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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일

the thing that exists

 

있는 일에 의지하라.

있는 일이 진실이며, 있는 일이 곧 진리이다.

 

환상이 없어야 실상이 보입니다.

환상을 가지고 실상을 보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있는 일’ 그 자체가 ‘진리’다.

‘있는 일’ 그 자체가 ‘도’다.

‘있는 일’ 그 자체가 바로 ‘길’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받아들이고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이 하는 그 이해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항상 이 점을 유의해 주시고,

여러분이 여기 와서 배운 게 없습니다.

‘있는 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있는 일’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여래께서 이 시대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사용하신 용어입니다.

 

‘있는 일’의 ‘있는’의 원형은 ‘있다’ 입니다.

국어사전에 ‘있다’는 [형용사] “사실, 현상, 사람, 동물, 물체 따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은 국어사전에 [명사] “어떤 내용을 가진 상황이나 장면.”을 말합니다.

‘한글 맞춤법’에 따라 형용사 ‘있는’과 명사 ‘일’은 띄어쓰기해서 ‘있는 일’이라고 표기하지만,

여래께서 말씀하신 ‘있는 일’은 ‘있다’와 ‘일’이 붙어서 합쳐진 ‘있는일’이라는 일반 명사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래께서는 ‘세상을 보는 자의 시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당신의 말과 행동까지도 ‘보는 자의 시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보는 자의 시각’이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제3자의 관점·제3자적 시각’으로 이해하시면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엄격히 유의할 점이 있다면 ‘제3자의 관점·제3자적 시각’을 ‘객관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객관적’이라는 낱말의 뜻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事物)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눈뜬장님에게 ‘객관적’이란 ‘남이 두는 장기판·바둑판을 구경하면서 훈수하는 정도의 자기 생각이나 판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에 ‘있는 일’은 현재 상태를 나타내지만,

여래께서는 과거에 ‘있은(있었던) 일’과 미래에 ‘있을(있게 될) 일’을 함께 포함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래께서는 말씀의 동사, 형용사의 어미에 ‘~던’을 사용함으로써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표현하셨습니다.

‘있는’과 ‘일’이라는 두 낱말이 함께 사용되는 ‘있는 일’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자주 쓰이는 용어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어제 있은 일이 오늘도 일어났다.”

“자네는 있는 일은 제쳐놓고 왜 없는 일에 매달리냐?”

‘있는 일’은 세상의 사물과 현상, 인간과 삶 속의 ‘모든 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 허상(虛像·虛想)도 ‘있는 일’입니까?

‘허상’이라는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다만 ‘허상’ 속의 상(像)과 상(想)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므로 실상(實相)이 ‘없는 일’입니다. 만약 ‘허상’ 속의 상(像)과 상(想)을 실물로 그리거나 만들었다면 그것은 실상(實相)이 있는 ‘있는 일’입니다.

 

▶ 환상·상상도 ‘있는 일’입니까?

물론입니다. ‘환상·상상’이라는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다만 ‘환상·상상’ 속의 상(像)과 상(想)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므로 실상(實相)이 없는 ‘있는 일’입니다.

 

▶ 생각 속의 상(像)과 상(想)은 실체가 아닙니까?

개인의 생각 속의 상(像)과 상(想)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은 누구도 볼 수 없고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각 속의 상(像)과 상(想)은 실체(實體)가 없으므로 실상(實相)이 아닙니다. 생각 속의 상(像)과 상(想)은 허상(虛像·虛想)입니다. ‘실상이 없는 허상으로서 있는 일’입니다.

 

▶ 소망하거나 기대하는 마음·생각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고, 실체가 없으므로 ‘있는 일’이 아닙니까?

소망도 ‘있는 일’이고 기대도 ‘있는 일’입니다. 막연한 소망이나 기대는 막연한 ‘있는 일’이고, 구체적인 소망이나 기대는 구체적인 ‘있는 일’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일도 ‘있는 일’이고,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도 ‘있는 일’입니다.

 

▶ ‘실상(實相)이 있는 일’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구든지 자기가 가진 의식적 시각에 따라 보이는 것만큼만 보게 됩니다. 육체가 가진 시력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의식체가 가진 시각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이 가진 의식적 시각은 완전한 시각 대비 42% 수준이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어떤 일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알아보는 수준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까?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두고 의식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지식을 두뇌 속에 담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의식이란 ‘자기’의 ‘근본 기운체’를 말합니다. 한 가지 지식을 여러 사람이 같이 배웠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가진 의식체가 각각 다르고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진실과 진리가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진실’이나 ‘진리’라는 용어를 저마다 다르게 사용합니다.

