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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연구학회장  이 삼 한

VS

박 수 태, 허 민, 김 미 옥

 

 

삶이란, 있는 일을 깨달으면 그 삶 속에 보람과 기쁨이 있게 되고, 있는 일을 모를 때는 그 삶은 고(苦)로 가득 차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있는 일들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대담을 통해서 있는 일에 대해서 밝히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일들이 어떤 특정한 대상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있는 일들에 의해서 모든 현상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있는 일을 바로 앎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 속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 속에 있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이고, 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바로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은 각자 자기(自己)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일을 두고, 거기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각각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좋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에 있는 일을 같이 느끼고, 같이 받아들이고, 같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이다.

이러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두고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 인간의 세계에는 항상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해 왔고 운명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란 과거에 자기 속에 있던 일로 인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운명은 고정적일 수도 있고, 유동적일 수도 있고, 또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있는 일에 대해서 깨달으면 그 깨달은 만큼 운명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석가부처나 예수가 죽고 나서 사람들은 그들을 신격화(神格化)하고 그들의 이름을 빌려 종교를 만들었는데, 성인들은 종교를 만드는 것을 원했나?

성인(聖人)은 절대로 그의 사후에 자신이 일반사람들의 우상(偶像)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한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석가부처도 깨달음을 얻고 나서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일깨우려고 했던 일이 우상타파였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고, 거짓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세운 구호가 우상타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그들의 사후에 그들이 인간들에게 우상이 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성인들은 그들이 가르쳤던 제자를 통해서 그들이 밝혔던 진리 속에 있는 일들이 인간의 세계에 널리 퍼짐으로 해서 인간의 세계가 밝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만을 진정으로 바랬다.

무지한 자들이 실제로는 성인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을 채우고 자기들의 거짓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성인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성인이 인간들의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크나큰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오늘날 부처나 예수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지금의 세상을 보고 '내가 왜 저 무지한 자들의 모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가르침을 통해서, 성인들이 세상에 와서 겪었던 그 고뇌의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밝혀지는 것은 그들도 바라는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빌려서 거짓이 득세하는 일을 사람들이 만들었다면 그것은 성인들이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기 때문에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모독이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내라"고 한 성인이 있었는가? 성인들은 귀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예수도 귀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고, 석가모니도 그렇게 말했다.

성인들이 귀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한 것은 자기도 죽거든 섬기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내가 죽거든 나를 섬기지 말고 내가 했던 말 중에서 좋은 가르침이 있거든 그 가르침을 섬기고 따르라'는 것이다.

 

자연의 가르침 9월호 82페이지와 10월호 대담을 읽어보면, 4대 성인은 석가모니·예수·소크라테스·노자로 되어 있다. 한국의 일반상식으로는 세계의 4대 성인에 노자가 아니라 공자가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공자가 남긴 업적이나 그 발자취가 현실적으로 증명되고 뚜렷하기 때문이다. 사실 노자의 전해지는 업적이라고 해야  도덕경(道德經) 정도이고, 노자의 행적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왜 4대 성인 속에 공자는 빠지고 노자가 들어가는지?

실제로 노자(老子)가 인간 세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완성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역사 속의 기록이나 그들이 남긴 가르침으로 판단해 볼 때 공자(孔子)나 맹자(孟子)는 평범한 사람이다. 당대에 유명했던 학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노자는 어떤 기준에 의해 성인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가? 노자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은 공자의 인격이나 학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유교(儒敎)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한국사회에서는 공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인이란 그 자신이 세상에 보여준 말과 행동 속에 있는 가르침을 통해서 그가 성인인가 아닌가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대의 업적을 내세워서 말한다면 소크라테스도 별로 한 일이 없다. 길가에 앉아서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있는 일을 밝혔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있는 일을 말하니까 선동한다고 했다. 별 것 아닌 일을 한 것이다. 제 부인에게서도 물동이로 구정물을 뒤집어썼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성인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의식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을 보면 끝없이 빛나고 있다. 그 가르침은 인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을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성인은 어두운 세상에 하나의 빛과 같은, 있는 일을 밝힐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공자는 사실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는 여러 나라에서 대소(大小) 관직(官職)에 올랐었다. 그러나 성인이 벼슬을 했다는 얘기는 매우 생소하다.

가지고 있던 영화(榮華)도 버리는 것이 성인인데 공자의 경우는 사리(事理)에 맞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관찰이 필요하다.

노자는 아무도 받아들인 사람이 없었다. 노자의 사상을 노자에게 직접 들어서 전한 사람이 없다. 제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노자는 알지만 공자는 잘 모른다. 공자를 대단하게 보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성인을 분별할 때에는 먼저 있는 일을 보아야 한다.

노자가 성인이 아니었다고 하면, 왜 그의 곁에 사람이 없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는 그 사실은 노자의 의식을 따라갈 만한 사람이 그 시대에 없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노자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세상을 외롭게 떠돌아다니다가 죽었다.

