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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부

 

사람들은 세상 일들이 어떤 특정한 힘을 가진 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어떤 정치가나 한 독재자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어렵잖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음으로 해서 그 사회는 거기에 따르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는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의 일을 너무도 모른 채 자기 자신의 생각만을 사람들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인과의 법이란, 세상의 일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는가 하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 내용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인과의 법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또 스스로 자기를 무지 속에서 구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인과의 법이란 어떤 것인가?

인과의 법이란, 어떤 일과 어떤 것이 만남으로 해서 거기에서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납과 구리를 섞었더니 다른 하나의 성질을 가진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졌다든지, 백금과 구리를 섞었더니 거기에서는 또다른 하나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두고 우리는 인과의 법을 설명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땅에 어떤 씨앗을 심었더니 어떤 결과가 거기에서 나왔다던가, 좋은 열매가 열렸다던가, 나쁜 열매가 열렸다던가 하는 것이 바로 인과의 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과의 법이란 세상의 모든 일을 있게 하는, 바로 진리 속에 있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에게 진리 속에 있던 일을 두고 인과의 법이라고 말하면, 실제로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진리 속에 있던 일을 두고 인과의 법이라고 앵무새처럼 외워서 말한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인과의 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보도록 하자.

백금과 구리를 섞어서 어떤 새로운 성질을 가진 금속을 만들어 냈다 할 때, 백금과 구리를 섞어서 만든 그 금속에는 온갖 여러 가지 성질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배합 비율에 의해서 그 성질이 달라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구리 60%와 백금 40%를 섞었을 때 나오는 새로운 금속의 성질과, 백금 60%와 구리 40%를 섞어서 나온 금속의 성질은 다르다. 즉 배합 비율에 따라 금속의 성질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과의 법은 진리 속에서 어떻게 보아야 되는가? 진리에서는 3×3은 9이다. 진리에서는 5+5는 10이다. 그런데 항상 3×3이나 5+5만 있는 것이 아니고, 4×5도 있고, 6+2도 있다. 그러니까 인과의 법은 수학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부족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진리 속에 있는 문제를 다 해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말할 수가 있다.

우리가 인과의 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존재하게 하는가 하는, 하나의 이치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이치는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수학의 공식과 같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면 수학의 공식이란 어떤 것인가? 1+1은 2이고, 10+10은 20이다. 즉 어떤 문제가 있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따른 결과는 달라진다. 이런 일을 두고 말할 때, 이런 것을 있게 하는 그것을 이치라고 한다.

세상의 이치는 이러한 공식에 의해서 이런 일을 존재하게 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이치 속에 끝없는 일들이 존재하고, 그 끝없는 일들이 하나의 이치에 의해서 나타나고 풀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석가부처가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을 알려야 했던가?

그것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앎으로 해서 그들이 무지에서 깨어나 그릇된 곳에 빠지지 않고, 그릇된 일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위험이나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인간세계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르침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들어 있지 않고 이런 일들이 사람들 속에 널리 밝혀지거나 가르쳐지거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일을 두고 항상 논쟁과 투쟁,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쟁까지 해야 했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가 있는 일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이 시대에서 인간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영(靈)의 접촉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영의 접촉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걱정을 했더니 그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빠르게 번지고, 무서운 전염병보다도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의 접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영을 경계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를 영 앞에 노출시키고 있다. 영과 접촉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에게 영이 접촉을 하게 되면 자기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사람이 자기 상실을 하게 되면 하나의 사물을 보고 말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이상한 말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영의 접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기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영의 접촉에 대해 무방비 상태일 때 그 기운은 인간의 몸이나 의식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를 들어서 쉽게 말한다면, 1970년 이후에 세계에서 유독 한국에만 기(氣)와 단(丹)과 철학관이 우후죽순처럼 갑자기 많이 생겼다. 그 이전에는 한국에 그런 것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런데 1970년 이후에 한국에는 기를 한다, 단을 한다, 점을 친다, 사주를 보고 철학을 한다는 등의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위험한 것은 철학이다. 철학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사주를 보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풀어준다고 하는 사람을 말한다.

무당에게 붙은 영들은 나쁜 것들이 별로 없다. 무당은 신(神)이 내려서 길흉화복을 점치는데 비해서, 이 사주철학하는 자들은 나쁜 영들을 모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집어 넣는 일을 할 수도 있다.

그 다음에 무서운 것이 기(氣)수련이다. 기 운동을 하는 곳은 귀신에게 그대로 자신의 몸을 내주고 의식을 내주는 곳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에 오래 다니면서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면 사람의 의식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게 된다.

그 다음이 단(丹)으로서, 수련을 하면서 영들과 얼마든지 많은 접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이 붙어 있는가 않은가를 확인해 보면 될 것이다. 사실상 영이 붙어 있다 해도 영이 붙은 것을 쉽게 알아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영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매우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대상은 기와 단을 하는 사람, 사주철학을 한다고 간판을 걸어 놓은 사람들이다.

영과 접촉한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병(病)과는 다른 무서운 현상이 있게 된다. 영의 접촉은 몸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몸보다도 더 중요한 의식을 망쳐놓는다. 그러니까 사람의 영혼을 망쳐버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지도 못하고 있다.

