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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현 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여행과 독서를 통해 갑갑함을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갈증만 더해지고 나 자신은 점점 무기력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스승처럼 이야기하는 시중의 많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워 보려고 하였으나 얼마 뒤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녀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1990년 여름, 어느 식당에서 몇몇 사람들과 저녁 식사 중에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스승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분은 영도에 살고 있으며 자신은 여래이고 스스로 깨달은 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양심과 용기, 정의, 사랑에 관해 가르친다고 했다. 또 옆에 있던 어떤 이는 그분 말씀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아는 것으로만 충분치 못하고 힘이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순간 강력한 힘을 그분의 말씀에서 느낄 수 있었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기분은 참으로 묘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그러한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분의 연락처를 물어보려는 순간 어디선가 "또 어디서 사이비 교주 하나 났구만"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연락처를 알지 못했고 그 이야기를 한 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헤어져야만 했다.

얼마 뒤 수소문한 끝에 그분이 '달마원'이라는 장소를 마련하여 가르침을 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달마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분은 그곳에 없었고 그분이 지은 '나그네'라는 시를 읽어 보게 되었다.

"나는 나그네

짐진 나그네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진 나그네.

.... "

그 시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광활한 우주와 같은 공간과 자유 그리고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여러 번 방문을 했지만 그분을 만나볼 수 없었다. 만나고 싶은 바람은 간절하였으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 갑갑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해가 바뀌고 91년 2월, 나는 소련 영해인 캄차카 반도로 가는 명태잡이 트롤어선을 타게 되었다. 갑갑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배라도 타면 숨이라도 한 번 크게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혹한의 추위와 노예와 같이 일해야 했던 선상 생활, 과격하고 무식하게만 보이는 동료 선원들의 모습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배가 귀항하여 집으로 오니 긴장이 풀려, 얼음을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처럼 몸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한 열흘쯤 뒤 몸이 약간 회복되는 것 같았다.

 

5월 중순의 어느 날, 나의 발걸음은 다시 달마원으로 향했다. 마침 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토요일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다. 그분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강연하시는 것 같았다.

예고없이 찾아간 나는 뒤에 앉아서 듣게 되었다. '삶과 진리, 깨달음'에 관해서 말씀하셨던 것 같다. 간혹 졸음을 견디지 못해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 귀중한 시간에 이 사람들은 왜 잠을 잘까? 차라리 오지를 말든지, 왔으면 열심히 듣든지 해야지 이렇게 조는 사람들은 진리의 소중함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사람들 중에 승려 두 사람이 있었던 때문인지 이런 강연 시간을 '법회'라고 하였다. 법회를 마치기 전에 질문이 있는 자는 질문을 하라고 했다.

나는 많은 의문이 있었으나 하나하나 물어 보기로 했다. 질문이 있다고 하니 일전에 내가 이곳에 찾아왔던 사실을 승려가 이야기하고 소개하였다.

나는 "선생님은 깨달은 분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나는 세상 이치에 관해 깨달았다. 그러니 무엇이던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 물으면 그 질문을 보고 대답을 해주겠다."

나는 "무엇이든지 물어라"하는 말을 듣는 순간 무엇을 물어야 할 지 순간 당황했고 '무엇이든지 물어라'하는 말만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잠시 뒤 나는 다시 질문하였다.

"선생님 저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질문하신 분은 오늘 내가 처음 보았고 어떤 상태를 깨달음이라 하고 질문하였는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와 같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최상의 근본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상의 근본이 아닌 자는 아는 자에게 배우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깨달았다는 것은 진리에 관해 눈을 뜬다, 있는 사실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뜻이고 나에게 와서 보고 듣고 열심히 배우면 됩니다. 처음 1년간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다시 1년이 지나면 세상 일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고 다시 1년이 지나면 양심과 용기가 커져서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로 변할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우선 자주 만나 뵙고 질문하여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분은 가르치는 스승으로서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나는 만남과 질문이 거듭될수록 과거에 가졌던 이상이 깨지는 것 같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을 때 그분은 영도에서 전포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쯤하여 나는 다시 어떤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질문하였다.

