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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회 녹음(mp3) : 1995년 4월 30일(일), 부전동, 문화원

 

[tape A]

항상 거짓과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다 보면, 오히려 진실한 말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로 인해서 내 자신도 내가 여래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아무리 알렸지만 오히려 그 효과는 반대였고, 사람들이 의심하고 쉽게 외면하고 그냥 잊어버리고 그래서 저는 항상 그런 허무한 자신을 결국 힘든 자기와 싸워야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을 통해서 항상 주장하고 있는 것은 속이지 않고 속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이 소리를 계속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일은 여러분들이 깨닫고 보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만 그러나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일을 알고자 노력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비로소 세상의 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눈뜰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큰 실수를 작은 실수로 바꿀 수 있고 작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다.

나는 항상 내 자신에 대해서 내 자신을 보면 서글퍼요. 왜냐, 내가 여래라 놓고 여래라는 자신을 탁 보면 뭐 옆에 아무도 평소에 보면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고 또 내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할일이 없어서 쩔쩔 맵니다. 그러면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 일을 하면 부딪치면 여러분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알지요. 시비를 걸어오든가 조그만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고 이거는 완전히 사람들이 미쳐버린다는 거예요. 완전히 이상해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일을 사명을 다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한국이 한국 사람들이 내게 베푼 참 호의이니까 좀 더 넓은 물에 나가서 살아봐라. 그리 좁은데서 그 큰 덩치를 가지고 그 큰 의지를 가지고 좁은데 사느냐 살려 하느냐. 그래서 제가 한번 앞으로 외국행을 결심하고 또 외국 같은데 나가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남을 먼저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해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책이나 테이프 같은 걸 만들면 좀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 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부터는 이제 그 써놓은 걸 가지고 컴퓨터로 쳐서 다섯 부씩 쳐 가지고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오면 10시부터 12시까지는 교정, 어떤 원칙을 두고 그걸 깎고 모양을 낸다는 것입니다. 톱으로 자르고 깎고 이런 작업을 해서 사람들에게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그리고 좀 더 감동적으로 세상의 일을 설명하고 알릴 수 있는 이러한 작업을 들어가려고 예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면 나와서 같이 한번 읽어보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부담이 느껴지면 그 부분을 지적해주면 우리가 그걸 고치겠다는 거예요. 어떤 상품을 하나 만들어 놨는데 그 상품에 어디 혹이 하나 있었다면 보지 못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걸 항상 잊고 지냈는데 여러분들의 아이디어가 거기에 섞여도 그것은 좋은 작품이 된다고 믿으니까.

거기에 나오는 어떤 말의 생명만 죽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거든. 거기에 생명을 죽이지 않고 거기에 옷을 입히면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히고 가꾸면 그 생명은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비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일에 좀 시간이 있으면 동참해도 되니까 그리고 이러한 책은 하나의 세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지금 세계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하는 어떤 좌표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는 이 시대에서 이러한 좌표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지금 서점에 가면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귀신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된다는 어떤 과정 속에 있어야 하는 일들이 빠졌고 영화의 스토리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있다 이렇다 여기에는 이런 이런 이렇게 되고 있었다 그것만 있었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어떤 것을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만들고 세상은 어떠한 뜻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될 것은 현재에 있던 일들이 자기를 항상 만들고 자기 속에 있는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은 자기의 삶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제가 여래라는 글을 쓰면서 인간 이삼한이라는 한 네 페이지 소개에 대해서 소개할 때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그것을 아침에 써 왔어요. 뭐라고 했느냐. 하나의 삶속에는 추억이 남게 되고 추억 속에는 또 보니까 삶이 있더라는 거여. 그 추억 속에 있는 게 바로 내가 살아 온 길이었다는 것이여. 내가 살아왔던 길이 바로 그 추억 속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간의 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인간의 정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부터 내가 배가 고플 때 밥 한 그릇을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자로 만들어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강인한 나를 가지고 결국 하나의 내 자신을 바칠 곳이 없어서 뭐 한번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돼서 이 사회에 봉사하려는 이러한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20대부터 추진이 됐고 그러고 30대에 가서는 대단한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중에 어느 정도 인기가 올라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높아가고 인기도가 높아가자 사람들은 내게 흥정이 들어왔습니다. 자기들과 편이 되는 것은 출세의 길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도 목적도 없는 편 가르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출세를 못하고 남의 집 문지기가 돼도 좋지만 그러나 나로 인해서 그 일이 사람들에게 축복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하나의 정치인이 되고자 했던 꿈은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그런 걸 거부했습니다.

그 뒤에 뒤에도 몇 번이나 일생을 하나의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제안들이 들어 왔습니다만 저는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라리 조건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내게 이렇게 대접하려는 당신들의 조건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볼륨을 낮추고 현실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볼륨이라는 것은 현실 비판을 하지 말고 현실에 대해서 그냥 간섭을 너무하지 말고 신경을 쓰지 말고 즐기면 되는 거 아니냐. 인생은 즐기는 것이다. 즐겨라. 그때 나는 그랬습니다. 눈물을 비오듯이 쏟으면서 내게는 돈이 필요 없다. 그런 부탁이라면 나는 그러한 것을 받지 않고 그러한 조건이 없이 수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는 내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꿈을 버렸습니다. 왜냐, 불의와 타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일 제가 여래가 해탈하지 아니했더라면 인간 세상에서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버리자 제게는 온갖 시련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허무 그리고 좌절 그리고 온갖 시비. 나는 그런걸 보면서도 결국 내 자신이 삶이 남길 추억 때문에 내 자신이 간직해야 할 추억 속에 결국 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저는 세상을 위해서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크게 주지 안했습니다. 뭐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버스 간에서 발을 잘못 디뎌서 다른 사람이 나의 그 구둣발에 발을 밟힌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그건 모릅니다. 나는 모르니까. 혹시 그걸 내가 몰랐더라도 다른 사람이 어떤 피해를 입었을 줄 몰라요. 그러나 내가 큰 피해를 남에게 준 적은 없다고 이렇게 항상 자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지 안했고 함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안했지만 결국 인간 세상에 축복이 될 만한 말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디서든지 용납을 하지 안했고 받아들이질 안했습니다.

제가 진리를 말할 때마다 저는 저주를 느꼈습니다. 바로 이 인간 세상에는 큰 저주가 존재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결국 나는 날마다 그 저주와 싸워야 했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저에게는 편안한 거 같지만도 질식할 것 같은 중압감을 항상 느껴왔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스님들 보고 그랬습니다. 장님들을 보고.
여래. 여래 그거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내가 볼 때 여래는 참 힘들기만 하더라. 다른 사람이 보는 여래는 어떨 줄 모르지만 내가 본, 여래가 본 여래는 너무 힘들더라.

어제 저녁에도 10시에 집으로 전화가 왔던데, 기원에 있었지요. 있었다. 사람들은 여래가 바둑이나 뜨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내가 하는 말이, 그러거든, 여래가 바둑이나 뜨고 놀러 다니는 게 그게 여래냐 하면, 여래는 바둑만 뜨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더 한 데도 놀러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라 했어요. 허허허.

얼마나 괴롭고 힘드는 줄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저는 제가 보고 제가 경험했던 것을 세상에 알림으로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만일에 내가 오늘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있는 것들이 어떻게 있게 되는가 하는 진리를 보게 하지 않고는 나는 죽어도 대접 받을 곳이 없을 것이요 세상에서. 살아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요. 그러나 남을 깨우치는 일은, 한 사람을 깨우치면, 한 사람을 깨우치는 그 사람이 그 저주에서 벗어나는 저주를 내가 받아야 될 것이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주를 내가 받아야 그 저주가 풀리지 그냥 풀리는 건 아니라는 것이여.

그래서 저는 항상 절망하고 시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이러한 일을 알 때 자신에게 있게 되는 힘든 일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세상을 살아오면서 여러분도 외로운 투쟁을 읽어봐서 조금은 알겠지만 뭐 먼눈을 풀 시간이 없었어요. 그게 결국 나를 갖다가 어느 정도 결국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걱정을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내 자신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 줄 모르지만 저는 사실이지 자라면서 남에게서 밥 한 그릇을 공짜로 얻어먹어 본 적 기억을 잘하지 못합니다. 더욱 어린 시절에는 더 그랬어요. 어린 시절에는 일가친척들 집에 찾아갔더라도 예를 들어 외갓집에 갔더라도 외갓집에서 내가 갈 때는 밥을 잘 안 먹어요. 허허허.

