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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편집인  卞 魯 燮

 

부처의 말씀을 담았다는 불경(佛經)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적잖다.

불타 석존(佛陀 釋尊)의 대자비를 표현하는 이야기 중에 유명한 ‘명의와 광자(狂子)’의 비유가 돋보인다.

어느 나라에 명의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이들이 백 명 이상이나 되었다. 명의는 아이들에게 깊은 자비심을 쏟았다. 어느 땐가 명의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들 모두가 실신 상태였다. 그들이 약국에서 제 마음대로 약을 조제하여 먹었다는데 알고 보니 독약이었다.

명의인 아버지는 황급히 중화제(中和劑)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게 했다. 아이들 중에 반쯤은 독약중독이 경미하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중화제를 먹고 본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머지 아이들은 이미 독약이 본심(本心)을 해친 탓으로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명의는 깊이 생각하던 끝에 다시 여행 길에 나섰다.

그리고 여행하던 나라에서 급히 심부름꾼을 보내어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훌륭한 부친께서는 돌연 급서(急逝)하셨다”라는 부음(訃音)을 전했다.

그 소식을 접한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천지가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충격을 받고는 아버지가 조제한 중화제를 먹지 않으면 큰 일을 당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서둘러 그 양약(良藥)을 먹게 되어 나머지 아이들도 본 마음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모든 아이들의 병이 쾌차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매우 상징적인 뜻을 지닌다. 죽지 않았는데도 죽었다고 한 것은 하나의 방편이지만 현실적으로 말하면 거짓말이다.

이야기 속의 '명의'는 '석존'이며, '아이들'은 '중생'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제행무상(諸行無常)·구원교화(久遠敎化)를 바탕으로 하는 불법세계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불가측의 무량무변이다.

무한영겁(無限永劫)의 시간과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공간 속에서는 진실과 허위가 엇갈려 그 진위(眞僞)를 명백히 가리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특히 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 일종의 방편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참에 이르는 필연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현실세계에서 '명의'를 '영도자'라 가정하고 '중생'을 '국민'이라 할 때, 앞에 이야기한 논리와 의미가 통용될 수 있을까?

영도자가 진실로 '깨달은 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국민을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참사랑이 우러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임시방편의 거짓말이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기가 십상이다.

그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시 몇 개의 거짓말로 겉치레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종국엔 영도자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낙인(烙印)이 찍혀 영도자의 신용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여 사태의 진실에 눈이 어두워지면 곧 눈뜬 장님이 되어 버린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고 평하듯, 국정(國政)을 비롯한 모든 사물을 자기 중심으로 편파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므로 정책은 실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헤매게 되기 마련이다.

현재의 사회는 종말론(終末論)과도 얽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니 비키니 섬의 거북을 닮은 꼴이라 비유된다. 잘못하면 예언자들이 말한 세계의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 경제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번지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맹인을 닮은 습성은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자기(自己)·자당(自黨)·자파(自派)의 이익과 주장만을 실현하겠다는 이기주의는 결국엔 나라도 망치고 스스로도 파멸하는 불행한 종말로 끝난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란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축복이 되고 국가에게도 축복이 되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정성을 쏟을 때 자기에게도 축복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눈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리·정의·진실을 밝히고 지키려는 깨달음이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엔 공멸(共滅)의 나락(奈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분연히 일어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