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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보라.

들어라.

그리고 전하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如來님께서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하신 말씀 중에서 가장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연 없는 장님들에게  ‘오라.’

볼 수 없는 장님들에게  ‘보라.’

들을 수 없는 장님들에게  ‘들어라.’

말할 수 없는 장님들에게  ‘전하라.’ 하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던 것을 신에게 기원하기를 즐겨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하는 대로 되어지기를.

다른 사람은 갖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좋은 운명, 원하는 운명을.

좋은 삶, 원하는 삶을.

좋은 미래, 원하는 미래를.

 

그래서 세상에 오신 如來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렸습니다.

 

 

보라.

있는 것과 있는 일(진실)을 보기 위해 치열(熾烈)하게 노력하라.

먼저 진실을 보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진실이다.

있는 것과 있는 일을 있게 한 일(진리)을 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라.

먼저 진리를 보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진리이다.

 

들어라.

있는 것과 있는 일(진실)을 듣기 위해 치열(熾烈)하게 노력하라.

먼저 진실을 들어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진실이다.

있는 것과 있는 일을 있게 한 일(진리)을 듣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라.

먼저 진리를 들어라.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진리이다.

 

전하라.

나의 진실과 나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라.

나의 말을 듣고 본 것과 나의 행동을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라.

 

이것이 내가 여러분을 축복해줄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이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 자신은 똑똑한 것도 싫고 깨달은 것도 싫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가 한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잘 되고 또 축복받게 된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자랑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삶은 치욕적인 삶이다.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을 때는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치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세상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자연의 가르침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로

세상을, 사람을, 무엇을 축복함으로써 애 태우고, 업 태운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장님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장님이 자연의 가르침을 듣고 보고, 가져가서 멋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들을 때
일시적으로 최고 70% 수준의 이해력에 도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 때 장님은 진실과 진리를 알아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장님이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들었다고 해서
진실과 진리를 이해하거나 알아보는 일은 조금도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장님은 이 ‘불가능한 일’을 ‘불가능한 게 맞다.’고 인정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눈 뜬 장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세상에는 벌써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두고 장님들이 그들의 생각을 더하고 빼고 섞어서
50% 미만의 진실성으로 희석하고 변질하여 함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시대 인간들의 의식세계 수준이 현생 인류의 최하한선까지 떨어진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비교하면, 수천 년 전,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아잔타· 엘로라 석굴을 지었던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힘들고 고달픈 노역에 일생을 바쳐서 부처의 이상(理想)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굳센 의지와 지치지 않는 열정을 후세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순수함은 온데간데 없이 무시해 버리고,
켜켜이 쌓은 지식(知識)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무지(無智)를 부끄럼 없이 내세우며,
자신만은 절대 장님일 수 없다는 견고한 자존심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사생결단의 필사적인 삶을 통하여 최상의 가르침으로 주셨던,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당대에서 무참하게 오염(汚染)시키고 휘젓고 있습니다.

 

유적으로 전해지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의지의 흔적들이
이 시대 사람들의 억지를 깨우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충고(忠告)가 되고
삶의 표상(表象)이 되었으면 합니다.

· 순진무구(純眞無垢) : 때 없이 순수한 마음가짐.

· 억지 : (자신은 장님이 아니라는) 무리한 고집.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착각.

· 타산지석(他山之石) :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참고가 되고, 큰 도움이 되는 것.

· 충고(忠告) : 잘못을 고치도록 지적하고 타이르는 것.

· 표상(表象) : 본보기, 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대상.

 

이제부터라도 자연의 가르침을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대로 전하십시오.

직접 본 적이 없는 如來님의 행적을 본 것처럼 말하거나 전하지 마십시오.
직접 들은 적이 없는 如來님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말하거나 전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장님일수록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것을 지어내는 데 매우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고치지 마십시오.
자신의 생각으로 빼거나 고치지 마십시오.

