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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처음 느낀 사명

 

이곳 저곳의 우체국을 드나들며 서울에다 장거리 전화를 자주 신청하였다. 처음으로 나는 현실에서의 정의감을 억제하지 못해 단독으로 민중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 단합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서둘렀다.  

연사들을 좀 보내 달라고 대중당 중앙당 당사에다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의 통화 끝에 참석자 명단을 통고 받았고 나의 결심이 실천으로 바뀌는 문제들이 남았다.  

먼저 장소를 예약해야 했다. 2000명 정도가 들어올 만한 장소였다. 600석의 의자까지 준비했다. 벽에 붙일 포스터도 인쇄소에 부탁하여 만들었고 30여명의 대회준비위원을 구성하였다.   

이런 경험이 없는 나로서 혼자 주관을 하는 일들이라 실수도 많이 생겼다. 모든 진행과 계획을 혼자 세워야 했고 준비위원 전부가 이웃 동리의 건달들이거나 공사장의 인부들뿐이었다.   

이들이 한 곳에 다 모인 날이면 각자 생각하는 의견이 달라 시비거리가 생긴다. 당장 옆에서 지쳐버릴 것 같은 형편이 되는 것을 그들을 달래서 일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나의 사정이었다.  

어쩌다 술기만 몸 속에 들어가면 선배 후배 따지느라고 소란을 피운다. 어떤 날은 나에게 의리를 지킨다고 제법 굽실거리며 열성을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도저히 남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자기들 말마따나 의리 때문에 나를 따라 다녔다.

대회를 3일 앞두고 인쇄소에 맡긴 벽보가 나왔다. 누나 집의 조그마한 방에서 흰 종이를 사다 놓고 동리에서 한문께나 쓴다는 이발사를 청해다가 대회장의 아치를 쓰게 하였고 풀통을 들린 건달 친구들한테는 눈에 잘 띄는 길목에다 선전벽보를 붙이게 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청중이 모일 것인가 하는 문제뿐이었다. 이런 심정을 물어 볼 곳이란 건달과 노동자들로 구성된 주위에 있던 준비위원들뿐이었다.  

30명 전부가 문제없다고 말은 한결같이 잘하는 데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모래 아침 대회를 위해 내일 오후에는 나의 말만 믿고 서울에서 연사들이 내려오는 날이었다. 대중당의 당수였던 서민호 의원도 내려온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곳에 오는 연사들에게 조금이라도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차 도착시간 보다 두 시간 전에 대회장으로 쓸 영도 예식장 4층 강당에 준비위원 격인 노동자와 동리의 건달들에게 모여 달라고 부탁을 하고 밤이 늦어서야 소주 한 잔씩을 먹여 돌려 보내었다.  

긴장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약속된 오후 두 시가되니 대회장으로 쓸 강당 내에는 삼십육 명이나 안면 있는 사람이 모여 들었다. 노파심에서 잘 해 달라고 인사를 했다.   

모두 대답하나는 시원하게 저희들만 믿으면 된다고 떠든다. 그때의 형편은 정말 나는 그들의 행동을 믿고 싶었다.

몇 대의 시내버스에 분승을 해서 역전으로 출발했다. 기차시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았다.  

처음에는 조심하던 일행들이 한 시간이나 남은 시간 때문인지 초조해 하였다. 한 사람 두 사람 보이질 않는다. 마음 속에 낭패감이 생긴다.   

남은 사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찾아 오게 하니 추위 때문에 그렇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술 내음새를 풍겼다.

삼십 분쯤 후면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인데 일행 중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해 댄다.

한 사람이 나를 보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도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제는 숫제 모두 웅성거리는 형편이다. 그들을 달래면서도 당장 속이 상하고 손에 땀이 묻어 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관광호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 것이다.

안내방송 덕택에 싸우며 간다고 떠들던 자들도 입을 다물었다. 37장의 입장권을 구하여 역 안으로 모두 들어갔다.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며 기차가 도착할 플랫폼에 간격을 두어 줄을 세웠다.

정시가 되니 역구내로 특급열차가 들어온다. 사람들이 내리고 낯익은 얼굴들이 차에서 내려 온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쪽에서도 나의 마중을 알아 보고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아침나절 사정 사정하여 돈을 깎아서 산 꽃다발을 대중당의 당수인 서민호 의원의 목에 걸며 내미는 손을 잡았다. 나는 나와 함께 마중 나온 사람들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모두 나의 선동에 소리를 내어 만세를 따라 부른다.  