그래서 저는 결국 어렸을 때부터 매우 눈치에 뛰어났지. 나는 눈치로 살았으니까. 그래서 남에게 부담이 되는 짓을 잘 안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담이 되는 짓을 잘 안하고 살았어요.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는 것은 모든 여러분들이 지고 있는 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저께 이 자리에서 원덕하고 여럿이 있는데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들이, 깨달음이 어떤 명상이나 기도나 뭐 그 어떤 믿음을 통해 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지금 책 같은데 보면 깨달음은 자기를 죽인다고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죽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를 아(我), 자기를 없앤다. 아. 그래놨어? 자기를 없애는 거여? 아가 나여? 나를 없애는 게 깨달음이다 이러는데.

여러분 내가 없으면, 옛말에도 우리의 고사 책에 이런 게 있습니다. 천하를 다 얻어도 나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말 있지? 그러면 맞지 않잖아. 천하를 다 얻어도 나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했는데, 이건 나를 버리면 깨달음을 얻는다.

자기를 버리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잘못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잘못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의 과거의 행동 내속에 있는 잘못된 인연이 지어놓은 결과에 의해서 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업이 죽어야 내가 깨달음을 얻고, 항상 강한 건강한 내 자신을 볼 수가 있는 것이지. 어찌 나를 약하게 만들고 나를 죽이는 게 깨달음을 얻는 길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내 자신이 약해지면 먼저 오는 게 병뿐 안 와요. 몸에 병이 오고 정신은 어둡고 그래서 세상은 딱 거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불교에 가서 여래의 가르침이 이렇다 이러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하고 있는 말과 처음에는 비슷해요. 똑같습니다. 중이 하는 말과 모르고 들으면 내가 하는 말이 똑같습니다. 중이 경전을 몇 권 읽은 중이 하는 말하고 지금 내가 하는 말하고 비슷합니다.

왜? 그들의 세계에도 여래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석가모니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결국 이 세상에 있는 윤회나 인과법의 실상을 보고 그것을 설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비슷한 말을 들으면 같은 말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종합해보면 그 결과는 동쪽에 있고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뜻을 종합해보면 그건 서쪽에 있습니다. 극과 극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아직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길은 자기 속에 있습니다. 자기가 한 일로 인해서 자기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면 여러분들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나쁜 자기를 나쁘게 자기를 충동질 하고 나쁜 곳으로 자꾸 유혹하고 있는 그 업을 죽이는 것이 바로 수행이요, 공부요, 목적입니다. 사는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생이나 극락이 있다. 그건 이제 이쪽에서는 저희 입장에서는 3차원이나 4차원 세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이 과거부터 존재했으니까 영생이다 극락이다 있지만, 바로 그곳의 비밀은 이 업이 얼마만큼 업이 자기 속에 붙어 있느냐 안 붙어있느냐에 따라서 영생도 있고 극락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인간의 곁에 나타나는 신은 2차원이 아니고, 1차원 세계, 제일 잘못된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대학을 나왔다 해서 어떤 박사가 됐다 해서 꼭 좋은 삶을 살아라는 그런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어떤 기능 하나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행세를 하고 기술 하나를 가지고 행세를 하고 잘살 수 있었을 줄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것을 가지고 남을 속여서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을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그 업은 그런 학벌이나 이런 걸 가지고 업을 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일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항상 세상에 임해 주길 바라면서 내가 혼자서 앞에서 이렇게 아무리 떠들어 봤자 그것이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세상일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장님한테 가서 내가 여러분들이 장님을 모아 놓고 지금 여러분의 입장과 나와 여러분의 입장은, 여러분과 장님과 같은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에 맹아학교에서 맹아학교가 맹인들이 오는 학교여? 벙어리 오는 학교여? 맹인들이 온다고 맹인학굔가? 맹아학교에 가서 학생 하나를 데려다 놓고, 만일에 금정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저거는 뭐다 아니다 저건 저기에는 중이 셋이 있고 집은 저걸 언제 지었다. 저 재목은 뭐 소재는 어떤 플라스틱이고 어떤 소재는 뭣이 어쩌고 어디에 있는 흙을 갖다가 쌓고 세멘을 쌓았다. 그거는 그 맹인이 들으면 이해가 안가는 소리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맹인이 들으면 이해가 안 갑니다. 뭐 소재가 어떻고 저가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해를 합니까.

제가 여러분들에게 결국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런 세계에 대해서 있는 일에 대한 진리 속에 법속에 있는 일을 아무리 떠들어 봤자 여러분들 들으면 그 소리가 그 소리 같고 만날 들은 소리여.

그러니까 방법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질문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하면 그러면 옆에서 들으면 관심을 가지고 옆에서 들으면 아 그게 그렇구나 해서 깨달아져요. 그게 그렇구나 해서 깨달아져요.

한번 깨달아지면 그 분야에 대해서 그러한 일에 대해서 실수하는 일이 드물어집니다. 여러분들이 깨닫는다는 것은 이미 어떠한 사실이 의식에 닿았다는 것이거든. 어떤 일이든 여러분 의식에 닿으면 그것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어떤 항상 같은 사실을 보게 될 때 그 의식에서 그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 이건 이렇다. 그건 분별력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세상일에 대한 분별심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면 세상의 일을 알게 됩니다. 그래 속지 않게 된다는 것이에요.

물론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는 거 하고 안 오는 거 하고 차이에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 했지요. 이 시대에 귀신으로부터 죽은 자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고의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귀신이 봐서 저 놈은 갈불(갋다) 놈이 없고 구제불능이다. 그러면 거기는 안 붙습니다. 그거는 아주 악마가 아니면 안 붙어 버려요. 그리고 완전히 망해버리면 거기는 벌레도 안 와요. 벌레도 안 온다니까. 완전히 망한 놈한테는.

어떤 우리가 쌀 하나를 그걸 바짝 말려서 삶아서 바짝 말려 놓으면 거기는 벌레도 안 붙어. 안 나와. 그 벌레가 살아 있으니까 벌레가 나오는 거라. 완전히 그 의식이 죽은 놈 못 쓰는 놈 그거 폐인 돼. 독만 묻어 있는 놈 의식에 독만 묻어 있는 데는 귀신도 안 붙어요.

그리고 바로 이곳에 여러분들이 이곳에 딱 마음을 먹고 깨닫겠다는 마음과 항상 나를 입력하는 곳에 그런 피해가 없습니다. 시험은 있을 줄 모르지만 피해는 없어요. 왜냐, 세상일은 간단해요. 뭐 저 대통령 조카는 가면 지나가면 순사들이 잘 안 잡습니다. 큰 빽 있는 사람 잘 안 건드려요. 산 사람이 볼 때 여래는 별게 아니고 별게 아니지만 죽은 자가 볼 때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걸 하나 여러분들이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질문이 여러분들을 좋은 깨달음 속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질문을 잘 안 받습니다. 설교만 하지. 왜냐, 그거는 모르는 사람이 하는 거고, 아는 사람은 질문을 많이 받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푸는 게 재미가 있거든요.

차이는 그 뿐이여.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은 질문을 해라 이러고, 자신 있는 사람은 질문을 해라 이러고, 그리고 진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인해 보자 그런다.

가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인해 보자. 소리 안 합니다. 이게 세상일입니다. 왜냐하면 확인하면 가짜가 들통이 나니까. 진짜는 확인을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는 거 아닙니까? 신이 나지. 자기가 진짜라는 게 드러날 거니까.

그러니까 항상 세상일은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이곳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해서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은 그 말에 또 속아요. 그 말에 속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확인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닌가를 확인하고 나서 거짓이다 진실이다 이렇게 판단해야 되지. 확인도 하지도 않고 거짓이다 진실이다 이렇게 미리 판단하는 것은 그것은 매우 잘못된 습성이라고 봅니다.

자 질문 좀 하지. 뭐 앞으로는 저 책을 만들고 계속 그 세계에서 봐야 되면 설명을 많이 할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질문을 많이 가지고 와야 돼요.

