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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학 통지서

 

우리는 이제 세 식구가 집에 남게 되었다.  

한낮이 되면 집에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삼십 리 길인 포구로 생선을 받으러 나가고 누나는 학교에 가 버린다.   

막내도 이때는 제 몫을 하기 위해 땔감을 구하러 작은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다.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서 이런 일이 박석골 우동골 댁도 살게 되었다는 말들처럼 어머니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또 그 해 봄에 막내한테도 국민학교의 입학 통지서가 날아왔다. 막내가 들어 가야 할 학교는 형이 다녔던 장암의 국민학교였다.   

이런 사실을 안 막내는 책보를 어깨에 메고 뛰어가는 다른 아이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며 머지않아 그리 될 자신을 그려보곤 했다.

이런 생각이 며칠간 계속 되다가 막내는 정말로 국민학교 3학년짜리 누나를 따라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가서 입학을 하게 된 것이다.  

같은 또래의 낯선 아이들과 줄에 끼이고 보니 막내의 모습은 금방 표가 났다. 허약한 체구, 남루한 의복이 그곳에 모인 아이들과 차이가 나는 생활을 말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막내는 아직 어린 탓에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린 막내가 느낀 것은 여러 명의 같은 반 1학년 아이들의 성바지가 김씨가 아닌 다른 성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는 이가라는 성도 괜찮은 성씨라는 것을 학교에서 알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 등교길은 낯이 익어갔고 혼자서도 그 길을 뛰어 다니게 되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이즈음에 와서는 어머니의 얼굴에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모든 걸 참고만 살아왔던 어머니의 마음에 환희를 가져다 준 일이 생겼다. 부산으로 보내놓고 걱정을 했던 장남한테서 소식이 전해 온 것이었다.  

생전 처음 자기에게 부쳐 온 편지를 받아 놓고 문맹이라 봉투의 글자 한 자도 알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는 우체부가 아들한테서 온 편지라는 말에 어쩔 줄 몰라하며 흥분을 하였다.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편지를 보낸 아들이 그냥 대견할 뿐이었다.

두근거리는 가슴 속에다가 한 장의 편지를 감춘 채 용하게도 한나절을 넘겼다. 들판에 해가 지고 일하던 사람들이 어두움을 피해서 집으로 돌아 갔을 때 어머니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정신없는 사람처럼 집을 나갔다.  

막내나 누나는 오늘따라 어머니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영문을 몰랐다.  

어머니는 평소 자주 품을 팔던 노서기(盧書記)의 집으로 달려갔다. 노서기는 이 동리에서 가장 유식한 전직 면서기였다.  

노서기 집의 가족들은 마루에서 저녁을 들고 있었다. 노서기 부인이 자기 마당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보고 인기척을 하며,  

「우동골 댁이 왠 일이오.」  

하고 정색을 한다.  

「뭘 좀 봐 달라고 부탁하러 안 왔는기요.」  

하는 말소리는 여느 때 와는 달랐다. 노서기집 식구들이 마루로 올라 오라고 권한다.

손에 쥔 봉투를 보고 누구한테서 편지가 왔을까 하고 노서기 집 가족들은 우동골 댁 집에도 누가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나 싶어 궁금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어머니가 먼저 큰 자식 놈한테서 편지가 왔다는 말을 끄집어 내었다. 노서기 집 가족들은 그때야 그 아들이 생각되었다.   

촌사람들이라 편지 한 장에도 모두들 대견한 눈치였다. 저녁상을 물린 노서기 가족들은 편지의 내용이 궁금한지 모두 마루에 엉거주춤 앉아 있었고, 희미한 호롱불의 심지를 돋우게 한 노서기가 돋보기 안경을 끼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어머님 전상서... 」  

노서기가 읽어 내려가는 편지의 첫 서두부터 어머니는 감격했다. 연방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절부절이다.   

노서기가 편지를 다 읽고 나니 그게 다냐고 어머니는 확인을 하고는 다시 한 번 읽어 달라고 청을 했다. 노서기는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번 더 편지를 읽었고 어머니는 아들보고 따지듯 편지 내용을 캐묻고 하였다.  

노서기 마누라가 우동골 댁은 아들을 잘 두었다는 말을 하자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금방 다 사라지는 기분이 됐다.   

온몸이 뜰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은 생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이제껏 이렇게 자식 키우는 보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도 막내와 딸을 보면서 이것들은 언제 커서 자기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 해 줄 것인가 하면서도 이것들은 힘들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장남이 더욱 대견했고 그 놈이 애미한테 편지까지 부치게 된 것은 죽은 조상님이 보살핀 덕분이라고 밤이 깊어 잠이 들 때까지 혼자서 조상님 치하의 말씀만 했다.   

