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TATHAGATA 如來 여래 > 如來의 강연- 최신 업데이트 2023년 5월 30일

 

 

 

 

* 강연회 녹음(mp3) : 1999년 8월 29일(일), 동대신동(문화원)

* 사음용 편집(mp3) : 1999년 8월 29일, 도(道)란 무엇입니까

 

(道)

그릇된 자가 가르치는 도는 들은 이야기에 옷을 입힌 것뿐이고,

선인의 도는 가까이 있는 생활을 보는 것뿐이다.

 

* (道)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도’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씁니다.

그러면 과연 여기서 ‘도’라는 것은 어떤 것을 ‘도’라고 말하는지?
그 의미를 한번 살펴보고, 또 어떤 것이 진정한 ‘도’인지?
그 의미를 한번 내려 보겠습니다.

한국 사람이 ‘도’라고 말할 때 ‘길 道’자로 씁니다.
이 ‘길 道’자라는 것은 바로 ‘길’이다. 이런 말입니다.

세상에 도가 있고 사람에게 도가 있다 함은
세상의 도라는 말은 세상에 길이 있고, 사람에게도 살아가는 데 길이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세상의 도다. 이건 세상의 도다. 이건 사람의 도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세상의 ‘도’가 무엇인가 하고
이제 여러분 스스로가 한번 생각해 보고 정의를 내릴 때가 온 것입니다.

제가 전부 다 말하면 사실 여러분 재미가 없을 거예요.
뭐 그거 나도 안다. 이런 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도’가 있다 하지만
이 ‘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 ‘도’가 또 어디에 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
더욱 모르고 살아 온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한번 대답할 수 있는 사람 대답해보세요.
세상의 ‘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세상 속에 있는 거 아닙니까?
응?
세상 속에 있는 거 아닙니까?

세상 속에 있지, 세상의 도가 세상 속에 있지. 그런데 뭐가 도인가?
그러면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게 중요합니다.

-연결-

세상은 하나의 ‘문제’ 속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모든 해답을 갖게 돼 있습니다.

어떤 ‘것’과 어떤 ‘인연’ 속에도 하나의 ‘문제’가 존재하게 되고, 그 ‘문제’로 인해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들을 있게 하게 한다는 의미를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이 바로 ‘도(道)’입니다.

바로 이 ‘있는 일’ 그 자체가 ‘길’을 만들어낸다는 것,
좋은 길과 나쁜 길을 만들어 내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일’이 세상의 ‘길’이다.

듣고 보니까 여러분 재미없지요.
하아, 오늘 아무도 모르는 ‘도(道)’를 들을 줄 알았는데,
‘있는 일이 도다.’ 이러면 어디 가서 주위에 가서 자랑할 게 하나도 못돼요.

‘있는 일이 도다.’ 이랬다가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모르는 무지한 까막 봉사한테 가면
‘그게 뭔 도, 그걸 누가 모르냐.’ 하고 이렇게 퇴박만 맞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난 모든 성자는 맞아 죽던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계로부터 외면을 받아 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도’가 왜 인간 사회에 중요한 가르침이 되어야 하는가?
‘있는 일’ 속에서는 온갖 것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20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비행기가 하늘을 떠돌아다니고,
이것도 알고 보면 ‘있는 일’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명이라는 것, 문명의 생활을 해오면서 어떤 부품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그 어떤 원리에 의해서 그 쇠붙이를 뜨게 만들었고, 그게 다 ‘있는 일’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나타나게 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200년 전에만 해도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좋은 씨앗을 받아서 그걸 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있는 것’들을 가지고 좋은 장점들을 모아서 슈퍼 쌀이나 새로운 쌀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열매를 개량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 다 ‘있는 일’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고 우리가 사회에서 항상 말하고 있는 모든 ‘길’이 ‘있는 일’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이 세상에 새로운 것들을 있게 하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새로운 길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그냥 주어진 땅에서 농사만 짓다가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활에서는 ‘깨달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바로 이 ‘깨달음’은 세상의 ‘길’을 알아보는 이런 일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길’을 알아보아야 좋은 자신과 나쁜 자신을 가려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일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로써 오늘날 도로도 넓어졌지만, 저 도로 위에 달리고 있는 자동차는 이제 우리 생활에서 편리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동차도 운전을 배우지 않고 차량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 건드리면 이건 흉기가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흉기가 됩니다. 자기를 다치게 하든가 남을 다치게 하는 이런 흉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원리를 알고 운전을 할 줄 알게 되면 이것은 생활에 매우 편리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있는 일’을 날마다 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있는 일’이 세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은 실제로 ‘깨달음’이 없이는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 ‘있는 일’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있는 일’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연결-

그러면 우리는 사후에는 어떤 세상이 존재하고, 먼 내 미래는 어디서 보장되는가?
이런 일을 한번 간단하게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먼 사후에 있게 되는 일, 미래의 보장은 현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일’과 자기 속에 ‘있게 되는 일’들이 복합적으로 그런 ‘일’을 존재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이런 ‘존재하게 하는 일’들을 ‘길(道)’이라고 말합니다.

