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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부

 

일본의 도쿄대학은 관료양성을 위한 국가에 종속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기능을 해왔다. 또한 문호개방 이후 서구의 실학(實學)을 중심으로 인재를 육성하여 국가의 근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요즈음 일본에서는 도쿄대학이 일본을 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일본의 요소 요소에 도쿄대학 출신들이 앉아있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자꾸만 문제가 많은 일본으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성교육이 결여된 사람들이 암기 식의 시험에 통과하여 국가의 요직에 앉아 많은 실수를 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특히 일본의 개방적인 지식인들 사이에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 그 주장들을 요약해 본다.

 

일본 엘리트의 무교양

관료주의라고 하면 법규만능주의, 형식주의, 선례답습주의(先例踏襲主義)라고 하는 키 워드(key word)가 머리에 떠오른다. 이는 그들의 머리 속에 주입되어 있는 지식이 대부분 법률과 규칙뿐이라는 데서 초래된다고 본다.

이유는 그들이 치르는 시험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은 대부분 사법시험과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머리 속은 법률로 가득 차있고, 훌륭한 인간으로서 공직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폭넓은 지식과 다양한 사고를 머리 속에 흡수할 여유라고는 거의 없다.

교양시험은 1차와 2차가 있다. 1차는 교양시험과 전문시험이 있으며 전문시험은 직종에 따라 다르다. 교양시험은 과목이 다양하긴 하지만 '사상'이 한 문제이고, '문학·예술'은 없다.

일본 엘리트들의 사상성과 문화성의 결여에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중국의 과거(科擧)는 거의가 사상과 문화의 교양시험이었다. 그때와는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너무 격차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법학부의 경우 전문과정에 들어가면 교양을 몸에 익히기 위해 준비된 코스란 전혀 없다. 유일한 기회는 교양학부시절이다. 그런데 교양학부의 교양과목 교육이 전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상황인데다 특히 법학부 진학지망자는 교양과목엔 관심이 없다.

법학부 지망자는 교양학부의 성적과는 관계없이 그대로 진학이 가능하다. 따라서 교양학부 과정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선 사법코스, 공법코스, 정치코스로 3코스가 있지만 자신의 희망으로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또 진학해서도 변경 가능하기 때문에 교양과정을 열심히 공부 안해도 된다.

그러므로 법학부 지망생은 교양학과 공부라곤 거의 하지 않는 셈이다. 대부분이 교양과는 관계없이 놀고 있다. 수험경쟁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는 점도 있고 취직은 떼어놓은 당상이며 어지간히 어려운 곳을 희망하지 않는 이상 아무 걱정도 없기 때문에 그저 놀아도 되는 것이다.

장래 어떤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교양학부 시절의 성적이 어떤 형태로든 문제시되는 일은 없다. 교양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인간에게 있어서 부끄러운 일인가 하는 자각을 가지게 하는 기회도 없기 때문에 그저 노는데 정신이 팔려 교양학부 시절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법률직 편중주의를 규명하라

사법시험은 제법 어렵다. 법학부는 년간 근 7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그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자는 160-180명 정도이다. 사법시험은 여간해서 단번에 합격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급생, 재수생이 많다. 졸업 후에도 취직하지 않고 집에서 시험준비를 계속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 공무원시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전문시험 과목을 보면 법률직은 경제학과 재정학의 문제가 조금 있을 뿐 전부 법률문제이다. 법률문제만을 공부하여 관료의 자질을 구비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행정직의 시험 내용 쪽이 관료에는 적절하다. 행정학은 물론 법률도 들어 있지만 경제학, 노동경제, 정치학, 국제관계, 사회학까지 들어 있어 상당히 잘 편성된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요관청은 행정직은 거의 무시되고 압도적으로 법률직 편중의 채용을 하고 있다.

