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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부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갖게 되는 관심 중에서도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문제는 바로 운명(運命)이라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인간 사회에는 '한번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는 말이 통례로써 전해져 왔다.

그러나 운명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며, 운명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명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 있는 일들을 보고 배우면서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일은 바로 업(業)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이 업이 얼마나 큰 원인을 갖고 있는지, 업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욱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업이 바로 인간 세계에 운명(運命)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있었던 수천, 수만 개의 일들을 자신이 모르고 받아들여서 업을 만들고, 이 업은 자신을 지배하게 되는 운명을 존재하게 하고 있다.

업이 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일을 하라고 시켜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자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업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 모금의 물도 누가 마시느냐에 따라서 그 물질은 다르게 변화한다.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될 것이고, 사슴이 먹으면 녹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독사에게 물을 주면서 녹용을 만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생명체는 모두 각각의 업을 가지고 있다. 금속이나 식물 하나 하나도 그 업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자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업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있었던 일들이 자기 속에 쌓여 있다가 자기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활동을 하면서 자기에게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업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업은 애착(愛着)이다.

자기가 하는 어떤 일이라도 자기 속에 업을 만들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에 대한 애착이나 인간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자기에게 큰 업을 만드는 것이 된다.

다음으로는 한(恨)이다. 업 중에서 가장 큰 업이 한이다.

사람에게 이 애착이나 한이 크면 윤회가 되지 않는다. 심할 경우에는 인간의 길 마저 포기해야하는 심각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자기가 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업이 생기는 것인데 특히 애착이나 한으로 업을 짓게 되면 자기 자신을 제 손으로 꽁꽁 묶어 놓는 것과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이는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한 번 살았던 그 자리에 자기를 그대로 묶어 놓는 것과 같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의 공식에 의해서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하나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법칙이란 있는 문제가 있는 일에 의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 법칙에 의해서 이미 수백 억만년을 지내왔고, 앞으로도 이 법칙에 의해서 세상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법칙은 있는 것들의 활동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식물의 열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영체(靈體)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그것이 다시 태어났을 때 어떠한 활동을 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식물이나 사람이나 그 결과를 얻는 과정은 똑 같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식물에게 있어서 땅은 바탕이고, 씨앗은 근본이라고 한다. 이 근본과 바탕이 튼튼해야 좋은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써 농사를 지어보면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땅(바탕)이 좋고 나쁘냐, 즉 기름지냐 메마르냐에 따라서 씨앗(근본)이 생명 활동을 하는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땅이 가지고 있는 환경에 의해서 씨앗 자체는 망할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다.

바탕과 환경에 의해서 생명체는 좋은 결실을 얻어 낼 수도 있고 좋은 결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이다.

인간의 영체 역시 이와 똑같다. 인간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 의식을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영체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체는 죽으면 부활해서 다시 생명으로 나게 된다.

이 영체의 근원에는 자신의 삶 속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잠재해 있고, 영체가 부활하게 되면 자기 속에 있던 성질· 있었던 내력들이 다시 활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영체는 자기의 바탕 속에 있는 인연과 결합함으로써 자기를 소생시키고 활동하게 되는데 과거에 자신을 있게 하던 것들이 영향을 나타내어 같은 활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의 근원은, 자기 속에 있던 근본과 바탕 속에서 이어진 인연에 의해 다시 부활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자기의 근본에 있던 활동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러한 근본에 있던 활동은 자기 속에 있었던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것에 의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거부하고·판단하고·생각하는 모든 의식 활동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잘못된 일을 했을 때, 왜 그 사람은 잘못된 일을 계속하게 되는가? 한 번 자기의 의식 속에 입력이 된 것은 자기가 한 일을 되풀이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 번 잘못에 빠지게 되면 그 잘못된 힘이 자기를 자꾸만 잘못된 곳으로 내몰게 된다.

이와 같이 자기 속에 있던 일들의 영향은 사람의 근본을 부실하게 만들기도 하고 튼튼하게 만들기도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의 근원은 자기 속에 있는 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만 거듭하고 부모에게 행패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도 이런 법칙을 잘 설명하고 깨닫게 해서 그 사람이 '아, 그렇구나!' 하고 느끼게 되어 스스로 자기 속에서 나오는 잘못을 알게 되면 그는 그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게 되고 있는 일을 보고 좋은 사람들의 운명을 따라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운명이 달라지고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운명이란 개개인의 인연 속에 있던 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 운명은 각자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서 사회를 지배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국가를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사고(思考)가 힘을 갖게 되느냐에 따라서 그 세력이 사회의 주체가 되거나 국가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를 경영하게 되면 그 국가는 망하게 될 것이고,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주체가 된다면 그 사회는 어려운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자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잘못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 절망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수학은 수학이 가지고 있는 숫자로써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도 있는 일을 가지고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수학에서 5+5 =10 이고, 5+12 =17 이라면, 5+5 와 5+12는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그 답도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알고 나면, 자신이 필요한 문제는, 만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또 그 속에서 얼마든지 바뀐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먼저 문제를 만들 줄 알아야 된다. 수학에서처럼 문제를 만들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먼저 숫자를 알아야 되고 공식을 이해해야 한다.

