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TATHAGATA 如來 여래 > 如來의 출현

 

 

 

 

태국 여행

 

1988년 12월 13일, 나는 소연을 데리고 세상에 있는 의인들을 찾아 두 번째의 외국 여행을 시작했다.

길도 언어도 그 나라의 글자조차 모르면서도 나는 소연의 영어 실력에 기대를 걸어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도착하는 곳마다 사전에 지식을 조금이라도 미리 얻어서 가는 곳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소연은 나의 입과 귀가 되었고, 나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눈의 역할을 하였다.

우리가 탔던 비행기는 자정 무렵에야 태국의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안내자가 없는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경계의 대상이었다. 먼저 약간의 돈을 환전했다.

그리고 그곳 여행안내소에서 시내의 지도가 그려진 팸플릿과 다른 정보들을 얻어야 했다. 소연은 값이 싼 호텔과 택시 요금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다시 그 정보를 가지고 다른 곳에 가서 흥정을 해야 했다. 세계의 어느 곳이든 후진국 소리를 듣는 곳에 가면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택시기사들은 외국인 손님을 보면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 방콕도 그런 도시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공항의 안내소에서 들었던 요금의 반값으로 몇 번이나 흥정을 했지만 실패했다. 기사들은 300바트를 요구했고 나와 소연은 150바트를 불렀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부르는 요금에 가겠다는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운전기사는 차를 몰면서 뒷좌석에 앉은 나와 소연을 보고 말을 걸었다.

호텔을 찾냐고 하면서 자신이 싼 호텔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찾아가는 호텔보다 싼 호텔이 있다고 하면서 자꾸만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노, 렉스호텔.”, “렉스호텔로 가자.”라고 말했다.

택시는 한 시간 남짓이나 우리를 태운 채 시내를 돌아서 스쿰빗 로드에 있는 렉스호텔 앞에 멈추었다.

나는 짐을 택시 안에 둔 채 먼저 방과 숙박료의 가격을 알아보도록 했다. 소연은 프런트 앞에서 제법 유창한 영어로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프런트의 직원이 숙박료를 기재한 호텔 팸플릿을 건네주었다. 나는 다시 방 두 개에 얼마까지 할인되는지 물어보게 했다. 직원은 10%까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좀 더 깎아 달라고 했다. 직원은 봉사료를 제외한 10%까지 할인해주겠다고 하면서 방을 예약하던지 다른 곳으로 가든지 하라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방 두 개에 대한 확실한 가격을 확인하고 나서 택시 안에 있던 짐을 옮기게 했다.

 

방콕은 겨울이 없는 도시이다.
다음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사방이 한낮처럼 환했다. 나는 소연의 방에 전화를 걸어 외출 준비를 서둘게 했다.

나는 준비해간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엊저녁 비행기 안에서 얻어들었던 싸게 세를 놓는다는 아파트를 알아보기 위해 아침도 거른 채 소연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

다행히 A.A하우스라는 곳에서 그곳에 먼저 와있던 한국인을 만나 2층과 6층에 딸린 방 두 개를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금액에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소연은 짐을 옮겨 놓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온종일 소연이 가지고 올 정보만을 기다렸다.

소연은 다음 날도 아침 식사 후 어제처럼 혼자서 사람들을 찾아 나갔고, 나는 그곳 지리를 익히기 위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혼자 걸어 다녔다.

 

5일째 되던 날, 소연은 영국에서 불교에 관한 것을 가르친다는 어떤 태국 승려를 만나서 나를 그 승려에게 데리고 갔지만, 그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일주일이 되던 날, 소연은 비로소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제1왕사를 만나고 왔다.

그는 소연으로부터 내가 여러 나라의 대사들 앞으로 보냈던 메시지를 받아보더니 복사해서 자신이 가져도 되겠냐고 물었고 또 다음 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그곳 왓 보원에서 나와 만나겠다고 약속까지 받아 왔다.

