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연의 가르침 > 8호 > 對談


 

 

 

 

자연과학연구학회장  이 삼 한

VS

박 수 태, 허 민, 배 윤 빈

 

 

'운명'이라고 하면 흔히 역술인(易術人-점쟁이나 사주쟁이)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역술인에게 운명 상담을 많이 하고, 역술인들은 그들의 말을 신령(神靈)이나 비서(秘書) 그리고 통계자료를 앞세우면서 맞다고 주장하는데?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원인은 있는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사주팔자(四柱八字)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지을 때 어떤 작물을 적기에 파종해야 하는 것은 맞는 일이지만 인간사회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일생을 사는 동안에 사주팔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해오고 있는 무슨 비서(秘書)나 토정비결(土亭秘訣), 사주(四柱)나 궁합(宮合) 그리고 성명철학(姓名哲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어떤 통계에 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산에 올라가서 백일 동안 기도를 했더니 이런 것을 신으로부터 받았다거나 영감(靈感)에 의해서 쓴 것인데 전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귀신에 씌인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져서 지금까지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운명을 알려주거나 운명을 바꾸어 주는 길이라고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사주나 관상(觀相), 토정비결이나 성명철학 같은 것은 일종의 오락(娛樂)과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모든 생명체나 물질은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사라지게 된다.

어떤 금속을 사주가 좋은 날, 몇 년·몇 월·몇 일·몇 시에 만들어 낸다 해서 특별히 좋은 금속이 나오지 않는다. 사주가 좋다고 해서 그 물건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일은 없다. 같은 공정으로 다른 날 만들어진 것과 같은 성질의 금속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금속을 용광로에서 다른 금속과 합금을 하게 되면 다른 금속이 만들어지고 그 금속에서는 다른 성질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진리이며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약속이다.

진리라는 것은 있는 일이 갖고 있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점쟁이나 사주쟁이, 관상쟁이나 성명철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현실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운명 때문에 사주쟁이나 성명 철학쟁이 집에 갈 필요가 없다. 자기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고 바꾸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비서나 관상학, 사주 명리학이나 성명학이라고 하는 책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든다면, 이승만씨가 대통령을 할 때는 李承晩. 이름 석자가 그렇게 좋다고 칭찬을 했는데 망명을 하고 죽고 나니까 획수가 어떻게 되어 있어서 말년에 고생하고 객지에서 죽었다고 했다.

또 박정희씨가 대통령을 할 때는 朴正熙. 이름 석자가 그렇게 좋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운명이니까 혁명을 하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더니 죽고 나니까 총 맞아 죽을 운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름의 획수가 이렇고 저래서 비명 횡사했다고 제멋대로 말들을 바꿨다. 이런 것은 결코 통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은 사주쟁이나 성명 철학쟁이가 어떻게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족집게처럼 알아 맞췄는가?

사실 그 비밀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 사주쟁이나 성명 철학쟁이의 의식에 죽은 영(靈)이 붙어 있을 때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운명을 봐주거나 이름을 지어 주고 돈을 받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영이 들어와 있다. 점을 친다, 사주를 본다, 작명을 한다는 사람들의 몸 속에는 죽은 영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도 각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죽은 영체(靈體)들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사람의 기억 속에 어떤 일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영이 있다. 이 죽은 영체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붙어서 작용을 하는 것이다.

무슨 거사나 도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를 소개하는 약력(略歷)에 유명한 산에 가서 몇 년간 수도를 했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은 깊은 산에서 특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움막을 짓고 바위 밑에서 '신령님 도와주소서'하고 기원하며, 떠돌아다니는 귀신하나 붙이겠다고 보름이나 한 달 또는 백일을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일도 의식이 허약한 사람은 영이 쉽게 붙지만 어떤 사람은 백일이 지나도 영이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러 잠도 안자고 끼니도 굶는 고생을 하면서 용한 귀신을 붙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손님이 와서 사주를 내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이 읽은 사주 책에 나온 대로 아무리 맞추어 봐도 그건 사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접촉이 필요한 것이고 사주쟁이에게 붙은 귀신이 손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당신의 운명은 이렇다 하고 끼워 맞추는 것이다.

