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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윤 부

 

·천부경(天符經)

1990년 무렵, 나는 대학을 졸업한 상태에서 특별한 직업도 없이 무척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평소에 새로운 것이나 이상한 것들을 보면 호기심이 나서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었다.

어느 날, 시내(市內)에 나갔다가 못보던 광고지를 보게 되었다. 그 포스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올바로 해독하지 못한 <천부경>을 드디어 해독하다. 천부경 해설 특강...."

그 당시는 시내에 나가면 이와 유사한 종류의 내용이 적힌 포스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80년대 초반부터 시중(市中)에 나오기 시작한 이런 종류들, 서적에서부터 신변잡기와 특이한 체험과 기행(奇行)을 소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때까지만 해도 용어조차 생소한 낯선 것들이 사회에 많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러한 내용의 책들을 보거나 포스터를 찾아다니며 "뭐 별다른 내용이 없나?"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들은 그 내용들이 진부(陳腐)하고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나의 관심을 오래 끌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날 본 포스터의 내용은 그때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이어서 충분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포스터에 나와 있는 장소로 찾아갔다. 강연시간이 되자 강사가 나왔다. 강사 선생의 모습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 당시 나는, 명상(冥想)이나 어떤 경전(經典)류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연상하면 나이가 지긋하고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처음에는 평상복 차림의 모습에서 별로 의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날의 강연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천부경은 북한에 있는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글을 탁본(拓本)하여 전해지게 되었는데, 민족주의(民族主義) 사관(史觀)을 가진 재야학자(在野學者)들에 의해 그 판본(板本)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그 뜻이 너무 심오(深奧)하여 함부로 해석할 수 없었으며, 과거 역사 속에 뛰어난 많은 학자들도 해석하려 했으나 완전한 해석이 되지 않아 신비에 싸인 '경(經)'이다.

그런데 비로소 이 시대에 자신이 천부경을 해석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그 내용이 심오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해석한 내용을 공개하고 그 경전의 내용대로 실천을 하기 위한 일의 일환으로 이러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선생은 덧붙여 설명하면서 현대 병원 체계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한 예로, 수술 과정에서 잘못되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 후 선불을 받고 병이 치유가 되지 않아도 병원이나 의사에게 항변(抗辯)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우리의 전통 치료비 지불방법은 후불제임을 강조하고 이것을 동방의(東方醫)라고 한다고 했다.

또 사정이 어려우면 수강료를 후불로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유인즉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도 환자의 병이 차도가 없으면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이라 보아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이러한 것을 자신의 강연과 결부시켜 만약 자신에게 배웠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수업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옛날 서구의 괴변론자들이 변론법(辯論法)을 늘어놓던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변론을 잘 하는 어떤 사람에게서 한 젊은이가 변론법을 배우고도 수업료를 내지 않아 시비가 발생했는데 각자의 입장은 이러했다.

스승의 주장은 제자와의 재판에서 자신이 이기면 재판 결과에 승복하고 수업료를 제자가 지불해야 하며, 만약 자신이 지게 된다면 제자가 스승을 이길 만큼 변론을 잘 하는 자로 변했으니 그 역시 잘 가르친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제자의 주장은 자신이 재판에 이기게 되면 그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만약 지게 되면 첫 변론에서 승소판결을 받지도 못 하는 형편없는 실력이니 스승이 변론법을 잘 가르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공개 강연이 끝난 후, 나는 수강생 모집 안내 내용을 보았다. 과목은 천부경과 명상(冥想), 역학(易學), 풍수지리(風水地理), 한방의학(韓方醫學) 등 그 당시 시중에 유행하고 있는 종류들을 죄다 망라해 놓고 있었다.

나는 접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선생에게 배워서 내가 좋아진다면 수업료를 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은 돈이 없으니 후불제로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좋은 것을 배우고도 돈을 안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전에 알던 사람을 그곳에서 만났고 그 사람의 안면(顔面)으로 이야기가 잘 되었다. 아무튼 나는 행사 주최측에 이야기하고 담당자의 양해를 얻어 수업에 참가할 수 있었다.