역 구내가 소란하였고 열차에서 늦게 내린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들을 지으며 돌아본다. 어설프게 해낸 연기였지만 그래도 부딪치니 넘어갔다.  

무슨 일이나 있는가 호기심에서 기를 쓰며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르고 몇몇 사람만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나의 마음은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버스에 태울 수가 없어서 역 광장에 대기 중이던 영업용 승용차 한 대를 영도까지 대절하였다.  

숙소를 어디다 정하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당수인 서민호 의원께서는 영도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식장 가까운 곳에다 정하자고 하였다. 마침 생각나는 곳이 있어서 영도시장 가에 위치한 동원여관이란 곳에 방 두 칸을 잡아들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던지 역전에 나왔던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여관 앞에 모여들었다. 나는 오늘 그들이 나의 체면을 세워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당에서 내려온 연사들한테다 일일이 인사를 시키고 소개도 시켰다.  

그렇게 해서 보내 놓고 나니 한참 후 여관 앞의 골목길에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가 보인다. 분명히 돈이 없는 그들이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통금 시간이 될 때까지 골목에서 떠들어댄다.

어떤 자는 내일 어떻게 되는가 보라고 숫제 공갈까지 친다. 이런 것을 두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나였다.  

열 두 시가 넘어서야 나는 하숙 집인 누나 집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이 생각 저 생각 때문에 머리 속은 더욱 말똥말똥 해졌다.   

결국 잠이 들지 못한 채 교회당의 종소리에 오늘 생긴 일을 걱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던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견딜 수 없는 피로가 몰려온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찬바람이 부는 거리를 뛰어야 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전차종점 옆에 있는 마이크 대여업을 하는 무선사를 찾아 갔다.  

문도 열지 않은 집에 찾아가서 자고 있는 집 주인을 깨웠다. 여덟시까지 마이크를 식장 내에다 몇 개 설치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당원 간부의 집을 쫓아다니며 자는 사람들을 깨워 대회장의 아치 설치를 하기 위해 서둘렀고 또 청중 동원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여덟시가 가까워서 무선사에서 사람이 나와 대회장에 마이크를 설치한다. 서너 사람의 당원 간부가 식장을 꾸미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불안한 심정이 되었다. 아침 아홉 시가 지나자 나는 당황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설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청중에 관한 자신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때까지 건달과 노동자인 준비위원들의 얼굴이 한 사람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비통하게 변하는 마음은 설치가 끝난 마이크를 손에 잡았다.

이제 마이크 소리가 흘러가는 곳까지 안내방송을 내보낼 참이었다.  

입 가까이에 마이크를 대었다. 막 입술을 떼려는데 그때 누가 나한테 명함 한 장을 내밀며 손님이 왔다고 전한다. 평소 적은 접촉 속에서도 마음이 서로 통하던 당 선전국장인 이경식 동지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가 있다는 인근의 이발소 쪽으로 뛰어갔다. 이발소에는 이경식 동지가 얼굴에 비누 칠을 한 채 면도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의 특이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발사한테 독촉하여 서둘러 면도를 끝내게 했다.  

밤새도록 기차여행에 시달려 온 그에게 아침식사도 먹이지 않고 9시 30분의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대회장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텅텅 빈 넓은 공간과 빈 의자를 보면서 도저히 청중 동원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나는 나의 옆에 서 있는 이경식 동지한테 마이크를 억지로 건네며 안내방송을 부탁하였다.   

그는 나의 행동을 보며 나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나의 계획없이 서둔 것 같은 대회장이 걱정이 되어서 여비를 빌려서 개인자격으로 내려 왔다는 말을 전하면서 시장기도 잊은 채 마이크를 잡은 손을 입 가까이 가져가서 입을 열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꽃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여기는 ○○○입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마이크 소리가 퍼지고 있는 이곳에서는 불의와 불법·부정과 싸워온 월파 서민호 선생님과 함께 독재와 싸우는 용기있는 사람들의 대강연회가 개최되겠사오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마이크 소리가 나가는 이곳으로 모여 주실 것을 알려드립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꽃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여기는 ○○○입니다.」  

안내방송은 계속 마이크에서 흘러 나갔다. 구슬프게 애처로움마저 띤 목소리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인가.  

처음으로 사람들이 식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이 익은 얼굴들이다. 일행은 사복차림의 경찰관들이었다.

