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연의 가르침 > 2호 > 알고 싶어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질문 : 정(情)이 많은 사람이 공적인 일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정이 많이 개재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답변 : 정이 많다는 것은 정실(情實)에 흐른다는 뜻으로도 된다. 정에 의존해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실수하게 되는 일이 많다. 모든 일은 옳고 그름에 의해서 판단해야 한다.

정실의 예를 들면, 공적인 일에 안 되는 일을 두고, 한 친척이 와서 정에 호소하면서 "이것을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억지로 부탁하여 일을 되도록 했을 때 그 사람만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친척도 나쁜 것이다.

정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상이 어두울 때는 사회자체가 정실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족벌정치 같은 것도 정실의 한 예이다. 정실이 흐르는 사회는 어두워진다. 정실에 의존하면 그 사회에는 도(道)가 무너지게 된다. 정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실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정실은 사람간의 애정이나 애착 때문에 생길 수 있으며 또한 물질 때문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회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도 정실이 큰 사회이다. 실제로 관공서에 행정적인 절차로 일을 보는데 뇌물을 건네야 하는 경우가 있고, 직장에서 진급을 하는데도 뇌물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두운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이 정실에 의존한다. 힘을 찾고, 줄을 찾고, 돈에 의존하는 것은 정실에 의존하는 것이다. 정실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을 갖게 하는 것을 두고 말한다. 정실이 흐르는 사회에는 불행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에 의지해서 사람이 측은하다고 아무나 누구라도 도와서는 안 된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자신이 분명히 알아야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가 사회에 어떠한 작용하며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정에 의지하여, 토끼에게 물을 주고, 전갈에게도 물을 주고, 독사에게도 물을 주었다고 가정했을 때, 토끼에게 물을 준 것은 사회에 유해한 일이 아니지만, 독사나 전갈에게 물을 준 것은 그들에게 힘을 주고, 해로운 세력을 키우게 된 것으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이 된다.

 

질문 : 친한 친구가 차를 몰고 가다가 한 행인을 치고 뺑소니를 쳤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불구자가 되었다. 친구와의 우정(友情)을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친구를 돕고 우정을 지키는 것인가?

답변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있다면 우정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정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을 넘어섰다면 우정도 자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친구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데 우정 때문에 그 일을 덮어주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함께 죄를 짓는 것이다. 이때는 친구에게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뺑소니를 친 사실을 숨기고 평생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갈 수는 없다.

만약 신고를 하면 징역 2년을 살고, 숨기고 덮어두면 평생동안 양심에 가책을 갖고 살아야 한다. 자기로 인해서 한 사람이 불구자로서 인생을 망쳤다는 가책을 평생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럴 때는 우정의 충고가 있다. 어떻게 하겠느냐? 고 물어서 "지금이라도 자수해서 보험 처리를 해주고, 2년 동안 징역을 살고 나면 너의 마음은 가벼워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넌 평생을 부담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도 받고 네가 평생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덜게 된다면 자수하는 편이 낫다"고 말해야 한다.

만약 사고를 낸 친구가 쫓기는 상황이라면 그를 숨겨 주었다가 발각이 되면 나도 위험하다. 친구와 우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숨겨 주겠지만 자신도 처벌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 우정도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하는지를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

우정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인간 의식이 가진 사고가 사람마다 각각 다르므로 우정은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나쁜 일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있는 일 자체를 확인하지 않고 우정이란 '좋다', '나쁘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우정 속에는 감동적인 우정도 있지만, 그 우정으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많다는 예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질문 : 자식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때는 자식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만큼 서운할 때도 있었다.

답변 : 부모가 자식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모는 자식을 자식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상전(上典)으로 키운 것이다.

부모가 가진 것이 있을 때는 무엇이든지 다 자식에게 주고, 부모가 가진 것이 다 떨어졌다면 자식상전은 자기에게 일 잘 해 주고, 비위 잘 맞춰 주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 주는 종을 좋아하지, 비위도 안 맞추어 주고 자기 이익에 큰 도움도 안 주는 부모는 이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상전처럼 키웠던 부모라는 종을 결국에는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옳은 교육을 시켰다면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배반하겠는가?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다.

부모가 자식을 상전처럼 약하게 키웠기 때문에 자식이 힘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데 부모는 가장 큰 선생이다. 사회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줘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려서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했다면 그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자식에게 중요한 교육은 독립심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에 애착을 버리면 냉철한 생각과 판단을 갖게 되니까, 자기 자신을 망치는 일이 적고 실수하는 일이 적어진다. 자기를 좋게 살게 하고 남에게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남에게 잘 속지 않고 자신은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옳고 그름을 아는 자는 부모를 잘 섬기고, 필요할 때 형제를 잘 보살핀다. 그것이 진정한 우애를 낳는 길이다.

항상 자기가 하는 일에 애착을 맺지 않는 것은 언제나 자기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자기를 건강하게 살게 하는 길이다. 어떻게 자식을 축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자식에게 하는 사랑의 시작이다.

냉정한 판단과 힘든 노력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노력할 줄 알고 제대로 판단 할 줄 알고, 자기가 하는 일에 충실할 줄 아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자식에게는 일을 시켜야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봐야 돈의 소중함을 알고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이다. 항상 어떻게 해야 자기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자식을 키울 때는 정에 의존하지 말고, 냉정해야 한다. 자식이 일을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고 세상에서 최고의 일꾼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한다면 결국은 최고의 부모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 정(情)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답변 : 정과 사랑은 상반되게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정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랑과의 구별을 항상 모호하게 한다.

정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사랑이란 상대를 축복하는 것을 말하며, 자기와 연결된 어떤 감정에 의한 것을 정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면 그것은 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씨를 뿌리고 가꾸어 주는 일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때문이다.

축복을 전하는 일이나 축복을 만드는 일을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세상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한다면 실천하기가 힘이 든다. 사랑에도 수학의 공식처럼 크고 작은 사랑이 존재한다.

내 자신의 하나의 행위가 어떠한 축복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크고 작은 사랑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업을 만드는 원인도 수없이 많지만 축복을 만드는 원인도 수없이 존재한다.

축복은 세상을 사랑하는 일로서 이루어지며, 사랑이란 세상을 축복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질문 : '업' 자체도 애착을 갖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지?

답변 : 세상에 있는 일을 보면 거기에서 모든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다.

그리고 삶에 대해 큰 애착을 갖지 않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되는데, 나쁜 일을 많이 하고 잘못 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죽으려 할 때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애착이 선업이 큰 자보다 악업이 큰 자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이 대부분 오래 산다.

세상에서 많은 적(敵)을 만들지 않고 모질게 살지 않은 사람들은 오래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래 산 사람들을 조사 해보면 삶이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 속에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애착이 크다. 의지가 약할수록 업이 크고 애착이 많다.

업은 항상 애착을 가지고 있다. 업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실수하게 한다던가 미리 경계를 해도 무심코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업에는 습성이 내재 되어있기 때문에 자신 속에서 시키는 일을 자신이 하는 것뿐이다.

이런 것을 업이라고 한다. 업은 항상 자신 속에 있는 일을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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