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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소 연

 

1988년 12월 13일, 스승과 함께 나는 짧은 내 영어 실력에 의지하고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태국의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방콕공항에 도착했다. A.A House라는 값 싼 여관에 한 달 계약으로 방 2개를 빌렸다.

도착 이튿날부터 나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여관 안내원에게 제일 큰 사원이 어디냐고 물으니까 '왓 파라께오'를 가르쳐 주었다. 에메랄드 사원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사원의 입장료가 3,000원 정도이었다.나는 검표원에게 다가가서 나는 한국에서 온 승려인데 무료로 들어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할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승려는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승려들은 모두 어디 있느냐 고 물었더니 이곳은 수도처가 아니라고 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것이 아까워서 한 시간 동안을 사원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나는 번쩍이는 에메랄드 사원의 겉 모습에는 조금도 마음이 없었다.

17일에는 태국의 제1왕사 프라얀 성본을 찾아갔다.

나는 제1왕사에게 깨달은 스승이 태국을 방문하고 있음을 전하면서 참고적으로 한국주재 외국대사들에게 보냈던 스승의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제1왕사는 스승의 메시지를 천천히 읽어보더니 메시지를 한 부 복사해서 가져도 되겠느냐 고 말했다. 제1왕사는 12월 23일, 오후3시 30분에 스승과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약속날짜가 되자 스승과 나는 제1왕사의 집무실이 있는 왓보원으로 갔다.

제1왕사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접견장소에는 서양인 승려 세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스승과 내가 도착하자 곧 제1왕사가 입장했다.

스승이 먼저 말했다.

"세상은 뜻으로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뜻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스승의 말이 한동안 계속되고 나의 통역이 이어지는 동안 제1왕사는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이윽고 스승의 말이 끝나자 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당신의 가르침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같은가? 다른가?"

스승이 대답했다.

"그가 깨닫고, 나도 깨달았다면, 두 사람은 같은 것을 본다."

스승이 왕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대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왕사가 대답했다.

"계율과 경전과 명상을 가르친다."

스승이 말했다.

"깨달은 자가 계율을 어기는 일은 너무 힘이 든다. 그러나 깨닫지 않은 자가 계율을 지키는 일 또한 어렵고 힘든다. 부처의 말씀 속에는 세상이 있으니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 가르치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다. 그대들은 어떤 명상을 하는가?"

함께 참석해 있던 한 서양인 승려가 명상의 자세를 보였다.

그러자 스승이 그 자세를 보고 같이 따라 하더니 잠시 후 자세를 풀면서 말했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완전한 평화에 이를 수 없다."

스승의 말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한 서양인 승려가 질문했다.

"당신은 자신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승이 대답했다.

"그렇다. 한 시대에 눈뜬 자가 둘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는 삼천 년 또는 육천 년에 한 번 세상에 출현한다."

왕사가 다시 스승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스승이 대답했다.

"나는 양심과 정의를 가르친다."

왕사는 스승의 대답을 듣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스승이 왕사에게 질문했다.

"인간의 가르침 속에 존재하는 세상의 근본은 무엇인가?"

이번에는 왕사가 되물었다.

"당신이 아는 그 해답은 무엇인가?"

"도덕(道德)이다."

나의 통역으로 스승의 답변을 듣는 순간 왕사의 얼굴에는 실망의 표정이 스쳐갔다.

나는 왕사가 도덕에 대한 나의 통역을 윤리(moral)정도로 이해한 것으로 판단이 되어 즉시 보충하여 다시 통역했다.

"이 분의 말씀은 진리와 진실을 말한 것이다."

그러자 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지금 나와 함께 마주하고 있으나 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예언하기를, 이 시대에 진실한 자가 나타나서 세상을 구한다고 했다. 인도의 힌두교인들 역시 이 시대에 제3의 눈을 가진 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원한다고 했다. 지혜의 눈을 가진 자는 실제로 삼천 년에 한 번 또는 육천 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의 이마를 보라."

왕사는 스승의 이마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내가 한 번 만져보아도 괜찮겠는가?"

그러자 스승은 쾌히 승낙했다.

왕사는 스승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스승의 이마에 솟아 있는 지혜의 눈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잠시 후 왕사는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은 다시 자신이 가진 다른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왕사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왕사와 우리가 대화를 나눈 시간은 무려 4시간이나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스승이 왕사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소원이 있는가?"

그러나 왕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왕사는 접견을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당신과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당신은 들은 것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서 가르치지만 나는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가르친다. 이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이다."

왕사가 스승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스승과 나는 제1왕사와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태국의 제1왕사를 앞에 두고 당당하게 말을 하던 스승의 모습에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승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만고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나는 중생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스승은 깨달은 자와 중생들이 보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깨달은 자가 보는 것은 중생이 보지 못하고,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자는 보게 되니 스승이 세상에 있는 일을 보고 말하면 사람들은 스승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스승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세상사람들에게 주기가 어려웠고 또한 세상사람들은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