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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 2018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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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에 게시판이 없으니 무척 답답합니다. 사이트 운영자를 직접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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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대에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을 모르면 인생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요? ‘양심’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니지요. 이 사이트 운영자는 이상한 논리를 혼자 주장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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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은 자기를 밝히는 빛이고, 정의는 사회를 밝히는 빛이며, 사랑은 상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한 해답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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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 글을 읽다 보면 기분이 많이 안 좋아진다. 사람들을 대놓고 장님이라 하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 치고, 사람의 진실성이 42%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중지를 모으면 얼마든지 진실성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인간 사회가 발전해 왔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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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있는 ‘나는 아직까지 보람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제 마음에 짠하게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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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의 글들을 읽다보니 점점 궁금해지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틀린 말이 없고 여러모로 훌륭한 말씀이라 생각되는데, 왜 그토록 고생을 많이 하고도 뛰어난 제자나 회원을 여러 사람 남기지 못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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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의 주목적이 뭡니까? 이삼한의 생애와 말들을 소개하면서 변화기를 강조해서 사람들이 변화기를 믿고 뭔가 대비하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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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말세, 심판, 휴거, 재림, 천국과 지옥에 깊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이트의 '변화기'도 심판의 확신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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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의 글을 읽고 내 자신과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려면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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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하는데, 진실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설명할 때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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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페이지 제작에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다. 저는 문장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번역(영어, 일어)에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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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地球)적인 심판? 종말? 변화기? 이런 게 정말 있기나 있는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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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는 종교요? 아니면 사이비요? 이삼한 여래는 종교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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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좋아지고 있습니까? 나빠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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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 사이트에 접속하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이 사이트에서 보냅니다. 글쓴이 운영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만날 수 없다면 통화나 이메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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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삼한 여래를 스승으로 모시는 게 잘못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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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부근에서 지진이 났는데 변화기와 관련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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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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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데이트를 할 거면 지속적으로 하세요. 질문은 올려져 있는데 답변은 쓰지 않고, 올린다는 자료는 언제 올리는지 감질만 나게 하네요. 갖고 있는 자료를 빠른 시일 내로 모두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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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바로 여래가 찾던 그 당사자라고 판단합니다. 확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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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기에 대한 나의 생존 가능성과 비상 대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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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래는 왜 한 사람만 찾으려 했나요? 부처라면 모든 사람들을 구제해야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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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래를 이제야 알게 되어 유감입니다. 생전에 만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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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위 사이트 왜 하는 거요. 때려치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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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만 전한다는데 믿기가 어렵네요? 이 사이트의 실제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이트에 게시판이 없으니 무척 답답합니다. 사이트 운영자를 직접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면 안 될까요?

운영자는 전혀 조금도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운영자가 전혀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입니다.

운영자에게 전혀 조금도 소용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운영자는 여래와 그 주변에 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운영자는 자생력이 무척 강한 사람이어서
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작정 해낼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의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제 자신을 만나고 싶다 한다 해서
제 의지와 상반되는 만남의 자리를 갖는 일은 전혀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운영자가 자신의 의지로 자연의 가르침 애독자 분들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거나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기회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시대에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을 모르면 인생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요? ‘양심’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도 아니지요. 이 사이트 운영자는 이상한 논리를 혼자 주장하는 것 같네요?

참으로 지당한 말씀을 후련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 여러 페이지에 글쓴이가 말한 대로 이 사이트는 기록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요즘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이트의 내용이 요즘 시대에는 아무런 소용이 되지 않더라도 다음 시대에는 대단히 요긴하게 활용될 것으로 글쓴이는 단단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에도 이 사이트의 내용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면, 그저 글쓴이 혼자서 헛일을 했을 뿐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었다면, 그로써 나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할 뿐일 것입니다.

우연히 귀하께서 이 사이트를 방문하셔서 불필요한 내용을 읽고 시간을 허비하셨다면 그것은 귀하의 실수였을 것이며, 글쓴이가 저지른 잘못은 아닙니다.

이 사이트에는 2017년, 작년 한 해, 약 4만회의 접속, 즉 하루 평균 109회의 접속을 하였습니다.

