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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한 여래의 학력이 '독학'이네요? 이삼한 여래가 깨닫기 전에 갖고 있던 지식 수준이나 상식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여래가 1984년 11월에 깨달음을 이루기 이전인 이삼한 시절에 출판하였던, 자서전 '외로운 투쟁'과 시집 '한탄'을 시간 나실 때 찬찬히 한두 번 읽어보시면 질문하신 궁금증이 쉽게 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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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1991년 8월 17일에 여래를 처음 만났기 때문에
여래가 이삼한 시절일 때는 글쓴이가 이삼한 주변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글쓴이도 이삼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도 누구든지 확인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기 때문에
자서전 '외로운 투쟁'의 내용에 나오지 않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 이삼한이 1984년 11월에 깨달음을 이루기 전,
1983년 5월 7일에 발행한 자서전 '외로운 투쟁' 출판기념회에
소설가 이병주씨가 축사를, 시인 정상구씨가 격려사를 했습니다.

참고자료 : 火田民의 아들 李三漢 외로운 투쟁 출판기념회 초청장

 

▶ 1998년 6월 14일, '월간 자연의 가르침'을 창간할 때, 언론인 변노섭씨를 대표편집인으로 초빙하여 편집 및 발행 업무를 함께 하였습니다.

(주) '월간 자연의 가르침'  저작권표시 : 창간호  ·  통권3호

변노섭씨는 부산 목요학술회(주)의 초대회장이었습니다.

(주) 사단법인 목요학술회 : 부산의 정신문화 활동에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순수 민간 학술 모임.
       목요학술회 30년사(1979~2009)  ·  역대회장,  시민시대 통권400호  ·  2019년 3월호

 

▶ 글쓴이가 '월간 자연의 가르침'을 편집하던 당시,
여래에게 1984년 5월에 시집 '한탄'을 발표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친구들이 사장 이사장 아니면 소설가 시인이고 한데, 모이면 저네들이 쓴 시집이나 책을 내놓고 자랑하기에, 내가 그까짓 시집 한 권 쓰는 게 뭔 대수겠나해서 나도 한 권 척 써냈지. 그러니까 친구들이 놀라더군. 읽어보더니 수준도 높다고...”

 

▶ 어느 날 '월간 자연의 가르침' 편집실에 남자 손님 다섯 분이 방문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글쓴이와 대화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수고가 많겠소. 우리는 이 회장과 오랜 친구들이라오. 그런데 이 회장이 나보다 나이가 네 살 작아요. 저 친구보다는 다섯 살이나 작다오. 우리보다 이 회장이 나이가 여러 살 작지만 서로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요. 이 회장이 나이로 치면 한참 후배지만 처세하는 거는 전혀 그렇지 않다오. 우리와 말이나 행동이 아주 편하게 잘 어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운 친구요.”

 

▶ 소개한 이병주씨, 정상구씨, 변노섭씨, 목요학술회, 다섯 친구 분들은
이삼한의 학식과 상식, 처세 실력의 단면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입니다.
소개한 분들은 무명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의례적으로 참석한 것이 아닙니다.
소개한 분들은 이삼한과 개인적인 친분이상의 교류를 오랫동안 하였으며,
목요학술회의 시민활동도 함께 하였습니다.

 

▶ 이삼한은 사교춤, 바둑 실력도 수준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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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라는 호칭은 일단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알고 있는데, 무당집이나 점집, 철학관에도 많이 사용하지 않나요? 여자 여래도 있던데요? 또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을 약사여래, 미륵여래라 하고, 여래라는 호칭이 좀 다양하게 사용되네요?
그런데 여기 '이삼한 여래'는 무엇이며 '이삼한 성자'는 또 무엇인가요?

 

'말세(末世)'라는 용어의 뜻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용어의 정의와 사용에 극심한 혼란을 겪는 세상'을 들 수 있겠습니다.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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