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TATHAGATA 如來 여래 > 如來의 과거 > 자서전

 

 

 

 

2. 축복 받지 못한 아기

 

1942년 봄, 유난히 날씨가 따뜻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나무가지 위에서 까치와 산새들이 날아와서 오두막을 에워싸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보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길조라도 생길 것인가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날 어머니는 몸을 풀고 아들을 낳았다. 세상을 처음 본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 소리는 여느 집 갓난 아기의 울음 소리보다 몇 배나 컸다.  

허기진 배로 지쳐 있던 사람들은 이런 일에 짜증만 일어났다.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몸을 떨면서 기어이 한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더욱 부담감을 느꼈다.

그들의 현실은 정말 태어난 아기가 짐스럽기만 했다. 철부지 아이들도 이런 것을 아는지 더욱 기가 죽어버린다.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았기에 하며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기막혀 했다.  

아이는 하루하루 더욱 심하게 울었고 그때마다 잘 나오지 않는 말라버린 젖꼭지를 물리는 어머니는 속이 탔다. 정말 이 아기가 죽어 버렸음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기를 어디에 가져가서 버릴 곳도 없었다. 아기가 울면 어머니의 딱한 마음도 울었다.   

그럴 때면 역정을 참지 못하는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터지고, 옆에 있던 다섯 살 배기 여자아이가 두려운 마음 때문에 갓난 아기를 들쳐 업고 산속으로 내빼곤 하였다.   

적막한 산골짜기에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은 아기의 떼쓰는 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니고 원수라고 누운 자리에서 혼자 한탄을 했다.

허기로 지쳐 있는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주고 받는 것도 힘이 들었다. 서로가 바라 보면 상대의 얼굴들이 삭막하게만 보였다.

그런 속에서도 아기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배고픔을 못참는지 울어대었다. 아버지의 성격으론 이런 일을 참는 것이 힘이 드는지 결국은 아기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역정도 늘어갔다.   

때로는 자신의 성질을 억제하지 못해 태어난지 한 달 남짓한 아기를 방 밖으로 던져 버린다. 놀란 아기가 더 크게 울어대었다.

아버지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아기더러 저 자식은 죽지도 않는다고 성질을 부렸다. 그때마다 다른 아이가 아기를 떼어 안고 멀리 피했다.

안우동골 골짜기에도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병석에서 하루 하루를 짜증스럽게 견디어 가던 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그때서야 이제 자신이 여러 명의 자녀들과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자꾸만 자신을 두렵게 했다. 하늘이 무심하고 죽은 조상이 무심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며 통곡을 했다. 그렇게 쉽게 가족들을 남겨 두고 눈을 감은 아버지가 무심하기도 했다. 슬프게 울고 있는 어머니 옆에서 말이 없는 아버지의 시체를 두고 아이들도 울었다.  

산 너머 먼 동리에까지 소문이 퍼지자 친척이라는 사람들이 오고 죽은 아버지와 면식이 있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토록이나 간절한 마음으로 어머니는 신에게 빌었는데도 결국은 더 어려운 일들만 생겼다. 단 하루도 이 가정에는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살아서 짜증을 부릴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의 마음 속에서는 밤만 되면 어두움 속에서 공포가 생겼다.   

짐승들의 울음소리에도 불길한 마음이 일어나는가 하면 날이 궂어 비라도 뿌릴 땐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낮이 되어도 적막한 산속은 허기와 절망이 가득 찬 곳으로 변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배부르다고 느껴보지 못한 쌍둥이 형제가 네 살을 채우지도 못한 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영양실조로 그 해에 죽어갔다.  

숲속의 오두막집은 줄어드는 식구만큼이나 더욱 적막하게 변했다.  

어머니는 신이 자기를 버리는 것이나 아닌가 싶어 두려워했다. 이러한 생활을 한 여자의 힘으로 지켜나가기에는 힘이 들었다.  

열 다섯 살이 된 딸을 입을 덜기 위해 산너머 동리에 김씨 성을 가진 나이 많은 사람의 후처로 주어 보내니, 떠나기 싫어 우는 딸을 붙잡고 너 하나만이라도 배를 채우며 살아보라는 말로 어머니가 딸의 등을 밀었다.  

