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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 심

 

내가 한 달 동안 같이 여행을 했던 스승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내가 몸이 아파 있었을 때 그분이 치료를 해준데서 비롯됐다. 나는 무엇으로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그분은 자기에게 직접 하지 말고 세상에 보답하라고 하였다.

"세상에 보답을 해?" "어떻게?" 그것은 스승이 하는 세상 일을 도우라는 말씀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얼마만큼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난 스승은 진실한 자이고, 세상에 있는 일을 보고 양심과 용기를 가르친다고 하였다.

난 좋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였고, 스승은 좋은 일을 한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고, 난 스승에게서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는 큰 사랑을 배웠다.

우리의 여행은 태국의 방콕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가졌던 계획은 태국에서 팜플렛을 만들고, 대중 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중들에게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인 인도에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인도행을 서둘렀다.

캘커타에는 오후에 도착해서 몇 군데 호텔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우리는 밤 기차로 부다가야에 가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기차표를 사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는 기차역을 비집고 들어가, 몇 번씩 기차표와 시간, 부다가야 행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밤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침대칸이었지만 치안이 불안해서 한 조에 2명씩 교대로 보초를 서기로 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가야 역에 도착했기 때문에 날이 샐 때까지 기차역에서 기다린 뒤 출발하기로 했다. 인도 어디에 가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지저분함과 인구만큼 많은 모기들. 그 틈이라도 좋으니까 잠시라도 눈을 부쳤으면 좋았으련만. 날은 금방 밝았고 우리는 부다가야로 가기 위해 다시 배낭을 메고 역을 나왔다.

작은 릭샤(운송용 차량)에 짐을 가득 싣고, 그 짐 위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우리가 무거워서 인지 도중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고생을 했지만, 새벽의 신선함을 즐기며, 우리는 어느덧 부다가야에 도착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을 찾고 머물러야 하는 숙소도 찾아야 했다. 여행지를 정하지 않아 길을 찾고, 만나고, 부딪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부다가야는 부처님 이름 때문에 관광명소였지만, 메인 템플(The Main Temple) 이외에는 모두가 외국 절이었다. 웅장하게 지은 중국 절, 큰 부처님 상이 있는 일본 절, 태국 절, 부탄 절. 작지만 한국 절도 있었다. 많은 외국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절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웃 주민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부다가야는 스승이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으니 스승에게 인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지인 티팡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얼떨결에 스승이 하는 일에 통역사로 참여는 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가 마치 바닥이라도 난 듯,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았다. 한국 말도 알아듣고, 영어도 알아들었는데 그것이 순간순간 적절한 말이 아닌 엉뚱한 말로 버벅거릴 때, 스승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거이거 일을 망치고 있어." 라고 호통을 쳤다. 스승의 거친 음성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었다.

어느날 티팡카와 저녁을 먹으면서 스승의 말을 통역하고 난 뒤 야단을 많이 들었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스승이 말한 두 가지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인도 사람에게 고기를 주지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통역하는 이 사람도 $2,000을 내고 이 법을 배우려고 여기에 온 사람이다."

난 이 말을 듣고 감명을 받았지만 식당을 나와 호텔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심정은 어두운 밤처럼 답답했다. 그 날 밤 결국 눈물을 왕창 쏟았고,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부다가야에는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인 부처님이 깨달은 곳을 기념한 메인 템플이 있다. 절이 크지는 않았지만 관광객 때문에 절 안이 북적북적하였다. 어떤 것이 성불인지 모르지만 돗자리까지 깔아놓고 불공들인다고 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무리를 하면 혹시 디스크가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우연히 부탄에서 온 승려를 만나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는 부탄 수도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부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들의 일행중 한 고승은 자신은 시간이 있으니 다음날 아침에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우리는 부탄 절로 그 고승을 찾아갔다. 그들에게는 영어가 통하지 않아 결국 한 인도인이 영어를 부탄어로 통역을 했다. 스승은 고승에게 물었다.

"너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가? 너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중생에게 중점적으로 가르치느냐?"는 스승의 질문에 고승은 "명상을 배웠고,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라고 했다.

스승은 "지금까지 명상을 통해서는 한 사람도 깨달은 자가 없다. 부처가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다가 깨달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너희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그 당시 부처가 명상을 해야 했던 것은 명상을 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서는 절대적으로 깨달을 수가 없다. 자연에서는 흐르는 물은 항상 청정함을 자기에게 있게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은 자기를 썩게 만들고 있다." 그는 그 말을 잘 믿으려 하지 않았다. 스승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명상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무지하게 했고, 그 일로 인해서 하나의 병을 얻었다." 그는 자기가 무슨 병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척추 속에 있는 물렁뼈에서 열을 생기게 하는 병을 얻었다. 그 열로 인하여 명상을 하는 과정에서 압력을 받아 물렁뼈가 짓눌리게 되어 결국, 너는 그것으로 인해 통증을 느끼고, 다리의 신경에 문제가 있어 다리가 저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가 만약에 진정 깨달음을 원한다면 난 즉시 그 통증을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너의 병을 사라지게 하겠다."

그는 자신의 병을 명상을 통해 자신이 고치겠다고 했다.