수업은 주로 강연이었다. 시간이 나면 짬짬이 앉아서 좌법(坐法)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강연의 주된 내용은 그 선생이 저술한 책의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이었으며 강연 후 질문 시간도 주어졌다. 지금은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해 낼 수 없지만 저마다 자신들의 의문점을 질문했던 것 같다.

천부경(天符經)은 첫 머리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일(一)시(始)무(無)시(始)일(一)......' 총 81자의 한자로 되어 있는 그 글은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는 글자들의 단순한 나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도 그 81자는 쉬운 글자로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일(一)은 나를 뜻하는 것으로......"라는 선생의 설명을 한참 듣게 되자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씩 그때를 회상(回想)해 볼 때면 나도 무척 어리석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의 나로서는 선생의 해석을 듣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선생은 아무도 정확히 밝힐 수 없었던 천부경에 대한 해설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질문 시간에 깨달음에 대해 물어 보았다.

"요즘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깨달았다고 외치고 있는데, 선생님도 지금까지 아무도 바르게 해석할 수 없었던 천부경을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이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태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자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밝힐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어떤 것을 스스로 최초로 알게 되었을 때 깨달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질문하였다.

"에디슨이 발견하고 발명한 것 중에는 최초인 것이 많은데, 그와 같은 사람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장님이 우연히 문고리를 잡은 것과 같다."

"에디슨은 1,000개도 넘는 많은 것을 발명하였는데, 장님이 문고리 잡는 식으로 우연히 그렇게 많은 것을 발명할 수 있습니까?"

"에디슨이 발명한 것은 물질문명의 발전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그는 자아의 발견이나 깨달음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에디슨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 관해 최초로 무엇을 발견하고 발명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깨달음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습니까?"

"너는 장님에게 색깔을 설명하여 구분할 수 있게 하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깨달았고 너는 깨닫지 못했으니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해봐야 너는 이해할 수 없다."

"선생님이 깨달았다고 하니까......"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고 다음 질문? 없으면 오늘은 마치겠습니다."

나는 그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선생은 깨달았다 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막무가내 부정할 수도 없었고, 또 무조건 그 말을 수용할 수도 없어 시간을 두고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 날, 나는 다시 질문하였다.

"굳이 불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업장소멸(業障消滅)·업보(業報)·업(業)이 많아서 등 이런 표현을 하는데, 도대체 업(業)이란 무엇입니까?"

선생이 말했다.

"네 수준에 맞게 대답해 주겠다. 한마디로 직업도 업(業)이다. 업장소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업을 버려라. 너를 묶어놓고 있는 것을 과감히 벗어 버려라. 그러면 일단 시작을 한 것이다."

"저는 현재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만, 결혼을 해서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 직업을 버리면 어떻게 생활을 합니까?"

"나를 보아라. 나는 직업이 없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매이지 않고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얼마나 자유스러우냐?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면 먹고사는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선생님, 누구나 선생님처럼 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너는 언제까지 길들여진 채로 살아갈 거냐? 우리에 갇혀 사람이 주는 먹이로 연명(延命)하는 가축들을 보라. 너도 그렇게 살고 싶으냐? 야생(野生)으로 돌아가라! 하물며 짐승도 자연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구속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고 사는데......"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 나는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유일한 수입원인 과외학원 강사생활도 그만 두어야 하나? 계속 다녀야 하나?'

나는 선생의 답변을 듣고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한 내 속은 선생의 대답으로 더욱 암흑(暗黑)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렇지만 학원 강사생활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떤 때는 선생이 말한 대로 내 처지가 학원 원장이 주는 먹이를 먹고 원장이 관리하는 학생들을 양처럼 몰고 가는, 한 마리의 양치기 개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의 말대로면 모든 월급쟁이나 국가와 어떤 단체에 고용된 사람들은 보다 넓은 울타리 안에 있을 뿐이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자문(自問)하여 보았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나 사회에서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선생의 말대로 보면 그들은 국가와 직장에서 잘 훈련받은 대로 지키고 관리할 뿐이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지부경(地符經)

그로부터 얼마 후,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날, 선생은 모두에게 하나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조상이 있어 천부경과 같은 좋은 내용을 글로 남겨 후세(後世) 사람들이 알게 하였는데, 이 시대의 우리들도 각자 자신이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을 글로 남겨 전해 준다면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선생은 그의 제안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모두들 찬성하였다.