요즘 요 며칠 동안 강성숙 양이 여래님 원고를 정리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

서론은 빼고 본론만 하지.

의문 사항을 좀 많이 적어놨어요. 좀 간략 간략하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래라는 말은 누군가 그렇게 붙여 준 것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처음부터 여래라고 하셨습니까?

여래란 말은 쉽게 말해서 보는 자다. 보는 자라는 것은 눈을 떴다. 세상일에 대해서 눈을 떴다. 눈을 떴다. 보는 자 라는 의미로 여러분들은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여래는 보는 자. 두 번째, 여래라는 말은 완전한 해탈을 이루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이 말이 보는 자 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어서 ...

질문하고 대답 핀트가 맞아야 됩니다. 두 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여래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는 게 지금 두 번째 나오고 처음에 물은 것은 여래라고 하시는데, 그 말은 스스로 처음부터 여래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렇게 붙여주었습니까? 그러니까 질문에 맞게 대답하셔야죠. 간단하게.

여래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세상을 보게 됐을 때, 내가 세상을 보는 자가 됐다 하는 의미를 내 스스로 사람들에게 알린 말이다.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여래가 된 사람들은 석가모니도 자기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자신을 사람들 앞에 여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 여래의 뜻은 무엇입니까?

여래의 뜻은 여래의 의미는 여래의 뜻은 이렇게 보면 됩니다. 여래는 보는 자. 그러니까 완전한 해탈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한 분. 그러니까 이 말은 아내와 마누라와 같은 말로 보아도 됩니다. 같은 말입니다. 완전한 해탈을 하고 깨달음을 성취했다 하니까 바로 보는 거 아니여. 보게 됐다. 보는 자.

그러면 보는 자란 과거 현재 미래의 일까지 다 본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무당이나 신들린 사람들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어떻게 다릅니까?

허허허. 보는 자는, 있는 것들이 모든 현상은 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던 인연에 의해서 나게 됩니다. 보는 자라는 것은 법계의 일을 보아서 어떤 것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되고 쉽게 대해서 어떤 것이 어떠한 뜻에 의해서 없어진다. 이런 것을 보는 것을 보는 자라 하고,

무당이 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씌어서 영화의 필름을 보는 그런 현상입니다. 영화의 필름. 어떤 누군가가 영화의, 무당이 하는 말과 그러니까 여기에 종교지도자나 종교인이나 무당이 하는 말하고 비슷합니다. 종교인과 무당이 하는 말과는 비슷하지만 여래가 하는 말은 종교인이나 무당이 하는 말하고 완전히 틀립니다.

그들은 무엇을 믿어라 하지만 저는 무엇을 믿으라하는 게 아니고, 확실한 증거를 확인하고 그리고 있는 것을 믿으라하지. 절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걸 믿어라 이런 소리를 안 합니다.

무당은 신을 섬기라고 합니다. 이쪽에서 하는 여래는 절대적으로 신을 섬기라는 말을 안 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세계에 대해서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당은 어떻게 세상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이런 일은, 세상 이치 속에 있는 일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당이 만일에 여래가 아는 일을 하겠다면, 무당이 환영받는 무당이 세상에 많은데 왜 세상에 되는 일이 없고 이렇게 혼탁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무당하고 무당 아닌 여래하고 차이는 무당은 귀신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여래는 여래가 아닌 중생일 때도 사람들보다 매우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중생일 때, 그 여래라는 여래를 보기 전에도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입장에서 제가 보통학교도 잘 나오지 안했지만 세상에서 법률이나 상식이나 일반 이런데 대해서 뭐 어지간한데 대해서 별 부족함이 없습니다.

뭐 경제학이나 철학이나 법학이나 이런데 대해서 세상 이치를 통해서 가르치는 것은 엄청나게 뛰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어떤 사건을 두고 법관과 나와 둘이서 그 문제를 해결하면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나를 따를 수 없습니다. 나는 이치를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걸 이치에 맞춰보고 당장 앞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가 참말을 하는가 그걸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그가 한 일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됐는가를 대번에 계산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말해서 무당은 귀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아 참 저 법관의 힘으로써는 장님이기 때문에 있는 사실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배운 책을 통해서 자기의 의식 속에 쌓인 형법 몇 조, 어떤 심중 자기생각에 의해서 그 심중을 붙이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 여래가 보는 여래의 능력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귀신하고 저 무당이 하는 짓하고 여래가 하는 거하고 이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래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을 밝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귀신의 능력으로써는 그러한 능력을 절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그들이 왜 귀신이 되어서 인간의 그 허약한 인간의 몸에 붙어서 살기를 원하겠어요.

이 차이부터 여러분들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매우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실이지 이런 차이를 이런 질문을 지금까지 안했다는 것이여. 그래서 이 차이를 모른다는 것이지.

더 질문을 드릴까요?

질문 계속하고 여러분들 생각해. 질문을 좀 생각 해.

해탈이란 어떤 경지를 말하는지?

해탈이라는 것은 제가 이거 참 여러분들은 해탈을 안 한 사람한테 해탈 이야기를 하니 참 어렵네. 허허허.

자, 해탈이라는 것은 어떤 경지를 말하는 게 아니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안 보냐? 보지. 봐도 모르지 않습니까? 무엇이 어떻게 해서 있는가.

쉽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며칠 전에 우리 집에 있는 방을 하나 수리를 했습니다. 문우가 전구를 꽂았는데 꽂아도 불이 안 와. 그런데 문우는 집에 할일이 있다, 시장을 봐서 가야 돼서 원덕이 뜯어서 고치고 있어. 그래 내가 하는 말이 전기불이 안 오는 것은 줄에 이상이 있던 가 그렇지 아니하면 전구에 이상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배선을 꽂는 그 소켓에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래 전구를 다른데 그 전구를 뽑아다가 꽂아보니까 불이 오더라는 것이여.

그러면 전기선에 이상이 있느냐니까 선에는 이상이 없데. 그러면 뻔한 것입니다. 뜯어 고치려고 해. 그래 내가 달라 했습니다. 저도 안 오고 하니까 이상하다 하면서 줬습니다. 결국 제자리에 딱 놓았는데, 이걸 거꾸로 꽂아 놓았더라는 것이에요. 바꿔해 놓았더라는 것이여. 이걸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들은 단순하게 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걸 만들 때는 저는 이 전기에 대해서 문외한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의 세상이란 모든 것을 하나의 사물 하나하나를 다 이치를 통해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있는 이치를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 올 때 아차 자기가 한 작업을 했던 자리에 무엇을 어떻게 바꿔 끼웠다는 그걸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그걸 잡고 그걸 찾아냈습니다. 이건 매우 사소한 일입니다. 원덕이나 문우가 들을 때 그까지 것 내도 뭐 할 수 있다. 뭐 할 수 있기야 있지. 그러나 퍼뜩 그 순간에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사실이지 조금 쉬운 일도 어떤 때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을 감으면 환상과 환상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겠습니다. 해탈이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크게 기쁜 일도 느끼지 못하고 평소에 크게 분노나 번뇌나 망상 분노 그리고 슬픔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난 자기의 상태 이것을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업으로부터 벗어난 것. 업 업이라는 것은 죄의 근원이지. 모든 죄로부터 벗어나는 거. 나에 내가 나의 인연 속에서 묻어왔던 모든 죄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근원으로부터 벗어나면 번뇌 망상이 안 일어납니다. 그러면 무엇을 볼 때 보고 말할 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일반 사람들은 저 원고지에 하루 글을 30페이지 50페이지 써도 별 힘든 걸 모를 겁니다. 저는 저 원고지에 글을 한 장만 써도 매우 피로합니다. 다섯 장을 쓰면 얼굴이 달라서 요새 여래님 얼굴이 별 안 좋던데 이런 정도로 나올 겁니다. 그만큼 무엇이냐,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세상을 갖다가 그걸 갖다가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실이지 문필을 다루는 기술이 없으니까 저 글을 말을 만드는 기술이 없으니까 그걸 또 해놓고 또 몇 장을 버리면 한 장을 만들어 내거든. 해놓고 보면 본 걸 그대로 써 놓으면 그게 좀 부족하다 말이여.

