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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1월 중순

여래 출현.

아무도, 누구도 그 분이 여래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86년 10월 3일

자연과학연구학회 설립.

자연과학연구학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깨달은 자, 한 분만의 간판이었습니다.

-1987년 10월

여래, 소연 만남.

여래가 소연을 만남으로써, 소연이 여래를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여래와 우리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1987년 11월 6일

여래, 첫 법회. (1987년 음력 9월 15일)

여래 앞에 부인 셋이 앉아 들었다고 합니다.

-1988년 4월

여래, 일본 전법 여행.

한국어만 할 수 있던 여래가 혼자 일본 오사카 여행을 했습니다.

-1988년 12월 3일

시집 '나그네' 발행.

원고는 여래가, 수고는 소연이, 비용은 소연의 절친이 냈습니다.

-1988년 12월 13일

여래, 소연과 아시아 전법 여행.

누구를 위해 머나먼 여행은 시작되었을까요?

-1989년 3월 5일

달마원(깨달음의 집) 개원.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3가)

매주 수·토요일, 1~2회 정기법회.

소연의 친척이 임차한 주택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달마원(깨달음의 집)은 소연의 노력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989년 4월 24일

소연, 일본 전법 여행.

소연 혼자서 일본에 여래를 알리기 위해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1989년 8월

여래, 소연과 아시아·아프리카 전법 여행.

 

-1990년 2월

여래, 소연과 아시아 전법 여행.

 

-1990년 3월

여래, 원덕 만남.

 

-1990년 9월

여래, 소연·원덕과 아시아 전법 여행.

 

-1991년 6월

여래, 소연과 유럽 전법 여행.

 

-1991년 11월 23일

여래, '실상학회' 설립을 천명(闡明).

정기 법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통틀어 십여 명에 불과하고,
참석자 연락처 작성하는 것에도 무심한 구성원들이어서,
달마원(깨달음의 집) 운영은 언감생심이고,
법회 마련조차 어려워 쩔쩔매고 있는데,
주택 임차 종료가 통지되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1992년 2월 4일

정기법회 장소 임차 및 대중 강연회 논의.

설날, 여래 자택에서 법회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1992년 3월 3일

달마원(깨달음의 집) 주택 임차 종료.

소연은 영국인 제니더 부인과 함께 경북 청도군, 산골 마을 농가 아래채에,
소연의 노모
(老母)는 전포동에 셋방을 얻어서 거처를 옮겼습니다.

원덕은 여래 자택 옥상 창고를 수리하여 거처를 옮겼습니다.

-1992년 3월 29일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 제1차 강연회 개최.

일요일 오후 2시~5시, 주최 : 달마원, 후원 : 실상학회.

부산시내 곳곳에 강연 벽보를 부착하고,
육교 계단에서 강연 리플릿을 배포하고, 대중 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강연회 주최는 달마원이 하고, 후원은 가칭 실상학회가 했습니다.

-1992년 8월 30일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 제13차 강연회 개최.

주최 : 달마원, 후원 : 실상학회.

1차 강연회를 시작한지 5개월동안, 참 많은 우여곡절들이 연이었습니다.

-1992년 9월 6일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 제14차 강연회 개최.

주최 : 실상학회.

여래가 실상학회 설립취지서와 정관의 기초본을 만들어 제시함으로써
가칭 실상학회가 구체적인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9월 16일

소연, 영국 및 유럽 전법 여행.

연화사(蓮華寺) 주석(主席). (영국, Kingstone)

소연 혼자 전법 여행에 나서서,
영국 Kingstone에 있던 연화사에 주석으로 취임했습니다.

-1992년 10월 18일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 제20차 강연회 개최.

주최 : 실상학회.

 

-1992년 10월 27일

여래, 영국 전법 여행.

 

-1992년 11월 15일

실상학회 설립. (정관 38조항 제정, 창립회원 22명.)

여래가 실상학회 설립을 천명한지 만 1년이 되는 때, 창립을 완료했습니다.

 

이후 1년 동안 46회 이상의 강연회가 매주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1993년 11월 21일

부산적십자회관 6층 소강당 강연회 일시 중단.

'K 자매 성추문' 사건 발생으로 강연회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1994년 5월 15일

국제불교정신문화원 개원.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2동)

여래가 상가 건물 4층에 45평 주택을 임차했습니다.

여래의 활동 사무소이자 소연과 원덕의 거처이면서 내방인들의 거처입니다.

-1994년 6월 26일

정관 1차 개정.

1993년 11월에 있었던 'K 자매 성추문' 사건의 여파로 1차 개정했습니다.

(총무의 역할을 회장 겸임에서 회비수금 및 관리원으로 대폭 축소하고,
유명무실한 고문과 고문회의를 삭제했습니다.)

-1994년 6월 26일

실상학회 사업조합 설립.

실상학회 일부 회원들의 개인 자산 투자 및 운용 사업을 하는 조합입니다.

-1996년 7월 7일

국제정신문화연구원 개원.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2가)

부전2동에서 동대신동2가로 사무소를 이전했습니다.

