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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 여래가 작성한 설립취지서 초본입니다.

 

 


 

: 실상학회는 여래가 설립했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실상학회는 글쓴이가 주도적으로 설립했습니다.

실상학회 '연혁' -새 창으로 열립니다.-

-1991년 11월 23일

여래, '실상학회' 설립을 천명(闡明).

 

 

정기 법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통틀어 십여 명에 불과하고,

참석자 연락처 작성하는 것에도 무심한 구성원들이어서,

달마원(깨달음의 집) 운영은 언감생심이고,

법회 마련조차 어려워 쩔쩔매고 있는데,

주택 임차 종료가 통지되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如來 강연록 <1991년 11월 23일 토, 동대신동에서>

부처는 중생을 위해서 살러 온 것이지, 부처 자신을 위해서 살러 온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서 국가를 구하고, 중생들에게 큰 이상을 성취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들이 갖고 있는 병을 진단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처방을 내려 줌으로서,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 혼자서 이 일을 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합니다.

나는 이러한 일을 하고자 하지만 과연 세상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그랬지만 이 시대에도 깨달은 자가 하는 일에 동참하고 도우겠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또한 그것은 큰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실상학회나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서, 국가의 앞날에 기여하고, 여러분들에게 큰 깨달음이 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실상학회(實相學會)라는 것은, 실상(實相)이란 사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니까 사실적인 하나의 진리를 찾는 배움터이며 진리학회, 진실한 사람들의 모임,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진실을 연구하는 학회(學會)라고 풀이가 됩니다.

'오늘의 세계를 진단한다'는 이런 제목으로 강연도 하고, 공개토론을 통해서, 세상이 해답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 문제를 풀어 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교육, 종교, 철학, 인류학,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의 모든 전문가들과 그 분야의 문제를 가지고 대답하고 질문하는데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지 나보다 앞선 자가 있다면, 저는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법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조직적으로 서로 힘을 모아서 전단도 뿌려야 될 것이고, 대학이나 언론사, 정치단체등에 가서  너희가 원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공개석상에서 질문하라고 하여 질문자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여러분 자신의 생활과 여러분 자신의 앞날과 그리고 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일에 많은 사람들을 찾아서 권선을 하고 동참하도록 해서 그들의 삶과 사회의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여러분들의 앞 길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如來 말씀 <1992년 2월 23일 일, 동대신동에서>

너희가 마음을 내어서 '참으로 내 이웃을 구하겠다.'

그래서 '이 법이 필요하다.'

'여기 이런 분이 있는데 우리가 법을 청해야 안되겠느냐. 그런데 청해서 들을 자리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얼마씩이라도 거두어서 장소를 마련해서 이 분을 청해오자.'

이러한 일을 해서 너희가 너희 자신을 매우 성스럽게 하는 것이고, 너희를 고귀하게 만드는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다.

 

 

1991년 11월 23일, 처음으로 실상학회 설립을 천명한 이후
여래는 수시로 주변 사람들에게 실상학회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조직(단체)의 구성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세 가지입니다.

첫째, 조직(단체)을 만들면 또다른 종교가 될 것이다. (사이비 종교화를 염려)

둘째, 회비, 기금을 조성하는 일이 부담된다. (직장인이 두세명에 불과했고,
가정을 가진 부인들, 재산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셋째, 개인 일정의 자유를 구속당하는 것이 싫다. (조직에 매이기 싫다.)

 

글쓴이가 사회 경험으로 갖고 있던 수완 중에
조직(단체)을 신규로 만들기,
비활성 조직(단체)을 활성화하기,
조직(단체)의 목적에 알맞은 상태로 유지하기 등에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었기에

1991년 11월 23일, 여래 말씀을 듣고 나서, 글쓴이 개인의 의지와 판단으로 실상학회 설립을 목표로 하는 몇 가지 일들을 실행해 나갔습니다.