"그럼 왜 아직도 못 고치고 있느냐? 나는 네가 아직까지도 명상을 통해서 못 고치고 있는 너의 질병을 지금 당장 고치겠다."고 스승이 말했지만, 그때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가 바쁘다고 해서 몇 시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그 자리를 나와 볼일을 보고 다시 고승을 찾아갔을 때, 고승은 승려들을 모아놓고 이상한 행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상한 의식 행사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있는 일을 모르니 저 사람은 계속해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메인 템플에서 열심히 절하는 사람들과 부처님을 경배한다고 의식 행사를 하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한참이나 멈추게 했다.

자연에서 볼 수 있듯이, 고여있는 물도 오래되면 변질되고 독성이 생기는 법인데, 아무리 좋다고 하는 진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독성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을 스승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깨닫겠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고여있는 물과 같은 상태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도우려 해도 그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말 안한 것만도 못하다."

우리는 행선지를 바라나시로 향했다.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7시간이나 걸렸다. 도중에 엔진을 바꾼다며 30분 이상 정차를 하기도 했다. 한 칸에 의자가 위 아래로 있는 기차 안은 닭장과도 같았다. 그 좁은 통로를 사람들은 쉴새 없이 왔다 갔다 했고, 음식을 파는 상인까지 있어 기차 안은 달리는 시장과 같았다.

점심이 지난 오후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바라나시에는 유명한 것들이 많지만 특히 속임수와 실크가 유명하다고 했다. 또 하나 더 유명한 것은 바라나시 대학인데, 우리는 철학과 교수와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대학의 철학과에도 한국 학생이 몇 명 있다고 했지만, 그 날 모임에는 한 사람의 한국 학생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의 많은 대학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학장실에 모인 철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스승은 이런 말을 그 사람들에게 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나를 환대해 주었고 여러분들이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그 보답으로 여러분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나 주고 싶다." 그들은 매우 좋아했다.

"내가 주는 선물은 지혜이다. 이 지혜를 너희가 얻기 위해서는 너희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철학과 교수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가르치고 있는 철학의 정의를 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달라. 내가 듣고 난 후에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겠다."라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교수 한 사람이 "그 대답은 이 학장만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학과장을 가리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학과장은 장황하게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나는 영어도 서툴었지만, 그의 말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통역한다고 애를 먹었다. 스승은 싱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는가? 나는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내가 알고 있는 철학의 정의를 알려주겠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라. '철학은 있는 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일을 바로 앎으로 해서 끝없는 탐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옳은 말이다." 이렇게 말하자,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 사람들은 아무 반발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의 교수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박사 학위를 주고, 박사를 만들어 주기 때문에 대단한 줄 알고 있었는데 철학의 분야에서 앞서 있다는 인도의 유명 대학의 교수들이 철학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정의조차 알고 있지 못한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라나시에는 웅장하게 지은 빨간 벽돌 건물의 천주교회가 있다. 스승은 천주교회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그곳의 신부에게 사랑에 관해 배움을 청하러 갔다. 신부는 우리 일행이 외국인이어서인지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를 그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스승은 이렇게 물었다. "너희는 사랑을 어떻게 배우고 있으며, 너희의 가르침에도 사랑이 있느냐?" 그러자 그 신부는 사랑은 성경 속에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느냐?"

신부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든 물질이든 주면서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스승은 한 예를 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로서, 한 여인의 주검 앞에는 150만 명이라는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지난 역사 속의 다른 어느 한 사람의 주검 앞에는 단 두 명의 여인만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와 한 창녀였다.

내가 말한 그 두 사람 가운데에 한 사람은 마더 테레사요, 다른 한 사람은 예수이다. 예수는 살아 있는 동안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다 먹여 살리지 않았다. 예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마더 테레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내게 해서 그 돈을 가지고 몇 명의 불구자나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가르쳤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 큰 좋은 일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좀더 상세히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지극한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자인가?" 그때 신부는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당신이 대답할 수 있는, 어떤 사물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하여 질문할 것이니 괜찮겠느냐?"라고 스승은 물었다.

"2 더하기 2는 무엇인가?" 그는 5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껄껄 웃으면서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종교가 학교보다 못하구나. 학교에서는 분명히 4라고 가르친다."

내가 영국에 있었을 때 불쌍하다고 생각한 한 친구를 도우려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 옷도 주고 약간의 돈도 주며 도우려 했었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돈을 잘 썼고 돈이 없어 항상 쩔쩔 매었다.

한 번은 그 친구가 50 파운드를 주고 파마를 하고는 파마한 머리가 마음에 안들어 30 파운드를 주고 다시 파마를 풀면서, 결국에는 80 파운드를 쓰게 되었다. 그런 친구를 보고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며 내 일에 간섭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내가 한 일이 잘한 것입니까? 잘못 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좋은 일을 미리 결정해서는 안된다. 돈이 없고 가난하다면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저 사람이 가난하니까 도와야 한다고. '왜 가난한가?'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을 했는데도 가난한가, 아니면 일은 안하고 소비만 했기 때문에 가난한가? 일은 아니하고 소비만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아닌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한 사람의 부자를 데려다 놓고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라고 하면 그 부자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런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상에서 모든 가난을 해결하는 것은 좋은 가르침과 일이다. 사람들에게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을 잘살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