진실과 진리를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생활 환경과 지식의 습득으로 받아들인 영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말은 진리다.’라고 말했다면 그 ‘진리’라는 말이 ‘있는 일을 있게 한 과정 속의 있는 일’을 말한 것인지, ‘이 말은 절대 불변의 틀리지 않는 말이다.’라고 무조건 주장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 누군가가 내민 주먹을 장님이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왜 ‘진리’입니까?

‘장님’은 육체의 시력이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낱말입니다. 그러면 장님은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시력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시력이 없는 장님이 상대의 주먹을 보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딱 맞는 말’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님은 눈앞의 주먹을 볼 수 없다.’라는 말은 ‘진리(眞理):진정한 이치’를 말한 것입니다.

 

▶ ‘진리(眞理)’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리는 특별한 뜻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한 용어이며 일반적인 낱말에 불과합니다. ‘진리’라는 용어는 아무 곳에 사용해도 가치가 전혀 훼손되지 않습니다. 삶의 진리, 밥의 진리, 자동차의 진리, 맛의 진리…. 세상의 있는 일 모든 것에 진리를 덧붙여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삶의 진리는 알아보기 어렵고, 자동차의 진리는 알아보기가 쉽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진리(眞理) 【명사】

① 참된 이치. 참된 도리.

②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인식의 내용.

 

* 진실(眞實) 【명사】

거짓이 없고 참됨.

아마도 국어사전을 만든 사람들 또한 눈뜬장님이기 때문에 쉽게, 바르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진실’이란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진리’란 ‘있는 것’의 ‘까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실’이 있다면 ‘진리’가 있기 때문인 것이고,

‘진리’가 있다면 ‘진실’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나 ‘진실’은 ‘있는 일’의 ‘속’과 ‘겉’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과 ‘진리’는 항상 같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있는 일’입니다.

 

▶ “‘있는 일’은 세상의 사물과 현상, 인간과 삶 속의 ‘모든 일’을 두고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래는 “있는 일이 진실이며, 있는 일이 곧 진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말이 맞는 말입니까? 있는 일은 진실과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용하신 두 가지 문장이 모두 맞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 세상의 모든 현상 그 전체를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여래께서는 세상의 그 모든 ‘있는 일’들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려 항상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 앞에 나타나는 모든 ‘있는 일’들의 ‘진실과 진리’를 항상 확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세상의 ‘있는 일’들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려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으며, ‘진실과 진리’를 확인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 현존 인류가 가진 지식은 세상에 ‘있는 일’들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며 그러므로 사람들은 ‘진실과 진리’를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인류 속의 모든 지식인의 노고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수천 년간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확인한 결과 세상의 ‘진실과 진리’가 어느 정도, 얼마나 밝혀졌습니까? 여래께서 외국 여행을 통해 저명한 지식인들을 만나서 질문을 했을 때 어떤 분은 30% 정도라고 대답했고, 어떤 분은 10% 정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아무 이유없이 약소한 수치를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있는 일’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는 일은 눈뜬장님으로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저는 실제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뜬 자도 처음부터 눈뜬 자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눈뜬장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있는 일’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려는 한 사람의 지대한 관심과 노력이 생애를 거듭하는 동안 단절되지 않고 이어짐으로써 기어이 눈뜬 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눈뜬장님에게 ‘있는 일’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려는 노력과 확인하려는 노력은 매우 절실히 꼭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혹시 ‘돈오점수·돈오돈수’에 대해 의견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저는 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논리에 대해 풀이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10%급 또는 30%급 진실·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종교인들의 논리에 관심을 두기보다 ‘있는 일’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이 실제로 중요합니다. 눈뜬장님이 만들고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그 용어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 뜻을 물어보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 ‘돈오점수·돈오돈수’도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제목의 논리가 있다는 것 자체는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에서, 삶에서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있는 일’은 ‘진리·진실’을 말합니다.

진리 : ②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인식의 내용.

진실 : 거짓이 없고 참됨.

