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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三 漢

 

나는 해인사 경내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해인사 인근 여관에서 하룻밤을 새고는 다음날 다시 부산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그리고 나는 부산에 도착하자 또다시 양산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이런 나의 행동은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양산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것은 '통도사'라는 이름이 내 의식 속에서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버스가 양산 시외버스정류소에 닿자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얼마동안 길을 걷다가 한 중년 남자에게 근방에 절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내 생각에는 양산에 왔으니 절을 찾으면 누구든지 '통도사'라는 절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상대는 나의 의중을 알아보지 못한 채 가까운 산중턱에 있던 한 암자를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찾아가는 곳이 어떤 절인지도 모르고 중년 남자가 가르쳐주던 산중턱의 암자를 찾아가게 되었다.

암자는 숲 속에 가려져 있어서 외부에서 보면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내가 찾아간 암자에는 60대의 노승 한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노승은 나를 보자 자신이 기거하고 있던 방으로 안내를 했고 나는 인사를 하고나서 방을 하나 빌리고 싶다고 말했다. 노승은 내 말이 끝나자 내 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노승은 나에게 한 달에 얼마를 내야 한다고 말을 하고나서 내가 머물게 될 방을 하나 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그 암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나의 생활 속에는 지루함이 찾아왔다. 나는 그 지루함을 잊기 위해 산등성이의 바위 위에 올라가서 혼자 앉아 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서 시장통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자의 노승이 나에게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노승이 무엇을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 생년월일을 묻더니 팔자가 중팔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게 되자 내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산을 찾을 때마다 중이 될 기회를 노렸지만 막상 중이 되라는 권유를 받자 내 속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나는 암자에서 2개월 정도 머물던 중에 잠시 부산으로 나왔다.

형님과 나는 부모님의 제삿날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형님은 나의 얼굴을 보고 먼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지난 날에 있었던 일들을 잊으려 했다.

그때쯤 내 마음속에는 형님과 사이에 생겼던 일들이 잊혀져 있었고, 형님 역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책을 여러 번 느끼고 있었다.

제사가 끝나자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12시 통금시간이 된 이후였지만 왠지 그 순간, 형과 함께 오래 있는 것이 거북했다. 형은 그런 나를 두고 음식이나 좀 먹고 가라는 말을 했다.

양산의 암자로 돌아온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내 자신의 일을 두고 혼자서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러던 나는 암자의 생활에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나는 이제는 아예 형제들과 떨어져서 있기로 하고 대청동의 산비탈에 있던, 여러 세대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다다미 한 장 깔린 작은 방 하나를 구해서 이사를 했다. 이 작은 방은 부엌이 딸려 있지 않아서 손수 끼니를 만들어 먹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산비탈을 오르내렸다. 일이 없는 날이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산 밑에까지 내려가야 했고 일이 생기면 일을 하기 위해 그 비탈길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그 작은 방안에 있을 때면 내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내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힘이 솟구쳤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자꾸 겪게 되자 나는 내 자신이 부인할 수 없는 꿈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밤이면 그 작은 방에서 담요 한 장을 뒤집어쓰고 그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꼭 빛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또 다시 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찾았다. 그러나 당시의 내 사정은 어떤 일을 하기에도 여의치가 않았다.

나는 그런 나에게 항상 이렇게 타일렀다.
'아이는 크면 어른이 되고, 인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건 망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꿈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내보일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다행스런 일은 대청동 산비탈에서 일 년이 넘도록 사는 동안 나의 수중에는 약간의 돈도 가지게 되었고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그 무렵 영도에 살던 누님이 나를 찾아왔다.

누님은 자기 집 작은 방이 비어 있으니 조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 일은 누님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얼마 후 누님집 작은 방으로 이사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는 현실에 대한 적응능력이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나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요금이 가장 싼 서울행 야간열차의 차표를 한 장 샀다.

객차 안은 출발 전부터 만원을 이루었다. 좌석은 물론이고 통로에도 입석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요금이 싼 만큼 여행도 힘이 들었다. 세 사람씩 앉는 의자에 끼어 앉아 졸다보니 밤은 바뀌어 새벽녘이 되어 있었다.