나이든 신랑을 따라 떠나는 어린 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뒤에 남아 쳐다 보는 동생들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작은 산의 고개를 넘어갔고 철들지 않은 동생들은 누나가 이제부터는 어머니 말처럼 배고픔을 면할 것이라는 생각에 부러움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이런 날들이 또 지나가 버리니 숲속은 더욱 적막하게 느껴졌다. 열 한 살짜리 아들과 여섯 살 된 딸과 돌이 지난 아기와의 생활은 어머니의 마음 속에 새로운 공포를 생기게 했다.  

어머니는 남은 자식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 적적한 곳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밤이 되면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마음이 생겨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머물렀던 이 곳에서의 생활을 지탱해 보겠다는 의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날은 어머니도 결심을 했다. 외가의 주선으로 우복골이란 동리로 옮긴 것이다. 이사를 온 집은 누가 살던 집인지 오래된 초가로 주위에서는 가장 초라하고 작은 집이었다.  

어머니는 이곳에 온 첫날부터 일거리를 찾아 분주하게 동리의 여러 집을 찾아 다녔다. 밤이면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언제나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행동이 따랐다. 세상 사람들은 제 살기가 바쁜지 어느 집에서도 이 불행한 가족들을 두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까지 보며 살자니 고달픔이 더욱 심해갔다. 동리의 궂은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그런 일을 도맡아 얻으려고 애썼으며 남자들 못지 않은 노동도 척척 해내었다. 네 식구는 어머니가 얻어 오는 곡식으로 끼니를 끓였다.  

세 살 배기 막내는 지친 어머니를 볼 때마다 때를 가리지 않고 칭얼거렸다. 어머니는 세 자식의 얼굴을 보면서 고달픔을 달랠 수 있었지만 일거리가 생기지 않을 때는 무척이나 마음을 태웠다.  

겨울이 되면서 어머니는 함지박을 들고 아침이면 집을 나가는 일을 되풀이했다. 바다가 있는 진교의 포구에 나가 생선을 받아서 이 동리 저 동리를 다니며 파는 장사 길을 나선 것이다.  

어떤 날은 얼마나 먼 길을 쏘다녔는지 만신창이가 되어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막내는 몇 번이나 마을을 뒤집어 놓은 돌림병에도 별 탈 없이 자랐다.  

세월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   

막내는 네 살 배기가 되었고 장남인 형과 누이가 국민학교가 있는 장암으로 가버린 한낮이 되면 혼자 남아 있는 막내는 어린 마음에도 외로움 같은 것들을 느끼곤 하였다.

동리 사람들은 누구도 타성인 막내를 귀여운 아이라고 보아 주든가 혼자 노는 것을 보고 측은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막내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어리광이 마음 속에 쌓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세월이 얼마쯤 계속 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했고 조선이 독립을 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들뜬 며칠이 지나갔다.  

세상 일을 모르는 어머니와 세 남매는 나라가 독립을 했다는 소리에도 아무런 감동을 느껴보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 속에서 무섭던 일본 순사들이 떠난다는 얘기는 단순히 세상이 좋아질 줄만 믿었다.   

그래서 해방된 나라 안에서 생선이 더 잘 팔리고 일거리가 많아지길 어머니는 원했고 세 남매는 누군가 조금만 도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보았다.

막내는 단순히 어린 마음 때문에 세상일 보다는 어머니의 젖꼭지가 그리웠고 의지할 곳 없는 가족들의 생활은 해방된 자기 나라 안에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고달픈 생활을 계속했다.  

또 막내의 작은 가슴 속에서는 왜 우리들에게는 가까운 친척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마저도 없는, 모르고 있는 자기 사정에 대하여서는 어린 소견에는 누구에게 물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집 앞에 있는 바위에서 혼자 놀다가도 새벽에 행상 길을 나간 어머니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먼 곳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 소리 내며 떼를 썼다.

동리가 떠나가라고 힘껏 우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동리 밖까지 퍼져 나간다. 어머니는 이 집 저 집 생선을 사지 않겠느냐고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생선 함지박을 머리에 인 채 막내가 우는 집 쪽으로 달려온다.

어머니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떼를 쓰는 막내를 회초리로 때리지만 막내는 더욱 극성을 부렸고 언제나 어머니가 먼저 지쳐 막내를 달래곤 하였다.   

응석을 부리려는 막내를 보면서도 함지박 속에는 생선이 아직도 가득 담겨져 있어 어머니의 마음은 더욱 애가 탔다.

동리 사람들이 이런 광경을 보고 어머니의 사정을 측은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막내는 철도 들기 전부터 외로움을 느끼며 자랐다. 세상에는 아무도 어린 막내의 마음을 몰랐다.  

