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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부

 

세상의 근원은,

있는 것들과 있는 일의 활동에 의해서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게 하고 있고, 이 현상계의 활동에 의해서 변화기(變化期)라는 일을 존재하게 한다.

이 변화기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이동을 말한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인간의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많은 예언자나 종교계통에서 세상의 종말이라고 말해 왔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은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모든 현상계가 파괴됨으로써 없어진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이 시대의 주체인 인간들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해결할 것인가?

생명체의 이동이 있어야 된다. 생명체의 이동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인류에게 오늘날 우리의 현상계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인계하는 일을 말한다.

인간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깨달음이 이런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매우 불행한 일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이런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사람들이 이런 일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있지도 못한다면 인류는 그 길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류라는 것은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사회가 존재한다는 의미로서 말하는 것이다. 만일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인류가 아니다. 세상의 주체가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 세상을 말할 때 우리는 인류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영적 삶을 통해서 가능할 수가 있다. 이 영적 삶이란, 영혼의 실체를 살아있게 함으로 해서 영혼이 변화기 이후의 세계로 이동하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이동이 가능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대기가 있다. 대기 속에는 하나의 기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기층(氣層)'이라고 한다.

기층을 다른 말로 '중력대(重力帶)'라고도 한다. 기층에는 중력이 존재한다. 달의 표면에는 기층이 엷기 때문에 중력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사람이 조금만 힘을 써도 크게 움직여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은 기층 밖으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영적 삶이 수십 년이나 수백 년 동안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누구든지 과거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가벼운 물질은 올라가고 무거운 물질은 내려온다."

인간의 영체(靈體)는 기체와 의식으로 분리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 인간은 자신의 삶 속의 모든 것을 의식활동을 통해서 기체 속에 잠재시켜 놓는다. 그러면 그 기체에서는 계속적으로 의식이 발생된다. 예를 든다면 컴퓨터 칩과 같은 것이다.

컴퓨터 칩은 자신 속에 들어온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내보내고 자신 속에 한 번 받아들인 것은 그 물질 자체가 파괴되지 않는 한 그것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인간의 영혼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일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우리 몸에는 의식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의식체를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이것은 X-Ray나 현미경을 가지고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의식체는 보고, 듣고, 그것을 저장하고,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내보낸다.

그리고 의식체에는 자기에게 있었던 일이나 자기와 관계되는 일들이 전부 입력된다. 입력되는 과정에서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기운이 입력되고,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기운이 입력된다. 나쁜 기운이 입력되는 것을 '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일에 무지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자기가 한 일, 자기 속에 있었던 일, 자기와 관계되는 일이 입력되는가 안 되는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과학 문명을 이용하여 컴퓨터나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식물을 통해서도 이런 과정의 일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간호부터 지난 호까지 게재된 내용을 보면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자기 구원이 가능하다"는 말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구원이라고 한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아보자.

자기 구원을 하려면 오로지 있는 일을 제대로 알고, 그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 그제야 자기가 당당할 수 있고, 당당한 일을 할 때만이 그 부딪침 속에서 불이 생기게 되고 이 불로 인해서 영체 속에 있는 업을 태워버리면 바로 영생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영체는 기층을 벗어나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영적 수명은 길게는 500년에서 1000년을 갈 수가 있다.

지구가 변화기에 들어서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일어나는 기간은 30년 정도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엄청난 파장(波長)이 일어나더라도 그 파장 속에서는 기운이 생성되므로 대기권 이상으로 파장이 올라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기권 밖으로 나가 있는 것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대기권 밖으로 벗어난 영체는 100년이나 200년 후에 다시 생명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적 이동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가 있다.

변화기는 누구도 막아서도 안 되고, 또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바로 변화기는 늙어 버린 모든 기운들이 죽어 버리고 새로운 기운이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의 근원은 있는 것들의 활동과 있는 일이 결합되어서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기에는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는데 그 파장은 지각변동, 해일현상, 화산활동 등이다. 화산활동도 작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것이 일어난다.