수학은 하나의 문제가 해답의 근원이다. 세상은 있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의해서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게 한다.

이 현상계에서는 좋은 것도 볼 수 있고 나쁜 것도 볼 수 있는 것이며, 그 문제에 따라서 좋은 일도 나타날 수 있고 나쁜 일도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이 자기의 의식을 바꾸는 일도, 있는 일을 알게 되어 자기에게 존재하게 되는 의식 속에 있는 일들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쉽게 자기를 바꿀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운명이 나쁜 사람이라도 있는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자기 생각에 의존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일에 의존해서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나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운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게 되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하면 손해를 입는다'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있는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깨달음이 있음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서 자기 속에 있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운명을 자신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운명은 누구든지 쉽게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도 없고, 있는 일을 알지도 못하고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있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에 의존해서 끌려 다니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그 생각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운명을 가진 사람은 좋은 삶을 살게 되고 그 삶을 통해서 좋은 운명을 자기 속에 만들어 끝없는 내세를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면,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은 삶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나마 갖고 있던 자기의 근본과 바탕마저 망쳐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자기 속에 있게 되는 인연, 세상과 부딪치면서 생기게 되는 인연, 좋은 인연이나 나쁜 인연 이 포괄적으로 자기의 의식 속에 잠재하게 되고, 이 잠재한 의식체 속에 있는 일들이 활동함에 따라서 자기 자신을 무지하게 만들거나 자기 자신을 실패하게 하거나 자기 자신을 깨달은 사람으로 만들거나 자기 자신을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거나 자기 자신을 성공하는 사람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현상의 진실을 알게 되면 누구든지 운명은 바꿀 수 있다.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사는 목적은 바로 이 삶이 우리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삶을 통하여 미래의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삶을 통해서 현세는 물론이요, 끝없는 내세에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운명적인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자기의 판단과 행위 그리고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 속에 있는 일 자체가 의식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이 의식의 근원은 끝없는 생을 통해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운명이란 자기 속에 있던 일들이 자신에게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업이 되어서 자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에다가 다른 물질을 결합했을 때 거기에서는 새로운 성질이 나오게 된다. 자기가 어떤 인연을 통해서 어떤 일을 자기 속에 넣게 되었을 때, 활동을 할 때마다 자기 속에 들어있는 그러한 성질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자기 속에 있는 성질이 온갖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서로가 갖고 있는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운명이 다르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사람마다 각각 과거로부터 자기 속에 있던 일들이 달랐다는 것이다. 자기 속에 존재하게 하는 일들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과 판단, 선택과 행동이 각각 다른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데 업이 많으면 판단이 정확하지 않고 선택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행동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업이 적은 사람은 있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잘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왜 우리가 하는 일이 풀리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인간들의 사고(思考)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더욱이 교육을 통해서 비슷한 것을 배우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보다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유럽이나 일본에 가서 보면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특별히 얼굴이 더 잘 생기거나 말을 잘하거나 활동력이 뛰어난 점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올바른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가 어두운 쪽으로 발달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만 보게 되는 것은 유교(儒敎)적인 사고이다. 이 유교적인 사고란 가르침 속에 문제는 없고 답만 있는 것을 말한다.

삼강(三綱)과 오륜(五倫),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친구간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는 것이다. 바로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없고 답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유교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이 해답들은 결국 현실적으로는 쓸데없는 일만 하게 한 것이다. 이 일을 두고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면 잘못된 많은 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해답만 가지고 있는 자는 명령만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되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이런 결과를 가져 오라."하고 지시만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좀 뛰어난 사람이 듣고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는데 그것을 얻는 길은 없으니 어디 가서 그걸 얻어야 한단 말인가?'하고 고민하다가 "기일 안에 결과를 얻어오는 일은 불가능하다."하고 말한다.

그러면 명령을 내린 자는 '저 자는 명령에 불복종하고 반항하는 나쁜 자이다.' 해서 불이익을 주거나 죽여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확인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보고 나면 나약한 자들은 두려워서 아무도 항거를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도 반항은커녕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러한 교육의 결과는 옳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이고 사회를 어둡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가를 살펴보면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교육과 사고의 영향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실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필요한 운동을 하게 될 때에는 먼저 목적을 세워야 한다. 문제를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된다. 대안이란 설계도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설계도에 대한 공법과 같은 법칙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해야 되며,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하는 지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넷째, 사람이 선정되어야 된다. 운영할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운동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쓸모 없는 일이 되어 버리게 된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국민운동이 오랫동안 있었지만 그것은 이 네 가지 요소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먼저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문제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안도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대안의 설계도를 이행 할 지침도 없었으니 중요한 가르침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침을 가르치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의 선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해서 실제적으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국가가 투자하고 소비한 엄청난 비용에 비해서 보잘 것 없는 일들만 해낸 것이다.

