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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누구도 그 분이 여래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연구학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깨달은 자, 한 분만의 간판이었습니다.
여래가 소연을 만남으로써, 소연이 여래를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여래 앞에 부인 셋이 앉아 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어만 할 수 있던 여래가 혼자 일본 오사카 여행을 했습니다.
원고는 여래가, 수고는 소연이, 비용은 소연의 절친이 냈습니다.
누구를 위해 머나먼 여행은 시작되었을까요?
소연의 친척이 임차한 주택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달마원(깨달음의 집)은 소연의 노력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소연 혼자서 일본에 여래를 알리기 위해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정기 법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통틀어 십여 명에 불과하고,
설날, 여래 자택에서 법회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소연은 영국인 제니더 부인과 함께 경북 청도군, 산골 마을 농가 아래채에, 원덕은 여래 자택 옥상 창고를 수리하여 거처를 옮겼습니다.
부산시내 곳곳에 강연 벽보를 부착하고, 강연회 주최는 달마원이 하고, 후원은 가칭 실상학회가 했습니다.
1차 강연회를 시작한지 5개월동안, 참 많은 우여곡절들이 연이었습니다.
여래가 실상학회 설립취지서와 정관의 기초본을 만들어 제시함으로써
소연 혼자 전법 여행에 나서서,
여래가 실상학회 설립을 천명한지 만 1년이 되는 때, 창립을 완료했습니다.
이후 1년 동안 46회 이상의 강연회가 매주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K 자매 성추문' 사건 발생으로 강연회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여래가 상가 건물 4층에 45평 주택을 임차했습니다. 여래의 활동 사무소이자 소연과 원덕의 거처이면서 내방인들의 거처입니다.
1993년 11월에 있었던 'K 자매 성추문' 사건의 여파로 1차 개정했습니다. (총무의 역할을 회장 겸임에서 회비수금 및 관리원으로 대폭 축소하고,
실상학회 일부 회원들의 개인 자산 투자 및 운용 사업을 하는 조합입니다.
부전2동에서 동대신동2가로 사무소를 이전했습니다. 여래가 상가 건물 4층에 45평 주택을 임차했습니다. 여래의 활동 사무소이자 소연과 원덕의 거처이면서 내방인들의 거처입니다.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뒷걸음질 하던 실상학회 활동을 쇄신(碎身)하고,
창간기념회는 대단한 성황이었습니다. 당일, 정기구독을 신청한 분이 176분이었습니다. 천재일우의 참석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하(敬賀)합니다.
깨달은 자에 대한 소개, 깨달음에 대한 소개, 깨달은 자의 활동과 강연 내용을
잡지 '자연의 가르침' 발행인의 의지력은 통권9호가 한계였습니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 만큼, 성과도 컸던 부산 동대신동2가 사무소를 닫고,
환경도 바뀌었고, 여래 주변 구성원들의 신상(身上)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삭제했던, 창립 당시 정관의 조항을 복구하고, 보정하여 3차 개정을 했습니다.
여래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래는 영국, Barking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3층 건물인 여래 자택의 1, 2층 목욕탕 시설을 전면 개·보수하여,
실상학회 일부 회원들 소유의 사업조합을 지분 배분하고 해체했습니다.
여래가 소연에게 마련해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숙소에서 2008년 8월 21일(음력 7월 21일, 戊子년 7월 癸巳일) 01시 20분(말레이시아시간),
여래 생전부터 13년 이상, 무난하게 열심히 활동해주었던 총무가 사임했습니다.
실상학회 활동의 근간이 되어주었던 '정관'은 역할과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세상에 온 여래의 상대역이 되어주었던 실상학회 회원들에게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실상학회 회원이었던 분들이 기필코 갖게 되는
성공을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꿔라.
그러나 여래의 의통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의 병으로 인해, 2005년 5월, 3층 자택의 1, 2층을 리모델링하여 사무소 및 강연장으로 사용했으며, 여래는 첫 제자 소연을 만난 이후 내내, 소연의 거처를 마련하는 일을 염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그 곳에서 별세했습니다.
