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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박 수 태

 

누구를 만난다는 기약도 없이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감만을 마음속에 안고 하늘을 나는 기계에 몸을 의지했다.

지상에서 높이 10,000m의 상공을 시속 900km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구름사이사이로 보여지는 광활한 지구의 표면을 바라본다.

캔버스에 유화를 두껍게 그린 것처럼 굴곡으로 나타나는 산맥과 계곡사이로 틈새에 끼어있는 듯한 마을들이 수없이 지나간다. 어디서부터였던가 3시간 이상을 수채화 같은 황무지만 계속되더니 끝내 구름에 시야가 가려 버린다.

13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도착한 곳은 나에게는 전혀 낯선 나라 영국의 런던.

무엇 한가지도 익숙한 것이 없는 나라. 공항 건물을 나오자마자 거리의 차들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교통신호는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거리의 양편에 늘어선 건물들이 어느 곳이나 모두 같은 모습으로 보일만큼 닮은꼴을 하고 있고, 건물 앞에 도착해서 현관을 열며 잡은 문손잡이는 처음 보는 모양을 갖고 있다.

시내 중심가나 변두리를 막론하고 사통팔달로 연결된, 인도(人道)가 꼭 갖추어진 왕복 2차선 도로에는 거대한 2층 버스에서부터 미니 카까지 하나의 차선 안에서 여유 있게 질주한다.

아마 우리는 영국과 문화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숙소와 거리, 버스와 지하철, 대학교와 사무실에서 만나는 영국의 문물은 어느 것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예상치 못했던 것들 일색이다.

거리에서 무수히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계 속의 모든 인종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는 실감을 한다. 그러나 경이롭게도 모두가 똑같은 질서 속에서 한결같이 질서를 지키며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 어깨가 스치듯 부딪혀도 'sorry', 'you're welcome'.

슈퍼마켓에서 쇼핑하다 남의 앞을 지나가면 'excuse me', 'you're welcome'.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를 조금만 벌려주어도 'thank you', 'you're welcome'.

남이 좋아하는 일하기. 남에게 피해주지 않기 캠페인을 하는 것도 아닌데 예사롭게 사회의 질서를 서로가 존중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최강국이었다.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나 비슷할까? 언젠가 누군가가, 무슨 일이든 '내 탓이오'하며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다.

어떤 일은 내 탓일 것이고 어떤 일은 네 탓일 것이다. 또 어떤 일은 나와 너의 탓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잘못되고 좋지 않은 일은 모조리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한 종업원이 사장이 사업에 실패하여 월급을 못 받게 되었는데도 내 탓이라 하고 자포자기한다면 그 사회에는 거짓과 불행만이 활개 치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책임질 일도 없으니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의 문제를 두고 모든 사람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도 없고 답도 없는 구호만을 내세워서 모든 사람을 이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현실 속에서 이상향(理想鄕)을 꿈꾸던 공자(孔子)의 이상(理想)은 아직 어떤 나라에서도 현실화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이상적인 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상향을 기대하는 것 같다.

이상 속에는 문제가 없는 답만이 이상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현실은 현실이고, 이상은 이상인 것이다. 현실의 문제를 이상에 맞추어서 그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결과를 예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현실에 문제가 있다면, 그 현실 속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고, 그 속에 답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어둡고 미래가 암담하다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상을 앞세워서 그 이상을 이루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선자이다.

왜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을 실현해야 한단 말인가?

이상을 좇을 것인가, 현실에 충실할 것인가? 거짓을 따를 것인가, 진실을 알고자 할 것인가?

자신과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진단하고 해답을 찾아서 보다 나은 삶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 자신의 선택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