그러나 후세(後世)의 사람들은 그가 하나의 어떤 가르침도, 제자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가 말했던 사상 속에 있는 재능과 진실성 등을 보고 노자를 성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석가모니는 윤회와 인과의 법을 가르쳤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예수는 사랑을 가르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자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노자는 '도(道)'를 설명했는데, 동양에서는 '도'라는 용어로서 이를 표현하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사랑'이라는 용어로서 이를 표현하고 또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축복이다. 도는 축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뜻의 근본은 똑같은데 문화의 차이에서 사랑 또는 도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노자의 가르침 중에 어떤 것이 가장 돋보이는가? 도덕경(道德經) 은 노자가 쓴 책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글을 통해서 볼 때 노자는 한 가지 분명하게 밝힌 것이 있다.

'소인(小人)은 도를 들으면 성을 내던가 비웃게 되고, 중인(中人)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고, 대인(大人)은 도를 들으면 기뻐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비밀이다. 일반 사람이 알 수 없는 그런 정확한 말을 했다는 것은 그 세계를 그가 보았다는 것이다.

성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이며, 그의 삶 속에 성인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동양에서 상당히 숭배받던 인물이다. 그런데 왜 공자를 성인이 아니라고 하는가? 사실 공자의 가르침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학문과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하나의 학자였다고 표현하면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공자의 가르침의 뿌리는 이상(理想) 속에 있기 때문에 그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크게 성행한 곳에는 백성의 생활이 핍박하고 탐관오리가 득세를 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유교가 이상적으로 통치를 한 예는 없다. 공자와 그의 말은 숭배를 했지만, 그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을 만드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의 풍신수길(豊臣秀吉)은 학자가 아니었지만 그는 권력을 갖게 되자 좋은 제도를 만들어서 일본을 오늘날과 같이 크게 발전시킨 토대를 만들었다. 풍신수길이 권력을 잡은 후, 그가 한 일들은 일본 사회를 부흥하게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의 삶에 빛이 되었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는 빛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어둠이다. 공자는 성인의 근본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성인의 대열에 설 수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있는 일을 통해서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한다.

유교의 가르침을 이상적이라고 한 것은, 형제는 서로 우애를 나누어야 되고 부모는 섬겨야 되며 임금에게는 충성해야 된다는 유교의 가르침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모든 사람이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길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의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설명도 없는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만들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작물을 키우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방법에 의해서 어떻게 하면 그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뜻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공자나 유교는 세상 일을 있게 하고 있는, 근본과 바탕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유교가 번성하고 있는 곳에서는 정치가 어둡고 탐관오리가 득세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것을 만들라고 하는데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거짓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 곳에는 거짓이 크니까 결국은 탐관오리만이 득세하는 어두운 세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일은 일본과 한국의 비유이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사람들을 미개한 섬사람들이라고 말을 해 왔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말은 무지한 자들의 어리석은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개한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도 훨씬 더 현실에 밝은 눈을 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짓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성인들은 이러한 현실에 있는 일을 밝혀서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무지한 중생들은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고 받아들이기가 힘든다. 그래서 성인의 곁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만,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숭유억불(崇儒抑佛)을 했기 때문에 조선조 5백 년 동안의 역사가 어두웠다는 평가가 최근에 거론되고 있다. 만약 고려의 불교중심의 정책이 그대로 이어졌더라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다.

이성계가 불교를 배척하지 않고, 유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나라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겠느냐 하는 것은 고려의 불교가 어떤 가르침을 일반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상 축복이 될 만한 가르침은 부처의 말속에 있고 또 일반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선근(善根)이 아주 커야 한다.

불교 지도자 중에 깨달은 자가 있어서 진리 속에 있는 뜻을 밝히고 가르쳐서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해서 국가 권력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그 사회는 당연히 부흥하고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이 없는 불교는 유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세웠을 때, 이성계는 기존에 있던 왕조를 무력으로 쓰러뜨렸으니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 당시 신돈(辛頓)이라는 승려가 고려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감안하여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배하는 정책을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한 인물이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그가 공포(公布)하고 시행한 일들에 대해서 잘한 것인가 잘하지 못한 것인가 하는 것을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평가해야 된다.

만일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받아들인 그 결과 국가가 부강하고 백성이 잘 살게 되었다면 그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를 우리 앞에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을 좋게 평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불교도 부처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 아니다. 변질된 진리는 독(毒)과 같은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그 진실성이 계속 유지되지 않고 사람의 손에 의해서 변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변질된 진리이다.

5+5=10 인데 그것을 조금 다르게 6+5=10이라고 하면 그것은 틀린 대답이다. 그러니까 그 기본을 건드려 바꾸었다면 답은 이미 틀리게 되어 있다.

부처의 가르침도 변질된 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으로 되어버린 셈이다.

다시 말해서 고려시대의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해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허상(虛像), 즉 사람들을 우매하게 하는 무지한 자들에 의해 변질된 가르침으로 기도나 하고 제사나 지내는, 가르침이 없는 유교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가르침이 있어야 되고 그 가르침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야 된다. 가르침도 없었고, 그 가르침이 지켜지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그 속에 있는 일을 잘했다, 잘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사회에는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지 못했고, 또한 뛰어난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어두운 시기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항상 강조하다시피 있는 일 속에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길이 있다.

있는 일을 잘 살피고 그 있는 일 속에서 배우라. 그러면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앞선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