열차의 창밖에 비치는 무수한 불빛들이 이른 아침의 서울을 보여주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나는 남대문 시장 쪽으로 가서 해장국 한 그릇을 시켜 먹고 다시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줄지어선 차량들과 새로 들어선 빌딩들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그때 나는 미리 어떤 계획을 세워서 서울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또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서울에만 가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무작정 상경을 한 것이라 먼저 어디부터 부딪쳐야 할 것인지 조차도 모르는 채 어딘가에 부딪쳐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서울시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언젠가 추풍회 오재영씨의 사무실에서 소개를 받고 알게 된 '구자석'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나는 언젠가 만났던 그가 적어준 작은 수첩 안에 있던 주소를 보고는 무작정 모래내행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모래내의 버스종점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던 북가좌동의 산비탈에 있던 구자석씨의 집을 몇 번이나 물어서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막상 그 집을 찾아가자 마침 구자석씨는 집안에 있지 않았다. 산비탈 동네에서 작은 간판을 걸어놓고 약국을 하고 있던 구자석씨의 부인이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버스 종점으로 도로 내려와야 했다.

시내로 나온 나는 온종일 종로 주변 길거리를 혼자 방황하며 하루해를 보냈다. 그리고는 해가 질 무렵에야 길가에 있던 중국집에 들어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서 점심과 저녁을 겸한 식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싸구려 여인숙을 찾기 시작했다.

희미한 백열등을 켜놓고 때가 절은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우니 방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숨을 쉴 때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을 느꼈다.

 

하룻밤을 서울에서 보낸 나는 이른 아침에 다시 모래내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저께 한 번 찾아갔던 길이라 그런지 그날은 쉽게 찾아갈 수가 있었다.

먼 산에 해가 떠오를 무렵, 나는 북가좌동의 산비탈에 있던 구자석씨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구자석씨는 전날 내가 찾아왔더라는 말을 자기의 부인으로부터 들었다면서 나를 알아보고는 집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우리는 만난 적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세상이야기를 하는 동안 금방 십년지기로 변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구자석씨의 아내가 아침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구자석씨는 밥상을 물린 후에도 세상의 일을 두고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구자석씨는 내가 정치를 해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와 함께 동행을 준비했다.

당시 구자석씨는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오재영씨 밑에서 추풍회의 대변인을 지낸 적도 있었기 때문에 정치의 입문에 대해 나보다는 나름대로 많은 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는 나의 방문을 귀찮게 여기지 않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쉽게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날 10시가 넘어서 두 사람은 종로 2가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당시 내로라하던 정치인들을 만나기 위해 정당의 간판이 달린 사무실들을 찾아다녔다.

마침 그 시기에 종로의 화신 쪽에 있던 사법서사회관의 건물에 국민당 창당 준비 위원회의 사무실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간 것은 구자석씨의 제의로 당시 국회의원이었고 국민당 창당 준비위원회 사무총장인 장준하씨를 소개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당 창당 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게 되었고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사무실에서 나오던 장준하씨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구자석씨가 장준하씨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지만 장준하씨 일행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우리가 내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그때 구자석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

그러자 구자석씨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장준하씨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두 번째로 구자석씨가 나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종로 2가 쪽에 월파 서민호의원이 이끌고 있던 대중당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구자석씨는 사무실로 들어가자 망설이지 않고 '당 대표실'이란 팻말이 붙은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그러자 안에서 비서인 듯싶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는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그때 구자석씨는 나를 대신하여 내가 하고자 하던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당시 대중당의 당수이던 서민호의원 앞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때도 구자석씨는 나를 대신해서 먼저 인사를 하고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중당의 대표인 서민호의원은 한참이나 나의 아래위를 쳐다보고 나서 '이 시대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생각보다도 쉽게 대중당 중앙당사에서 입당을 했고 정치의 세계로 입문을 할 수가 있었다.

얼마 후 서민호의원은 사람을 시켜서 밖에 있던 장재철씨를 불러 나에게 소개를 해주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나와 대화를 가질 수 있도록 소개를 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서울에 올라온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낮의 종로 길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느 날 같았으면 쉽게 건너버렸을 점심을 그날은 청진동의 한 해장국집에 들려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시켜놓고 이제 마음이 서로 통하기 시작한 구자석씨와 함께 축배를 들었다. 나는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는 동지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곧장 서울역으로 가서 헤어져야 했다.