이미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빼거나 고친 내용이 있으면
지금 당장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삭제하고 버리십시오.
그리고 자연의 가르침의 내용 그대로만으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자신이 본 대로, 자신이 들은 대로만 전하셔도 충분히 공덕행이 됩니다.
욕심내지 마시고, 본 것만 들은 것만 그대로 전하십시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은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에 소개되고 있는 如來님의 말씀과 활동에 대한 기록은
최저 70% 이상의 진실성으로 자연의 진실과 진리를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의 내용은
세상에 알려진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진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의 내용이 가장 바른 것이며 절대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如來님께 직접 듣고 보고 훈련받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如來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심을 가지시고,
如來님의 진실을 보고 듣는 것은 여러분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如來께서는 인간의 위상을 높이고 인간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으로부터 존대를 받거나 섬김을 받거나 찬양을 받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들은 게 있으면 있는 만큼,
여러분 자신의 삶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내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꼭 하셔야 할 일은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고타마 붓다의 말씀을 전할 때,
‘여시아문 일시불재(如是我聞 一時佛在)’로 시작하는 것은 그 분이 하신 당부입니다.

· 여시아문 일시불재(如是我聞 一時佛在) : 어느 때 부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걸 내가 들었다.(주)

(주) 네이버 지식백과1, 네이버 지식백과2 -새 창으로 열립니다.-

 

이 시대에 오신 如來께서는 여러 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나서 그것을 상대에게 전할 때 이렇게 하라.
먼저 ‘나는 이렇게 보았다. 또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고 말하라.

그러고 나서 내 곁에서 들은 대로 본 대로 그대로 전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이 너희가 자신을 축복할 수 있는 최고의 공덕행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나의 말과 행동을 너희의 생각으로 보태거나 빼서 전한다면,
혹여, 너희 자신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그것이 염려가 될 뿐이다.”

 

 

 

“깨달은 자의 말을 전할 때,
그 말에 한 자라도 고쳐버리면, 고쳐진 것 만큼 그 말에 생명력이 없어진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고 들은 대로 그대로 전하십시오.

자신의 생각을 더하지도 말고

자신의 생각으로 빼지도 말고

그대로 전하십시오.

이 일은 여러분의 생애와 생애, 모든 생애를 통틀어서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축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며, 가장 빠른 길입니다.

 

왜 이 일뿐만이 단 하나의 길인가를 전부 설명하려면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축복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면,
공덕행을 하고 업을 태우는 일이 장님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했다면,

왜 세상에 변화기가 있어서 자연과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하며,

왜 이 시대 인간들 속에 양심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겠습니까?

 

如來께서 그 먼 곳에서 홀로 인간의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누구도,
이 시대 인간 사회에 양심이 무엇인지 알리고,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리는 일에 성공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양심의 진정한 가치는 그 순수성(純粹性)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세계는
머릿속에 외워 둔 지식의 많고 적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들이 세워 놓은 지식 체계의 이행이 삶의 의미와 결과까지 결정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양심의 순수성을 극도로 해(害)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인간들이 만들고 의지했던 지식의 세계는 그들을 더욱 무지에 빠뜨렸으며,
인간이 자신의 양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神)과 영(靈)에게 의지함으로써
오늘날, 신(神)과 영(靈)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시대 인간의 세계에는 자신의 양심의 순수성을 되찾는 일은 외면한 채,
신(神)이나 영(靈)이 되기 위해 진실을 저버리는 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가 결코 신과 영들이 점령하는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곧 자연의 세계는 순수성을 회복하는 변화의 순환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진실은 무엇인가?

양심의 진실은 무엇인가?

인간 양심에게 주어진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자연은 어떻게 해서 났으며, 그 속에 인간은 또 어떻게 해서 날 수 있었는가?

지금 자연의 가르침은 자연과 인간이 가진 모든 의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세상에 소상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과 신(神)과 영(靈)들에게 알립니다.

오십시오.

보십시오.

들으십시오.

그래서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대로, 주변에 알리고 전하십시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알리고 전하는 일을 한 만큼,
수고한 당신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보장할 것입니다.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가 활동할 수 있는 시일이 많이 남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서두르는 심정으로 다음 페이지에, 인간의 진실, 양심의 진실은 무엇인지? 인간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은 어떤 것인지? 양심은 몸 속 어디에 있는지? 양심은 어떻게 생겼는지? 양심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지? 양심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양심이 좋아지고 나빠지는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지? 나빠진 양심은 좋아질 수 있는지? 좋아지려면 양심의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태어날 때의 양심과 죽을 때의 양심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성인(聖人)의 양심과 장님의 양심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양심의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페이지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주제를 선정하고,
주공
(主公=Guide)의 원고를 받아,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