여래가 상가 건물 4층에 45평 주택을 임차했습니다.

여래의 활동 사무소이자 소연과 원덕의 거처이면서 내방인들의 거처입니다.

-1997년 11월 1일

정관 2차 개정.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뒷걸음질 하던 실상학회 활동을 쇄신(碎身)하고,
더 큰 도약을 하기 위한 발판을 미리 준비하는 2차 개정을 했습니다.

-1998년 6월 14일

잡지 '자연의 가르침' 발행.

창간기념회는 대단한 성황이었습니다.

당일, 정기구독을 신청한 분이 176분이었습니다.

천재일우의 참석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하(敬賀)합니다.

-1999년 10월 1일

안내서 '깨달음·Enlightenment' 발행

깨달은 자에 대한 소개, 깨달음에 대한 소개, 깨달은 자의 활동과 강연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안내서를 발행했습니다.

-1999년 12월 5일

백산회관 개소. (경남 밀양시 하남읍)

잡지 '자연의 가르침' 발행인의 의지력은 통권9호가 한계였습니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 만큼, 성과도 컸던 부산 동대신동2가 사무소를 닫고,
실상학회 사업조합이 일구어 놓은 농촌 주택으로 이전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정관 3차 개정.

환경도 바뀌었고, 여래 주변 구성원들의 신상(身上)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삭제했던, 창립 당시 정관의 조항을 복구하고, 보정하여 3차 개정을 했습니다.

-2000년 1월 5일

런던사무소 개소. (영국, East Ham)

여래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10월 25일

Tathagata House 개원. (영국, Barking)

여래는 영국, Barking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2005년 6월 19일

세계정신문화센터 개원.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

3층 건물인 여래 자택의 1, 2층 목욕탕 시설을 전면 개·보수하여,
1층은 사무소로, 2층은 숙소와 강연장으로 리모델링 했습니다.

-2005년 11월 20일

실상학회 사업조합 해체.

실상학회 일부 회원들 소유의 사업조합을 지분 배분하고 해체했습니다.

-2008년 8월 21일

여래 별세.

여래가 소연에게 마련해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숙소에서

2008년 8월 21일(음력 7월 21일, 戊子년 7월 癸巳일) 01시 20분(말레이시아시간),
한국시간으로 02시 20분에 별세했습니다.

-2011년 2월 12일

실상학회 종료.

여래 생전부터 13년 이상, 무난하게 열심히 활동해주었던 총무가 사임했습니다.

실상학회 활동의 근간이 되어주었던 '정관'은 역할과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않는 보관 문서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온 여래의 상대역이 되어주었던 실상학회 회원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들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실상학회 회원이었던 분들이 기필코 갖게 되는
여래의 선물입니다.

 

성공을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꿔라.

 


 

: 2000년 10월 25일,
Tathagata House 개원 이후로는 활동이 많지 않으셨네요?

: 그렇지 않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래의 의통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의 병으로 인해,
여래가 갖게 되었던 당뇨증세와 합병증으로 육체가 쇠약해졌기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보다는 자택과 영국, Tathagata House에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2005년 5월, 3층 자택의 1, 2층을 리모델링하여 사무소 및 강연장으로 사용했으며,
이후로는 첫 제자 소연의 거소를 마련하는 일에 중점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여래는 첫 제자 소연을 만난 이후 내내, 소연의 거처를 마련하는 일을 염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그 곳에서 별세했습니다.

 


 

: 실상학회 사업조합은 무엇입니까?

: 실상학회 회원 중에서 별도로 20여 명이 개인 자산의 투자 및 운용을 하기 위한 조합을 결성하여, 경남 밀양시 하남읍에 농지를 매입하고, 공동회관(2층 주택)을 짓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2005년 11월 20일, 사업조합이 해체되고 자산은 개인 지분별로 배분되었습니다.

그 결과, 실상학회 사업조합 소유의 공동회관(2층 주택)이 남겨졌습니다.

공동회관(2층 주택)은 사업조합 소유의 건물이지만 사업조합이 해체되어 실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가 없어졌습니다.

현재 법적으로는 건물 등기원부에 등재된 등기자의 소유로 되어 있겠지만,
공동회관(2층 주택)의 실소유주는 실상학회 사업조합입니다.

 


 

: 여래 출현 -> 여래, 소연 만남. -> 2.한 알의 씨앗 - 페이지를 읽으면,
여래는 '첫 제자 소연'을 두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소연이 여래의 '첫 제자'라면 '두 번째 제자'는 누구이며,
여래의 제자는 모두 몇 명인가요?

: '제자'를 말하려면 '스승'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래를 '스승'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석가모니를 말할 때 '인류의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표현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승'으로 보다 종교의 대상으로써 '신'으로 받들고 있지 않나요?