소연은 혼자 방송국과 신문사, 대학과 여러 사원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을 만나러 왔다는 소연의 말에 대해, 요즈음 같은 세상에 어디 그런 진실한 자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피하기만 했다.

나는 10여 일이 지나면서 제법 방콕 시내의 지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방콕 시내를 벗어난 먼 곳까지 혼자서 차를 타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소연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소연은 나를 사람들한테 알리기 위해 매우 결연한 자세로 나섰다.

 

소연은 태국의 제1위인 왕립 출라롱콘 대학을 찾아갔다.

총장실로 갔던 소연은 총장이 없자 부총장실로 찾아갔다. 소연은 내가 태국에 있는 주한 대사 앞으로 보냈던 메시지를 내보이면서 우리는 태국에 있는 진실하고 지혜 있는 자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제야 부총장은 매우 겸손해지면서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 진실한 자는 드물다고 하면서 그 대학의 어느 교수 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소연은 그 교수를 찾아갔다. 소연을 만난 그 교수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듣고 나서, 제1왕사와 만나고 나서 그다음 주 목요일 오후 3시에 대학 진리관에서 강연을 해 달라고 했다.

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통역을 동반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방콕 시내에 상당수의 한국인이 살고 있으니 대사관 같은 곳에 부탁하면 쉽게 통역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소연의 말을 듣고 태국이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인 점을 감안하여 그날 강연의 내용을 ‘부처의 길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정했다고 전달하게 했다.

 

나는 태국어 통역을 구하기 위해 방콕주재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문화담당 영사에게 상의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확실히 통역을 알선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뿐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한국 교민회를 몇 차례나 찾아가 보았지만, 그들 역시 꽁무니를 빼는 것은 대사관 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통역을 구하지 못한 채, 태국국민으로부터 국왕 다음으로 존경받는다는 제1왕사 프라이안 성본과 만나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나의 방문에 대비해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다.

왕사의 풍채는 매우 준수한 편이어서 서양인들처럼 골격이 당당했다.

그는 의자에 앉았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그의 앞쪽 가까운 곳에 있던 그와 똑같은 의자에 나를 앉게 했다.

그의 옆쪽에는 영국인과 미국인으로 보이는 서양인 승려 세 사람이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에 앉아 우리가 만나는 자리에 동석을 하고 있었다.

먼발치에는 그날의 시중을 들기 위해 현지인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연이 내가 앉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 나에 대하여 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손을 모으면서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모으며 그들에게 답례했다. 시중을 들던 자가 오렌지주스를 모두의 앞에 내놓았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가르치는가?”

나의 당당한 물음에 왕사도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명상과 계율과 경전을 가르친다.”

나는 그의 대답에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계율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명상이나 경전을 가르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설한 법은 이치의 움직임을 말한 것이고, 멸하고 생하는 것은 모든 것들이 인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뜻을 보고, 삶 속에 있던 일을 보고 가르친 것인데, 장님이 어찌 세상을 보고 세상일을 알 수가 있겠는가. 명상이란 원래부터 마음을 붙잡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단으로써 가르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통하여 마음을 붙잡을 수 있고 또 흔들리는 마음도 가라앉힐 수 있다. 과연 그렇다면 사람들은 일과 명상을 두고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왕사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의 가르침과 석가여래의 가르침은 같은 것인가?”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 만일 그와 나의 가르침이 다르다면 그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자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믿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사물에 대하여 본 것을 말할 때 모르는 자들에게는 오해가 발생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산을 동쪽에서 바라볼 때와 서쪽에서 볼 때의 차이 같은 것뿐이다.”

옆에 있던 서양인 승려가 질문했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에서 최고의 스승은 누구인가?”

나는 그 질문에 대답했다.

“나다.”

다시 왕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나는 서슴지 않고 말했다.

“양심과 정의를 가르친다.”

왕사는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same, same.”이라고 크게 외쳤다.

내가 물었다.