사주쟁이에게 붙은 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쌓여있는 의식을 보고 거기에 있던 일들을 말해주면 사람들은 그 사주쟁이가 사주를 잘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점을 치고 사주를 보거나 성명을 짓겠다고 돈을 5만원이나 10만원을 허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런 곳에 가면 그 곳에 있는 귀신들에게 붙잡히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일 성명 철학쟁이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당장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문난 성명 철학쟁이라면 거기에는 당연히 귀신이 붙어있는데 그곳에서 지은 이름은 죽은 영체-귀신의 지령에 의해서 지어지는 것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구태여 그런 곳에서 이름을 지으려는 자체가 문제이다. 태어난 자식의 이름은 지어야 되겠는데 생각이 나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 주위에서 별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이나 복 많으신 분에게 가서 정중하게 부탁해서 이름을 짓는다면 그런 이름은 나중에 어떤 피해도 없을 것이다.

사주나 관상이나 이름 때문에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생활 속에서 이런 잘못된 관행으로 자기를 속게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에서 우리들이 보게 되는 문제들이다.

사람의 운명은 자기 앞에 있는 일을 자신이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인연이 자기 속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은 항상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운명은 바꾸면 되는 것이다. 다만 운명을 바꾸는 일은 깨달음이 없이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인연을 가져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사귀면 좋은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같은 일을 몇 차례나 수십 차례 경험해도 그 일이 어떤 문제에 의해서 발생하고 결과가 있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일반 사람의 의식으로는 있는 일을 보아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있는 일을 보고 그 속에 있는 문제를 본다. 문제를 보면 그 속에 해답이 있게 되고, 해답을 보면 그 속에 항상 문제가 있게 된다."

원인이 결과를 만들고 결과 속에 원인이 존재한다. 바로 문제가 해답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이런 일들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영혼에 붙잡혀서 자기를 잃고 방황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슴이 물을 먹고 풀을 뜯어먹어서 녹용이 나온다고 해서 아무 짐승이라도 물 먹고 풀 먹으면 녹용이 나온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독사가 먹으면 독이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좋은 일은 절대로 하지 못한다.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좋은 결과를 만드는 일이 좋은 일이다.

 

부실한 근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근본이 부실한 사람들은 근기(根基)가 없다. 근기가 없으니 하는 일마다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거나 실패하게 된다. 사업을 하면 실패가 많고 직장에서 일을 해도 적응력이 뒤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나쁜 일은 좋아한다.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근본이 부실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근본이 튼튼한 사람은 거짓말을 잘하지 않는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보다도 근본이 부실하다고 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일본사람보다 거짓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근본 자체가 부실하기 때문에 있는 일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능력이 크게 뒤떨어진다.

부실한 근본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접신(接神)이 되어 있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 부실한 근본은 업이 커서 자기 속에 잘못된 과거로부터 따라온 습성이 크기 때문에 판단이나 행동에 항상 잘못된 영향을 끼치게 한다.

인간의 의식은 자기 속에 있는 수천, 수만 가지의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었던 일은 활동을 통해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자기가 잘살고 못사는 것은 자기의 근본 바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연이 자기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잘살기를 원한다면 잘 살수 있는 원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근본 바탕이 튼튼한 사람은 재물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재산을 크게 이루어서 잘살아 갈 수 있지만 근본 바탕이 부실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재물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활동의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밭에 자라는 보리도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열매를 만들어 낸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성장을 한다. 이 성장은 뿌리가 땅으로부터 영양소를 받아들이고, 잎이 공기를 호흡하는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활동의 법칙이다.

식물에서는 열매를 만들어 내지만 인간의 차원에서는 영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인간의 영혼은 자기 속에 있는 것에 의해 삶 속에서 받아들이면서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현재의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 그리고 끝없는 내세로 이어지게 된다.