그런데 사람들이 만든 ‘논리’라는 이야기는 제목으로서는 ‘있는 일’이 있는데,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실상’은 없는 ‘있는 일’입니다. 확인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들어 놓고, 왈가왈부(曰可曰否:옳다거니 그르다거니)하는 것은 눈뜬장님들이 즐겨 하는 뜬구름 잡기 문답에 불과합니다.

 

▶ ‘10%급 또는 30%급 진실·진리’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눈뜬장님들은 저마다 자신이 믿고 주장하는 ‘진실·진리’가 있습니다. 그들로서는 그 ‘진실·진리’가 ‘맞는다’ 또는 ‘진짜다’라고 믿고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실상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 만들어 놓은 논리가 자연과 삶에서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진실·진리가 아니라면 그분들만의 어설픈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제목과 논리 속에 10%에서 30% 정도의 실상과 유사한 말들을 열거하고 사용하는 것일 뿐, 실제 내용은 진실·진리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허상(虛像·虛想)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 눈뜬장님이 ‘있는 일’을 그대로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식 세계에서 ‘육하원칙(5W1H)’이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입니다. 한 가지 ‘있는 일’을 두고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여섯 가지 방식보다 더 상세하게, 더 자세하게 더욱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확인하면 할수록 ‘있는 일’의 진실·진리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 ‘Guide’는 ‘눈뜬 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에게 이 질문을 하는 분은 ‘눈뜬 자’란 어떤 사람을 두고 표현하는 말인지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눈뜬 자’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다르지 않게, 왜곡되지 않게, 지나치지 않게, 알맞은 만큼만 전달하고 있는 ‘여래 말씀의 안내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보다 ‘있는 일’을 쉽고 편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사리 알아보기 어려운 ‘있는 일’에 대해서, 미심쩍고 애매한 ‘있는 일’에 대해서, 저는 힘들지 않게 알아보고 ‘있는 일’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어떤 한 가지 ‘있는 일’을 두고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저에게 조언을 요청하면, 곧바로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결과를 제시함으로써, 누군가가 ‘있는 일’을 결단하는 데 정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Guide’는 ‘눈뜬장님’입니까?

예,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저는 ‘눈뜬 자’가 아니며, ‘눈뜬 자’가 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입니다.

‘눈뜬 자:깨달음’에 대해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일반 보통 사람입니다.

 

▶ ‘있는 일’이라는 대상은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에서 무엇까지입니까?

‘있는 일’이란 생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있는 일’입니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있는 일’입니다. 삶 속의 진실과 진리, 생활 속의 진실과 진리. 사람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있는 일’입니다. 정치도 ‘있는 일’이고, 경제도 ‘있는 일’이고, 전쟁도 평화도 ‘있는 일’입니다. 자유도 구속도 ‘있는 일’이고, 지식도 지혜도 ‘있는 일’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있는 일’입니다. 애정도 증오도 ‘있는 일’입니다.

 

▶ ‘눈뜬장님’은 ‘있는 일’을 볼 수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있는 일’을 너무 어렵게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있는 일’은 누구나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만 ‘눈뜬 자’이든 ‘눈뜬장님’이든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의식의 시각적 한계까지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 ‘있는 일’이라는 말이 뭔가 애매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있는 일’이 어렵고 애매한 분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이트에 사용되는 언어는 한국어이며, 초등학생 이상의 한국어 이해력을 가진 분은 누구든지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통하여 매우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잘 이해되지 않는 용어가 있다면 한국어 사전을 곁에 두거나 네이버 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대학 교육까지 받고 직장과 사회생활도 잘하는데, 한국어에 대한 이해력이 5~6세 연령 수준밖에 되지 않는 분들이 실제로 무척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은 먼저 한국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한 다음에 ‘자연의 가르침’을 읽으셔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자연의 가르침’이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르거나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이해에 어려움을 겪어서 ‘자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분은 자신의 ‘생각’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고수(固守)’할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가르침’을 이해하려 노력할 것인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 서점과 온라인 쇼핑몰에는 여래 이삼한이 가르쳤다는 내용을 집대성(여러 가지를 한곳에 모음)한 몇 가지 책을 팔고 있습니다. 내용을 읽는 것이 ‘있는 일’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여래께서는 누구에게도 지식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항상 있는 일을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누구에게도 당신의 가르침을 배우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누구에게도 당신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항상 있는 일을 확인하라고, 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그 책은 어떤 눈뜬장님이, 눈뜬 자의 말씀을 이해한 줄로, 알아본 줄로 착각하여, 눈뜬 자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출판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책을 통해서는 눈뜬 자의 말씀을 읽고 보는 것이 아니라, 눈뜬장님의 착각을 읽고 보게 될 것입니다. 책을 만든 사람이나 책을 읽는 사람 둘 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면과 검소에 정반대의 노력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눈뜬장님은 항상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이해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책 속에 ‘기운의 세계에는 4개의 차원이 있다.’라고 적혀 있어서

‘아! 그렇구나.’하고 ‘있는 일’을 알아보았다면, 얼마나 순박한 착각이겠습니까?