제일 쉽게 말하겠습니다. 어떤 한 번도 그릇을 안 만들어 봤는데 뭐 실내에서 자기가 하나의 그 뭐지 그 기계 뭐지 그릇 만드는 기계가 뭐지? 물레를 놔 놓고 혼자서 만들어 보니까 그게 모양이 잘 안 나오더라는 것이여. 그래서 열 번 스무 번 만드는 이런 결과는 가져 왔지만도 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사실을 만들어 낸 거 어떤 글을 어떤 무엇을 만들어 내는 거 이건 매우 힘이 든다는 것이지.

여래님 지금 말씀하시는 거는 하나도 안 피곤하시죠.

어, 안 피곤하지.

그런데 말씀하시는 거 하고 글 쓰시는 거하고 결국은 기억해 내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기억해 내는데.

그러면 어떻게 다릅니까?

말하는 거는 지금 접하고 있잖아. 그냥 있는 거 그대로 말해 버려. 말은 술술 나오잖아.

어제 문우 이야기를 지금 기억하시는 거 아닙니까? 며칠 전에 이야기를.

하하, 그래 마 기억했는지 모르지만 줄줄 나오네. 내 의식 속에 닿아 있으니까 줄줄 나오는 건데. 뭐 기억을 한다. 생각한다. 그런 건 아니야.

아니 글 쓰실 때는 그렇게 안 됩니까?

글 쓸 때는 글을 썼잖아.

과거에 있었던 일인데 결국은.

너에게 이야기 할게. 그대로 써놓고 나면, 보니까 이게 내 하고 싶은 소리가, 그렇게 글 쓸 때 그렇게 안 됩니까? 되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지. 근데 써놓고 보니까 이게 그만 하나도 참말로 보니까 이게 풍월도 아니고 뭐도 아니더라는 거지. 그러니까 어떠한 것을 이거 글을 쓸 때는 어떤 설계도가 필요하다 말이야. 너가 집을 지을 때 그냥 내 보고 집을 지으라면 내 마음대로 집을 지으라면 그건 문제가 없어. 그러나 ...

그럼 여래님 지금 말씀하시는 걸 마음대로 하십니까. 지금.

그렇지 마음대로 하지. 있는 거를 말하잖아.

아니 이제 마음대로 하시면 그게 틀린 게 있으면 어떻게 해요.

있는 걸로 이야기 하는데 틀릴 수 있겠느냐. 이 사람아. 그건 무슨 소리하고 있어. 그러니까 보는 자다 했지. 그래 너가 많이 반론을 해라. 말을.

보는 자니까. 보고 말하는 거는 쉽지만, 우리가 어떠한 무엇을 만들 때는 설계가 되는 것이여. 어떤 그 틀에 맞춰야 된다는 것이여. 틀에. 맞아? 틀에 맞추려 하다 보니까 그 틀을 틀이라는 같은데 맞추다 보니까, 깎고 이걸 갖다가 또 붙여야 된다는 거여.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여. 생각이 들어가면 그렇게 피로가 빨리 온다는 것이여.

지금 하고 있는 말은 하나도 생각을 여기에 보태지 않고, 있는 그걸 그대로 설명하거든. 물건을 보고 대답하는 거여. 어떤 문제를 여러분들이 내게 물었을 때 그것을 대답하는 것은 하나도 피로가 안 와요. 그러나 어떤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맞는 어떤 문장을 만든다든가 어떤 내용을 삽입하는 일은 생각이 거기에 생각을 가져와야 돼. 생각을. 그때 나는 엄청난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피로. 그러니까 해탈이란 ...

여래님이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데 생각을 하시니까 피곤하시다는 말씀인지요?

그렇지. 쉽게 말해서 그러니까 그건 세상을 완전히 끌고 오는 거지. 세상을 내 속에 내 머리로 세상을 보는 거여. 그러니까 그게 그 틀을 항상 보고 거기에 맞는 것을, 하나의 짜내는 일 이런 거 이런 거는 매우 힘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 백 시간이고 십만 명의 천재가 계속 내게 질문을 하더라도 그 천재들의 질문이 질문 요지만 정확하다면 피로는 하나도 안 먹힙니다.

그러나 단 한 줄의 글을 쓰는데 그것이 어떤 틀에 맞춰야 된다. 이렇게 된다면 그것은 내게 많이 힘듭니다. 쉽게 말해서 해탈이라는 것은 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떠오른 것이 중요한 걸 하나 알아야 됩니다.

해탈을 하면 업이 없으면 윤회를 하지 않습니다. 윤회로부터 이탈은 바로 이 업으로부터 자기를 붙잡고 있는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저는 여러분들이 이미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닌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서 세상일이 이렇게 힘이 드는 거예요.

왜냐하면 쉽게 말해서 해탈을 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니에요. 제가 이 죽음과 동시에 태어나고 싶으면 그냥 태어나는 것이고, 머물고 싶으면 수천 년 수만 년을 그대로 머물 수 있습니다. 윤회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계속 나고 죽고 이걸 반복해야 됩니다. 사람으로 못나면 짐승으로 나든가 짐승으로 못나면 식물로 나도 나야 돼요.

이게 바로 윤회와 인과 법, 윤회와 인과 속에 있는 법이 세상을 있게 한 바로 비밀입니다.

해탈은 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말하며, 쉽게 말해서 그 업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는 어떻던가. 이 질문을 내가 잘 해석해야 되는데, 질문해.

그럼, 질문했는데, 다시 그럼 이 대답을 가지고 들으면서 다시 또 질문을 만들 수 있게 돼요.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당신께서 해탈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참 곤란하네 그거. 장님이 내 보고 눈뜬 줄 어떻게 알겠느냐, 전부 장님인데, 내가 눈을 뜬 줄 어떻게 알겠느냐. 바로 지금 내가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고 날마다 당하는 일이 그건데. 이 세상에서 수천 년 동안 속아 온 사람들이 내가 눈을 뜬 자다, 이랬더니 하는 말이 어떤 것을 확인을 해보려 안 하고, 어떤 점이 눈을 뜬 것과 눈을 감은 자의 차이가 어떻느냐 이런 걸 확인 해 보려고 안 하고, 의심부터 덜컹덜컹하고 전부 다 의심을 하고, 최고 의심하고, 대접을 좀 한다는 사람은 그만 외면해 버리는 거야.

아 그러면 어떻게 확인 할 수 있습니까? 일반 사람들 어떻게 확인할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지적하는 곳에 가서 확인을 하면 돼.
길이가 얼만지 무엇이 얼만지 손을 댔을 때는 어떻더라.

사실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해보라.

그렇지. 그렇게 이해해도 돼.
구체적으로 들어야 돼. 구체적으로 안 들으면, 가서 자기가 확인할 때 어떤 차이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최고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고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바로 아까 업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그러니까 해탈을 한 상태. 여래를 최고의 깨달은 자라고 말하지. 그런데 이 여래도 6천 년동안 세상에 둘 뿐이 안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이지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정말 여래라고 한다면,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억지로 참뜻을 알아달라고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이야기해본 사람이라면 이상한 의심이 없이 바로 그 진실을 알아듣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의심하고 외면을 하는지요?

하하하하하하. 음, 질문이 너무 재미있다.
너처럼 지금 그리 그렇게 물어봐야 돼. 너 참말로.

그건 내 말을 들으면 여러분들은, 하도 질문이 너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까딱하면 내가 대답 잘못하면 까딱하면 내가 진짜 크게 당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바로 대답을 대야 되겠어.

이 세상에 성인이 4사람이 났어. 6천 년동안에. 노자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

인도 네루대학 총장이 내 보고 하는 말이 내가 깨달았다 하니까, 여래고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 하니까, 당신이 당신 나라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느냐 해서 내가 한 말이 있다고 했지요. 이건 여러분들은 비유를 들어야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되니까. 나는 아직까지 누구에게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 가면 내 마누라부터 나를 잘 대접하지 않는다 했지. 내 마누라도 날 대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어디 가서 대접받기를 원하겠나.

그러고 나서 그가 이해를 잘 못할까 싶어서 노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겨우 맞아 죽든가, 인간이 강요한 독약을 마시고 죽든가,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에 가장 선한 자들이, 가장 큰 죄를 저지른 자들이 죽어야 했던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공개 재판에서 죽었다. 언덕위에서 죽어야 했다.