“인간의 가르침 속에 존재하는 세상의 근본은 무엇인가?”

왕사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도리어 나에게 물었다.

“그 대답은 어떤 것인가?”

“도덕이다.”

그러자 그가 입가에 피식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연이 그것을 보고 나의 말이 잘못 통역된 줄 알고 황급히 영어사전을 확인하고 있었다. 영어사전에는 도덕이란 말을 ‘morality’라고 잘못 표현되어 있었다.

소연이 다시 고쳐서 통역을 했다.

“이분의 말씀은 진리와 진실을 말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석가여래는 이 시대에 진실한 자가 나타나서 부처의 길이 다시 생기게 되며 예수는 이 시대에 진실한 자가 나타나서 세상을 구한다고 했다. 인도의 힌두인들은 이마에 점을 찍고 다니는데 그것은 이 시대에 제3의 눈을 가진 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한다는 뜻인데 이것을 동양의 불교도들은 백호광이라고 부르며 또 도교들은 지혜의 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눈을 가진 자는 워낙 귀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제로 볼 수가 없었던 이유는 세상에서 3,000년에 한 사람 정도가 나타날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그때 왕사 성본이 나의 얼굴을 보았다.

“당신의 이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백호광 인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사 성본은 한번 만져보아도 좋으냐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왕사는 앉은 자세 그대로 나에게 다가와서 나의 이마에 있는 지혜의 눈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주위에 있던 서양인 승려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왕사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의 경전을 해득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가진 몸속의 병을 잡아줄 수도 있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하던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을 알고 그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얼마만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런 것도 도와줄 수가 있다.”

나는 왕사에게 다시 말했다.

“너에게 소원이 있느냐?”

그는 말이 없었다.

잠시 저네들끼리 태국어로 무엇인가 대화를 하더니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전화번호를 적어 달라고 했다. 소연이 우리의 숙소와 호실, 전화번호를 기재해주었다.

왕사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만나게 되어서 매우 기쁩니다.”

나도 당신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은 참 멋이 있었다고 소연이 말했다.

 

방콕에서 한 달간의 체류는 이제 두 사람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소연의 행동반경도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고, 나의 생활에도 무료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출라롱콘 대학의 강연을 생각하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그 강연은 좋은 강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연은 한국 유학생 두 사람이 그 대학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지만, 1만 8천 명이나 된다는 학생 속에서 그들이 어느 곳에 와 있는지 그런 것을 알아내기조차도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날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외로움을 느끼며 스쿰빗 로드를 걸었다. 그 거리는 매우 길었는데 눈에 익은 간판이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고향’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음식점 간판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바둑을 두고 있던 청년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그 집 종업원들만 있었다.

나는 우선 냉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청년들이 두고 있던 바둑 구경을 했다.

그러자 바둑을 두던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오랜만에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양인을 만난 것이 반가워서 내가 하는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나에게 바둑이 끝날 때까지 가지 말라고 했다.

그는 출라롱콘 대학에 있는 장 교수를 아는데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바둑이 끝나자 한쪽에 앉아있던 청년 한 사람은 나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는지 나가버렸다.

나는 장 교수를 안다고 말하던 청년을 붙잡고 장 교수를 언제쯤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묵고 있는 집에 가면 장 교수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 그가 묵는다는 아파트로 갔다. 그런데 밤이 깊어도 그곳에 같이 있다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하도 궁금해서 당신의 친구는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그는 그 사람이 식당에서 일하는 주방장이라고 말했다.

나는 밤 11시가 되는 것을 보고 오늘은 돌아가겠다고 말을 하니 그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바래다주겠다면서 따라 나왔다.

그는 우리가 묵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사업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나는 사업할 것을 알아보려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이라고 다시 설명을 해야 했다.