하루 109회 중에서도 80%(86회 이상) 정도는 사이트의 홈(Home)에 접속만 했을 뿐, 페이지의 내용은 전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이트의 내용을 한 줄이라도 읽어본 접속은 하루 평균 20회 정도입니다.

이마저도 검색포털의 로봇이 하루 2~3회 정도 접속하므로, 실제로 이 사이트의 내용에 관심을 가지시고 페이지를 읽어보시는 분은 10여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루 평균 86회의, 접속은 해도 내용은 읽지 않는 접속자들은 이 사이트에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불편한 정신상태가 일시적으로나마 편안함을 느끼시는 분들입니다.

이 사이트는 게시판이 없습니다.
질문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는 댓글을 달 수 있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읽는 분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는 공감을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감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 스스로의 선택일 뿐입니다.

귀하께서는 ‘사랑’과 ‘양심’에 대해 잘 아신다니 저로써는 무척 부럽습니다.

글쓴이는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사이트를 조금 더 운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심은 자기를 밝히는 빛이고, 정의는 사회를 밝히는 빛이며, 사랑은 상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한 해답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해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매우 부족합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거나 그런 말을 들어서 옮긴 말일 것입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아는 분이 그렇게 말했다면,
있는 일에 도무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기 위해
해답이 아닌 탐구과제를 제시한 것일 것입니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의 정의(定意)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장님들에게
먼저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한 대의(大意)를 앞세워서 주목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는 일(양심·정의·사랑)에 대해 알아보도록 부추기는 명제(命題)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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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자기를 밝히는 빛’이라고 하는데 왜 양심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양심과 자기는 같은 것일까? 양심은 무엇이며 자기는 무엇일까?
양심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정말 양심이 없을까?
양심이 없어도 사람으로 날 수 있을까?
사람은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할까? 자기를 따라 살아야 할까?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이 같을까? 다를까?
내 양심과 사기꾼의 양심은 무엇이 다를까?
양심은 생각일까? 물질일까? 클까? 무거울까?
사람의 몸 안에 양심이란 게 있기는 있을까?
양심은 머리에 있을까? 심장에 있을까? 몸속 어디에 있을까?
내 양심은 언제 어떻게 생겼으며, 내가 죽으면 내 양심은 어떻게 될까?
사람이 태어날 때의 양심과 죽을 때의 양심이 다를까? 같을까?
나에게 양심이 있다면 내가 내 양심을 볼 수 있을까?
내 양심을 남이 보거나 남의 양심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좋은 양심이 있고 나쁜 양심이 있을까? 양심은 모두 좋은 것일까?
양심은 정의· 사랑· 도덕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떤 것을, 무엇을 양심이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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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서 ‘양심이란 자기를 밝히는 빛이다.’라는
글을 읽고 외웠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
나는 양심이란 무엇인지 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럴 때는 “내가 어디에서 ‘양심이란 자기를 밝히는 빛이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어떠냐?
”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양심에 대해 말하려면 ‘양심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의에 대해 말하려면 ‘양심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 대해 말하려면 ‘양심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도덕에 대해 말하려면 ‘양심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정의와 사랑과 도덕을 정확하게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양심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고, 틀리지 않는 해답을 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어렴풋이 긍정하는 것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말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말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먼저 자신부터 속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망치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양심은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양심을 이야기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양심은 감추면서 다른 사람의 양심을 들먹입니다.

 


 

 이 사이트 글을 읽다 보면 기분이 많이 안 좋아진다. 사람들을 대놓고 장님이라 하는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 치고, 사람의 진실성이 42%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의 중지를 모으면 얼마든지 진실성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인간 사회가 발전해 왔지 않나?

글쓴이는 귀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리고 귀하를 불쾌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단히 송구스러운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글쓴이도 장님으로서 여래의 말씀과 행적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므로 곤란을 느끼는 적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다만 자연의 가르침 사이트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글들은 다행히도 주공(Guide)(주)의 조언과 검토를 거쳐서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최저 70% 이상의 진실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 주공(Guide) : Guidance of Guide.  1,  2,  3,  4,  5. -새 창으로 열립니다.-

사람의 ‘진실성’이란 사람의 ‘양심’과 똑같은 것을 두고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진실성이 50%가 채 되지 않는 ‘의식’을 두고 ‘장님’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이 진실성, 양심, 의식, 장님 이라는 4가지 용어의 올바른 뜻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지금 시대의 세상에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래가 세상에 와서 소상하게 알려주려고 무척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래의 말씀을 알아듣고 깨달으려는 사람들이 무척 드물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들의 생각과 어긋나는 여래를 제대로 따르지 못했기에
여래는 25년간의 활동을 통해 겨우 한 사람을 깨우칠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귀하의 의견처럼 42%의 진실성을 여럿 모으면 42% 이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이 크게 내세우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특정 세력(勢力)(주)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세력에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힘의 논리일 뿐이며
‘진실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주의· 생각· 신념’일 뿐입니다.