가시적인 활동으로는 대중 강연회 개최, 신도회보 제작, 보시함(布施函)제작, 보시금(布施金)활용 등이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여래 주변에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일일이 설득하는 것이 내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글쓴이와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안해도 되는 일에 나선다고 시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회비와 기금을 누가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에 관심을 가지고, 시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이 관심의 대상이고, 돈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세상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실상학회 설립의 배경이 여래이고, 깨달은 자가 하는 일이므로,
어차피 설립되는 것은 기정 사실일테이니까,
글쓴이는 이것저것 망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설립을 밀어 붙였습니다.

설립에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 설득하면서

첫째는 글쓴이가 운영하면 '절대 종교화, 사이비는 안 된다. 될 수 없다.'고 장담했고,셋째는 개인 일정의 자유는 '자유가 옳다. 방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난관은 둘째 였습니다.

월회비 5,000원도 적지 않은데, 20,000원을 누가 정했냐,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중·고 동창회를 하면서 내는 회비가 3,000~5,000원 수준이었고,
야유회나 식도락을 가는 친목회라도 10,000원 이하가 대다수였습니다.

1992년 당시 글쓴이의 7급 공무원 본봉이 485,000원이었습니다.

창립회원 22명 중에 직장생활을 하고 매월 봉급을 받는 사람은 3명 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본 회비를 10,000원으로 내리고, 궁여지책으로 후원회원이라는 걸 만들어서 회비를 추가로 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창립한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 회원들이 자진해서 일반회비로 매월 20,000원씩 납입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여러 난관을 거치면서,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일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습니다.

9월 6일, 여래가 실상학회 설립취지서와 정관의 기초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10월 27일, 여래는 소연이 활동하고 있던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1992년 11월 15일 일요일 오후 4시,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에서 실상학회의 창립 임시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사회자, 임시의장은 글쓴이였으며,
엄격한 비밀투표를 거쳐 글쓴이가 첫 총무로 선출되었습니다.

 

여래가 없는 가운데,
그동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고진감래
(苦盡甘來)의 길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여래가 만들어 놓은 길 위에 순순히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 회원들이 낸 월회비 20,000원으로 적립된 금액은 어디에 쓰여졌나요?

: 여래는 회원들이 낸 회비를 두고 '내 돈'이라고 지칭했습니다.

1. 강연회 개최 관련 제반 비용.

2. 강연회 녹음·녹화 관련 제반 비용.

3. 회원 경조사비.

4. 사무용품비.

5. 전법 여행 비용.

매월 적립되는 회비에 맞춰서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에
결산되는 금액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여래의 활동에 비해 실상학회 회비로 적립되는 금액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여래는
"실상학회 회비는 사람들과 나를 연결하는 최소한의 끈이다."라고 했지만,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실상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또 실상학회라는 조직체도 만들었지만
그들이 각자 개별적인 행동을 하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습니다.

실상학회 회원이려면 월 20,000원의 회비를 매월 납입해야 하고,
6개월간 회비를 납입하지 않으면 회원자격이 자동 상실되지만,
어떤 사람은 회비를 내다가 안 내다가 하면서도 회원인 것처럼 행동하거나
또 어떤 사람은 회비를 아예 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당연히 회원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회원가입과 회비납입은 강제하거나 지적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등록된 회원은 20명이 훨씬 넘었지만
회비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회원 중에는 자신이 받는 혜택이 회비보다 적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여래는 눈 뜬자였지만 주변 사람들은 눈 뜬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비는 회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가치로 사용되어졌습니다.

 


 

: 이곳의 실상학회 페이지 말고, 실상학회 홈페이지가 또 있습니다.

: '실상학회'라는 명칭의 사용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으므로,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상학회'는 누구든지 설립하고, 운영하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여래의 주변에 있던 사람이든, 실상학회 회원이었든,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든간에 어떤 제약도 없이 '실상학회'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글쓴이가 1992년 11월 15일 설립했고,
여래가 17년간 챙겼던,
실상학회의 활동은 2011년 2월 12일 종료되었습니다.

 


 

: 설립취지서가 타자기로 작성된 건가요?

: 그렇습니다. 1992년 당시 대부분의 문서들은 타자기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1989년 4월경 이찬진과 동료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동료 중에 게임기업으로 유명한 NC_SOFT의 김택진이 있습니다.