이 시대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활동하고 삶을 사는 그대로가 자기의 끝없는 내세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명상(冥想)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명상이라는 것 자체가 건전한 사람의 가르침이 아니고 영적 접촉을 한 사람들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은 세계에서 윤회(輪廻)되지 않는 영체(靈體)가 가장 많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윤회되지 않은 영체란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용어로는 귀신(鬼神)이라고 표현하고, 일반적으로 영혼(靈魂)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윤회되지 않은 영체는 살아있는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인간을 속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명상이나 기(氣), 단(丹), 도(道)등을 내세우는 일들이 1960년대 이전에는 별로 없다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나타나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것들은 윤회되지 않은 영체가 인간을 속이기 위해 일으킨 짓들이다.

특히 종교계통에 있는 사람들이나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영적 접촉을 하고 있는데, 귀신들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써 먼저 의식이 허약한 한 사람의 몸을 빌려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식으로 따라하면 병이 낫는다거나 몸이 좋아진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게 되면 그때 귀신이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귀신은 또 그 사람을 이용해서 아무도 확인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대단한 힘을 얻는 길이라거나 우주(宇宙)의 기(氣)를 얻고 질병을 막고 영생하는 길이라고 선전한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은 호기심에 욕심이 생겨서 그곳에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또 그 사람도 중독이 되고 몸 속에 귀신하나 얻게 되고 귀신을 받은 사람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것에 자기의 의식이 빠져버리면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고 다른 의식체를 받아들이는 일을 자신도 모르고 하게 되는 것이다.

행위의 법칙에서는 자기가 한 일은 자기에게 있게 되고, 남이 한 일은 남에게 있게 된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속에 다른 의식을 받아들여서,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은 못하고, 윤회도 하지 못한 귀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대신하고 산다면 자기에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

50년 전만 해도 한국에 정신병원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정신 질환자들도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신 질환자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이 정신질환자의 99% 이상이 접신(接神)된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영체가 들어와서 사람의 의식을 바꿔놓은 것이다. 웃을 일도 아닌데 웃고 이상한 짓을 하고 남의 일에 방해를 하는 것들은 자기 의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 질환자는 자기의 몸 속에 죽은 의식체가 들어와서 살아있는 자기의 의식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각종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몸은 아픈데 병원에 가서 아무리 진단을 받아도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고, 약을 먹어도 치료가 안되면 그것은 접신이 된 것이다.

죽은 영혼의 에너지가 몸 속에 들어와서 돌아다니면 몸 속의 각종 기관에 장애를 주게 되고 아프게 되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현대의학으로는 진단이나 치료가 불가능하다.

죽은 자의 영체가 산 자의 몸 속에 한 번 들어가게 되면 남의 몸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쉽게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애착을 가지고 붙어 있다.

그런데 힘이 센 영체가 어떤 몸에 붙었는데 이미 그 몸에 다른 영체가 붙어 있을 경우 그 영체가 힘이 없으면 힘 센 영체가 겁을 줘서 쫓아내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 산 자의 몸에 죽은 자의 영체가 한 번 붙어버리면 떼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윤회하지 못하고 허공에 떠도는 영체들은 괴롭기 짝이 없다.

영체는 기체에 의식이 붙어 있는 것인데 그 자체가 기체(氣體)이기 때문에 기압(氣壓)의 영향을 받게 되고 기상변화가 심해지는 기압골이 형성되면 영체들은 괴로움 속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지구 중력대(地球 重力帶)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영체가 기압골 속에 존재하는 것은 매우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 영체들은 세상에서 가장 생기가 왕성한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면 기압의 영향을 피할 수가 있으니까 인간의 몸에 접근하기 위해 애쓰게 되는 것이다.

이 영체들 중에서도 애착이 큰 영체들은 그 애착을 풀기 위해서라도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명상이나 기, 단, 도를 한다는 귀신들은 더욱 무섭다.

사실상 귀신들도 살았을 때는 인간의 영혼이었으니까 귀신을 무조건 박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윤회가 되지 못한 영체-귀신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일을 보면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영체들은 지구 중력대의 변화에 의해서 견디기 어려우니까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인간에게 접근하여 이제 세상은 귀신 천국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는 세계가 전부 영적으로 망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동남아시아를 가보고 매우 놀란 것은 십 년 전만 해도 순수했던 나라들이 어느새 망해가고 있었다.

