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연의 가르침 > 5호 > 알고 싶어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질문 : 소크라테스가 받은 극형이 잘못된 판결에 의해 나온 것이라면, 잘못된 판결에 대항하는 것이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닙니까?

답변 :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는 있는 일을 밝히는 일, 진실을 밝히는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을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의 옳지 못한 일을 퇴치하는 운동을 정의로운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란 진실을 밝힘으로써 인간사회의 삶을 밝히는 빛과 같은 것으로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극형을 받은 것입니다.

 

질문 : 소크라테스가 극형을 선고받고 나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국외로 망명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석금을 내고 나오는 것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다시는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왜 죽음을 택했습니까?

답변 : 좋은 근본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 좋은 근본이 자기 속에 활동을 하고 있다면, 그 세 가지 중에 하나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서 진실을 말하고 살수 있습니까? 오히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나온다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옳은 일을 하지 말고 살라 하면, 진실한 자가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삶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세 가지 제안 중에 한 가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질문 : 사람들은 부처나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그 분들의 이름으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종교가 왜 필요합니까?

답변 : 지구상에 종교가 하도 많이 있으니까 한마디로 종교에 대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먼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왜 그 종교를 가져야 했으며 그 종교는 당신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주는가?'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다음에 과연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들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안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판단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런 것을 원하고 있는데 당신에게는 저런 일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라고 깨우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고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무슨 목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면 한 사람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또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면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나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가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운명을 주거나 예수가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속에 있게 된 일에 의해서,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고 행동한 일들이 의식 속에 쌓이고 쌓여서,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어떤 환경에서는 행동하게 되고 어떤 환경에서는 그 행동을 자제하는 성질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활동과 행동이 지어내는 결과에 의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되고 또 변화시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 좋은 행위를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답변 : 좋은 행위라는 것은 좋은 결과를 얻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어둠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밝은 불을 켜주었다면, 어둠 때문에 자기의 능력을 펴지 못하는 사람에게 일을 할 수 있게 하였으니 좋은 일입니다.

내가 한 행위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좋은 행위이고 좋은 행위는 좋은 원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질문 : 잃어버린 자신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습니까?

답변 : 모든 생명체는 활동을 통해서 자기를 계속 만들어내고 번식시키는 일을 합니다. 업은 업을 만들어내고, 사람은 사람을 만들어내고, 콩은 콩을 만들어내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일은 바탕과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바탕에는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신은 가르침에 의해서 항상 움직이고 활동하게 됩니다.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는, 힘든 삶을 통해서 자신을 되찾고 자기를 완성 할 수 있습니다.

 

질문 : 인연은 무엇이며 왜 생기는 것입니까?

답변 : 말과 행동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던 말과 행동이 내 의식작용에 매우 중요한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업을 만들고 한을 짓고 그리고 공덕을 만들게 됩니다.

내가 말 한마디를 잘못할 때 시비를 유발하게 되고, 그 시비가 내 속에 한을 짓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나의 일시적인 행동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말 한마디가 남에게 업을 짓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의 깨달음을 주어서 다른 사람을 잘 살게 하고 축복을 받게 했다면 그것은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이 어려운 사람을 구했다면 그것은 빛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있는 일을 보지 않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있는 일을 보고 거기에 맞는 답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의 말이 어떤 경우에는 엄청난 재앙을 만들 수도 있고, 업을 지을 수도 있고, 엄청난 갈등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며 행동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질문 : 징기스칸, 히틀러, 풍신수길등 왜 이들은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까?

답변 : 영웅이나 천재나 뛰어난 지도자는 타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는 배움을 통해서 양성되는 것입니다.

식물의 예를 들겠습니다. 보리의 열매에서는 싹이 나고 싹의 활동에 의해 열매가 만들어집니다. 열매의 근본은 자기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돌감도 자기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단감도 자기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사람들은 특별한 자기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히틀러나 징기스칸의 성장 과정을 보면 어린아이일 때는 큰 아이가 때리면 얻어맞는 등 평범합니다. 그러나 성장을 하면서부터는 두각을 나타냅니다.

징기스칸은 부족의 족장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성장하자 사람을 지도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전투에서는 싸울 때마다 능력에 의해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세계를 정복하러 나섰습니다. 지도자의 큰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합니다. 이는 징기스칸의 의식 속의 지도자의 힘 때문입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학벌도 없고 지지자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 그는 삽시간에 당을 만들고 당수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의회를 장악했으며 수상이 되고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막강한 힘을 독일에서 창출해 냈습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그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가 만일 강력한 힘을 독일 사람에게 불어넣지 않았다면, 독일이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무모한 짓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히틀러가 갖고 있는 운명적인 힘 하나로 그런 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풍신수길은 천한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가 다리 위에서 울고 있을 때 지나가던 승려가 그를 데려다가 나무하고, 불 때고, 마당 쓰는 일을 시켰는데 그는 나이가 들자 그 곳에서 나와서 세력을 가진 집안에 들어가, 그 집안의 대를 이을 사람의 몸종이자 마부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후 어떤 계기가 있자 엄청난 힘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일본의 지도자가 되고, 그 세력을 한국에까지 행세한 것입니다. 일본의 오늘과 같은 현실을 있게 한 좋은 제도들이 풍신수길의 시대에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일은 학문을 한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 속에 있는 일이나 인체 속에 있는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인체는 의식 활동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람은 깨달음이 없이 인체의 기관만으로 자기를 좋은 자기로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돌감이 단감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업을 가진 자가 업을 버리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돌감이 단감으로 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돌감나무에서 단감이 열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독사에게 물을 먹이고 녹용이 나오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독사는 물을 먹으면 독을 만드는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슴은 물을 먹으면 녹용을 만드는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있는 일을 항상 확인하고 있는 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