시간이 지나 약속한 날이 되었다. 저마다 천부경의 내용을 흉내 내어 글들을 지어왔다. 선생도 글을 한 편 지어왔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돌려가며 읽고 각각 그 뜻하는 바를 글 쓴 자에게 설명하게 해서 들었다. 모두가 심사위원인 셈이었다. 결국은 선생이 지어온, 한자로 된 글이 채택되었다.

그 글의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선생이 설명하기를, 천부경은 9×9=81이고 9의 숫자로 되어 있고 9는 여성을 뜻하는 것으로, 천부경은 아마도 여자가 지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생은 남성을 뜻하는 6의 숫자로 글을 지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고 했다.

선생은 6×6=36으로 36자의 한자로 자신이 지어온 글의 내용을 우리에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 글의 이름을 천부경과 대비하여 '지부경(地符經)'이라 하였다. 또 천(天)·지(地)·인(人) 이야기를 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一)인데 이것을 둘로 나누면 음(陰)과 양(陽)으로 나눌 수 있고, 셋으로 나누면 천·지·인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천부경, 지부경에 이어 곧 인부경(人符經)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우리에게 설명하였다.

몇 주가 지난 뒤, 우리는 어떤 새로운 문제에 봉착(逢着)하게 되었다. 그것은 의논이라기보다 선생의 제안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새로 지은 지부경을 그대로 썩힐 것인가? 아니면 처음 시도한 대로 글을 천부경처럼 바위에 새길 것인가? 새긴다면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새길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서로 의논을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였다.

많은 토론을 하고 나서 결론이 나게 되었다. 먼저 지부경을 새겨 공원화하고 지부경 공원과 천부경 공원을 조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지부경 공원 사업이 착수되었다. 천부경이 묘향산 석벽(石壁)에 새겨져 있는 것이니, 백두산에서 묘향산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염두에 두고 이와 어울릴 만한 곳에 위치를 선정하자고 했다. 지도를 펴놓고 한라산에서 지리산까지의 거리를 재 보니, 그 거리와 같았다. 그래서 위치는 지리산으로 결정되었다. 방향도 서로 마주하는 것 같아 좋다고 하였다.

수강생 중에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함양에 있는 해발 600M가 넘는 산촌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여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개인소유 돌산의 임야를 2,000평 가까이 사게 되었다고 했다. 면적이 넓다고 볼 수 있지만 오지(奧地)의 돌산이라 한 평에 껌 한 통 값도 안 나가는 땅이 허다했다.

위치는 이렇게 선정되었고 글자는 나무에 새겨 바위에 홈을 파서 부착(付着)시키기로 했다. 정삼각형으로 나무를 깎아 글자를 한 자씩 새기고 36개의 나무 조각을 합치면 다시 또 하나의 커다란 삼각형이 되도록 그 전체의 모양을 정했다. 사용한 나무는 함양 산골에 사는 그 사람이, 마을에 있던 호두나무인지 은행나무인지를, 제공하였다. 나무가 비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절단 후 오줌에 절여 담가놓는 등, 큰 의식행사를 하듯이 거창하게 일을 벌였다.

때문에 함양 산골에서는 낯모를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고 그 마을에 사는 가족, 정확히 말하면 선생의 동생 내외의 입장이 가장 난처했다. 그 내외는 마을 사람들이 형의 이상한 친구들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물어 올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나중에 얘기했다.