시골에 시멘트 길을 만들고 농로를 넓혔다, 지붕을 초가에서 스레트로 바꿨다 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충분하지 않다. 누군가 돈을 내어서 시멘트를 샀고 누군가 땅을 기증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길이 포장되고 넓혀진 것이지 새마을 깃발을 내걸었다 해서 길이 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돈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새마을 운동이라는 간판을 유지하는 데는 길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과 노력보다 더 많은 돈과 인력이 소비되었으며 결국 새마을 운동이 국민들의 정신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이 바로 사회를 잘못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유교의 사상. 답만 있고 문제가 없는 가르침이 결국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고, 더구나 있는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보면 업이 있기 때문이다. 업의 영향에 의해서 이런 현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의 사고(思考)를 누가 움직이는가? 그것은 자기 속에 있었던 일들이 자기 속에서 계속적으로 활동을 하고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자기의 사고가 거기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고가 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길흉화복의 원인은 있는 일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위험한 현실에서 벗어나 희망이 있는 미래의 국가를 창출해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있는 문제를 하나씩만이라도 제대로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해결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고, 사회의 운명이 달라지고,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있는 일을 외면하고, 있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운명을 좋게 하는 일은 너무 어렵고 제대로 도움조차 줄 수가 없다.

실제적으로 이 나라에서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권력자의 옆에는 온갖 사람들이 돈 가방을 들고 기다리고 있지만 깨달은 자의 옆에는 가까이 왔던 사람마저도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우리가 하나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있어야 된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바로 해답을 구하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를 갖고 있지 않고 단순히 해답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매우 위험한 일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문제가 없는 해답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는 해답은 항상 쓸모없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가르침인 것이다.

세상에서 어떤 문제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문제를 만들면 좋은 해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누구도 좋은 문제를 만들려하는 사람이 없다.

결국은 문제가 없는 해답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엄청난 고통을 강요할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어둠 속에서 살게 하는 불행한 일들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는 졸업장 국가가 되어서 세계에서 제일 입시경쟁이 치열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 졸업장으로 영국이나 일본 등 선진 외국처럼 평범한 사회인이 되어서 열심히 일하고 부정도 못하고 월급만 받다가 그만 두는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학벌사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학위와 졸업장이 성공의 지름길이요, 현실에서 자기를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졸업장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공부를 시키면서도 문제에 대한 중요성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으니 결국 문제를 모르고 문제를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장님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있는 일을 보면 그 속에 답이 있는데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은 항상 생각으로 보고 엉뚱한 데서 결과를 얻으려 한다. 문제를 자기가 발견하고 답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기적이 일어나거나 누가 와서 해결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요행심리만이 만연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를 암담하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국가신용도가 올라가고 곧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전망을 자주 발표하니까 어리석은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항상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가 안보이니까 과연 이 말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국가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이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국민이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열심히 일할 때 그 국가는 잘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운명은 문제가 없으면 답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문제 자체 속에 모든 해답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제 2 건국운동은 한 마디로 말해서 기울어져 가는 국가라는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도·대안도·지침도·사람도 선정하지 않은 채 간판만 걸어놓고 구호나 외치고 행사를 벌인다면, 또다시 우리사회를 혼란과 불안에 빠뜨리고 재원을 낭비하는 위험한 일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라는 숫자와 '77'이라는 답을 이미 갖고 있다면, '5 + □ = 77' 이라는 문제에서 '77'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더하기 72'라는 문제를 구해오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어떤 문제를 통해서 그 목적 달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 연구되고 검토되어야 되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그 단계까지 와 있지 않는 것이다.

답은 만들어 놓고 문제를 외면해 버리면 어떻게 해결한다는 것인가. 우리가 답을 요구한다면 그 사회 환경에 맞는 문제를 찾아내어야 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한다. '네가 잘났거든 네가 한 번 해결해 봐라.' 그러나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거기에는 힘이 필요하다. 어떤 것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 거기에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힘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되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 각자가 좋은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언제 좋은 세상이 올 것인지 보장할 수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우리가 좋은 것을 얻으려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좋은 것이 언제 세상에 존재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인 것이다.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사회의 운명이나 국가의 운명도 그 사회나 국가 속에 있던 일들의 인연에 의해서 모두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의 근본은 사람이고, 또 국가의 근본은 그 사회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게 될 때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사회와 국가 그리고 나아가서 세상에 많은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운명이나 의식 그 자체는 있는 일로 인해서 생기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번 자신 속에 존재하게 되는 일은 계속해서 활동하게 된다고 했다.

사회도 그 사회가 잘못하는 일에 의해서 잘못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 속의 잘못된 사고를 통해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일은 자기 속에 있던 일에 의해서 결정되게 되어있다. 우리가 과거의 삶에서 잘못된 것을 선택하고 잘못된 운명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이 시대에서 진정 그 운명에 대해서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끝없는 내세에 얼마든지 좋은 자기의 운명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운명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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