그 당시 퍼스널컴퓨터(PC)사용자가 전국적으로 겨우 몇만 명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프로그램도 극히 일부 사람들만 사용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PC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한글'을 PC에서 워드프로세싱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시중에 나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워드프로세서'라는, 휴대용 타자기보다 작은 전자기기가 나와서 문서 작성 및 출력에 일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만 제대로 서식을 갖춘 문서 작성은 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수시로 버전업을 했는데, 1991년 11월경에 나온 1.52버전이 사용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서 전국적으로  프로그램 불법 복제가 대유행을 하고, 개인과 학생 그리고 회사 업무에도 많이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작성된 문서를 출력하는 '프린터'가 그 당시에는 매우 고가의 장비여서 개인이 출력하려면 PC보다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습니다.

실상학회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문서를 1992년 12월부터 제작, 배포했습니다.

 


 

: '실상학회 설립취지서'가
'자연과학연구학회 취지서'와 내용이 중복됩니다.
또 자연의 가르침 웹사이트 '격문'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네요?

: 그렇습니다. '자연과학연구학회 취지서'는 여래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후,
공식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표방한 '격문'입니다.

'실상학회 설립취지서'는 여래가 자연과학연구학회로 공식 활동을 한 지 6년여의 결실로 만들어진 조직(단체)이므로 동일한 내용의 격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자연과학연구학회나 실상학회나 같은 학회고, 회원도 공유하는 건가요?
학회 명칭도 2갠데다가 달마원(깨달음의 집), 국제불교정신문화원, 국제정신문화연구원, 세계정신문화센터 등으로 도대체 뭘하는 곳인지 헷갈리네요.

: 질문을 듣고 보니 그렇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명확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자연과학연구학회는 깨달은 분, 여래 한 분의 학회입니다.
여래가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기 위한 간판으로서 회장 자격으로 활동했습니다.

여래는 활동을 통해 자연과학연구학회 회원 한 사람을 찾고자 애썼습니다.

2001년경에 그 한 사람을 얻는데 성공했으나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당사자가 반기지도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당사자의 의사가 자연과학연구학회 회원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 같습니다.

대외적으로 글쓴이가 자연과학연구학회 사무국장으로 소개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필요한 상황에서 사무직원이라는 호칭만 적절하게 활용된 것입니다.

대내적으로 글쓴이가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대외 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래의 결재를 받지 않고,
자연과학연구학회 명의의 개인 명함을 제작, 배부했다가
나중에 단단히 지적을 받고 모조리 폐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래가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실상학회 회원을 자연과학연구학회 회원이라고 전용(轉用)해 사용하는 사례가 가끔 있었기 때문에 글쓴이가 크게 착각하고 엉뚱한 사무를 했던 것입니다.)

 

실상학회는 신도들의 모임입니다.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구심체 역할을 했습니다.

실상학회는 여래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한 대상이었습니다.

한 회원과 다른 한 회원을 상호 대칭하게 엮음으로써,
친선보다는 선의의 감시와 견제로 서로 간에 경쟁을 유도했고,
활동을 함께하는 동안 끊임없이 의욕과 갈등을 부추겨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수준을 채찍질하고 점검하는,
여래의 상대역이 되겠다고 멋모르고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달마원, 국제불교정신문화원, 국제정신문화연구원, 세계정신문화센터는

거처가 없는 여래 주변 사람들의 숙소로 사용하면서,
여래의 개인사무소 겸 강연회장으로 사용되던

장소(주택)를 지칭하는 단순 명칭
이었습니다.

명칭에 걸맞은 활동을 하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여래가 주변 사람들을 항상 접촉할 수 있는 울타리의 명칭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소연이 원장으로 소개되는 적이 많았습니다만
이 또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편의상 호칭되었을 뿐이며,
원장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 조직체로써 ***원, ***센터가 아니었습니다.

여래가 주변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振作)시키고,
여래와 쉽게 접촉함으로써 보다 자극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사무소와 강연회장을 겸하던, 여래 주변 사람들의 숙소
(宿所) 명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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