"여기 스님 두 분이 계시는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출가를 해야 합니까? 집에서 나와야 합니까?"

"나는 그런 일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석가여래도 왕실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이 난 후 출가를 하여 깨달음을 얻었고, 나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고 세상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집이나 가정이 구도자에게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나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 자식의 출세와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집을 나오기도 그렇고 또 그냥 집에 있으면서 배우고자 하니 완전한 배움이 아닌 것 같기에 입장이 난처하였다.

소중한 만남을 무산시키고 그냥 집에 눌러 있으면서 대충 배우는 시늉만 내기도 그렇고 막상 집을 나온다 생각을 하니 그러한 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남의 가슴에 한을 만드는 일은 옳지 않다. 먼저 부모님께 이 일을 의논하라. 집에 있어 주기를 고집한다면 집을 나오는 것이 좋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허락한다면 반대로 집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

용기가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나의 모습에 무척 실망스러웠으며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나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 변화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헌 자전거를 2만 5천원에 한 대 샀다.

다음 날부터 나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스승은 전포동에서 목욕탕을 경영하였고, 손님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보일러로 물을 데우고, 목욕탕 정리를 하고, 카운터에 앉았다.

스승은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는데 배우는 사람이 게으르게 늦잠을 잔다니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생활은 바뀌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뒷산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전포동으로 향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에게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것밖에 없었다.

"내가 너에게 혹시 베푼 것이 있다면 나에게 보답할 필요는 없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힘이 있다면 그것을 세상에 베풀어라. 세상을 위해서 마땅히 쓰여져야만 할 것이다."

겨울 새벽 산 속의 어둠도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의 찬 바람도 스승의 가르침과 삶과 그 노고를 떠올릴 때면 나는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날 수가 있었다.

5시 30분쯤 내가 목욕탕에 도착하면 스승은 반가이 맞이하셨고, 손님이 별로 없는 새벽 시간이라 카운터에 앉아서 쉼없이 삶과 깨달음 그리고 진리의 세계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나는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하였다. 그때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시원하게 해주었지만 나의 이런 질문이 계속되자 스승은 나에게 도리어 반문하였다.

"너는 왜 이런 질문만 계속 하느냐? 너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아직까지 부모에게 의지해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느냐? 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였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다. 생활에 실패한 자는 도를 얻는 데도 실패한다. 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 일은 중요하지만 먼저 건전한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10㎏을 들지 못하는 자는 100㎏도 들지 못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이상적이었던 나는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하나의 구속이고 장애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당시 나는 학원 강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유시간이 많았고,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깨달은 분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상적인 행동이나 꾸밈이 없었다. 특이함을 발견하기 보다는 현실에 충실하였고 평범한 생활을 보는 것뿐이었다.

손님이 오면 반가이 맞이하고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았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거나 목욕탕에 문제가 생기면 장갑도 끼지 않고 그 즉시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적극적이셨다.

현실의 어떠한 어려운 문제에도 쉽게 굴복하거나 불의와 타협하는 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삶에 매우 적극적이고 의욕에 넘쳐 있었다. 스승은 깨달음을 얻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해 있었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을, 재주를 부리기보다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스승과 비교되는 나의 못난 모습에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이후부터 나는 집에 가면 할 일을 찾았고, 성가시게만 여겼던 심부름도 스스로 청해서 하고, 일을 찾아 동분서주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으며, 하나의 축복이었다.

나는 곧 얼마 뒤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나 일을 한다는 것이 더 이상 나에게 구속이나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해봄으로써 스승이 몸소 행동으로 나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승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이상에만 부풀어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먼저 내가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상적인 나의 사고가 깨어지고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스승의 진실한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을 대단한 행운으로 생각한다. 세상과의 만남, 이 시대와의 만남, 위대한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이 소중한 만남이 헛되지 않게, 나의 삶이 보다 가치있는 삶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