유럽은 그나마 조금은 나은 편이었다. 유럽에서는 종교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교회에 신도가 적어져서 공연장이나 다른 용도로 대여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각종 종교나 명상, 기 등이 일반 사람들에게 침투하려고 더욱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사회에는 무슨 수지침이라는 것도 유행을 하는데 너무 많은 경로를 통해서 영체가 사람들에게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영체가 사람에게 침투를 계속한다면 2020년경까지는 인류의 95%가 영체와 접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체와 접신한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자기 의식의 상실로 인해서 인간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이 윤회되지 않은 죽은 영체를 가장 조심해야 된다. 영체가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의식은 분별력을 상실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되고, 몸이 아프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 영체와 접촉한 사람은 좋은 일은 하지 못하게 된다. 삶을 통해서 이러한 일들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있는 일을 아는 것이다. 있는 일을 알고 속지 않는 것이 자기를 돕는 일이다.

있는 일을 모르면 속게 되고, 자기가 속으면 자기도 모르는 말을 남에게 하게되고 그래서 또 남을 속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일을 제대로 알게 되면 애착을 끊고 살게 된다.

일을 배워서 열심히 일하고 거짓말 안하고 살면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당당하게 살면 애착이나 한 같은 것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자연의 가르침이 종교가 아니냐? 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우 기분이 나쁘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종교라고 합니까?" 하고 되물어서 그 사람이 '종교'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가르쳐서 인간 세계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도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오늘날의 모든 '종교'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위선의 탈 바구니 속에서 좋은 결과도 없고 어떤 결과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는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의 가르침의 어떤 점을 그런 종교와 비교해서 말하는지 묻고 싶다.

종교는 신을 내세우고 모든 답을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없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종교의 허구성은 명백한 것이다.

 

세상에는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옳고 그름을 알기 위해서는 있는 일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옳고 그름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면 좋은 세상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있는 일에 대해서 진실을 가르치는 종교가 있는가?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구별하는 종교가 있는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가르치는 종교가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르침은 있는 일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있는 일을 배우게 해서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람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있는 일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좋은 삶의 양식이다.

내가 있는 일을 바로 알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속지 않고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올바른 삶을 받아들이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있는 일을 상세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종교들이 내세우는 책에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 황당무계한 말들이 많다.

그러므로 귀신의 말을 듣는 자는 현실에서 자기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깨달은 자의 말을 들으면 현실에서 자기가 자기를 찾게 한다. 자기를 잊게 하는 말과 자기를 찾게 하는 말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없는 답만 존재하는 곳에서는 좋은 일은 외면 당하고 나쁜 일은 신화처럼 미화되고 있다. 문제는 없는데 답만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말이며 거짓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문제 속에 모든 해답이 있다.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그 해답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한다면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를 말하고 결과를 말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누구든지 제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문제를 두고 그 문제에 맞는 말을 했기 때문에 옳다고 하는 것이고, 하나의 문제를 두고 문제도 모르면서 결과를 말하는 사람에게 그건 잘못되었다, 틀렸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만일 사람들이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확인한다면 그 사회에는 위선과 거짓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알게 되면 결국 세상의 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실수하지 않고 작은 노력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모르고 있는 일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가 자신을 돌보는 것은 앎으로 해서 속지 않고 속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하고 모르고 살아왔던 것들을 알기 위해서 깨닫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욕망 속에서 살게 되고, 깨달음이 있으면 소망 속에서 살게 된다. 이 소망과 욕망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소망은 일을 통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이고, 욕망은 자기를 잊어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애착을 소망으로 바꾸고 한을 사랑으로 바꾸면 사람들은 잘 살게 되고 남을 원망하지 않고 사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개인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자기가 잘살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잘살지 못하는 것이고, 잘 살 수 있는 일을 했을 때는 잘 살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쫓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자나 위선자에게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이러한 결과는 오늘날과 같은 위선자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있는 일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평화가 정착된 좋은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위선자와 그 위선자를 따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위선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지만 진리나 진실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이런 일은 역사 속에서 항상 되풀이되고 있는 일이다.

가장 좋은 가르침은 있는 일을 제대로 가르침으로 해서 있는 일을 밝히는 것이다.

있는 일이 밝혀졌을 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새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응어리 진 것들을 풀어버릴 수가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이런 대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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