막내는 또 하루의 시간을 상대할 사람이 없는 가운데 혼자 보내야만 했다. 제 또래 동리 아이들이 자기 부모 앞에서 응석을 부리는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핏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왔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어머니를 붙잡는 막내의 응석이 늘어갔고 어머니는 막내의 떼쓰는 소리에 무신경 해져 갔다. 이제는 어지간히 울며 떼를 써도 어머니의 발길은 막내 쪽으로 달려오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고 부르는 막내의 떼는 더욱 기승이 높았고 어머니는 냉정하게 발길을 딴 곳으로 돌려버린다. 막내도 이럴 땐 어머니를 그냥 보내진 않는다.

「굴로 간다. 굴로 간다.」하며 물이 고여 흐르는 굴 쪽으로 악을 쓰며 뛰어 가는 막내의 두 뺨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이런 일을 지켜 보던 동리 사람들이 수다스럽게 다섯 살이 갓된 막내의 행동에 혀를 차며 어머니한테 귀띔을 했다.  

이 마을에는 일본 인들이 만들다 돌아간 경전선 철 길을 닦던 곳에 북천과 양보를 이은 굴이 있었다. 굴 속에는 수심이 2미터나 되는 물길이 길게 잇고 있었으며 물은 내를 만들고 바깥쪽으로 흘렀다.  

막내의 발길은 깊은 수면 앞에 멈추어 울기 시작한다. 굴은 막내와 함께 운다. 동리 사람들이 막내의 이런 행동에 고개를 저었고 어머니가 달려온다. 어머니는 급한 김에 막내를 부둥켜 안고 굴 밖으로 나온다.  

조금 전에 냉정해 보려던 어머니의 마음도 막내의 투정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막내를 등에 업고 함지를 인 채 집에까지 올라와서는 응석을 받아주며 막내를 달래 놓고 또 장사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해 내내 한낮이 되면 어머니를 그리는 막내와 한 번만이라도 냉정해 보려던 어머니의 마음은 필사적으로 대립을 했지만 끝에 가서는 어머니가 자식의 울음소리를 귀를 막아 외면하지 못했다.  

여느 아이들이라면 생각조차 못할 '굴로 간다. 굴로 간다' 하는 억지스런 행동에 어머니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 막내가 철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은 당장 허기와 싸워야 하는 네 식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운명에 충실하기만 하였다. 그런 어머니한테 바램이 있다면 그것은 세 남매가 자라 불행하게 살지 않기를 원했고, 특히 세 남매 중 장남한테 거는 기대는 컸다.  

날이면 날마다 거르는 날 없이 정성들여 소반 위에다 정한수 대접을 올려 놓고 여러 신께 축원을 올렸다. 어머님의 축원은 시간만 생기면 되풀이됐다. 그때마다 장남의 사주를 입 속에서 되뇌며 무엇인가 주문처럼 외운다.  

막내도 이즈음에는 어리광만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제법 집안 일을 거들려고 하였다. 어머니가 구해 온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가 나무도 해왔다. 어머니도 막내의 행동을 대견해 하면서도 또 언제 떼를 쓸 것인지 몰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어느날 동리에 낯선 중이 나타났다.  

동리를 돌고 난 중은 동리에서 가장 작은 집에도 찾아왔다. 그때 마침 어머니가 집에 있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는 제사에나 쓸 양으로 천장에 메어 둔 쌀 봉지에서 얼마쯤을 그릇에 부어서 중의 염낭에 부어 주었다.

염불을 외우던 중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물끄러미 막내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저 아이의 사주를 아십니까?」  

어머니는 아이의 생년월일을 일러주며 늙은 중을 마루로 안내했다. 어디서 왔느냐는 어머니의 인사에 중은 쌍계사에서 나왔다고 대답을 했다.   

얼마 동안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헤아리던 중은 또 한참이나 아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넋이 빠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음은 웬지 동요한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던지 어머니가 입을 떼었다.

「어떠신지요?」   

중은 씁쓸하게 웃으며 한참이나 있다가 말을 했다.  

「저 아이를 우리 절에 맡길 수 없겠습니까?」  

무엇 때문인지 중은 그런 말을 하였다.  

어머니는 중의 그런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농담으로 받아 넘기는지 장남의 사주를 보아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의 성화에 중은 몇 마디 대답을 하였다.  