다음날부터는 틈만 나면 장남의 이름을 외우며 신에게 더욱 간절한 축원을 드렸다. 어머니의 기도는 온 정성을 손 끝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편지 속의 잘 있다는 말들은 자신이 지극히 기원했기 때문에 용왕님이나 칠성님, 산신님께서 도와 주어서 된 일인 줄 알았고, 또 죽은 조상이 보살핀 덕이라고 믿게 되었다.

장남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는 오직 하나의 희망이요 자신의 전부였다. 막내나 어린 딸이 있어도 두 남매한테는 기대같은 것이 생기지가 않았다.

산골의 동리에는 또다시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이 왔다.  

막내는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설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써부터 동리의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손가락을 꼽으며 밤을 세고 있는 것이다.  

떡도 먹고 제사도 지내는 날, 막내가 설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그 날만은 아무 음식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기다림 속에서 시간은 흘렀고 애를 태우던 아이들의 설날은 눈앞에 다가왔다.  

그믐날 오후에는 돈을 벌어 오겠다고 집을 떠났던 장남이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근사한 옷을 입고 과자 나부랭이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정말 자식을 보고 신바람이 나는 듯 분망하게 설쳤다.  

막내는 형이 들고 온 보따리에 신경이 써졌다. 어머니는 보따리를 풀어 막내더러 내일 제사를 지내고 많이 준다며 박하사탕 한 알을 집어 주었다.   

막내는 어머니가 건네 준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아끼다 살짝 혀에다가 대어 보았다. 달콤하고 싸아하는 박하냄새! 어린 막내는 보물처럼 사탕을 아꼈다.

입술에 침이 모이면 또 혀를 내밀어 사탕을 핥아보았다. 지금까지 먹어본 엿보다는 훨씬 맛이 좋았다.

어머니는 막내의 눈치를 알았는지 사탕 꾸러미를 막내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다 올려 놓았다. 막내의 머리 속에는 입 속에서 녹는 박하사탕 생각으로 가득 찼다. 왜 이렇게 그믐날 밤이 긴지, 잠이 잘 오지 않는 막내의 머리 속은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룻밤을 힘겹게 지내고 나니 설날 아침에는 동리에서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박석골의 초가집에도 조상들을 위해 제사상이 차려졌다. 오래간만에 푸짐한 음식들이 상 위에 올랐다.   

형이 부산에서 사온 과일과 과자가 상 위에 놓여 있었다. 평소에 자주 허기를 느끼던 막내는 곧 제사만 지내면 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 날은 여러 가지 음식들로 배가 부르게 포식을 했다. 또 어머니의 말에 따라 날씨가 추운데도 여느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사탕 몇 개가 든 호주머니를 만지며 형의 뒤를 따라 성묘 길을 나섰다. 막내에게는 즐겁고 신나는 설날이었다.  

막내는 자고 새는 설날이 안타까웠고 그래서 하늘 위의 해를 붙들어 두고 싶었다. 일 년에 설날이 몇 번 더 있었음 하고 바래기도 했다.  

설을 고향 집에서 보낸 형은 부산으로 떠나버렸고, 어머니는 동리에 일이 없는 날이면 진교의 포구로 생선을 받으러 아침 일찍 나갔다.  

막내는 십 리가 넘는 길을 뛰어다니며 시골 국민학교에서 생기는 일들에 익숙해져 갔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우리 나라 대통령이 이 승만 박사라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했다.  

막내는 우리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이 승만 박사라는 선생님 말씀에 박사라는 소리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성씨가 이씨인 것에는 가슴이 뛰었다. 김씨끼리 일가가 된다면 이씨인 그분도 일가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사연 때문에 선생님께서 들려주는 이승만 박사의 이야기는 어느 시간보다도 재미있고 신이 났다. 지금까지 김가가 더 좋은 성씨라고 부러워하던 마음 속에 이가 성이 이젠 더 좋은 성씨라고 믿었다.  

대통령의 성씨가 이씨라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용기가 돋아나게 했다. 김씨 성을 가진 동리의 아이들 앞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대통령 자랑을 했다. 괜히 우쭐한 기분에 동리 아이들한테는,   

「대통령이 우리 할아버지래, 우리 어머니가 그랬는데 언젠가는 우리집에 올 거래.」

지금까지 신나는 이야기가 없어서 언제나 시무룩해 있던 막내는 오래간만에 허풍을 쳤다.  