제가 기운의 세계를 전혀 볼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기운의 세계에 겨우 4개의 차원만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4억 개 이상의 차원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요?

‘있는 일에 대한 해답’은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찾아서 스스로 획득함으로써 그 과정과 성취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를 자신이 온전히 소유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서 ‘아, 그렇구나.’하고 머리에 담아두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어서 무력하고 헛된 삶을 살게 합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쓴 오답(誤答)을 읽고, 그것을 해답(解答)인 줄 받아들인다면, 자기가 자기를 영원히 멸망시키는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우문간답(愚問簡答) > 여래의 말씀은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라고 합니다.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 새 창이 열립니다. -

 


 

“여래의 가르침은 밝은 곳에서 하나의 현상을 보는 것과 같다.

 

여러분이 배우고 깨닫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봉사하고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에게 도전하라.

모든 문제는 자기에게 있고

모든 문제는 스스로 풀 수가 있는 것들이다.

항상 자신이 자신을 의지해서 자기를 완성하라.

 

구원의 길은 여러분 자신 속에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은 소망이 있는 곳이고

삶은 자기를 축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좋은 가르침은 자기 스스로 터득하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걸 간직하고 행할 뿐입니다.”

 


 

▶ ‘ChatGPT’에 입력했습니다.

step 1

+ ‘있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있는 일'은 문맥에 따라 뜻이 조금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 현실에서 일어난 사실, 또는 현재 처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있는 일을 그대로 말해라."

→ 실제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는 뜻입니다.

"있는 일 없는 일 다 털어놓았다."

→ 실제 있었던 일뿐 아니라 없었던 일까지(과장하거나 지어내어) 모두 말했다는 뜻입니다.

"있는 일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있는 일'은 '있는 그대로'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사실을 꾸미거나 숨기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혹시 이 표현을 성경, 불교, 철학, 또는 특정 책이나 문장에서 보셨다면, 그 문맥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습니다. 해당 문장을 알려 주시면 그 문맥에 맞게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step 2

+ ‘있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있는 일'은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는 표현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일, 사실인 일

"있는 일만 말해."

→ 꾸며내거나 거짓을 보태지 말고 실제로 있었던 사실만 말하라는 뜻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

"있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나 현실을 의미합니다.

이미 정해져 있거나 주어진 일

"있는 일부터 먼저 하자."

→ 새 일을 만들기보다 현재 맡아 있는 일이나 해야 할 일을 먼저 하자는 뜻입니다.

즉, '있는 일'은 일반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일, 현실의 일, 이미 발생했거나 맡고 있는 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혹시 이 표현을 성경, 불교, 철학, 또는 특정 책이나 문장에서 보셨다면, 그 문맥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습니다. 해당 문장을 알려 주시면 그 문맥에 맞게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AI는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AI는 의식체가 없는 육체만 있는 기계라는 것입니다.

 

눈뜬 자 한 명이 ‘있는 일’을 쉽게 알아보는 것을

장님 인간 1,000억 명이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결코 절대 알아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AI가 눈뜬 자의 말과 글과 행적을 전부 습득하더라도 ‘있는 일’의 ‘있는 그대로:진실·진리’를 결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눈뜬 자의 말씀은

눈뜬 자의 행적을 통해서 장님은 그 뜻을 알아보아야 하고

눈뜬 자의 뜻을 장님이 알아본 대로 행하고자 하는 과정을 통하여

눈뜬 자의 뜻을 바르게 알아보았는지 그르게 알아보았는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눈뜬 자의 뜻을 올바로 체험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과정과 결과의 속에서

장님은 눈뜬 자의 말씀 속에 있던 ‘있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 이 페이지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주제를 선정하고,
주공
(主公=Guide)의 원고를 받아,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