여래도 소연을 '첫 제자'라고 표현했지만 딱히 다른 호칭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들은 바로는 '두 번째 제자'는 없었습니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을 두고 "너희는 나의 정신적인 자식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보다 '아버지와 자식'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여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이나 이론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스승'이나 '선생'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스승이나 선생은 어떤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질문을 하면,
그 일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히 가르쳐서 그 사람이 자신처럼 잘 알게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여래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래는 주변 사람들이든, 활동 중에 만나는 사람이든 누군가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그 일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질문한 사람이 스스로 알아볼 수 있도록 힌트(hint)나 방법만 귀띔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여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해답을 50%이상 자세히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래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여래에게 질문을 할 때 그 수준이 너무 낮았습니다(주1).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의 사정에 맞추어서 알맞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1 낮다 : 유치하다.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질문.

 

 

"여러분들이 나에게 질문을 할 때는 가장 어려운(주2)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답변을 하는 중이라도 계속해서 추가
(주3) 질문을 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질문이 더 이상 없으면 답변도 거기서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2 어려운 : 자기 자신이 어디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의문이나 문제.

주3 추가 : 여래로부터 완벽한 해답을 얻으려는 치열한 노력.

 

 

여래가 만난 어떤 사람도 여래에게서 50%이상의 해답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활동을 통해 남겨진 육성과 글에는 깨달은 자가 밝힐 수 있는 세상의 진실들과 진리들이 여래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수준만큼만 드러나 있습니다.

여래는 수없이 많은 강연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실들을 무수히 말했지만,
모든 말씀 속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힌트와 방법만을 알려주었으며,
결국 인간들이 갖고 있는 그들의 의문과 문제의 해결은
바로 인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진리를 알렸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결코 스승이나 선생으로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여래의 생전 모습은,
엄격하고 자상한 아버지, 지혜와 감성이 풍부한 아버지, 단계와 훈련으로 세상을 익히도록 인도하는 길라잡이, 실패하지 않는 삶의 성공 길라잡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손바닥에 써놓고, 저기 달이 떴다고 가리키는
(그래서 우리는 달만 쳐다보는데...) 길라잡이 등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세상의 길라잡이. 인생의 길라잡이. 생활의 길라잡이. 양심의 길라잡이.

여래는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로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래 주변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은 자신의 성명과 다른 호칭을 여래에게서 받았습니다.

'소연', '원덕' 등의 호칭이 그렇습니다만 다른 몇 사람도 호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글쓴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호칭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성명과 다른 호칭을 받은 사람들이 제자였는지 글쓴이도 알 수 없지만,
오늘날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후세(後世)에서 이삼한 여래의 제자가 몇 명이었는지 궁금해 할지는 모르지만,
현세
(現世)에서 여래가 평소에 제자로 호칭한 사람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여래 주변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기록으로 남기는 증거는 더 이상 없습니다.

 


 

: -1993년 11월에 있었던 'K 자매 성추문'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

[기(起)]

[승(承)]

[전(轉)]

[결(結)]

후기(後記)

-새 창으로 열립니다.-

 


 

: 소연은 쿠알라룸프르에 거주하고 있나요?

: 글쓴이는 제 자신과 제 가족의 일만으로도 항상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 개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여래가 한 일들에 대해 내가 듣고 본 것을 기록으로 남길 따름입니다.
개개인의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소연이 쿠알라룸프르 거처에 거주하고 안하고는 그 분의 선택입니다.

저는 개개인의 자생력을 해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이 시대에서 개인의 자생력 회복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 저는 소연을 만나고 싶습니다. 소연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습니다.
연락처를 가르쳐주세요.

: 운영자는 다른 사람의 연락처를 소개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소연을 꼭 만나고 싶은 분은 이 곳 말고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소연의 연락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소연에 대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소연의 글들을 한 자리에 모두 소개합니다.

 

# 여래가 소연을 처음 만나던 때를 기술한 글입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좌석에 여승(비구니(比丘尼))이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여승이 뒤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린아이가 잘못을 들켰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고,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 소연이 노트에 작성한 여래의 첫 법회 말씀과 이후 법회 기록, 여래의 메시지.

 

(음)1987. 9. 15. (애환) 처음 법회
불법은 진실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불법은 진법이니 올바른 마음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볼 수 없는 법이요. 들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 소연이 직접 작성한 자신의 일대기(一代記)입니다.

 

출가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나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이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
죽음은 과연 삶의 끝인가.

-새 창으로 열립니다.-

만남
달리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도시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기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남자가 얼굴을 붉히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깨달음의 집 달마원 개원
1989년 3월 5일, 달마원(깨달음의 집)이 문을 열었다.
스승은 천상과 천하에 있는 보살과 선신들에게 이 일을 고하고 그들의 공덕과 은혜를 이 일에 바치라고 일렀다.
이곳에서 다시 부처의 길이 열리고 하늘의 정기가 이곳에 다 모여든다 하셨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 실상학회 학회보에 소개한 소연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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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으로 열립니다.-

 

 

# 잡지 '자연의 가르침'에 소연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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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으로 열립니다.-

 

 


 

: 2008년 8월 21일에 여래가 별세했네요? 여래의 묘소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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