그들은 텅 빈 대회장을 둘러보며 겸연쩍은 얼굴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일이 틀려 지지나 않는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10시가 되고 한 사람 두 사람 청중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방 출입구가 줄로 이어졌다. 좌석이 찼고 통로가 사람으로 메워졌다.

안내방송은 장내의 정리방송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의 가슴 속에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 나올 때쯤 나는 급히 여관으로 뛰어갔다.

서울에서 내려온 일행들한테 아침 인사 겸 준비사항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그들은 대회장에 사람이 모였느냐고 걱정인지 위로인지 말을 끄집어낸다. 나는 대성황이라고 현재의 상황을 보고 하였다.

10시 20분, 사회자의 낭랑한 음성에 따라 식순은 이어져 나갔다.  

「왕권과 독재자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느낌 속에서 불의는 정의를 압박하고 사람들은 올바른 곳에 나타나기를 꺼리는 요즈음 이곳의 이삼한 동지는 이 땅에서 용기와 지혜를 구하자는 구국애로 모든 시민의 단합과 민주 민권 수호의 의지를 이루고자 오늘 이 장소를 가진 것입니다. 먼저 이삼한 동지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인사 소개에 장내에서는 긴 박수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나는 손을 들며 연단 쪽으로 걸어 갔다.  

청중들의 눈이 나를 주시할 때에는 나도 한 사람 한 사람 청중 속의 얼굴을 향해 나의 눈길을 보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나는 마음 속에서 당황감이 생긴다. 몸과 마음이 피로해진 것을 느낀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할 일에 밀려서 가장 중요한 개회사를 준비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청중이 보는 곳에서 서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짜 보아도 금방 뾰족한 수가 없다.  

장내가 다시 술렁 술렁 하는 분위기로 변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말들을 머리 속에서 찾아내려고 애쓰며 입을 열었다.

「억울한 사람은 있어도 억울한 마음을 풀 길이 없으니 어찌 사람들이 자기의 장래를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불안하고 답답하고 울분이 치솟는 마음을 참고만 살자니 제 본분이 의심스러워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오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노예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의 동등한 주인입니까?

권력의 주변은 비대해 지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여위어만 가니 도대체 오늘의 인심을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 의심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의 상식이 남을 위해서도 도움이 못되고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못되는 것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런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결과를 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까? 짐작해서 알아라 하는 것입니까.

침묵이 흐르는 현장은 새로운 반성의 역사를 원하기 때문입니까. 단순히 민족정기의 파괴를 보기 위해서 입니까.

남을 믿지 않아야 자기가 사는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나는 묻고 싶습니다.

세계는 지금 모든 나라가 정의를 근본으로 여겨 정치의 기본이 되고 있으며 약속도 생명과 같다는 조례에 의해서 남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며 모든 사람들이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와 같은 근본을 갖추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잘못했고 여러분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사람을 너무 믿었고 권력을 너무 두려워 하기만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대접을 받으려 할 때는 주인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노릇을 못할 때 그 사회는 위계질서가 파괴되고 상식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권위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깨닫고 분통이 터질 때는 이미 외로운 자신을 보게 되며 불행한 세계에 살게 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생명과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여러분을 청한 것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 가면 불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인 줄 알면 주인의 권위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며 믿음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시대를 위해 두려움을 버렸습니다. 일을 잘 하는 일꾼은 우리의 보배이지만 나라를 망칠 일꾼은 우리의 적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위협이나 가소로운 협상 앞에서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어두운 마음만은 과거를 생각하더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권력의 횡포는 진리가 아닙니다. 양심이 부족한 자의 행동일 뿐입니다.

저는 내 자신이 왜 불행한 세계에 살고 있느냐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내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진리가 있는 편으로 가겠습니다. 그 때는 여러분 모두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불편한 점이 많더라도 참으시고 용기를 내어서 현명한 판단으로 오늘의 현실에 임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사회자는 또 다음 연사를 소개하였다.  

「반 독재 투쟁의 기수, 민주주의의 기수, 대중당 당수이신 월파 서민호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숙연해진다.  

선생님의 늠름한 모습이 마이크 앞에 서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청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답례를 해 왔다.  

탁월한 선생의 웅변이 열을 더하자 누구의 짓인지 마이크의 줄이 끊기는 일이 생긴다.

선생은 칠십의 고령인데도 육성으로 장내의 분위기를 사로 잡았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대회는 끝이 났다.

군중들은 헤어지고 우리끼리만 남게 되니 서울의 연사들과 부산 시내의 지구당 위원장 후보들을 합쳐 십 여명의 일행만이 시내의 남포동 번화가로 나와서 당수인 선생께서 사게 된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으며 이야기들로 피로를 풀었다.  