그는 우리가 묻지 않은 것을 자꾸만 말했다. 이곳 물건이 매우 싸니 그런 것을 조금만 사서 가도 왕복 여비는 남는다고 하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말에 대하여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자신한테 시간이 있으니까 방콕 시내를 안내하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곳에 와 있는 많은 교민들을 알고 있으니 통역할 사람도 쉽게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자정이 지난 다음에야 돌아갔다.

소연이 그 청년의 숙소가 있는 아파트에서 다음 날 점심시간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왜 그가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오후에 만나자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통역을 소개해주겠다는 말 때문에 나는 그런 일에 대하여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나와 소연은 그 청년이 만나자는 시간에 맞추어서 그가 머문다는 아파트에 갔더니 그 청년은 다른 청년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웬일인지 다른 청년이 우리를 보더니 무엇인지 감추는 듯한 표정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 버렸다.

우리를 만난 청년은 그때부터 무엇에 쫓기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그는 관광 안내를 하겠다면서도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의 행동이 이상해서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자 그는 점심을 먹고 가자면서 그제야 아파트를 나왔다. 나는 그런 그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점심을 먹고 나자 다시 택시를 타자고 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스쿰빗 로드의 북쪽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파타야에 가자고 말해 놓고서는 혼자 매표소에 갔다 오더니 도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는 밖에 세워져 있는 자가용 영업차를 붙잡고 흥정을 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타라고 했다. 이번에는 너무 시간이 늦어서 그런다면서 한국 사람이 태국에 오면 모두 수산시장을 보고 가는데 그곳을 먼저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무엇이 잘못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시 작은 배들이 있는 곳으로 오더니 나에게 표를 사라고 했다. 그는 우리를 데리고 몇 군데를 다니며 무언가 알아보려는 듯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4시간 동안 탈 수 있는 배라고 말하더니, 세 사람이 왓빠고오 근처에 내려서 음식을 먹고 난 후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여비를 쓸 테니까 자신을 믿고 여비를 맡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몇백 바트의 돈을 주었는데 돈을 받아 쥔 청년은 배를 보냈다고 말하면서 시내로 나가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지나자 청년은 자신은 통역도 알아보고 나중에 가겠으니 우리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그 이후로 청년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청년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단돈 몇백 바트의 돈 때문에 수만 리 이국땅에서 만난 동족을 그렇게 대해야 하는 사람의 양심을 보고 내 심정은 편하지가 않았다.

세상을 좋게만 보아왔던 소연은 내가 그 청년에 대해 불신을 털어놓자 오히려 나의 그런 태도에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그런 일로 내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소연을 대할 때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암담하기만 하던 내 마음을 두고 기도했다.
나는 그 기도 속에서 의인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나의 기도가 있던 날 소연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이지 않았다.

밤늦게 누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소연이 웃고 서 있었다.

소연은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날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소연은 태국인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갔던 곳은 촐라부라탄이라는 사원이라고 했다.
그 사원은 방콕에서 최고의 스님들이 모여서 공부한다는 수도장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금요일 오후에 내가 법문을 하기로 약속을 받아 왔다고 했다.

나는 소연에게 메모지 속의 인물들을 만나보게 했다.

“여기 적힌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소연은 두 사람 중에서 먼저 프라이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연은 한국에서 온 승려라고 밝히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상대는 유창한 영어로 우리가 묵는 숙소를 물어보더니 자신의 집과 그리 멀지 않으니 직접 찾아오면 될 것이라고 자세하게 약도를 설명해 주었다.

 

소연이 만난 프라이반은 40대의 여인이었다.

소연은 방콕에 오게 된 목적과 목요일에 약속된 출라롱콘 대학의 강연을 설명했다.

프라이반은 그 말에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은 그런 일을 한번 하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통역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자청했다.

하늘은 그때도 나의 어려운 일을 그렇게 도와주었다.

 

소연은 메모지에 적힌 또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갔다.

그 사람은 소연의 전화를 받고 자신이 근무하던 직장으로 오게 했다.