사실을 모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대통령이 할아버지라는 막내의 말에 모두들 부러운 눈치였다.

이런 것을 느낀 막내는 정말 이가 성을 가지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김가 성을 가진 아이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부러워하던 마음을 씻어버렸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정말 신이 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이가여, 나는 이가여 하며 자꾸만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삼키며 아이들 앞을 뛰어갔다. 다른 때는 막내를 놀리던 아이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막내의 행동에 기가 죽었다.

한동안 막내는 배고픈 것도 참으면서 행복해 했고 어떤 일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나무 짐도 커졌고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동리 사람들은 삼한(三漢)이가 철이 들었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게 보였으며 세상은 막내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이때는 막내도 처음으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희망과 포부를 가져보았다.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머리 속에 담으면서 산촌아이의 가장 큰 꿈을 찾아보았다. 순경, 국민학교 선생, 면서기, 시골 동리에서 보는 인기있고 높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국민학교 1학년짜리의 희망은 작은 것들뿐이었지만 어린 생각에는 동리 사람들도 자신이 그쯤만 되면 삼한이를 위로 쳐다볼 것이고 어머니도 그때는 형보다 더욱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쭐댔다.

이러한 가운데 시간은 변하여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한참 무덥던 때 동리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어른들의 얼굴에는 걱정이 있는 것 같이 보였고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날마다 달라지는 이야기는 어느 쪽이 이겼고 어느 쪽이 졌다는 소문들이다.  

칠월이 지나면서 전선은 이제 우리 마을로 점점 가까워지는 모양이었다. 먼 곳에서는 천둥소리같은 포성이 은은하게 울려왔고 굉장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볼 수도 있었다.   

동리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걱정들을 하였고 전선의 이야기는 온통 어느 쪽에서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잡아다가 죽였다는 무서운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부산으로 갔던 형도 전쟁 때문에 집으로 올라 왔다.

하동읍에 빨갱이가 들어 왔다는 소문이 퍼지던 날 우리 마을에도 낯선 사람들의 피난 행렬이 지나갔다. 그런 다음날 저녁나절이 되면서 드르럭 드르럭 동리 뒤의 국도 변에서 총소리가 났다.   

전쟁이 어떤 것인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 궁금증 많은 사람들이 국도가 보이는 산의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얼마 있지 않아 겁먹은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모두 하는 말이 미군들이 부산 쪽으로 밀려가고 있는데 자동차가 끝없이 신작로(국도)에 줄을 잇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지서의 순경들이 도망을 가고 지서가 비어 있다는 소리들이다. 들리는 이야기마다 어른들한테는 우울하고 불안한 말뿐이었다.

동리사람들은 모두들 그런 이야기에 더 귀를 곤두세우며 확실한 것을 알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다음날 한낮에 우리 동리에는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순간 어저께까지의 산골인심이 뒤바뀌고 있었다.  

하루 밤이 새고 나니 동리에서 기세가 당당하던 유지들이 맥을 못추고, 남의 집 머슴을 살던 사람 중에서 어떤 젊은이가 완장을 차고 동리를 다니면서 모두 해방이 된 것이라고 떠들었다.  

간간히 비행기가 날아와서 국도 변에다 폭탄을 떨어뜨릴 때는 그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와 처음 이런 일을 당해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했다.  

비행기는 밤낮 없이 우리 동리의 상공을 지나갔다. 어떤 날은 아침이 되면 동리의 사람들이 무슨 소문을 들은 탓인지 피난을 서두르지만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의 입에선가 흰옷을 입고 다니면 비행기가 총을 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피난을 다녔다.

그런데도 어느 동리에서는 비행기에서 쏜 총격에 여러 명의 양민이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사람들은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을 느꼈다.   

어느날 우리 가족도 처음으로 피난길에 나섰다. 목적지도 없이 나선 길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온종일 쏘다니다가 종래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인심은 점점 흉흉해졌다. 누군가가 그 전날 지서 자리로 잡혀 갔다는 소리고, 또 어떤 사람이 매를 많이 맞아서 반죽음이 되었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연일 지서자리에서는 붙잡아 간 사람들을 장작개비로 사정없이 팬다든가 고춧가루 물을 먹인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이런 소문을 듣고 자기도 잡혀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공포에 떨기 시작하였다.

동리 부자들은 소를 마구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도 평소와는 달리 말 한 마디 못했다. 완장을 찬 사람들은 힘이 있어 보였고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부락의 회관에는 연일 무슨 모임이다. 무슨 회의다 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김씨 동리의 철부지들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인지 붉은 군대의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었다.  

