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연의 가르침 > 6호 > 알고 싶어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질문 :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라는 자식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로서 어떻게 대해야 좋은지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답변 : 자식이 작은 잘못을 했을 때는 크게 꾸짖고 큰 잘못을 했을 때는 꾸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엄하게 꾸짖고 큰 실수를 했을 때는 덮어두십시오. 큰 잘못을 했을 때, 자식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변명하고자 고민을 했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서 이미 반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큰 실수를 했을 때는 "눈뜬 사람도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어린 네가 실수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느냐. 네가 비록 이번에 실수를 했지만 다음부터는 매사에 조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얘기하면 자식은 그런 일을 영원히 잊지 않고 명심해서 앞으로는 실수하지 않는 훌륭한 자기의 삶을 부모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잘못을 했을 때는 엄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잘못한 일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작은 실수를 했을 때는 '이런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하고 알 수 있도록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큰 잘못이 있을 때는 작게 꾸짖고 작은 잘못이 있을 때는 크게 꾸짖으라는 것입니다.

작은 잘못을 했을 때는 크게 꾸짖어서 더 큰 잘못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큰 잘못을 했을 때는 전혀 꾸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당당한 네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네가 잘못해서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상처 입은 마음을 안심시켜 주어야 합니다.

만약 큰 잘못을 했을 때 크게 꾸짖으면 오히려 크게 병이 되거나 기(氣)가 꺾여서 낙오자나 그릇된 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울 때는 정으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선생의 입장에서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선생의 입장으로 자식을 가르쳤을 때 그 부모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정으로 감싸서 키우고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주는 온실 역할을 하면서 부모 품속에서 키운다면, 자식을 혼자 세상에 내보냈을 때 그는 학벌이나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남에게 거짓을 말하고 인색하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자식을 망치는 결과를 만들기가 쉽습니다.

 

질문 :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낸 통신문을 보았더니 자식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지혜를 가르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식은 무엇을 말하며 지혜는 무엇입니까?

답변 :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은 지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육기관을 통해서 책에서 배운 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또 일상생활의 용어나 상식을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우리 앞에 보이는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적인 것을 두고 지혜라고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는 매우 유사한 말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지혜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진실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책이나 교육기관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실에 부딪쳐 보면 많은 난관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판단과 능력은 어떠한 문제라도 능히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생활에 활용되는 기술적인 정확한 지식은 그 일에 대한 지혜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지식들은 오히려 자기를 망치고 세상을 그르치는 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지혜의 문을 여는 창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을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이 행해질 수 있다면 사람들은 하나의 사실교육을 통해서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교육을 보면 사실에 대한 교육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있는 일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지혜가 가르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혜는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가르침과 지혜는 사실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있는 일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질문 :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답변 : 거짓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말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의 작용에 의해 죽은 자가 산 자를 속이는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사실과 비교해 보면 맞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은 사람들이 세상과 자신 속에 존재하는 문제의 진실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는 거짓이 진실을 앞서고 있습니다.

 

질문 : 깨달은 자와 일반 사람들의 시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변 : 깨달은 자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있는 일을 봅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고 봅니다.

깨달은 자는 어떤 일을 보려고 할 때, 있는 것을 가지고 추적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고 추적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결과를 서로 말하게 되면 깨달은 자의 말과 일반 사람의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됩니다.

하나의 같은 사물을 보고도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있는 것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질문 : 왜 일반 사람들에게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답변 : 삶 때문입니다. 삶은 여러분 자신을 존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의식의 눈을 떠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뜬다는 말은 있는 것을 바로 보고, 있는 일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보고, 그 문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결과를 만드는가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되면 살기가 편해집니다. 단순해진 자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온갖 생각을 떠올릴 때와 생각이 없이 살 때와의 차이입니다. 생각이 없으니까 실수를 적게 하고, 실수를 안 하니까 남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상상은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온갖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기가 단순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열심히 들어서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열심히 듣고 보고 알려고 노력하다 보면 있는 일에 눈을 뜬다고 말했습니다.

있는 일이나 자기가 한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수할 것을 뻔히 알게 되니까 실수를 안 하게 됩니다. 있는 일을 아니까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업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있는 일을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있는 일을 보고, 그 있는 일에 맞추어서 쉽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큰 사람은 업의 작용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에 맞는 활동을 합니다.

삶은 자신을 이어가는 길이며, 깨달음이란 자신의 좋은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질문 : 자기 속에 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답변 :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기가 태어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만일 누가 그 자신을 옥황상제라고 한다면 옥황상제의 근본바탕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자신은 항상 자기 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열렸다면 그 열매의 근본은 나무에 있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갖고 있는 모든 기능과 성질은 나무에 열린 그 열매 속에 그대로 축적됩니다. 사람의 경우 이와 같은 것을 영체(靈體)라고 말합니다.

그 열매를 심으면 다시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나무의 근본은 씨앗입니다.

씨앗의 근본은 그 나무이고, 나무의 근본은 씨앗에서 온 것입니다. 그 나무가 가지고 있던 성질과 기능이 씨앗에 담겨져 있으므로 그 씨앗은 나무에 있던 것과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싹이 나면서 그 씨앗 속에 있던 그대로의 동일한 기능과 성질을 가진 나무가 성장하게 됩니다. 물론 성장하는 동안 바탕과 환경의 영향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는 그러한 자신을 열매 속에 담게 됩니다.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콩을 한 개 좋은 땅에 심었는데, 그 땅에서 콩 싹이 나고 그 싹이 자라서 그와 같은 콩을 열게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콩의 근본이 서로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서 자신을 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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