그게 바로 성인들의 일이다.
여래라면 세상에 온 최고의 성자인 성인인데,
여래의 말을 알아듣고, 여래의 말을 자기 속에 받아들이면,
그는 영생 극락을 누릴 게 아니고,
자기의 능력에 의해서, 자기 속에 있는 자기를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룰 수가 있는데,
그러한 큰 축복을
업을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지.

 

[tape B]

업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나한데 붙잡힐까 싶어 두려워하는 거여. 왜? 붙잡히면 그들은 운명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곡마단에 가서 줄타기를 계속 연습을 해서 숙달이 되면 뭐 줄 타고 하는 게 그리 힘 안 들어. 1미터 2미터 걸어 놓고 그 새끼줄 타고 가는 게 힘이 안 드는데 숙달이 안 된 사람은 그 올라가라면 두려워서 못 올라가. 올라가면 떨어져 버리고.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일반인과 여래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차이 때문에 항상 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래서 항상 이 자리에서 말하는 건 나는 크게 나쁜 짓도 한 적이 없다. 나는 크게 거짓말도 한 적이 없다. 나는 남에게 크게 피해를 준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아무도 나를 신용하지 않는다. 모두 내 곁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사람 속에 살면서도 날마다 외로워서 쩔쩔맨다. 그래서 심지어는 참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서슴없이 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자신을 설명. 하하하.

그러니까 그 여래와 일반인의 차이에는 장님과 너무나 그 시각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내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틀린다는 말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은 우리와 맞지 않다고 거절했습니다.

 

여래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는 어떤 게 얼마나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줄 수가 있습니까?

현재의 인류에서 물론 모든 것은 뱀은 뱀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토끼는 토끼로의 특징이 있고, 여우는 여우대로 특징이 있고, 사슴은 사슴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래라면 여래라는 또 특징도 있어야 무슨 내가 여래라고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거지. 만일에 그런 특징을 가져오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여래라 했다면 일반 사람들이 참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어요.

그런데 이 시대에 태어나야 했던 나에게는 참 자연스럽게도 완벽한 증거를 전부 다 갖게 됐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증거는 내가 내 입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이미 6천 년 지난 전에도 세상에 존재했는데, 그 과거의 세상으로부터 전해 온 말들이 5천 년이나 6천 년 전 이 시대에 문명이 피기 전에 이미 인도 대륙이나 이런 곳에서는 그것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백호광이다. 머리가 열렸다. 백호광이 나온다. 지혜의 눈. 그 다음에 의통이라는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는 실제 문헌에서 이 과거의 세상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 문헌들로부터 존재하고 있는 모든 증거를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하나 이러한 증거를 실제 사람들에게 보인 사람은 6천년 동안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기록으로는 없습니다. 제가 최초입니다.

나의 몸에는 여러분들이 보면 이마에 있는 백호광(白毫光).

이건 내가 어디 수술을 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스님을 만나서 세상을 구하겠다고 연탄장사라도 해서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결국 이 사회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가장 큰 길이라는 걸 가르쳐 줬습니다. 내가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내가 남을 섬겨야만 비로소 좋은 일은 스스로를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연탄장사라도 열심히 해가지고 그래 돈이 얼마 남으면 열심히 그냥 국수라도 삶아 놓고, 사람 복 지으러 오라면 안 올 거니까, 배고픈 사람들 보고 공짜 국수 준다 이러면 올 줄 모르니까, 그래 섬겨놓고 몇 그릇 먹여놓고, 내가 그때는 여랜데 세상은 이러한 뜻 속에 존재하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은 당신들은 이런 소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가르쳐 주면 사람들이 혹시 나의 곁에 붙어 있을 줄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과 그들의 앞날을 삶을 구해줄 앞날을 구해줄 수 있다고 이런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바로 그거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활동을 시작하는 날, 나의 이마에서 이 백호광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별게 아니지만 인도 같은데 가서 이것만 탁 들여 보이면 사람들이 힌두교의 상카라치리아고 뭐고 바쁘다고 전부 도망을 가 버리고, 말은 필요 없습니다. 내 이마를 봐라 이러지. 이게 뭔고. 그만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만 두려워해요. 두려워합니다.

그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구도자였다면 진정으로 세상을 섬기는 구도자였다면 매우 기뻐했겠지만, 실제 오늘날 종교계통에는 구도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바로 가장 무서운 어떤 위선잔지도 모르니까. 사람들을 버리는 무서운 사람들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세상을 구하러 온 자 인 것을 알면 매우 두려워합니다.

상카라차리야는 힌두교의 ...설명

두 번째, 여러분들이 사실이지 내가 어떤 사람이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픈 걸 대번에 감지해 냅니다. 속이 아프다. 속이 아픈 걸 대번에 감지해 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그를 내가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이 중에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바로 내가 의통(意通)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통이라는 것은 전설 속에만 존재하지, 누가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이 의통을 해서 나타나서 어떤 환자를 고쳤다 이런 기록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너도 그래? (맞아?), (기록이) 있어?

뭐 사실적인 기록은 없지요.

그러고 이와 비슷하게 여기 어떤 종교단체에서 병을 고친다. 이러지만 전 제가 마음을 먹으면 백발백중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종교계통에서 만일에 그런 일을 갖다가 성령으로써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증거로 보여야 될 것이요. 나의 앞에서. 그리고 나는 그들 앞에서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은 나의 앞에서 그 증거를 아무도 보이지 못할 것이요. 요게 바로 차입니다. 그리고 이건 완전히 뭐 기적과 같습니다. 기적.

그러니까 본인도 잘 모릅니다. 본인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이예요. 제가 이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언니가 뭐 좀 몸이 좀 아픈데 고생을 많이 한다더라.

그래서, 누굴 부려도 꽃꽂이 대상을 부리면,(사례를 들면) 그 사람 돈이 좀 있고 돈을 좀 낼 줄도 모르고 봐주면, 하나의 증거를 하나 보여줘야 되겠는데, 사람들은 그런 것 또 좋아하지 않습니까? 중생이 깨달은 자 처음 만나가지고 그 무슨 감동을 느끼겠어요, 그렇지요. 나는 도대체 하나 만나서 신용을 좀 얻어야 될 건데 아무도 나를 안 믿으니까.

이 신용 얻는 방법이 없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이런 의통을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일을 하는데 이게 도움이 될 줄 모른다. 돈 걱정은 하지 말아라. 정 급하면 내가 이것을 쓸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 지금까지는 돈을 위해서 이걸 안 썼어요.

그런데 물론 이것을 고치는 동안에는 그 사람의 병은 그 아까 이야기했지요. 저주와 싸운다 했지요. 그 병과 내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냥 병이 없어지고 이런 없애져라 이래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없어져라 이래서 없어지는 게 아니고, 그 병과 내가 싸워서 그 병을 제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되지. 병이 나중에 뭐 도깨비 방망이로 없어져라 해서 없어지는 줄 알고 자꾸 환자 끄집고 와서 이걸 좀 봐 달라 하면 골치 아프니까 그런 일은 절대적으로 하지 마세요.

그래서 이제 그런데 전화로 그날 내가 되게 피로했는데 전화를 탁 걸더니만 딱 오는 거라. 사람이 왔어. 왔는데 앉아서 그만 손을 한번 잡았습니다. 잡고, 한 15일 기다려 보시오. 나을 겁니다.

그래 내가 하는 말이 저 스님이나 앞으로 스님 좀 잘 봐 줘라. 공부하려는데 좀 잘 봐 달라 했는데, 그때는 좀 사람 하나 어쩌면 참말로 하나 구할 수 있다 싶어가지고 참 그때는 참말로 보살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내도 그때는 진짜 돈이 없을 때, 돈 1,000원이나 이리 넣고 다닐 때거든. 요새는 여러분 덕택에 일주일에 단 7만원이라도 씁니다만 그때 누가 돈 주는 사람 있습니까. 내가 땅 판돈 아니면 쓸 데도 없고, 그놈 또 돈 안 써본 사람이 되어서 함부로 쓸 수도 없고 이래.