운이 좋았던지 서울역에서 곧 출발하는 부산행 보통급행열차의 좌석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내가 부산행 열차에 오를 때까지 구자석씨는 내 옆에 있어 주었다.

열차가 출발을 하자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스타가 되고 있는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가슴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내가 탄 열차는 부산에 도착했고, 그 밤이 새고 나자 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 후 나는 10여명의 사람들을 내가 머물고 있던 누님집 작은 방으로 불러 모아놓고, 소주 한 병과 막걸리 몇 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안면을 익힐 수 있도록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만나게 된 목적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사람들은 나의 말이 끝나자 박수로 답을 해주었다.

술잔이 돌아가자 모두들 내가 하는 일이 신기했던지 놀라워하는 눈치들을 보였다. 그때 나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각자 주민등록증을 내놓게 하고는 한 사람을 지정해서 기록을 맡게 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별 어려움이 없이 한 지역의 지구당을 창당하는데 필요한 요식 절차를 갖출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살던 인근에 한 예식장을 물색해서 내 자신이 위원장으로 취임할 지구당 창당 대회를 할 장소도 예약하고 일정도 잡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끝나자 몇 차례나 우체국을 드나들면서 서울의 중앙당 사무실에 전화로 그동안의 경과를 알리고 내가 정한 날짜대로 창당 대회를 할 수 있도록 중앙당의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나를 정치의 세계로 입문시켜줄 지구당 창당 대회를 열 수가 있었다.

 

지구당 창당 대회가 열리던 날, 중앙당에서는 특별히 사무총장과 조직국장을 내려 보내 주었고 또 구자석 동지가 친구의 자격으로 참석해 주었다.

식순에 따라 대회가 진행되었고 나는 난생 처음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내가 연단 앞에 서자 누군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곳에 왔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박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들게 해준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 나는 먼저 무어라고 여러분의 열성과 성원에 감사해야 할 것인지 정말 목이 메일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나라의 역사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가장 위대한 날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학벌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관록이 없어도 양심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지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 정치인이 되고자 했고 또 이 일을 위해 여러분 앞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 속에는 권력에 아부하는 정치인은 많이 볼 수 있어도 불의에 항거하는 정치인은 보기가 드물었습니다. 이런 일은 권력의 모체가 국민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힘을 선점한 한 사람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중에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우리들 주변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진리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정치인이 되고자 하며 저는 우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기필코 이 일을 해내겠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초청한 것은 이런 일이 저 혼자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터전입니다. 사회가 병들면 우리 자신들도 그 고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곁에는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도 그걸 주시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이 땅에 대중을 위한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증거올시다.

정치는 학벌로 하는 것도 아니요 관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정치는 양심과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확고한 소신이 있습니다.

우리들 속에는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좋은 정치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정치의 근본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하느냐에 따라서 사회는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일을 위하여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 땅에는 새로운 역사가 우리에게서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하여 제 생애를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제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 자신이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믿으며 나의 인사말을 끝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고 식순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연설이 계속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 온 중앙당의 사무총장 이몽선 선생이 축사를 했고, 구자석씨가 한 축사도 좋은 반응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정식으로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되었다.

 

지구당 간판을 누님집 화장실 옆 담벼락에 걸어 놓고, 조카와 함께 쓰던 작은 방을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을 새긴 명함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도 나의 생활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나의 인생을 두고 나는 혼자서 또 다시 내 자신을 위한 활동들이 필요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몸은 언제나 정치가 아닌 노동판에서 품을 팔아야 했고 아무리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도 나에게 있던 꿈을 위해서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하루하루 달라지던 내 모습을 보았다. 순박한 성격, 매사에 꺾이지 않던 행동, 당당한 말솜씨는 어떤 자리에서건 쉽게 사람들 속에서 호감을 샀다.

그러자 나의 이름과 얼굴이 조금씩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이건 나를 알고 나면 미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들을 했다. 그런 소리를 듣고 나면 나는 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느꼈고 더욱더 그런 나를 위해서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곳에서 단신으로 자신을 인물로 만드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일을 내 자신이 혼자서 해 내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