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연의 가르침 > 8호 > 알고 싶어요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질문 :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거짓을 버려라 고 했는데 거짓의 정의를 내려 주십시오.

답변 :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1+1=3 입니다.

틀립니까?, 맞습니까? 틀리다면 이것이 거짓말입니다.

부처님에게 기도를 하면 모든 액운이 물러가고 불행에서 벗어나고 집안이 화목해진다.

맞는 말입니까?, 틀리는 말입니까? 틀리다면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천국에 간다. 근심걱정 없이 잘살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

맞는 말입니까?, 틀리는 말입니까? 맞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그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맞지 않는 말이 거짓말입니다.

왜 거짓을 버리라고 하겠습니까?

자기도 잘 모르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 되기 쉽습니다. 있는 일을 모르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은 틀리기 쉽고 그러면 거짓말이 되기 쉬우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분명히 아는 것만 말해야 합니다.

내가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면 항상 내 마음이 떳떳하고 밝습니다. 마음이 밝으니까 있는 일이 잘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조건 중에서 첫째가 거짓을 버리는 일입니다.

사실과 다른 틀린 말을 하지 말아라, 남으로부터 듣고 책에서 본 것을 가지고 아는 것처럼 머리에 쌓아놓고 다니지 말아라 는 것입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머리에 담고 다니면서 남에게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하기 때문에 있는 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을 버려라 고 하는 것입니다.

 

질문 : 착하고 뛰어난 사람이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일찍 죽고, 별 필요도 없고 악한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답변 : 애착이 많고 악한 사람은 그 애착과 한 때문에 몸에 병이 있어도 생명이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은 잘 죽지 않습니다. 살아서 못된 짓을 하거나 헛된 짓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애착이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실한 사람들은 애착이 크지 않습니다. 순수한 사람들은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애착을 많이 갖지 않고 열심히 살다가 잠을 자는 중에 그냥 숨이 끊어지는 수도 있고 병이 들면 빨리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애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착이 크면 클수록 오래 살게 됩니다. 애착이 몸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쉽게 죽지 않는 것입니다.

 

질문 : 사람의 근본과 바탕은 무엇입니까?

답변 :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나타내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근본과 바탕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근본은 의식이고 바탕은 정신입니다. 근본을 만들어 주는 가르침이 바탕입니다.

정신의 바탕은 가르침이며 이 가르침은 새로운 의식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질문 : 정치의 근본과 바탕은 무엇입니까? 경제의 근본과 바탕은 무엇입니까?

답변 : 정치의 목적은 사회의 공정성(公正性) 유지에 있습니다.

제도와 법률을 만들어서 사회의 공정성을 지키는데 정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바로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와 공정성은 사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바탕은 근본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서, 사회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좋은 가르침이 좋은 정치의 바탕이 됩니다.

경제의 근본은 이윤추구입니다.

경제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입니다.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바탕입니다.

바탕에서 근본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좋은 바탕에서 좋은 근본을 만들어 냅니다. 좋은 땅과 좋은 환경은 작물에게 좋은 활동을 하게 합니다.

 

질문 : 업을 벗어나려고 하면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깨달음이 업을 억누른다는 것입니까?, 업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입니까?

답변 : 자기가 있는 일을 알게 되면 자기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일을 기준으로 해서 항상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있는 일을 바로 아는 것을 말하는 데, 깨닫게 되면 있는 일에 의해서 판단하고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의 업의 활동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그 사람은 점점 더 당당해지고 용기가 생기게 되어 그런 일들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 대중(大衆) 앞에 나서게 됩니다.

이렇게 대중들을 대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로 인해 자기의 가슴을 태워주는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자기가 깨달으면, 있는 일에 대해서 눈을 조금이라도 뜨는 것으로서 업이 억제되는 것이고, 사랑·공덕으로 남을 깨우치는 일을 함으로써 업을 태워 없애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질문 : 인간의 영체는 어떤 것입니까? 영체는 어떻게 존재합니까?

답변 : 하나의 기운(에너지)에 의식(意識)이 붙어있는 것을 영체(靈體)라 하고 또는 신(神)이라고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의 영체도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의식이 형성되지 않으면 영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영체는 인간의 것만 존재합니다.