양쪽을 채용해도 간부직원의 윗자리에는 대부분 법률직이 앉는다. 그 결과 일본 관청은 하급직원도 상위직원을 본받아 무엇이든지 법률만능의 형식주의에 젖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학부의 우위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사법관 채용을 위한 시험이면 전부 법률문제를 출제해도 괜찮지만 행정관의 채용시험이 법률 일변도가 되면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가노(長野) 올림픽 때 세계에서 모인 보도진에게서 나가노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악평을 받았다. 너무나 관료적이었기 때문이다. '규칙이기 때문에' 를 연발하는 관료주의에 입을 다물었다고 프랑스의 피가로紙 기자는 말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직원들은 도쿄의 중앙관청에서 파견된 관료였던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규칙이기 때문에'의 연발은 도쿄의 중앙관청에서 항상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달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세계기준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일본의 관료주의가 지나칠 정도가 된 것도 일본의 관료사회가 딱딱한 법률가가 상위에 앉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관료주의를 알려면 지나친 법률편중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가 하는 관료의 채용기준이 바로 문제다. 지금까지와 같이 관료자체에 관료의 신규 채용기준의 결정권을 부여해두면, 관료는 자신들과 같은 타입의 사람을 계속 선발하여 일본적 관료주의자를 배양해 갈 뿐이다.

최근 아사히(朝日)신문에 유명한 어느 기고가가 대장성(大藏省-재정경제부)관료 스캔들에 관해서 이렇게 글을 쓴 적이 있다.

'자, 독자 여러분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합시다! 고위 공직자를 떠받드는 일본인의 나쁜 습관과 결별해야 합니다. 도쿄대학 출신이 훌륭하다고 하는 생각도 이제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도쿄대학이 일본제일의 대학이라고 자부한다면 왜 나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초보적인 교육조차 되어있지 않습니까.' 라고.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대장성 관료를 위시하여 최근의 스캔들이 있는 정부고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도쿄대학 법학부의 졸업생이다. 중학생이 나쁜 일을 한 사건이 있으면 곧장 '학교가 나쁘다. 교육이 나쁘다' 고 법석인데 왜 대장성의 스캔들에는 '도쿄대학 법학부는 도대체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 보면 도쿄대학 법학부의 어디에도 이런 교육을 하는 곳이 없다.

 

도리교육을 소홀히 한 책임

이러한 문제는 대학이전의 문제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초보적인 선악의 가르침은 가정교육과 초등교육의 과제라고 말하면 수긍되는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초등교육에서는 간단히 덕목으로써 가르치기만 하는 문제를 더욱더 깊게 파고들어 다시 생각하는 것도 고등교육의 역할이다. 선악문제, 정의문제 등이 마땅히 그런 대상이 된다. 사실, 이는 서양철학이 반복해서 제기해왔던 문제로 그렇게 간단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고등교육에서는 그런 문제를 정식으로 생각하려는 과정이 거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일본 고등교육의 기원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고등교육은 의식적으로 그 부분을 배제하고 구축되었다.

일본의 고등교육은 수입된 학문을 토대로 구성되었으므로 수입할 필요가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학 부분이고, 그 밖의 철학 부분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도쿄대학 백년사> 는 도쿄대 이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교육과정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기술학 중심으로 서양학을 도입한 교육기관이어서 신학·윤리학 등의 학과는 두지 않았다. (중략) 말하자면 외국에서 섭취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전반적인 공예학술(工藝學術) 및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료(醫療), 법률(法律), 경제(經濟)등 실학이며 지식이상의 도리(道理)까지 대학에서 배울 필요는 없다.' 고 했다.

도쿄대학 법학부의 기원도 실은 이러한 법률교육에 기초하고 있다. 말하자면 법률도 '도리' 를 빼고, 기술적인 형이하학적 '실학' 으로서 배운다고 하는 입장이다.

메이지 이전 일본에서 실사(實事)교육은 그다지 행해지지 않았지만 도리교육은 꽤나 실시되었다. 에도(江戶)시대의 일본은 국제적으로 보아도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테라고야(寺子屋), 반코(藩校) 등 학숙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사서오경(四書五經) 등의 한학을 통해서 도리교육이 중심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기(明治維新期)의 고등교육 개시에 있어서 실은 국학파(國學派), 한학파(漢學派), 양학파(洋學派)의 사이에 심한 헤게모니 싸움이 전개되어, 양학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 결과 그때까지 도리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한학이 고등교육의 과목에서 제외되었다. 일본의 고등교육은 도리교육 없이 시작된 이래 그 전통이 오늘에까지 계승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 일본을 지배하는 엘리트들이 모두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리뿐이라고 하는 고등교육의 참담한 원인이 있다고 보아진다.

<타 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