2005년 11월 20일, 사업조합이 해체되고 자산은 개인 지분별로 배분되었습니다. 그 결과, 실상학회 사업조합 소유의 공동회관(2층 주택)이 남겨졌습니다. 공동회관(2층 주택)은 사업조합 소유의 건물이지만 사업조합이 해체되어 실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없어졌습니다. 현재 법적으로는 건물 등기원부에 등재된 등기자의 소유로 되어 있겠지만, - 참고자료 : 기원문(祈願文). 1993년11월15일 월요일, 백산회관 상량식에서
여래가 실상학회에 사업조합을 결성하게 한 이유는 대략 아홉 가지 정도 됩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여래가 돌아간 이후에도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입니다.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최소한의 주거(住居)를 마련하고자 한 것입니다. 공동회관(2층 주택)은 1994년6월26일 사업조합 설립 이후 12년간, 2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수고하고 마련해서 남겨 놓은, 조합원 공동의 유산입니다. 공동회관(2층 주택)을 사용하는 분들은 여래의 배려와 조합원들의 수고에 대해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별도로 여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최부군에게 1,100평, 원덕에게 300평, 소연에게 200평, 합계1,600평(16구좌)의 농토를 남겨주었습니다. - 참고자료 : 2001년01월28일(일) 전포동(자택) 강연회 녹음 중에서
소연이 여래의 '첫 제자'라면 '두 번째 제자'는 누구이며,
석가모니를 말할 때 '인류의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여래도 소연을 '첫 제자'라고 표현했지만 딱히 다른 호칭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들은 바로는 '두 번째 제자'는 없었습니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을 두고 "너희는 나의 정신적인 자식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보다 '아버지와 자식'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여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이나 이론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스승'이나 '선생'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스승이나 선생은 어떤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질문을 하면, 그러나 여래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이든, 활동 중에 만나는 사람이든 누군가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 일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질문한 사람이 스스로 알아볼 수 있도록 힌트(hint)나 방법만 귀띔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주1) 낮다 : 유치하다.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질문.
여래가 만난 어떤 사람도 여래에게서 50%이상의 해답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활동을 통해 남겨진 육성과 글에는 깨달은 자가 밝힐 수 있는 세상의 진실들과 진리들이 여래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수준만큼만 드러나 있습니다. 여래는 수없이 많은 강연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실들을 무수히 말했지만, 그러므로 여래는 결코 스승이나 선생으로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여래의 생전 모습은, 세상의 길라잡이. 인생의 길라잡이. 생활의 길라잡이. 양심의 길라잡이. 여래는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래 주변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은 자신의 성명과 다른 호칭을 여래에게서 받았습니다. '소연', '원덕' 등의 호칭이 그렇습니다만 다른 몇 사람도 호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글쓴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호칭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성명과 다른 호칭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였는지 글쓴이도 알 수 없지만, 후세(後世)에서 이삼한 여래의 제자가 몇 명이었는지 궁금해 할지는 모르지만, 여래 주변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기록으로 남기는 증거는 더 이상 없습니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으로 여래의 충고 해프닝(happening)을 소개하겠습니다. - 2019년12월1일 운영자
[기(起)] [승(承)] [전(轉)] [결(結)] 후기(後記) -새 창으로 열립니다.-
여래가 한 일들에 대해 내가 듣고 본 것을 기록으로 남길 따름입니다. 소연이 쿠알라룸프르 거처에 거주하고 안하고는 그 분의 선택입니다. 저는 개개인의 자생력을 해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 시대에서 개인의 자생력 회복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소연을 꼭 만나고 싶은 분은 이 곳 말고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소연의 연락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소연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소연의 글들을 한 자리에 모두 소개합니다.
# 여래가 소연을 처음 만나던 때를 기술한 글입니다.
# 소연이 노트에 작성한 여래의 첫 법회 말씀과 이후 법회 기록, 여래의 메시지.
# 소연이 직접 작성한 자신의 일대기(一代記)입니다.
# 실상학회 학회보에 소개한 소연의 글입니다.
# 잡지 '자연의 가르침'에 소연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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