그 돌산에서 최고 큰 바위를 골라, 36개의 목각 틀을 앉혀 놓을 홈파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일에는 나보다 너더댓 살이 더 많은 형뻘 되는 두 사람이 자원을 하였다. 조용한 산골, 국립공원 지리산 안에 요란하게 비계가 설치되고 바위를 굴착하는 드릴 소리가 시끄럽게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립공원 내에는 설사 사유지(私有地)라 하더라도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해 인접 시·군청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국립공원 감시요원으로 임명하여 공원의 산림을 무단으로 벌목(伐木)하거나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를 적발하고 이를 신고하도록 해 놓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공사를 하던 사람이 함양군청으로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고 작업에 공백이 생기자 그 와중에도 좋은 일을 서로 하겠다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반목(反目)하게 되어 사이가 좋지 않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는 선생의 글이 채택되어 '지부경'이라 이름 지어지고 거기에다 큰 의미를 부여할 때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지리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선생의 동생 내외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그 강연을 들으러 갈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그 선생에게 배워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알았던 다른 몇 사람들에게 나의 의견을 말했다.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 선생과도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는 간절하게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야, 밑천이 아깝다. 이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선생 말대로 언제까지나 노예처럼 매여 살 수는 없지 않느냐?"하기도 하고, "우리도 직업을 버리고 신변을 정리하고 자유롭게 살자. 하지만 나는 선생과 같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선생에 관해 떠도는 좋지 않은 소문을 듣고 선생과 결별을 선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허탈감을 맛보아야 했다. 처음 깨달음에 관해 질문하였을 때, 그 선생은 자신에게 배우면 곧 자신처럼 큰 깨달음도 얻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는 선생이 약속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깨달음이라는 큰 열매는 커녕 꽃도 피지 않고 잎이 자라지도 않고 싹도 나지 않아 혹시 씨앗이 썩지 않았는지 땅을 한 번 파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곳에서 알았던 사람들에게서 그곳의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항상 나를 실망시키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나는 또 좋지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하며 또다시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한동안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얼마 후 어리석은 짓들을 중단하고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 한창 적응을 할 즈음에, 나는 잘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그 '지부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 분의 말은 자신이 잘 아는 승려가 이야기하기를, 진주에 어떤 노인이 개인 절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뜻을 가지고 고아원을 경영하던 중에 기연(奇緣)이 있어 책을 한 권 얻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책의 이름이 '지부경'이었다.

노인은 그 탁월(卓越)한 내용과 해설이 너무 놀랍고 이제 '천부경'의 시대는 가고 '지부경'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하는데, 그곳에 가서 좋은 사람도 만나보고 책 내용에 대해 확인을 해 달라고 한다고 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승려와 동행하여 그 분과 같이 진주에 있는 그 노인이 관리하는 고아원 절을 방문하게 되었다.

노인은 승려가 아니었지만 자신이 절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지 머리를 삭발하고 승려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노인은 나와 동행했던 승려가 무척 난처해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선물이라고 하면서 승려에게 '지부경'책을 억지로 권했다.

그 책의 표지에는, 웅장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 위에 굵은 글씨로 '옛부터 지리산에 비전(秘傳)되어 오던 '지부경'을 드디어 이 시대에 해석하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지부경이라!' 나는 만감(萬感)이 교차(較差)하였다. 지부경의 내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책의 내용이 거짓임을 알고 있는데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지부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또다시 세상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천부경'·'지부경'이야말로 이 시대에 자신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자신들을 깨닫게 해주는 비법(秘法)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사실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주어도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잘 알고 이야기하는 쪽을 남을 모함(謀陷)하고, 음해(陰害)하고, 자신들을 실망시키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한다.

진주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그 노인의 애착과 무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노인은 고아를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고아를 핑계 삼아 노동력이 없는 그가 국가에서 많은 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한국에는 비밀(秘密)이 너무 많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출처 불명의 비서(秘書)에서부터 각종 비방(秘方)과 비법(秘法), 비책(秘策), 비(秘)......, 밀(密) 등등. 어떻게 해서 한국에는 '비(秘)' 라는 글자가 붙은 것들이 이렇게도 많은지! 근거도 확실치 않고 그 내용도 검증(檢證)되지 않은 것들에게 비(秘) 자(字)를 붙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면에서 보면 서구 선진국들은 한국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이다. 그곳 사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 공개적이고, 좋은 것이 있으면 검증하여 그 내용을 모두가 알게 한다. 먼저 수고한 자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특허권(特許權)을 보장해주거나, 그 명예를 역사에 빛나게 해주고, 그 가치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고 있다고 본다.

또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것을 무턱대고 함부로 믿는 일은 서구 선진사회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런 일들이 그들을 보다 잘 살게 했던 원동력(原動力)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