그는 집에서 특별히 만들어 가지고 왔다면서 도시락을 내놓으며, 자신이 한국에 머물렀던 이야기도 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설명했다.

“전자는 내면적인 진실이 있는 자이며 후자는 외면적인 진실을 가진 자이다.”

그 일은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프라이반은 우리의 일이 끝날 때까지 어려운 문제들을 직접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우리가 강연하는 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화요일 아침 나는 대학 강연에 필요한, 인사를 곁들인 나의 방콕 방문 목적과 사명,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관한 원고를 만들어서 소연에게 주었다.

소연은 그 원고를 밤을 새워 영문으로 번역하고, 프라이반을 만나서 보여주고 의견을 들었다.

프라이반은 그 원고를 읽고 내용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프라이반의 도움으로 출라롱콘 대학과 촐라부라탄 사원에서 우리가 태국에 오게 된 목적과 인류 구원에 대하여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목요일 오후 2시, 프라이반이 직접 승용차를 운전하여 우리를 태우고 출라롱콘 대학으로 갔다.

대학 진리관장 타워 씨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이라고 하며, 정해진 시간 안에 서론과 본론에 대하여 매듭지어 달라고 말했다.

 

소연이 먼저 나의 이름을 소개하고, 준비해 간 메시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프라이반이 소연의 영어를 태국어로 통역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오늘 이곳에 와서 그대들을 만나 대화의 자리를 함께 마련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인류의 길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고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다.

나는 태국어도 모르고 나는 영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매우 위험하며 이러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일이 있게 한 것뿐이다.

그대들이 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그대들은 자신을 구하게 될 것이요. 그대들이 세상을 버리게 될 때 그대들은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이다.

선택은 그대들이 가진 것이며 그대들의 뜻은 존중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기적이 있다면 그 기적은 기적이 아니요, 그대들이 가진 선택과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이제 나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겠다.

나는 그대들의 환상적인 말과 어둠 속의 생활을 깨우려고 온 것이다.

과연 그대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그런 일이 자신의 삶에 어떤 결과가 되었는가 하는 일에 대하여 물어보라.

그리고 그런 일로 인하여 자신의 앞날에 나타나게 될 많은 일들에 대하여 알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그대들은 자신이 하였던 일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도우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이제 나는 왜 이 시간이 여러분과 나에게 중요한 시간인가를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주변에 진실한 자가 없는 것은 세상에 진리가 흐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요.

오늘날 진리가 흐르지 않는 것은 세상에 진실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거짓에 의존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요, 진실에 의존하는 자는 멸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 속에서 길을 얻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먼저 세상의 일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진실을 얻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먼저 진리를 찾아야 하고, 진리를 보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먼저 진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장님이 세상일을 모르고 자신의 일을 모를 때 어찌 그곳에 부처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부처를 나게 하는 일은 세상을 밝히기 위함이요, 세상에서 부처의 길을 있게 하는 것은 하늘의 축복을 보기 위함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를 얻음으로써 하나를 있게 하는 것이다.

부처의 길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얻는 자는 영생을 얻고 극락을 얻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지난날의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석가여래께서는 자신을 완성하고 세상에 나아가자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여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가를 물었던 것이다.

그러자 석가여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수 세기 동안 세상을 보기 위해 인간의 근본을 섬겼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러한 일을 바로 알고 섬기게 될 때 부처의 길은 여러분들 속에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두 가지의 교훈을 여러분 앞에 말할 것이다.

하나는 자신을 섬기는 일이요, 하나는 세상을 섬기는 일이다.

이 시대에서 이러한 일은 매우 시급하게 알아야 할 일이다.

그럼으로써 부처의 길은 영원히 세상에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에 대한 여러분의 질문에 진실만을 대답할 것을 약속한다.”

 

그때 앞에 있던 어떤 자가 질문을 했다.

