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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질문 : 자연의 가르침 5호에 게재된 '머나먼 여행'의 내용 중에서 인도인 교수와 테레사 수녀에 대한 대화를 하는 부분은 독자로서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답변 : 좋고 나쁜 일이란 있는 일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결과입니다.

어떤 농사꾼이 열심히 농사를 잘 지었다면 거기에서는 좋은 결과 즉 좋은 열매를 얻어야 합니다. 만일 농사꾼이 농사일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좋은 수확을 얻지 못했다면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정심을 일으키는 일들을 사랑이라고 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정심을 기대해서 기형아나 장애인들을 침대에 눕혀 놓고 부양을 했다면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진정으로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라면, 사회가 내버린 불구자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목욕시키고 치료하고 먹여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녀가 심성이 착해서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어떤 집을 지어서 그 시설물 속에 불구자들을 데려다가 눕혀 놓고, 그들을 사람들이 와서 보게 해서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돈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을 한 것입니다.

인도의 물가(物價)는 한국의 물가에 비교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인도의 노동자의 임금은 한국의 돈으로 환산해서 하루 2,500원 정도로써 한국의 노동자, 미장공의 조수임금 5만원에 비하면 2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인도에 있는 외국계 종교단체에서는 그 지역에 기반을 내리기 위해서 학교를 세워서 인도인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생의 인건비가 얼마 되지 않아서 얼마든지 무료로 가르쳐도 별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활동을 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위험한 일이라고 할까요? 있는 일을 차근차근 확인을 해 봅시다.

마더 테레사는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서 불구자를 돕자는 명목으로 방문객으로부터 받아들이는 돈만도 하루 수천 달러가 넘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기부금과 세계 각처에 그들의 사무실이 3백여 곳이나 있다고 했는데 그곳으로부터 들어오는 돈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 돈들은 줄잡아 년간 수백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불구자 30명과 수녀 30명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먹고 생활하고 시설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몇만 달러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너무나 엄청난 장사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고 '빈자(貧者)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한 것은 무지한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장난 같은 일일뿐인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한 일로 인해서 자기를 망치게 되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의 법칙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토록 부족한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만약 그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수녀가 되지 않으면 거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한 일이 그 사람의 속에 있으니까 그가 다시 태어나도 수녀가 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거지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속에 있는 일입니다.

자기의 능력이 닿는 대로 직접 동정을 베풀거나 인정을 베푸는 일은 옳은 일이지만 남의 힘을 빌려서 사회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회를 부흥시키고 인간 사회를 밝히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힘으로 별로 가치도 없는 일을 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실질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상과 생각을 세상 사람들에게 판 사람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세상에 빛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런 곳에 기부금을 많이 냈다 한들 그 역시 결코 훌륭한 사람이 아니며, 될 수도 없습니다.

훌륭한 일은 훌륭한 결과 속에 있는 것이며, 훌륭한 결과 속에 훌륭한 자기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자 해도 실패할 것입니다.

 

질문 :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나쁜 것입니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나쁩니까?

답변 : 내가 거짓말을 말했을 때 남이 나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속임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거짓을 믿고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남에게 시간적 손실이나 물질적 손실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서 첫째, 거짓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한 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거짓말을 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자주 하게 되면 그것이 의식 속에 길들여져서 쉽게 거짓말을 하게 되니까 자기를 나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짓은 인간 사회에 가장 무서운 폐해를 주는 원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있는 일에 대해서 진실을 아는 자가 없고, 있는 일을 제대로 배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곡물 생산능력이 소비의 25%도 안 되기 때문에 곡물수입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면 100명중에 75명이 굶어 죽어야 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고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국가 부도사태가 나면 일체의 수입이 중지되고 자급자족에 의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장 식량이 없는 75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 굶어 죽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어떻게든지 사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빼앗고 죽이는 약탈과 폭동, 그리고 사회붕괴 사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면상 나타난 외채는 1,500억 달러지만 실제로는 그 두 배가 넘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 있는 일을 제대로 알면 오히려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러한 사회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바로 '거짓' 때문입니다. 거짓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우리 사회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교육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졸업장은 줄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인재는 양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지금 어려운 일에 봉착해 있고 또한 이 어려운 일들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질문 : 인간의 의식이 영혼인 상태에서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가 있습니까?

답변 : 영(靈)의 세계에서는 근본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 속에는 전생(前生)의 근본이 붙어 있는데 그 근본에 의해서 우리가 현세(現世)에 몸을 얻고 정신을 갖게 됩니다.

과거에 내 속에 있었던 근본 즉 모든 행위의 결과는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 정신의 근원이 된다는 말입니다.

즉 성질과 성격과 성품의 근원이 됩니다. 또 의식의 근원이므로 나의 판단과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의식이 현상과 부딪치면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그 마음은 행동을 유발시켜서 내가 유발한 행동은 마음을 통하여 의식에 돌아와서 새로운 자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자기의 의식이 움직이면, 마음이 일어나기 전에 그 마음을 일으키고 표출하게 하는 것으로써 뇌를 통해서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합니다.

이 의식 속에 있는 근본은 말초 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하고 뇌는 그것을 기관에 지시를 합니다. 즉 말과 행동을 유발하게 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있었던 말과 행동을 뇌를 통해서 다시 자기 의식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뇌를 통해서 말초 신경을 통해 다시 역순환 하기 때문입니다. 내 보내고 다시 받아들이는 이런 역할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식물에게는 동화작용이라고 말하며 인간에게는 의식활동이라고 말합니다.

한이라는 것은 죽은 영혼을 말하며 다시 말해서 귀신이라고 하는데, 이 귀신은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을 내보낼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자기의 근본을 만들어 주는 기관을 상실해 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씨앗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활동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근본에게 영향을 전달하는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체의 상태에서는 절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영체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오히려 자기가 갖고 있는 좋은 근본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육체가 죽었는데도 의식이 죽지 않고 그대로 짐을 지고 있게 되면 계속해서 힘을 소비하게 됩니다.

의식의 힘의 근원은 진기입니다. 이 진기를 소모하게 되면 나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진기가 너무 나약해지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힘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씨앗을 보관했는데 잘못되어서 씨앗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바탕이 없는 곳에서 발아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발아상태가 되어 싹이 나버리면, 나중에 이 씨앗을 땅에 심었을 때 싹이 나지 않고 금방 죽어버립니다.

마늘이라면 마늘의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늘로서의 생명은 끝났지만 그 마늘의 기운은 다른 식물이 되어 세상에 날 수 있습니다. 그 기운이 어떤 식물의 먹이가 되어 그 식물에 포함되어서 새로운 운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결정체인 영혼도 이와 꼭 같습니다. 한이라는 짐을 진 상태에서 한의 일을 계속하는 것은 씨앗이 씨앗상태에서 생명활동을 계속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식의 근원마저 상실하게 되면 그 기운은 중력 속에서 헤매고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동물이나 식물로 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나 신이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일은 없으며 세상의 생명을 관리하는 일도 없습니다. 생명은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에 의해서 존재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