그래서 물과 불, 그리고 부딪침에 의해 생기는 파장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기운이 생성되고 정화된다. 이러한 수십 년간의 활동에 의해서 정화된 기운은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된다. 그 속에 있는 순수한 기운은 생명체와 결합됨으로 해서 생명의 세계로 부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로부터 태어났느냐 하는 의문에 대해서 무지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자연계의 활동 속에서 나게 되었다.

종교에서는 창조주를 내세우고 있다. 사람들의 무지는 그렇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일을 창조주가 다 해낼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일을 설명해야 되고 사람들은 이런 일을 알려고 해야 하는가.

세상은 있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모든 일을 존재해 오도록 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해 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있는 일을 관찰하면 누구나 이런 일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흥미로운 일은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면 돌산 같은 것이 나오는데 이런 것의 연대를 추정하면 6000년이나 7000년 이전의 것이라고 연구학자들이 말한다. 다시 말하면 6000년이나 7000년 이전에도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또한 그보다 7000년 이전에도 문명은 존재했고 인류도 존재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앞으로 변화기가 지나고 난 다음의 인류에게도 문명은 존재한다. 5∼6000년 이후에도 이것은 맞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복되는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 많은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은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세상에서 처음 듣게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기 속에 있는 일을 밝히고 변화기 속에 들어있는 이 시대의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의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 해답이란 오늘의 인류가 생존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포기하기를 원하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또 현재의 삶을 통해서 영적 이동을 시도할 것인가, 내세의 끝없는 생명의 길을 자기 속에 만들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외면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만일 이러한 일에 실패한다면 이 인류의 생존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다거나 어떤 신을 섬긴다거나 하는 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변화기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신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인가? 진리 속에 있는 일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인가? 일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것인가?

일이라는 것은 어디서도 만들 수 있고, 있는 일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확인할 수 있다. 있는 일과 있는 것들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영생에 관한 문제도 현대 과학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충분한 이해가 가능한 물증들이 얼마든지 있다.

또한 여기서 설명하는 변화기에 대해서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해 과학자들을 통해서 시스템이나 이론을 이용하여, 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또 있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알아내거나 있는 것을 결합해서 새로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화기의 생명체의 이동에 앞서서 반드시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이 인류에서 새로운 인류로 생명체가 이동하는 데에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 문명과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의식 속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있는 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떤 일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도 쉽게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현대 문명만으로는 오늘의 인류가 새로운 인류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의 물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알아야 한다. 어떤 물질도 물건으로 만들어 놓고 나면 거기에서 각각 다른 성질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있는 일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명이나 그 생명체가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생선을 얼음 위에 놓으면 체온이 내려가면서 수면상태에 들어가고 모든 활동이 정지해 버린다. 그러면 죽은 것과 똑같다. 그런 상태에서는 숨도 쉬지 않고 먹이도 필요 없다. 그래서 싱싱한 생선을 상처 없이 먼 곳으로 운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생선을 얼음에 채우거나 냉동시설에서 체온을 낮추어 생선의 기관이 활동을 정지하도록 한다.

그렇게 하여 죽은 것과 같은 상태로 목적지까지 운반한 후 다시 따뜻하게 하면 체내 온도의 상승과 함께 얼어붙었던 기관들이 펴지게 되고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면 이 생명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러한 데서 착안하여 현대 과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냉동인간이다.

외국의 경우, 부호(富豪)들이 현대 의학으로는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하니까 죽기 직전에 자기 육체를 냉동상태로 동결시켰다가, 훗날에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진보된 의학이 출현하면 다시 살아나겠다고 하여 인간의 육체를 냉동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 냉동된 인간의 육체는, 생선과 유사한 방법을 적용하면 절대 살아날 수가 없다. 생선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동결되어도 생명의 기운은 몸 자체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생선은 몸이 동결상태에서 풀리면 그 기운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여 모든 기관을 움직이게 하므로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인간은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의식체는 매우 예민한 것이다.