“영생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먼저 나의 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때에는 계속해서 보충 질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생이란 말은 삶의 결과 속에 존재하는 현상의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런 일에 대하여 알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런 일을 모른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알릴 수 있으며 믿게 할 수 있는가?”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나타나는 모든 결과는 뜻을 통하여 얻어진 것들뿐이다. 그래서 이런 일은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인간의 시각이 깨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일을 스스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일을 아는 자가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질문은 계속 쏟아져 나왔으며 그때마다 태국어와 영어와 한국어로 바뀌면서 나에게로 전달되었고 또 나의 대답은 그 반대의 순서로 전달되었다.

“당신은 깨달은 자인가?”

“그렇다.”

“당신이 깨달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나는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

“당신은 왜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대답하는가?”

“장님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거짓말과 진실을 두고 구분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 깨달은 자가 없으니 나를 알아보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을 두고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그런 일에 대하여 말해 보라.”

“존재하게 되는 것은 모두 그 속에 증거를 가지고 있다. 나도 증거를 가지고 있다. 나도 내가 깨달은 자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어떤 것인가?”

“첫째, 나의 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는 지혜의 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자는 3천 년에 한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로써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 내가 가진 시각 속에서 보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경전 속에 기록된 내용에 대하여 진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도 완전한 시각이 열리지 않는 한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셋째, 나의 행동 속에서 볼 수 있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는 오욕에 물들지 않는다. 다섯 가지 욕망이란, 술을 마시지 않으며 고기를 멀리하고 색을 탐하지 않는다. 물질을 바라지 않으며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일 역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자는 지키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로 그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다. 나에게서는 이런 사실들을 볼 수 있으며, 내가 설령 깨달은 자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깨달은 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질문이 계속되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을 많이들 하고 있다. 진실로 이러한 일은 일어나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러한 일을 알 수 있는가?”

“그러한 일은 인류를 두고 볼 때 수없이 있었던 일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증거로 대답하는 것인가. 단순히 추측으로 말하는 것인가?”

“나의 말은 전부 증거로서 대답한다.”

“그 증거는 어떤 것인가?”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미래에도 이런 일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해 달라.”

“인류의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자 인간이 가진 정신이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한 일이 있자 세상은 지진과 지각변동 그리고 해일 현상 등에 의하여 멸하게 되었고, 그 멸한 곳에서는 새로운 인류를 태어나게 했던 것이다.”

 

어느새 시간은 두 시간을 초과했고, 사람들은 나의 당당한 대답에 질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소연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프라이반과 내일 강연이 있을 촐라부라탄 사원에 관계되는 말들을 나누고 있었다.

프라이반이 말했다.

“당신들은 매우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승리할 것이다.”

 

아파트에 돌아온 소연은 오랜만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얼굴에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날 프라이반이 어제와 같은 시간에 승용차를 가지고 왔다.

나는 이 친절한 타국의 여성을 통하여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많은 위안을 받았다.

스쿰빗 로드를 따라가는 촐라브라탄 사원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고, 한참 후에 방콕 외곽에 있던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라이반과 소연이 그곳에 일하고 있던 승려에게 내가 온 사실을 알렸다.

얼마 후 몇 사람의 승려들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강당 안으로 안내했다.

넓은 강당 안에는 3백여 명의 승려들이 모여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소연에게 어제 출라롱콘 대학에서 낭독했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게 했다.

그리고 주제와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의문점이 있는 문제에 대하여 질문해 달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그에게 질문하라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깨달았는가?”