그런데 갈려고 하더니 돈을 여기(스님)에 와서 10,000원 빌려 달라 이러는 거라. 그러면 병은 아주 큰 병인데 10,000원 그거 가지고 뭐 합니까. 이 보통 병이 아니더라고요. 앞가슴이 완전히 딱 거북이 두꺼비 보다 더 해가지고 그러면 고통스러워 죽습니다. 사람 못 살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해서 살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런데 그거는 현대의학으로는 이건 손도 댈 수 없는 거라요.

그래 내가 말해 15일. 기분도 좋고 해서 15일 만에 안 나으면 안 나으면 이거 큰일 났는데 그냥 에이 그만 입에 나오는 데로 15일 이랬어요. 15일. 이러니까 그 사람도 그냥 가기 힘드니까 10,000원, 10,000원 빌려 달라 이러더만.

그 돈이 안 빌려줘도 그 돈 그 돈이 내 한테로 올 돈인데, 그걸 또 빌려가서 써버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 스님이 내 돈 없는 줄 아니까 까닥하면 그 돈을 가지고 내에게 줄 건데 그래서 그만 내가 그만 두라 했어요.

그만 당신 말이지, 이거 병 이거 그때 돈 10년 전 5천만 원을 줘도 이거 병원에 가서 못 낫는 병인데 그 무슨 10,000원이냐고, 나중에 당신 내 말이 맞거든 그리 되거든 여기 스님한테 조금 당신 약값 들어가는 거 100분의 1만 스님한테 좀 주라 이랬거든, 나중에 그래서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좀 되게 해달라고 이랬는데. 아 뭐 가서 시간이 가서 시간 지냈는데 소식이 없어.

그런데 15일 쯤 될 때, 이 사람이 머리에 하도 아프니까 한약방을 찾으니까 돌팔이 의사가 침을 놨는데, 뇌에다 침을 놨는데 뇌 세 어디 뭐 뇌 여 신경을 건드려 버린 거라. 뺐는데 신경에 부작용이 있어서 아파 죽겠는 거여. 그게 도져가지고 저녁에 죽겠더라고.

나도 이제 밤새도록 14일 쯤 됐을 때 잠을 못자고 아파서 죽을 지경이여. 그래 제가 염력을 사용해서 그 뇌에 있는 구멍을 좀 때웠습니다. 그러자 그 아픔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때 그 사람은 모든 병이 사라져 버렸어요. 뇌 다친 것까지 사라져 버렸어요.

그런데 이놈의 여자가 나았는데 안 나았다 하는 거여. 그래서 좀 한번 인사를 올 것 같은데, 그때는 처음 그게 너무 병원에 가서 나을 것 같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안 하지. 그래도 사이다라도 좀 사올 것 싶은데, 안 와서 어찌 됐나 물어봤어요.

안 나았다 하는 거라요. 그 사람은 이미 나와 의식이 닿아 있는데, 그 사람이 아픈가 않은가 내가 환하게 볼 수 있는데 안 나았다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 의식을 딱 연결해보니까 나았는 거라요. 나았다.

가보니까 그 사람이 가더니 너무 기적 같거든. 그래 그날 그 머리도 사실이지 그 진통제를 먹어서 나은 게 아닙니다. 제가 염력으로써 그걸 갖다가 그 머리에 신경을 갖다가 확실한 치료를 해버렸기 때문에 나은 거예요. 뇌신경을.

그런데 그 사람은 그건 약방에 가서 너무 아파서 그런 걸(약속을) 깨버리고 약방에 가서 약을 한 2천원 어치 사먹었다나 그러니까 마침 씻은 듯이 나았다. 약방만 칭찬을 갖다가 하지. 그 부담이 되면 그만 두지. 내가 어디 돈 달라하는 것도 아닌데 약방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자신을 도와주고 자신을 고쳐준 사람은 한 번도 입도 빵긋 안 하는 거여.

그래서 이게 과연 좋은 게 아니다. 좋은 건 아니다. 그 사람은 병을 가지고 있는 게 좋은 겁니다. (고쳐주는 게) 좋은 게 아니다. 이렇게 느꼈습니다만 이러한 것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또 또 물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자기 삶의 의미를 어디에다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정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다 헛된 욕망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하아, 삶의, 한 번 더 읽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자기 삶의 의미를 어디에다 두고 살아 갈 것인지도 정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다 헛된 욕망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뭐, 삶의 의미를. 그래요. 내게 와서 물으면, 솔직히 말해서 그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삶의 문제를 의미를 전부 다 알아버리잖아. 그 업도 그냥 업이 죽게 돼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묻는 게 그런 걸 묻는데,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묻기를 좋아하지. 아는 사람한테 또 그 인연이 안 닿는가 안 묻더만. 그러니까 나에게 와서 삶의 의미를 묻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삶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자신이 자기의 삶의 의미를 알게 되면, 자신이 자신에게 의지해서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인도할 수 있다. 이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인도하면, 자기가 자기를 잘못 살게 하지 않고, 자기를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자기를 항상 축복하게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면, 그건 말로는 축복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을 축복하는 일이, 자기의 일을 통해서 자기를 축복하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은 오늘날 도덕운동을 한다 하지만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덕운동을 한다고, 우리 사회에서 만날 도덕성 회복이고 도덕성 도덕 무슨 강연이고, 도덕 뭔 집회고 이러지만 그곳에서 누구도 도덕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덕은 바로 양심이고, 도덕의 가장 큰 핵심은 양심이고 정의예요. 내가 남을 해치지 않고 내가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고, 내가 결국 있는 것에 대해서 결국 알려고 하는 그게 도덕이에요.

결국 거짓을 거짓이 도덕이 아닙니다. 진실이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위해서 도덕은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거짓 속에서는 도덕이 존재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양심과 정의가 도덕인데,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그런 걸 가르치고 그런 걸 주장한 사람은 없습니다. 뭐 웅변대회 갔으면 정의가 어떻고 이렇게 한 번씩 들어볼 수 있지만도 그것도 반쪽이에요. 그것도 어떤 무엇을 연결한 게 아니고 말만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전두한 시절에 정부의 캐치 프레이즈가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그러니까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거는 관공서에 붙었는데, 관이 바로 정의다. 저들이 정의다. 이 말이거든. 저들이 정의다. 너들 까불면 죽는다. 그러니까 그 정의사회 구현이다, 관에다 붙여놓으면 정의 없다, 이 말이거든. 까불면 죽는다, 정의 없다. 우리가 정의인데 무슨 까불고 있냐. 또.(질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점 즉 사람들이 오직 물질과 명예 권력 등만을 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한다 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와 닿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입니까?

거참, 말 자체가 너무 잘 만들기는 잘 만들었는데, 제일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어떤 좋은 말을 사람들에게 행동하도록 움직이는 데는 그 좋은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먼저 가르쳐 놓고 어떤 일에 대해서 그러한 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알려놓고 그 일을 해야 되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 캐치 프레이즈는, 가르치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을 보고 하라 하니까 농사도 안 지어 본 사람한테 가서 농사지어라 이러니까, 도시 사람들 여기서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도시에서 나온 아이들 뭐 젊은이들 스무 명 데려다 놓고 무조건 시골에 가서 농사지으라하면 그 사람 농사지을 수 있습니까. 바로 바로 그거예요. 가르치지 않고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하고 그리고 그 사실을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어떻게 우리는 그 사실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사람들한테 알리고 그리고 그러한 일을 어떻게 사람 속에서 얻어낼 수 있는가 하는 그 법을 가르쳐야 됩니다. 뜻을 가르쳐야 돼요. 어떤 어떠한 행동을 가르쳐야 되는데 그런 걸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런 것이 하나의 헛소리로 끝나게 되고 또 그것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무지로 인해서 있는 건데 그건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아는 자가 그런 일을 주선해 주고 아는 자가 가르쳐야 되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일이 사회에 끼치게 되는 영향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게 진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증거로서 사람들에게 보여야 그게 움직인다는 거여.