의식은 인간의 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몸이 활동을 할 때는 몸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몸이 정지된 상태에서는 작은 틈만 있어도 빠져 나와 버린다.

밀폐된 공간을 만들고 몸을 넣는 관을 만들어 냉동을 했다가 나중에 되살릴 때 몸과 의식이 동시에 깨어나야 되는데, 몸과 의식이 각각 따로 깨어나면 몸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몸을 빠져 나와 버리면 그 몸은 되살릴 수가 없다. 몸은 의식체가 없이는 절대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의식체는 몸으로 들어오지 않고 증발해서 다른 곳으로 가 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냉동인간은 절대 되살아날 수가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변화기는 향후 18년에서 20년 사이에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2년이 짧아질 수도 있고 2년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 동안에 우주선을 이용하여 몇 사람의 과학자가 달에 기지를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30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 자체, 즉 인간의 의식을 잠재우는 기술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그러한 기술은 세계에서 개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 존재하는 동물의 정자, 식물의 열매 등을 보관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일도 현대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변화기 이후로 존재시키면 그때 태어나는 사람들은 고도로 지능이 순수하고, 또 그 기운 자체가 순수하기 때문에 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그가 현세에서 과학분야에서 일을 했다면 변화기 이후에 아무 데도 배울 곳이 없어도 그는 자기 속에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알아낸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실제적으로 이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현상계에서 얼마든지 보고 확인할 수가 있다.

하나의 열매의 씨앗을 땅에 심어서 싹이 올라왔을 때, 그 싹에 접을 붙이거나 바탕이나 환경에 영향을 끼쳐서 그 싹이 다른 것과 인연을 맺고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식물에서는 지금까지 얻을 수 없었던 아주 좋은 열매를 얻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열매에서 나온 씨앗을 다시 심었더니 앞에서 얻어진 열매와 똑같은, 좋은 열매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열매는 의식체이고 영체이며, 영체가 분해되어서 생명의 세계로 이동을 해서 다시 생명으로 부활했을 때 우리가 식물의 열매에서 본 것과 같은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법칙에 의해서 그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있는 일의 결정에 의해서 좋은 일이 나타날 수도 있고, 나쁜 일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대할 때 있는 것과 있는 일을 살펴보아야 된다. 그것이 바로 현상계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생명체의 이동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체의 이동을 하려면 있는 것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 사랑이 자기 자신이 쌓아 놓은 업을 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른다. 사랑이 무엇인가? 무엇을 보고 사랑이라 하는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해서, 가진 사람들이 항상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면 그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사회는 망해 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고 깨우쳐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통해서 축복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남을 축복한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10만 원을 준다면 그 돈은 며칠 지나면 없어진다. 그러면 그 사람을 평생 먹여 살려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잘 깨우쳐서 있는 일을 하도록 가르쳐 놓으면 그 사람은 그 일을 통해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약간의 돈을 내는 것은 작은 공덕이고, 사람을 깨우쳐서 잘살게 하는 일은 큰 공덕인 것이다.

어떻게 깨우칠 것인가? 있는 일을 가지고 사람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런 과정에 대해서 들을 수도 없었고 배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종교에 의지하거나 귀신 들린 자들에게 가서 배우려고 애를 썼다. 그 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농사 짓는 법을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앉아서 그 자들이 말하는 방법대로 해서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절대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있는 일을 자신이 배우고 알아서 그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있는 일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서 있는 일을 말해 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을 하고 듣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라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말한다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 싫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두 개의 톱니바퀴가 있는데 서로 톱니가 맞지 않으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와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면 싫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가장 먼저, 있는 일을 알아야만 자기의 속도 태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했더니 가슴이 좀 뜨거운 일이 있을 때 자기도 속이 탔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속의 업을 태울 정도의 열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치고 퉁겨져 나오는 일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고 그래야만 업이 탈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있는 일을 알아서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하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 주지 않고, 의식이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이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좋은 것을 따르고,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있는 일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것이다.