노래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외롭게 했다. 인민위원이니 하는 북쪽 편을 드는 사람들은 그런 철부지들을 대견하게 보았다. 나의 마음 속은 무더운 여름의 날씨만큼이나 덥고 거북해 있었다.

어느 집의 젊은 아들이 의용군에 지원을 했다는 소문과 젊은 사람들은 의용군에 나가야 한다는 소문이 동리에 퍼진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인민군의 선전과는 달리 전쟁은 달이 지나도 끝나는 기미가 없었다. 부산까지 밀어 부쳤다는 소문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듯한 어느날 새로운 소문이 동리에 퍼지면서 또 세상의 인심이 변했다. 빨갱이들이 도망을 갔다는 소리가 마을에 퍼졌고 지서 자리에는 예전에 자취를 감추었던 순경들이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때부터 다시 누가 맞아서 똥물을 넘겼다는 말이 나돌았다. 누가 잡혀가서 죽었다는 소문들은 순박한 촌사람들을 겁부터 나게 했다.   

전쟁 통에 가장 피해가 적은 집은 동리에서는 우리집이었다. 우리집은 어떤 쪽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힘없는 것도 이럴 때는 복이 되었다. 어머니는 이런 것이 조상님의 보살핌 때문이라 했다.

인민군이 물러간 동리에는 비행기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전쟁을 치른 자리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전선은 점점 북쪽으로 멀어지면서 시골의 인심은 옛날로 되돌아 갔다.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군대에 징집되어 가는 것을 보고 걱정들이었고 그런 와중에 우리집에서는 형이 다시 돈을 벌어 오겠다고 부산으로 떠났다.  

어머니는 전쟁이 나기 전처럼 포구로 생선을 받으러 다녔고 나와 누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의 작은 일들을 도맡아 했다. 우리 가족은 전쟁의 기억을 씻고 옛날처럼 일들을 시작했다.  

금방 그 해가 지나갔다. 북쪽에서는 전쟁이 한창인데도 설날을 맞이했다.

형이 다시 고향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미군들이 먹는다는 과자인 초코렛도 사가지고 왔다. 우리 가족의 얼굴에는 모두 생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박석골의 우리집에 1951년의 달력이 걸린 것이다.  

금방금방 날짜들이 넘어 갔다. 형편이 조금 나아진 탓인지 하루의 해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 봄에 어느날, 우리집에 편지가 왔다. 어머니는 먼저 번처럼 편지를 받고서도 어떤 예감이 있었던지 반가운 마음이 보이지 않고 침울해 있었다.  

이번에도 저녁무렵에 노서기 집을 다녀온 어머니는 이제 수심이 가득 찬 표정 속에서 한숨만 간간히 토하며 혼자 애를 태웠다.   

어쩌면 곧 군대를 가야 한다는 노서기의 말과 부산에서는 검문 검색이 심하여 건장한 학생들은 무조건 입대한다는 편지 내용 때문이었다.

그 날부터 어머니는 더욱 광신적으로 신들 앞에 자신의 소망을 드러내 놓고 애원을 했다. 그러다가도 가끔 씩 초조해 한다. 정신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허공을 쳐다 보는 일들이 잦아졌다.

모든 희망을 장남한테 걸어 놓고 살아 온 어머니에게는 형의 편지는 곧 어머니에게 절망을 가져다 주었다. 전쟁을 경험한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징집 그 자체가 죽음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젊은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전쟁터에서 죽는 꿈을 자주 꾸었고 산촌의 순박한 여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상들이 눈만 감으면 어머니를 괴롭혔다. 어머니의 얼굴이 수심으로 수척해져 갔다.

어머니는 부산에 다녀 오겠다고 두 남매를 남겨두고 어느날 집을 나섰다.

생전 처음 도시에 나간 어머니는 아들을 보기 전에 수많은 인파와 피난민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런 부산에서 보게 된 광경 때문에 마음 속에는 더욱 공포가 생겼다.  

어머니가 장남을 만났을 때는 이 자식을 꼭 전쟁터에서 잃을 것만 같았다. 자식의 마지막 임종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 눈만 감으면 떠올랐다.  

부산을 다녀온 다음부터 어머니의 마음 속은 근심이 깊어져 얼굴이 수척해져 갔다. 어머니는 자식을 생각하게 되는 고통 때문에 자신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리던 어머니가 급기야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어머니의 몸에 병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병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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