쉽게 말해서 시골 사람들이 이러한 일들이 우리나라에 지난 몇 십 년 동안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시골에 돌아왔습니다. 거기에 황무지가 있었어요. 그 황무지에 돌을 집어내고 그 야산인데 돌을 집어내고 나무를 과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무도 안 건드리고 안 거들어주고 웃었습니다. 비웃었습니다. 저 땅에 버려진 땅에다 미친놈이라고 저기다 저걸 심어되겠냐고 그러자 그는 어떤 유기공법이나 퇴비공법을 이해해서 퇴비를 넣고 하자 그것이 1년 2년 지나니까 거기서 주렁주렁 과일이 열렸습니다. 아주 탐스러운 과일들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도시에 있는 중간 상인들이 와서 그 과일을 사 가서 돈을 크게 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돈을 크게 번 걸 보자 그때부터 욕심이 동한 사람들은 그 기술 좀 가르쳐 달라고 그 집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는 그냥 감나무면 감나무단지가 그렇게 생기게 됐다는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에게는 알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큰 이익을 가져 오는가 자기들에게. 사람들은 이해(利害)에 밝습니다. 만일에 이러한 이해를 넘어서서 어떤 일을 생각하고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많이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자, 다른 사람 질문.

질문하나.

응.

무엇을 만들려면 그 틀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 틀을 만들려면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여래님 말씀 가운데 생각이 들어가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자, 그렇습니다. 나의 본 진리는 틀에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깨달은 자가 아니고 중생입니다. 중생은 틀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장님들은 어떤 틀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어떤 글도 어떤 작문을 하나 쓰더라도 어떤 틀에 맞춥니다. 형식을 필요로 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진리라는 건 형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만 있는 것을 설명하면 됩니다. 진리를 말할 때는 형식이 필요하지 안 해요. 있는 거 설명하면 됩니다. 그러나 중생이 읽어야 할 책은 틀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걸 읽어봤자 소용없어요. 안 봐요. 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 사장이 뭐라 하는 줄 압니까. 당신이 아무리 많이 알아도 이 글을 만들고 글 장난을 하는 거는 우리가 낫다. 당신이 아무리 좋은 말을 써놔도 그것이 하나의 문맥을 다듬어 놓지 않으면 그 말은 좋지만 글이 틀렸다고 안본데. 글이 틀렸다 해서.

그런 우리는 결국 나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지만 결국 그 중생을 내 곁에 오라하면 아무도 안 올 거 아니여. 중생을 내 곁에 오라고 아무리 소문을 내 봐 오는가. 그럼 내가 할 수 없이 중생 곁에 가는 수밖에 없는 거여. 바로 이러한 글과 같이 중생 곁으로 가는 길이여. 그리고 중생들을 그 길을 통해서 중생들이 오도록 만들어야 되지. 그지. 그 길을 보고 중생들이 오도록 만들어야 되니까. 중생의 중생의 기호이니까 만들어야 하니까.

여러분들도 시간이 있으면 아침 10부터 12시까지 만들어진 원고를 가지고 검토를 할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좀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질문 없어?

하나만 더 물어 보겠습니다. 의통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의통의 비밀은 나는 해탈을 했기 때문에 나의 몸에 있는 기운은 완전한 퓨어 에너지(pure energy)에 하나의 100프로의 퓨어 에너지에는 못 갔지만 97~8프로의 퓨어 에너지에 도달했어요. 100프로의 퓨어 에너지에 도달하면 난 조물주의 세계, 근원의 세계로 갑니다. 그때는 나의 의식조차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러나 모든 것은 내 뜻에 의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하나의 원력이 서지.

그러니까 어떤 이 큰 그 원력은 쉽게 말해서 어떤 대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염력으로써 이 대자연에 있는 기운을 해서 대기를 형성할 수도 있고, 그 대기가 또 하나의 그 어떤 자신들 속에서 존재하는 법으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지.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의 원력으로써는 실제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염력으로써는 이 현상계에서는 저 풀잎 하나 못 움직입니다. 그러나 의식계에서는 이건 대단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상황에서 귀신을 잡았다. 어떻게 벌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여러분들도 들은 적 있을 것이에요. 그것은 이 의식계에서 의식 속에서는 이게 통해요. 의식 속에서. 그러나 이 현상계에 아직 영향을 줄 이런 정도는 아닙니다.

근데 퓨어 100프로가 되면 이 현상의 모든 것과 통해 버려요. 그런데 98프로만 돼도 이 기운의 힘으로써 이 원력의 힘으로써 남의 것을 어떤 나쁜 기운을 내속으로 가져와서 중화시켜 버릴 수가 있습니다.

병의 대부분의 원인은 어떠한 병의 질병의 원인 중에 99프로가, 참, 많은 프로테이지, 내과에나 이 어디 생기는 병이 있는데 기운의 문제로 오는 것이거든. 기운 기운이 자기의 몸속에 있는 에너지에 나쁜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오는 것이거든. 기운 몸속에 있는 기운이 나쁜 현상이 일어남으로써 그것이 어떤 암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종양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쉽게 말해서 재앙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살을 베어지게 만들 수 있고 창자를 그런 온갖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썩게 만들 수도 있고. 그래서 이것을 그러한 것을 기운을 제거해버리면 되고 어떤 경우에서는 쉽게 말해서 어떤 활동을 제거해 버리면 됩니다. 활동을.

제가 그 여기 와서 있는데 현웅이 삼촌 같은 사람을 봤을 때, 그때 대강 가스 되게 차 있을 때 왔을 때 제가 아침에 봤습니다. 상당히 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가스가. 제가 그때 그걸 안 봐 줄 수 없었던 것은 그 상태에서 조금 더 가면 치매현상이 옵니다. 처음에는 이 뇌가 그 상태에서 뭣이냐면 가스가 안에 들어가서 차 가지고 안 빠지는 것입니다.

연탄가스라면 독가스거든. 독가스가 차 있으니까. 그 가스에 뇌가 치여 가지고 힘을 못쓰는 것이에요. 활동을 못해요. 그 가스가 들어와 있으니까. 이래 활동을 못하니까 의식 자체는 건강하다는 것이에요. 의식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뇌가 움직여줌으로 해서 의식 활동 나의 의식을 내 보낼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말의 의미를 알겠습니까?

자동차에 배터리가 있음으로써 이 배터리는 시동을 걸어줄 수도 있고 방전을 시킬 수 있고 충전을 시키는 게 있습니다. 그게 자동차의 동력이거든. 그런데 이 배터리가 뇌는 하나의 그 동력 역할을 하지. 동력 역할을 해서 자기에게 의식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의식의 동력 역할을 하는데, 충전을 시켜줄 수 있고 그걸 방전시켜서 내 보낼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겁니다. 그러면 멍해요. 그냥 의식이 딱 입력되는 겁니다. 길을 찾아가고 집을 찾아가고 가서 잠을 자고 일상 생활하는 거는 당분간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제가 한번 본거는 다 알아요. 그러니까 그러나 이 뇌가 그 가스가 계속 빠지지 않고 뇌에 영향을 미치면 다른 병이 오던가 합병증이 오던가 그렇지 않으면 뇌가 기운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치매현상이 일어납니다. 의식 자체가 흐려져 버려요. 의식자체도 흐려지면서 그냥 의식이 흐려져 버리면 뭣이냐 하면 쉽게 말해서 방안에서 오줌도 쌀 수 있고 뭐 쉽게 말해서 무엇을 어디 두었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가져간 옷을 벗어놨더라도 그걸 어디다 벗어놨는지 모르고 못 들고 온다는 것이여. 그래서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그걸 보고 나서 이 가스가 뇌를 이 기운이 머리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거든. 그래서 굉장했어요. 굉장해서 저는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촌오빠를 갖다가 치료를 해주고 누워 있으니까 스님이 뭘 좀 사서 내려왔는데, 우리 집 영도 있을 때 내려왔는데, 그때 절도 영도에 있었는데, 나는 아 지금 감기가 들어서 죽는다고, 그 뇌에 영향이 있어서 콧물 같은 게 막 계속 나오는 데 재채기를 하지 않던가. 그 재채기를 통해서 그게 가스가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그 머리속에서 내 몸을 통해서 다 빠져나오는 거여. 내 몸에서 그게 다 나온다는 거여. 이미 그 사람의 병을 내 몸으로 옮겼기 때문에 내가 그걸 치료하는 것입니다. 재채기가 나오고 나니 나는 그러니까, 나는 생전 그런 일이 없고 그런 계산에, 괴로우니까 하는 말이 감기가 들었는 것 같다. 콧물이 나오고 재채기가 나오니까 콧물감기가 들은 거 같아서, 야 약방에 가서 감기약 하나 좀 땀 쪽 빼는 거 사오라고.