 

쉬운 예를 들어서, 과연 사주(四柱)가 자기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을 해보자. 1998년 4월 17일 좋은 날, 이 날에 돌감을 하나 땅에 심었다고 하자. 이 날짜에 돌감을 심었다 해서 그 돌감이 근본이 좋지 않은 열매인데도 거기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겠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땅(바탕)이 좋고 씨앗(근본)이 좋아야 거기에서 좋은 열매(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있는 일이다.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진리이다. 바로 이런 일을 진리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을 낳고 나서 철학관에서 5만원, 10만원을 주고 이름을 짓기도 하는데, '고구마'를 '수박 고구마'라고 부른다고 해서 '고구마'가 저절로 '수박 고구마'로 변하지는 않는다.

이름이 달라지고 좋아지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근본과 바탕이 좋아야 좋은 열매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땅'에 '좋은 씨앗'을 심고 잘 가꾸었을 때만이 '좋은 고구마'가 나오고 '좋은 수박'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들이 인과의 법을 알게 되면 이러한 무지 속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귀신 붙은 사주철학하는 자가 지어준 이름을 쓴다고 하면 그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삶 속에 있는 일이 바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만드는 길이다. 좋은 일을 찾아서 좋은 일을 하게 되면 이름도 중요하지 않고 사주도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잘되게 되어 있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

좋지 않은 일을 만나서 나쁜 사람을 사귀면 항상 나쁜 일과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일이다.

우리는 있는 일을 알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일을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리석고 이상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상한 일에 휘말리면 자기를 잃고 삶의 가장 큰 축복을 스스로 저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절대로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고 어리석지 않고는 있는 일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 시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영의 접촉이라고 했다. 영혼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각각 질이 다르다. 산 사람이 천태 만상의 성질을 가지고 있듯이, 영혼은 그 사람의 결정체이니까 천태 만상의 성질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의식과 접촉하게 되면 그 영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된다. 이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이중인격(二重人格), 즉 두 가지의 의식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때는 사람이 좋아 보이고, 또 어떤 때는 사악해 보이는,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위험하고 불행한 것은 사회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을 산 사람 속에 집어 넣어, 죽은 자들의 일을 하는 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도 나쁜 환경 속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려운데, 제 정신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겠는가? 그래서 이 사회에는 마찰과 불안과 온갖 불행한 일들이 그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인과의 법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무지를 일깨우고, 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며, 세상의 있는 일을 알리기 위해 일생을 일반 사람들을 위해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아무 것도 나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있는 일을 말했다는 것이다. 왜 그는 일생을 돌아다니면서 그토록 말을 많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는데 자신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그것은 자기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니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부처의 가르침이 인간의 세계에 얼마나 큰 사랑과 빛이 되는가 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 인과의 법을 통해서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은 이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고 사라지고 또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 법칙을 통해서 보면 바로 세상 자체가 창조주이다.

세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 자체에서,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현상 속에서 계속 활동이 일어나고 그 활동으로 인해서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게 된다. 물질이 생기게 되고 생명체가 거기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에 이것이 부정된다면 이 지구는 곧 사라지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이 지구는 우리 앞에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절대로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 속에 존재하고 그 법칙은 우리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움직이고 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에 의해서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왜 어려워져야 했는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회와 사람들은 이러한 인과의 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무지와 그 무지로 인해 존재하는 잘못된 일들이 득세함으로 해서 우리 사회에는 오늘과 같은 어려움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저마다 자기 속에 있는 근본이 결정한다.

이 근본은 사람마다 자기 속에 있었던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 결정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마다 각각 가지고 태어나며 자기 의식 속에 있던 것을 근본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의식 속에 있는 것은 어디에서 얻는 것인가? 현실의 생활에서 얻게 된다. 현실의 생활에서 얻는다는 것은 환경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우리의 바탕이라고 말한다. 사회가 좋으면 좋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을 하기가 좋고, 사회가 나쁠 때는 나쁜 의식을 가진 자들이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있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바로 해답이다. 있는 일에 의해서 있는 것을 존재하게 하고, 있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끝없이 있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있는 것은 바탕이고, 있는 일은 근본이며, 존재하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이들은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이 존재하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결과를 우리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고 경험하게 되는 온갖 일들의 모든 것들이 인과의 법 속에 있던 일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과의 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를 이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물론 이 오묘한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너무도 놀라운 현상들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 지구 자체의 활동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 자체의 활동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활동이 로케트를 만들고 달을 정복했다는 것이다.

창조주가 로케트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달에 착륙을 한 것이다. 바로 세상의 활동에 의해서 우리 자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결론은 바로 이 하나의 진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살아서 좋은 사람은 죽어서도 좋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무가 좋은 활동을 많이 했을 때는 그 열매 자체에도 좋은 것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은 그 한 번의 열매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진다. 그 좋은 열매에서는 다시 좋은 활동이 일어날 수 있고, 다시 좋은 열매를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사람이 한 번의 삶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인과의 법을 이해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끝없는 자신의 삶 속에서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