얼마 후 자리에서 일어난 중은 대문 쪽으로 걸어가다 다시 막내를 바라보며  

「큰 그릇이야.」  

하는 의미있는 한 마디를 남기며 다른 마을로 가버렸다.  

시간이 바뀌면서 막내도 동리에서 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어머니를 찾지 않고도 하루 해를 넘겼다.  

이런 날들이 많아질수록 막내의 가슴 속에는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막내와 어울린 아이들의 성바지가 김씨들 뿐이었고 이씨 성을 가진 아이는 그 속에서 막내뿐이었다.   

원래 이 동리는 김씨 성바지의 집단 부락이었지만 막내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동리 어른들이 길을 가면 같이 놀던 애들이 인사를 했고 인사를 받는 사람 또한 무슨 말이든 하고 간다.  

다른 애들이 인사할 때 보면 아저씨도 많고 할아버지도 많았다. 이런 것이 막내는 내심 부러워서 어린 마음에도 핏줄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김씨 성의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이씨 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자신이 꼭 죄 지은 사람처럼 느껴져 어린 막내의 마음은 못내 섭섭한 것이다.

왜 우리 가족은 친척이 없을까, 세상이 얼마만큼 큰지, 또 사람들이 얼마만큼이나 살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는 막내로서는 어머니를 붙잡고 의문스럽게 물어보지만 언제나 어머니의 대답은 이가도 김가보다 더 많이 살고 있다고만 말을 했다.   

어머니의 말에 막내는 섭섭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그곳이 어딘데?」

하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하늘 저편을 바라보면서도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짜증을 내며 정말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고 혼자 기대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고 타성바지인 막내에게 호감을 보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막내는 세상에 태어나 어떤 아이보다도 먼저 배고픔을 느꼈고 외로움을 느꼈다.   

철부지인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준 소리인지 모르지만 그즈음 막내를 보면 '호로자식' 이라고 놀렸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짓궂은 아이들이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애비없는 호로자식' 이라는 말에 직감적으로 자기에 대한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막내는 알아 차렸다.

막내는 그런 일이 생기면 집을 향해 뛰었다.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어머니에게 들이대며 더듬거리는 말로 따지듯이 말을 했다.  

「다른 애들이 나보고 호로자식이라고 놀려, 애비가 없으니깐 호로자식이라 그래!」

하며 어머니에게 대어 들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은 잠시 화를 내는 척 했지만 정작 놀린 애들을 보고는 그러면 안 된다고 좋은 말로 타이르곤 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이러니 막내가 아이들과 어울리다 무슨 실갱이라도 생기면 애비없는 호로자식 하며 극성스럽게 놀렸다. 이런 순간에는 꼭 죄 지은 사람처럼 막내의 얼굴이 붉어지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곤 했다.

감정을 참지 못해 달려가는 막내의 뒤통수에 대고 동리 아이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신나게 외쳐대면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막내는 끝내 울어버리곤 했다.

어머니가 막내를 놀려대는 동리 아이들 집에 다니며 일도 해주고 생선도 팔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수모를 참고 견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리 꼬마들이 놀려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여러 날을 혼자 집 앞의 바위에서 친구없이 놀 때는 왜 나는 아버지가 없을까 하며 아버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버지가 저 세상에 계신다면 금년의 제사 날에는 꼭 살아서 돌아오길 빌어보기도 했다.

막내는 여섯 살이 되면서 몸에 맞는 지게를 지고 야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해왔다. 제법 땔 나무를 해다 나르는 막내가 어머니 눈에는 다 큰 애처럼 보였다.  

누나가 가르쳐 준 노래를 부르고 먼 산과 산 사이에 이는 봄철의 아지랑이 속에서 그는 자신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부터 알 수 없는 그리운 마음이 몰려들 때에는 뺨 위에 눈물이 저절로 흘렀고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의문이 생길 때에는 시간이 좀 빨리 흘렀음 하고 지루함을 느꼈다.  

무덥던 여름, 무척이나 추웠던 겨울이 가고 개울가의 얼음이 녹는 봄이 왔을 때 막내의 집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맏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거리를 찾아 부산으로 떠났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맏이를 위해 언제나 축원을 하였다.

부처님, 용왕님, 칠성님, 산신님, 조상님에게 자식을 위한 축복을 비는 일이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한테는 위안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 계속 -

 

 

 

 

 

 

   

Copyright© 1984-2018  TATHAGATA.INFO · TATHAGATA.P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