유리겔라가 어떻게 하니까 숟가락이 구부러졌다는 것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숟가락을 구부린다고 해서 인간이 잘사는 길이 열리는가? 영혼이 구원을 받는가? 세상이 좋아지는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의 귀신장난에 불과하다.

유리겔라에게, 당신에게 이런 일이 언제부터 일어났는가 하고 질문하자 언젠가 자기 속에 빛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 빛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영체를 말한다. 이 영체란 쉽게 말해서 귀신이다. 어떤 영체가 자기 속에 들어와서 그런 이상한 일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영체가 접근을 하고 붙어서 가르치는 곳에서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탁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있으면 귀신이 탁 들어와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하는데, 그 귀신이 세상의 일을 잘 안다면 왜 윤회가 되지 않고 사람의 몸에 붙으려 하겠는가?

귀신이 사람의 몸에 붙으려 하는 이유나 윤회가 안 되는 이유는 그 귀신이 아는 것이 없고 그 무지가 짊어진 애착 때문에 인간에게 다가와서 인간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눈으로 직접 보지도 않은 십 리 밖의 일을 훤히 꿰뚫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신의 장난이며 귀신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그 자는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있는 일을 보고 있는 일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되는 것이 깨달음이다. 있는 일을 모르면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현실, 즉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철학, 종교, 과학 등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질문하면 틀리지 않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깨달았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떤 소금을 먹으면 질병이 낫는다고 하거나 묘 자리를 어디에 쓰면 복을 받는다고 하거나 금강경을 몇천 번 읽으면 깨닫는다고 하는 등의 현실에 맞지 않는 말들을 한다. 금강경을 천 번이 아니라 삼천 번을 읽었다 해서 깨닫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깨달음으로 해서 있는 일을 통해 자기의 의식을 깨우치고 자기 영혼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다. 즉 영체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힘으로 변화기에 생명체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있는 일을 외면하고, 말을 듣고 말만 배워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 순간 이런 의문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목적은 있는 일의 실체를 알아서 자신 속에 재앙이 없는 삶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고, 또 깨달음을 통해서 행복과 평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이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것들의 진실을 알면 우리가 하는 일은 그만큼 쉬워지고, 또 그만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배우려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현실의 모든 것들이 가르침이다.

 

시집 <나그네> 에 이런 시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저마다 대하고 보니

만나고 헤어짐도 가르침이 있도다.

만물은 은혜를 지니고 있고

기쁨은 나에게 있으니

축복이란,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도다.

 

세상의 모든 것. 나쁜 것을 보아도 그 속에 있는 일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가르침이다.

나쁜 사람을 만났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나쁜 사람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 보고 나서야, '아하! 잘못하면 나쁜 사람을 만나서 이런 봉변을 당하는구나!'하고 알게 된다. 그것이 모두 가르침이다.

있는 일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일을 보아도 이해가 안 될 때는 깨달은 자에게 찾아가서 물어보아야 한다.

깨달은 자에게 물으면 "이런 일은 이렇게 해서 있게 되니 당신이 본 것은 이러한 현상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 속에는 이런 일이 있어서 당신과 어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외면했고, 그래서 그 일로 인해서 당신을 이런 것을 잃어버렸고 이런 것을 새로 얻게 되었다"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다.

깨달은 자에게서 배워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깨달은 자를 통해서 있는 일을 배우면 있는 일을 빨리 알게 되어서 자신도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반이라는 것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한 자기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생명은 의식과 물질과 기체의 결합체라고 했다. 기체 속에는 의식이 있다. 생명은 삶을 통해서 영체를 남긴다. 그리고 육신은 썩어버리고 영체만 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체를 볼 수 없다.