영체는 하나의 기운에 의식이 붙어있는 것으로서 에너지 자체가 살아서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의식의 눈으로 투시하면 영체가 사람의 모습으로 비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체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콩은 작물이 활동을 하면서 자라는 과정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면 보고, 느끼고, 활동하면서 영체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한번 만들어진 영체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작물에서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게 되면 그 열매는 사라져 버리고 작물이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살면서 영체를 만들게 되고 죽으면 그 영체를 통해서 다시 태어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영체도 의식이 사라져 버리면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체는 의식의 활동이 있음으로써 만들어지게 됩니다. 영체는 생명활동이 근원이 되고, 생명은 기운이 근원이 되는데, 이 기운은 대부분 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세상 자체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의 역학에 의해서 세상은 모든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질문 : 사람이 태어나면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까?

답변 : 과거의 의식을 가지고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나면 그 씨앗은 사라지듯이 인간의 의식이 과거를 가진 상태에서는 생명으로 부활이 되지 않습니다. 의식을 가지고는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어린아이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어려운 수학문제를 마음대로 풀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그 어린아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 속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이 남의 몸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입을 빌려서 자기가 아는 지식을 나타내고 또 자기가 어디에 살았던 누구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전생의 과거를 아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특히 종교계통이나 사주쟁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과거에 축생이었는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귀신이 장난을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세계로 가야 되고 산 자는 산 자의 세계에 살아야 됩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가 그리우면 태어나야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애착이나 한을 버리고 자기의 영체 속에 있던 의식이 사라져버리게 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나면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은 종교계통이나 사주쟁이들의 사기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속고 살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 배우면 됩니다. 자연 속에 나타나고 있는 일들은 수학의 공식처럼 이치를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질문 :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입니까?

답변 :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착한 일을 해야 된다 고하는 말들을 할 때는 먼저 착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고 사는 것은 착한 일입니다.

또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도 착한 일입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훔치지 않는 것도 착한 일입니다.

근면·검소·정직하게 사는 것은 착한 일입니다.

막연하게 '착하게 살아라.' 하고 말만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한 길인가? 하는 문제를 가르쳐 주어서 '착하게 사는 길은 이런 것인데 이것을 이해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서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서 진정으로 인간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고 착하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착하게 사는 길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착하게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업의 조종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종교계통이나 사주쟁이들은 날마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착한 사람처럼 꾸미고 좋은 사람처럼 말을 합니다.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다해서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늑대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다 해서 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늑대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살아라. 같은 말입니다.

거짓말 안하고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항상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자기의 생애동안 착한 것을 배우고 착하게 살고 나면 그로 인해서 삶 속에서나 죽은 이후라도 신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위선이 승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죽은 이후에라도 거짓과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선행을 통해서 큰 업이 없는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길들이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착하게 살아라.'고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착한 일인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착한 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라.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을 해치지 말아라. 이것이 착하게 사는 길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공부 잘해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라 는 말은 착한 사람이 되라 는 것이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라 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당부를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근본이 하나의 깨달음 속에 있습니다. 사람이 깨달으면 착해지고,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착해지고 싶어도 착해질 수가 없습니다.

 

질문 : 사람들은 보통 순한 사람을 착하다고 말합니다. 순응을 잘하면 착한 사람입니까?

답변 : 세상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착한 일을 한 사람만이 착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좋은 일인가? 좋은 결과가 있는 곳에 좋은 일도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는 수해가 났을 때 '수재민을 돕자'고 해서 언론기관이 총동원되어 의연금을 모금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 곳에 돈을 기부했다 해서 수재민을 돕고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낸 돈이 수재민 손에 실제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는 수재민을 도운 것이 아니라 수재민을 돕자고 하는 신문사나 방송국에 비용을 약간 낸 것입니다. 이것은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순박한 사람이나 행동이 나약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순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다 고 말하는데, 남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순하다. 착하다 고 말하면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바보입니다. 바보와 순수함을 구분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양심이 있고 용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사람은 옳고 그름이 확실한 행동을 하고 잘못을 지적하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양심도 없고 정의감도 없고 용기도 없다면 순수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있는 일을 잘 봐야 합니다.

착하다거나 좋다는 것은 항상 결과에서 봐야 합니다.

 

질문 : 불의를 참지 않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옳은 행동입니까?

답변 : 그것은 사회정의 차원에서 보면 옳은 일입니다.

상황을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정의적인 측면에서 보면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한 사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열 명의 도둑이 있는 곳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내가 도둑을 고발하거나 죽이려 한다면 그 열 명의 도둑은 당장 나를 해치려 할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사실을 말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판단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불리하기만 하다면 성급하게 나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환경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불가항력으로 입을 다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 때문에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과 있는 일에 대한 정의를 밝히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러한 환경을 핑계로 삼아 세상의 잘못을 묵인하고 외면하는 것은 어두운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밝은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있는 일을 제대로 배워서 옳고 그름을 규정해 놓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세상을 만들어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