약을 먹어봤자 감기약 별 효력도 없어. 그래서 새벽되니까 그날 새벽되니까, 한 이틀 삼일쯤 지나서 새벽이 되니까 그때부터 전류가 내 몸에 일어나면서 그 전류를 통해서 그 가스가 전부 죽어 버렸다는 것이지. 가스가 분해되면서 타버렸다는 것이지. 그 가스가 분해되면서 그 재채기를 통해서 나오고 분해되면서 그 전류가 뇌에 다시 정상적인 뇌에다 힘을 전했어요. 힘을 전하니까 그냥 씻은 듯이 내 몸도 나아버리고 그 사람도 나았는데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사실이지 일반 상식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반 상식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이건 귀신의 힘이나 이런 걸 가지고 종교계통에서 말하는 귀신의 힘이나 이런 걸 가지고는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에요. 무슨 귀신이 가스를 갖다 빼 버립니까. 그건 안 됩니다. 그래서 서로가 사실이지, 스님이 날 만났으니까 오빠 하나 구해줬지. 내는 뭐 크게 힘들 것도 힘든 것도 없으니까 사흘을 좀 아프고 끙끙 알았으니까 그렇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허허허.

여래님이 고생하셨지요.

응, 그렇지 않으면 그거는 현대 의학으로서는 사실이지 그걸 고치는 게 힘이 듭니다. 가스가 작게 들어 왔을 때는 뇌가 어느 정도의 활동을 하면서는 생활에 약간의 그 지장을 줍니다. 그건 머리속에 가스가 엄청나게 차 있었어요. 그 우리가 이 호흡을 하면 이 호흡을 통해서 이 공기가 뇌까지 전해지거든. 연탄가스 같은 거 먹으면 가스 중독된 사람들이 뇌에 이상이 오니까 의식을 잃고 이러거든. 구토를 하고 의식을 잃고 가거든. 산소호흡기 속에 들어가는데. 그런 속에서는 후유증이 그래도 후유증이 오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 속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대단히 많이 안 들어갔어요. 근데 이거는 아주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인연이 있으려니까 그래도 아무 이상이 없고 죽지도 않고 살아서 그렇게 만나서 그런 걸 내게 어떤 상황에서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어떤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이런 걸 갖다가 보게 해줬지. 없어?(질문)

그리고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들이 항상 신에게 의지하려 하지 말고 자기에게 의지 하려 하고 무엇이 잘못될 것 같으면 현실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가, 있는 걸 보고 있는 일을 보고 그것을 자꾸 확인해서 하나의 현명한 방법을 알아내면 됩니다. 방법을 알아내고 그러고 살면, 여러분들은 한번 어떤 시련을 당할 때마다 시련을 피하는 방법도 알거고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시련을 당하면 시련은 또 해결을 하는 방법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너무 두려워하든가 세상에 대해서 너무 경계하거나 이런 일 하지 말아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삶은 누구에게나 있고 또 추억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나도 지나고 보니까 힘들었던 세월이 내게는 가장 좋았던 거는 하나도 남은 게 없고 힘들었던 일들만 좀 남아서 아직도 내속에 살아있을 때는 참 살아있다.

여러분들은 자기의 삶이 힘들더라도 그러나 그 힘든 삶을 이기는 하나의 추억이 여러 힘든 삶을 만나면 힘든 삶을 이겨야하는 추억이 자기에게 오니까 여러분들은 이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 삶에 대해서 쉽게 어떤 일에 대해서 좋은 일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좋은 거라면 붙잡아서 자기 속에서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자꾸 같은 말도 듣고 듣고 들으면 깨달아집니다. 깨달아지면 여러분 속에서 업이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행위를 통해서 말로 통해서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행위와 말속에 있던 말로 인하여서 있게 되는 세상의 일이 여러분 속에 있는 업을 태워주는 이러한 일을 만들어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저도 제가 애초부터 여래가 된 게 아니고, 결국 운 좋아 운 좋게 결국 좋은 일들을 많이 받아 들였고 그렇게 해서 쌓이고 쌓인 공덕이 내 자신을 갖다가 이 정도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뭐 이 정도가 뭐 대단하느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살아서는 그리 대단한 게 없지만 이거 이 삶이 지나고 난 다음 세대에 보면 이건 대단한 겁니다. 다음 세대에 보면 이건 대단한 거예요. 알렉산더 대왕보다도 그 맞아 죽은 예수 이야기가 더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어요. 허허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항상 무엇이 옳은 가 그걸 생각하면 됩니다. 꼭 그 죽어야 할 일 같으면 서슴없이 죽음도 받아들이면 돼요. 왜냐하면 세상은 나 자신은 없어지는 게 아니고 변화할 뿐이다. 변화할 뿐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해서 우리 사랑을 더욱 빛내야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축복이고 축복이라는 것은 자기 가족을 축복하는 것도 축복 아닙니까. 가족에게 봉사하는 것도 축복이니까. 꼭 어디 고아원 양로원 위해서 돈 갖다 줘야 그게 봉사고 제 가족 자기 몸 아픈 부모님한테 약 사주는 거는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게 더 큰 봉삽니다. 허허허.

내가 불행한 사람이 안 되는 거 그게 국가를 도우는 일이여.
내가 무기력한 사람이 안 되면 그게 국가에 대한 봉사고, 곧 국가에 대한 애국이여. 그런데 여러분들은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항상 사회에 대해서 봉사하고 국가에 대해서 애국을 해 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걸 이해해 준 사람들은 없어요.

아무도 국민이 문제가 없으면 국가도 문제가 없는 거 아니여. 허허.
바로 그거에요. 그러니까 바로 가정에서부터 여러분들은 시작하면 됩니다.

 

여래님 좀 전에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 말씀하셨는데, 그 사람들 세상에 와서 결국은 뭔가 더 좋아졌습니까? 아니면 나빠졌을까요? 볼 수 있습니까? 그걸. 나폴레옹 뭐 이런 영웅들. 결국은 그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또 억울한 사람도 안 생겼을 겁니까. 전쟁을 통해서 죽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거는 사실이지만 그건 아주 일부입니다. 파괴는 새로운 재건이니까. 전쟁은 파괴를 하고 파괴는 새로운 건설을 하는 거 아니야. 집을 잃은 사람들은 또 가서 집을 지었으니. 그러니까 그들은 세상에 작은 변화를 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로 인하여 세상이 세상에 큰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의식에는 플러스 됐습니까. 아니면 마이너스 됐습니까.

그들의 의식에는 플러스 됐는가 안 됐는가. 그들 개인 자신을 갖다가 보지 않았으니까 잘 모르겠는데, 뭐 그들은 하나의 그 양의(良意)에 살다 갔으니까, 나는 양의를 가졌다 해서 그 양의 속에 그들이 한 일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하나의 큰 업을 덜었다, 이런 건 하나도 없어요. 잘하면 본전 했겠지. 그렇지 않으면 마이너스가 됐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평가할 때 그 문제를 정확하게 놓고 관찰한 다음에 말해야 되지. 그냥 기분대로 말을 한다면 그로 인해서 다음에 많은 시비가 있을 줄 모르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할 때 이게 법에 관한 문제라든가, 내가 목격 본 이야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히 대답할 수 있지만, 그러나 보지 못하고 하나의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현상이라면 그 개인이 있어야만 그 현상을 보고 이건 좋아졌다 나빠졌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거지.

어떤 현상 속에 있던 일을 현상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그 현상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평가하는 것은 좀 이르다고 본다.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묻거든, 그것은 지나간 일 아닌가. 지나갔던 일은 그 당시에 있었던 어떤 재료 증거들을 하나도 볼 수가 없으니까 그 대답은 지금 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

두 시간 말씀하셨는데.

음, 그럼 됐어.
내는 세 시간 열 시간이고 괜찮지만 옆에 있는 사람, 듣는 사람 얼마나 지겹겠나.

한 번도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하하하. 진리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가 봐. 허허허.

지겨웠으면 뭘 하러 여기 어떻게 나오겠어요?

야, 진리는 마누라 가족이 들어도 재미가 없는 거다.

그래도 몇 몇 사람은 재미있는 사람도 있어야지 세상이 희망이 있지요.
질문 없으면 마침.

응, 마치자.

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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