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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편집인  卞 魯 燮

 

한 해가 저문다. 단기4331년ㆍ불기 2542년ㆍ서기1998년ㆍ범띠 해가 지나간다. 사실상 시간은 영원한 것이다. 과거·현재·미래는 인간이 편의상 설정한 개념일 뿐이다.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시간은 순간적으로 과거가 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는 항상 과거만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는 시점은 언제나 현존한다. 그런 점에서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 미래 또한 그런 점에서 영원하다.

다만 인간이 작위적으로 시간을 갈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놓고 한 해가 간다고 하여 온갖 상념에 젖는다.

올해도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국가적으로는 대통령이 바뀌고 제 8공화국이 출범했다. 일러 국민정부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른바 IMF 경제환난 속의 국민정부시대는 첫출발하는 발걸음부터 난조일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경기침체와 외환위기로 파탄지경에 직면한 나라들이 속출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도 생겼다.

거기에다 기상이변도 혹심했다. 엘리뇨와 라니냐 현상이 뒤섞여 지구촌이 열파·한파·홍수·한발의 불연속선에 휘말려 참담한 상황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도처에서 발생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단순한 생태계 파괴의 정도를 넘어서서 지구의 종말을 운운할 정도가 되었다. 불경·성경을 비롯하여 별의별 예언자들의 예언·추측이 난무하여 민심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에 편승하여 온갖 종교가 독버섯처럼 일어나 인간세상을 가일층 혼란케 하고 있다. 기존 종교 및 종파 간의 대립·항쟁·암투도 만만찮다.

남의 이야기는 제쳐두더라도 우리 나라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의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각목을 휘두르는 육탄전이 전개되는 아수라 싸움판을 보고 있노라면 말세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민중소요가 끊이지 않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회교와 기독교가 맞서 방화·살인사태까지 빚으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 대립양상이 두드러지게 된 원인을 누군가가 '신(神)의 장난'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인간들의 자기중심적인 지나친 이기주의가 빚어내는 현상의 당연한 결과라고 풀이된다.

IMF 구제금융의 경제위기 속에서 보낸 지난 1년 동안, 국내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북한 주민들이 기아선상을 헤매고 있다고 남의 일처럼 예사로 이야기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의 형편도 전혀 안심할 수만은 없는 지경이다.

결식(缺食)학생이 적잖다고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운동'으로 매스컴이 떠들고 있지만 점심 한 끼니 못 먹는 일에만 그친다면 무슨 큰 걱정이 되겠는가. 어떤 이유에서건 실직자는 늘어만 가고 줄곧 배고픈 사람들이 많아지면 인심은 흉흉해지고 국가사회의 질서와 안정이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태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해야 할 국가적 차원의 실질적인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금강산관광 실현으로 남북의 장벽에 숨통이 뚫렸다는 것은 축하해야 할 큰 발전이다. 하지만 北쪽은 미사일, 핵무기, 간첩과 잠수함 침투 등의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고 있으니 긴장이 해소되었다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항상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일들은 있는 일의 활동에 의해서 있게 되고 그 있게 되는 뜻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있게 하므로, 우리는 항상 있는 일을 통해서 있는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에게 당면한 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을 제쳐둔 채 생각과 이상에만 몰두하다 보면, 아무리 살펴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대응책도 허사로 끝난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먼저 문제를 정확히 보고 문제 속에 있는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현실을 진단하고 문제를 찾아내어 그 해답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일은 사실상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정치가와 학자가 수없이 지도자로 나섰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 속에 그대로 남겨져 있고, 이제 어떠한 처방이 우리를 이 위기에서 구해줄 것인가 조차 알 수 없는 낭패감만이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옛말에,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아무리 사회현실이 어려워도 세상의 주인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상, 우리를 누군가 구해줄 것이라고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인가? 바로 자기 자신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종교도 과학도 문화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격변(大激變)이 예상되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개인이든 국가사회이든 장님 코끼리 더듬는, 암중모색(暗中摸索)만 계속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는 있는 일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과감히 진실 앞에 자신을 내던지는, 진정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