나는 대답했다

“수박은 수박을 나게 하고 콩은 콩을 나게 했다. 나는 전생에 깨달음이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도 그때 얻은 깨달음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곧장 질문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그런 일은 너희 자신을 바꾸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한 알의 작은 콩알이 있다면 그 콩알로써 더 크고 좋은 콩을 얻고자 할 때 먼저 어떤 것을 구해야 하겠는가? 깨달음 또한 그와 같은 이치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물어보겠다. 진심으로 너희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가 있는가? 만일 너희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용기와 소망을 가진 자가 있다면 일어나라. 그러면 나는 그에게도 깨달음에 대한 일을 보게 할 것이다.
먼저 나의 곁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내가 하는 일을 알게 되면 너희는 일 년쯤 지나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일 년을 더 나의 곁에서 머물면서 그런 일을 보게 되면 너의 마음에 분별심이 나타나서 옳고 그른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일 년을 더 머물게 되면 너희의 마음에 용기가 나타나게 되어서 나처럼 사람들을 찾아서 옳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너희가 그릇됨을 떠나 옳은 길을 찾아서 그 길에 공덕을 쌓게 되면 너희도 나처럼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 어떤 자가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을 가지고 와서 설명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그림은 네모 안에 원이 있고 원안에 세모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린 자를 알아야 정확한 대답을 할 수가 있다. 만일 이 그림이 큰 깨달음에 이른 자가 전한 것이라면 네모는 마음을 말한 것이고, 원은 윤회를 말한 것이며, 세모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세상의 일을 모르는 자가 그렸다면 나는 그런 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자 또 다른 자가 손을 들고 일어서며 물었다.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나는 운명이 만들어지고 있는 일과 운명이 바꾸어지는 일을 안다. 그러므로 뜻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믿지만 그 이상은 믿지 않는다.”

“그 이상이란 어떤 것인가?”

“운명은 누가 지어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지은 인연에 의하여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날 그곳에는 어떤 고승의 장례식이 있는데 나보고 참석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떠나겠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프라이반에게 내가 말했다.

가는 도중에 백화점 부근에 잠시 머물었다가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프라이반은 무슨 눈치를 챘는지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더니 큰길을 두고 이면 도로를 거쳐 곧장 스쿰빗 로드로 달렸다.

나는 프라이반에게 당신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나쯤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라이반은 그때야 말했다.

“당신들은 세상을 위해 이토록 수고하고 있는데 내가 내 동포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의 말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했던 말 속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숙소인 아파트에 도착하자 그녀는 작별의 인사를 했다.

 

소연과 나는 방콕에서 머물 수 있던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을 새로운 대상을 찾아서 여행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다음의 여행지로써 히말라야를 생각했으며 필요한 정보나 안내자가 없는 우리로서는 먼저 카트만두로 들어가기로 하고 네팔의 비자와 싼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녔다.

하루는 벤자민 사원에 있다는 푸라차라는 승려와 그의 동료 한 사람이 우리가 묵고 있던 숙소로 찾아왔다.

소연과는 구면이었고 영어를 제법 할 줄 알아서 의사도 잘 통했다.

그들은 내가 태국의 스승들을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국 남부에 부다다사라는 스승이 살고 있는데 그들 일행이 며칠 동안 그곳으로 여행을 하니 우리에게 같은 시간에 함께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우리의 여행계획이 짜여져 있으며 그 시간에 카트만두 쪽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푸라차는 그런 나를 두고 소연에게 들었던 깨달은 스승이라던 말이 나의 모습에서 느껴지지 않는지 자신의 가방 속에 있던 지갑을 꺼내서 한 손에 들어 보였다.

“당신은 이 지갑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 지갑을 나에게 달라.” 내가 말하자 소연이 통역했다.

푸라차는 다시 물었다.

“왜 지갑을 달라고 하는가?”

“너는 나에게 네 지갑 속에 있는 것을 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는 아직 네 지갑 속에 있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나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푸라차가 말했다.

“당신은 깨달은 자라고 했다. 그런데도 지갑 속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감추어진 물건을 보는 자가 아니다. 나는 있는 것을 볼 뿐이다.”

“그런 것은 누구나 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것인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라면 그 속에 있던 과거를 알 수 있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라면 그 속에 나타나게 되는 미래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것을 아는 자를 아직까지도 만나보지 못했다.”

 

< 끝 >

 

 

 

 

 

 

   

Copyright© 1984-2019  TATHAGATA.INFO · TATHAGATA.P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