모두가 대회가 잘 되었다고들 칭찬해 주었다. 당수인 월파 선생께서는 비서더러 열차 시간을 묻더니 우리 일행더러 부산에서 제일 큰 다방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말을 꺼낸다. 우리 일행은 지나가던 인근의 길가에 있던 남포동의 향촌다방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다.  

다방 안의 손님들은 우리 일행 중에서 노신사가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너무나 이름이 나 있던 서민호 의원인 것을 알고 모든 시선이 우리 일행 쪽으로 옮겨온다. 일행은 선생께서 떠날 기차 시간까지 그 분을 붙잡고 대화를 가졌다.  

우리는 또 부산역까지 배웅을 나갔다.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혼자가 되었다.  

영도로 돌아온 나는 방안에 들어가자 금방 자리에 쓰러지면서 잠이 들었다. 낮에 있었던 나의 행동이 대견해 보였던지 누이가 아이들을 떠들지 못하게 이르더니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 나간다.  

분주한 생활 속에서 겨울의 한낮은 빨리 넘어 갔다.   

나의 가슴 속에는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해 본 연민의 정을 조국이란 이름 밑에 쌓아 놓고 애정을 키워 갔다.

또 한 해가 나의 나이를 올려 놓고 만다.  

세찬 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봄이 오고 있었다.   

금년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라는 것이 머리에 떠 오를 땐 이제 정치 지망생인 나의 심중에는 환희와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나를 두고 외쳤다.

「나는 남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두려워 할 뿐이다.」  

봄이 가까운 새해 늦은 겨울에 중앙당에서 연락이 왔다. 대중당 전당대회의 개최 통고장이었다.   

나는 대의원이랍시고 두 사람의 친구인 당원과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탄 것이다.  

전당 대회장인 시민회관의 별관에서 치렀던 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당수인 서민호 의원이 지명되었다. 선생은 당원의 절대 지명에 수락연설을 했다. 그러나 개인의 용기나 능력이 각광받지 못하던 시대는 한 사람의 인재 앞에는 불행한 시대였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얼마 안 된 기간에 당수였던 선생은 정권교체라는 시대의 열망 때문에 후보를 포기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했다.  

사람의 기대는 현실을 위해 한 사람에게 스스로 아픔의 순간을 맞이 해 주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의 법률 관계 때문에 선생은 당수직과 당을 떠나야 했다.  

그 순간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동포의 희망이었다. 그 분은 마지막 순간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두고 걱정을 했다.  

신문의 뉴스가 선생의 거처를 관심있게 기사화하였고 그의 반대자들은 그를 비웃었다.

선생의 사상은 모든 사람은 위선과 싸워야 한다는 궁극적인 이유 때문에 혼자 힘으로 지키던 대중당을 그때까지 가장 가까운 동지요 측근인 사람들한테 넘겼다.  

아쉬운 정을 나누면서 떠나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손때가 묻은 당 인장을 가져 오게 하여 두 장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장에 도장을 찍고 사무실을 나간 것이다.   

두 장의 공천장에는 경북 지역의 청송 영덕의 김동현 형과 부산 영도구의 이삼한이었다.

선거를 앞에 둔 대중당은 긴급 정치회의에서 사무총장인 이 몽 선생을 새로운 대표 서리로 선출하고 20여일 후에 닥쳐 올 국회의원의 공천을 내고 있었다.   

4·27 대통령 선거가 봄날의 기운과 함께 열기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권력과 민심의 대결, 도시 사람이면 아무도 낙관할 수 없었다. 한 번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없었던 민족의 전통이었기에 도시인들 속에는 선거 중에 이미 촌놈 때문에 망했다고 성패를 좌우 하기도 했고 순박한 시민들은 가슴 속에 혼자 마음으로 정권교체를 갈망하였다.   

오월이 되었다. 극성이 심했던 대통령 선거도 끝이 났고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 마감일이 신문에 발표되었다. 공천장을 남보다 앞서 손에 쥐었던 나는 고민을 해야 했다.

벽보의 비용만 근 십만 원 돈이 넘어 드는데 나는 단돈 십만 원이 수중에 없었다. 순박하기만 한 나의 마음 속에는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출마하라고 단돈 만 원도 보태 줄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염치 없이 남에게 이런 꼴을 내 보이고 싶지도 않았으며 담담한 심정 속에서 5월의 그 날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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