스로 자기를 평가한 것이지, 여래가 평가하고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여래는 그런 걸 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여래는 모든 상황을 잘 알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고 자라기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여래 주변 사람들이라 해서 유별했던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부족하기만 하고 캄캄하기만 한 똑같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여래 주변 사람들을 만났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래에게 다가가기가 두렵다. 여래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낯선 사람에게 굴욕감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예사롭게 한다. 여래는 훌륭한 분 같기도 한데, 주변 사람들 하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강연회에서 질문을 했는데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기분이 무척 상했다."

"어떤 회원?에게 사소한 질문을 했다가 질책을 듣고 두 번 다시 갈 수 없었다."

"그 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말이나 표정에 익숙하다."

"거기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너무 센 것 같다. 동참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래가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쳐서는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선택된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래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거부했지만,
'여러분들은 내 앞에서 나의 말을 듣고,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선택된'이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는 세상에서 선택된 자라는 자존심'이 대단했습니다.

전도(顚倒)된 몽상(夢想)은 '장님의 세계'에 사는 '장님들의 일반적인 특성'입니다.

깨달은 자의 주변 사람들이라 해서 그들은 장님이 아닌 게 아니라 마찬가지 였습니다.

 


 

실상학회가 설립되고, 주변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문제는 더 많아지고 더 커졌습니다.

회원이면서 여래의 활동 목적이 무엇인지? 회원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 밖이었으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신상문제가 급선무였습니다.

여래 곁에는 여래가 찾는, 다음 시대의 주인공 후보는 감감 무소식인데,
이 시대조차 제대로 살아가기가 절박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래 곁에는 육체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여래의 의통(意通)치료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여래는 의통(意通)치료가 시작되면 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의 병을 대신 앓았고,
기운은 빠지고 몸은 쇠약해졌습니다.

1997년에는 치료 중에 '신들과의 전쟁'으로 사경(死境)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회원 본인의 신상 문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원들은 배우자, 자녀, 부모, 친척 뿐만 아니라 친구, 동료, 사업, 직장의 문제까지
여래에게 무차별로 가져와서 상의하고, 해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여래는 세상의 사명을 가지고 왔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신상 문제를 해결해주느라 허송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래는 모든 일에 언제나 변함없는 최선(最善)을 다했습니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시로 만나는 어느 사람에게도 자비(慈悲)를 베풀기 위해 언제나 노심초사했습니다.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자비(慈悲)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래의 자비(慈悲)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얼굴을 붉히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거나,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래는 자비(慈悲)를 멈추지도 거두지도 못했습니다.

 

여래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그들이 알고 있는 자비와, 여래의 자비는 그 간격이 땅과 하늘의 차이였습니다.

 


 

여래 주변 사람들은
여래의 활동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숙식, 사무, 여행, 노동, 잡일 등에 참여는 하되,
여래가 직접 자신을 지도(指導)하거나 편달(鞭撻)하는 것에는,
무시하거나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여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우에 따라서 더욱 세차게 밀어붙였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완강하게 반발하는 모습만 보여 주었습니다.

글쓴이는 여래의 자비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여래의 자비를 받아들이기보다,
깨달음의 단계를 따르기보다,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자신들이 바라는 자비를 여래가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결과적으로 깨달은 자가 눈 먼 자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눈 먼 자가 깨달은 자에게 충고하고 요구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글쓴이가 여래에게 물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설리번과의 교감으로 문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헬렌 켈러에게 불가능한 일이 기적처럼 실현되었다.
헬렌 켈러의 경우와 여래가 우리를 깨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여래가 말했습니다.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말과 문자는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헬렌 켈러의 경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깨달아 본 적이 없는 장님이 깨닫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자이기 때문이다."

 


 

험악한 세상에 와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활동했던 25년의 긴 세월 동안,
여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초를 겪으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래가 말한 대로 [처음 단계]조차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대상인데,

여래 생전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추억(追憶)해보면,

과연 그 [처음 단계]에 어떤 분이 다다를 수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