이 영체를 분해하면 의식과 기체로 되어 있다. 물질에 기운이 붙어서 그 기운이 물질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 자체가 떨어지니까 기체만 남고, 이 기체 속에는 의식이 잠재해서 다시 살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체의 삶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영체에서 의식이 없어지면 그것은 하나의 근본이고 근원의 세계이다. 의식이 없어지면 한 세대가 끝나는 것이다.

다음은 태어남의 세계이다. 의식이 죽으면 다시 부활하는데 이 세계를 죽음과 태어남의 세계라고 한다. 의식이 죽지 않으면 절대로 부활할 수 없다.

티벳의 림포체가 다시 환생을 했다는 것은 부활이 아니고, 태어나는 어린아이에게 죽은 림포체의 살아 있는 의식체가 붙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전통이 태어나는 아이들의 생명에 나쁜 영향을 미쳐 왔다.

실제적으로 의식체가 사라지지 않으면 부활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체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 부활이 있고 나면,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전혀 모르게 되어 있다.

사람의 전생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귀신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세계에서 이동한 의식체, 우리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의식체가 하나의 공간을 벗어나 중력대를 벗어난 곳에서 머물게 되면 이것은 새로운 인류로 이동이 가능하다.

변화기는 6,000년이나 7,000년만에 주기적으로 세상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원의 고갈과 오염에 의해서 세상 자체는 자멸해 버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기형적인 것, 즉 악(惡)만 나게 된다. 좋은 것, 즉 선(善)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땅은 쓸모 없이 되어 버리고, 물 자체도 소멸되어 버리고, 그 다음에 공기 자체도 없어져 버리며, 그리고 세상의 기층 자체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지구 자체도 달과 같은 세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변화기가 주기적으로 존재하게 함으로써 세상에 끝없이 인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기를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기는 과거의 세상에도 있었고, 미래의 세상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과연 자기의 앞날에 얼마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어느 정도 느끼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일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깨닫게 되면 끝없이 밝은 미래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 가서도 끝없이 밝은 앞날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번 자기 속에 쌓이게 된 일은 의식체가 사라져도 그 기운에 의해서 그대로 태어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쌓이는 일이 반복된다.

거기에서 성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하나의 기준이 설정이 되기 때문에 한 번의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그 깨달음이 두고두고 자기를 밝은 곳으로 인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태우고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이 끝없는 내세를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이 어디에 있는가? 있는 일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자신이 있는 일을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랑도 양심도 정의도 자신 속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헛된 삶을 포기하고 있는 일을 하나라도 배워서 그 일을 통해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행복한 삶을 마련하고, 더 나아가서 인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먼저 있는 일을 제대로 배워 그 일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모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세상에서 큰 복을 얻는 일이다.

내가 있는 일을 모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항상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고, 내가 있는 일을 알고 제대로 하게 되면 항상 내가 한 만큼의 대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진리란 있는 일을 두고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진리는 절대적으로 불변한 것이다.

한 사람이 손뼉을 쳤는데 큰 소리가 나고, 다른 한 사람이 손뼉을 쳤는데 작은 소리가 났다고 하면 이는 그곳에 있는 일을 살펴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씨앗을 땅에 심었는데 어떤 집 밭에서는 많은 수확이 났고, 다른 어떤 집 밭에서는 그만큼의 수확이 나지 않았다면 그 과정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은 모든 희망이 있는 곳이다. 세상에는 어떤 길이라도 있다.

영생, 해탈, 깨달음, 부자가 되는 길, 대통령이 되는 길 등 전부 다 있다. 세상에는 이러한 길이 있기 때문에 깨닫고 살면 밝은 세상이고 못 깨닫고 살면 어두운 세상이며, 있는 일을 알면 복을 받게 되고 있는 일을 모르면 그 일이 자기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람들의 의식을 이끌고 그 의식을 현실세계에 눈뜨게 하기 위해서 있는 일을 계속 설명하다 보면, 말이 장황할 수도 있고 또 사람들이 원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있는 일에 집중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맞는 자세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