-연결-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자기 속에 ‘그 일’이 입력되고,
또 그 자기 속에 입력되어 ‘있는 일’에 의해서 성질이나 판단이나 그다음에 의지가 발생한다고 이렇게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자기 속에 입력되어 ‘있는 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영생을 한 사람은 계속 그 영생할 수 있는 ‘길’을 아니까 자기 속에 있는 ‘그 일’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태어나서 이런 걸 모르는 사람은 그런 자기 속에 ‘있는 것’들에 의해서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의 원하는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같은 말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일들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업이 크냐 작으냐에 따라서 있는 일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업이 큰 자는 ‘있는 것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고,
업이 적은 자는 ‘있는 것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인(下人)은 도를 들으면 비웃든가 성을 내게 되고,
중인(中人)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상인(上人)은 도를 들으면 기뻐한다.

이 말은 의지가 허약하고 업이 큰 사람들은 ‘있는 일’을 들으면,
‘있는 것’을 배우게 되고, ‘있는 일’을 아는 자에게서 들으면,
비웃든가 무엇이 그렇게 대단하냐고 성을 내고,

중인(中人)은 ‘그런 일’을 들으면 반신반의하게 되고,
뛰어난 자들은 ‘그런 일’을 들으면 기뻐한다.
이렇게 여러분이 정의를 하고 들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세상의 ‘있는 일’이 세상의 일을 있게 하는 ‘길’이고,
또 우리는 그 ‘길’을 두고 ‘도(道)’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개의 ‘도(道)’가 있습니다.
세상의 ‘법도(法道)’와 인간이 지켜야 할 ‘법도(法道)’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두 개의 ‘도(道)’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세상도 중요하고 자기도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에 의해서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 존재하는 것만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자, 여기서 간단하게 하나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인간은 기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자기에게 기쁜 일이 계속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 기쁜 일은 누가 갖다주는 겁니까?
누가 그 기쁜 일을 자기에게 갖다주게 됩니까?

기쁜 일을 바라거든 자신이 기쁜 일을 만드는 것이 제일 빨리 기쁜 일과 만나는 ‘길’입니다.

그것은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한 스스로 기쁜 일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좋은 결과를 계속 가져오면 그건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그건 기쁜 일이에요. 신나는 일입니다. 신나고 기쁜 일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결과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들은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합니다.

-연결-

‘있는 일’을 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자기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걸 알 수 있습니까?

‘있는 일’을 보지 못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정의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몇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영국의 하이드파크에 서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오더니 막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진리라는 말 자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러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왔으면 정중한 자세로 배우고 그렇지 않으려면 가거라. 배울 의사가 없으면 가거라.” 이랬더니

‘그러면 당신은 진리를 아느냐.’ 이렇게 물어요.

“내가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 와서 너희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당신이 진리를 말해보시오.’ 이래.

내가 하는 말이 그만 진리를 “있는 것이 진리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싱겁고, 그들이 다 가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 내가 진리를 너희에게 가르쳐줄 것이니까 너희들은 예의를 갖추고 정중한 마음으로 들을 준비를 해라.” 이러니까

전부 다 자기네끼리 뭐라 뭐라고 하다가 “앉아.” 이러니까 다 앉아요.

앉아서 ‘우리 이제 당신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진리를 말해주시오.’ 이래.

그래서 그제야 주먹을 딱 내밀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손을 이리 내밀면 모욕된다고 해서 주먹을 탁 내면서

“이게 뭐고?” 이러니까

‘주먹이다.’ 이래.

그래서 “아, 너희가 그걸 알아보는구나.” 이랬지.

그건 너희가 분명히 알아봤다는 것이지. 그런데,

“너희가 볼 수 있는 이 주먹을 장님이 보면 알아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니까

장님은 그런 걸 절대로 못 알아본대요.

“그러면 그게 바로 진리다.”

그러니까 크게 기대를 했다가 재미가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죽으려고 하는 거예요.

‘있는 일’ 그 자체가 ‘진리’다.
‘있는 일’ 그 자체가 ‘도’다.
‘있는 일’ 그 자체가 바로 ‘길’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받아들이고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이 하는 그 이해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항상 이 점을 유의해 주시고,

여러분이 여기 와서 배운 게 없습니다.
‘있는 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결-

여러분이 이제 되도록 시간이 나면 이곳에 와서 묻고
여러분이 토론해서
여러분이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삶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항상 배우고 깨달으려고 노력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큰 보탬이 되고
또 여러분의 끝없는 내세에 큰 선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끝-

 

 

 

진리는

진실이 크다든가, 마음이 밝다든가,

진리에 대한 큰 소망을 갖지 않으면,

아무리 들어도 마음에 닿지 않는 것이 진리요,

눈앞에 있지만도 볼 수 없는 것이 진리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진실이 깨어났을 때,

나의 말을 들을 때 감동이 오고,

여러분 자신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여러분은 깨어난다.

 

 

< 1992년 6월 28일.mp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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