(주) 세력(勢力) : 남을 복종시키는 기세와 힘. 어떤 속성이나 힘을 가진 집단.

지식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장님들의 세상에 남긴 크나큰 교훈이 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독약을 마시게 하여 죽이는 일을 버젓이 했습니다.

죄 없는 이에게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고, 독약으로 사형을 집행했던 어리석음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뻔뻔한 진실성이 민주주의의 진면목입니다.

75억 인구의 100% 민주주의나 1,100억 인류의 100% 민주주의가
한 목소리로 한 가지의 결정을 선택하고 실행을 하더라도
그것의 진실성은 50%의 수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내 발전한 부분이 조금도 없으며
인간들 스스로 해하고 망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행하고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0.2의 시력을 가진 사람 1,000명이 아무리 보기 위해 노력해도
2.0의 시력을 가진 사람 한 명이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결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3,000만 명의 천재 인간들이 한 자리에 모였더라도
한 사람의 깨달은 자를 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이런 사실에 긍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무시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부탁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자연에 존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있는 ‘나는 아직까지 보람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제 마음에 짠하게 와 닿습니다.

글쓴이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외람됩니다만 귀하의 소감에 대해 고개 숙여 진심으로 경하를 드립니다.

여래의 말을 읽고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참으로 크게 축하해 드릴 일입니다.

소개한 문장은 1991년 8월 17일 동대신동(달마원)에서 여래가 한 말입니다.

여래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고 3년 만에 소연을 만나서 2년 후에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의 한 주택에 깨달음의 집(달마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난 시점에 여래가 앞에 앉은 몇 사람들에게 말한 소회입니다.

그때까지 7년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만 여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으려거나 따르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래로부터 축복을 받고 직접 은혜를 입은 사람들도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여래를 계속해서 만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래는 그 이후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축복하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본인 또는 가족이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치료해 주었으며
이상의 평안을 좇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수용하게 하였으며
종교의 허상을 좇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현실에서 결과를 보게 하였으며 
길거리에서 만난 심신이 망가진 사람에게 축복하고 현실을 보도록 하였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에게 축복하고 철창없는 옥에 가두어 혹독하게 훈련했으며
세월을 허송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축복하고 성공하는 장래를 열어 주었으며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하였으며
그릇된 인연에 끌려가는 청년에게 축복하고 운명을 바꾸어 주었으며
명예를 탐하는 청년에게 축복하고 현실을 알아보고 실리를 갖도록 하였으며
물질을 탐하는 사람에게 축복하고 넉넉한 재물을 가질 수 있게 하였으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동시에 축복하고 그들에게 무사안녕을 선물하였으며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남·녀의 인연을 끊임없이 제시하였으며
권장하지 않은 결혼을 한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사이좋게 헤어지게 하였으며
건강과 실력을 원하는 부모의 자녀들에게 축복하고 모두 갖추어 지게 하였으며
자식을 갖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축복하고 잉태할 수 있게 하였으며
박복한 운명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보다 나은 생활을 하게 하였으며
신과 영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신과 영을 다스려 주었으며
자신을 위한 투자를 서슴지 않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미래를 보장했으며
끝내 자신을 바꾸기를 거부한 사람에게 축복하고 제 운명대로 살아 보게 하였으며
현실의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축복하고 목적을 성취하게 하였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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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여래 생전 주변에 있거나 거쳐 간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법(진실·진리)과 가르침을 찾고 얻어서 세상에 전하고 봉사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가진 문제조차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세상에 온 여래를 위해 사람들이 한 일은 실제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온 여래가 사람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결해주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2008년 8월 21일, 여래가 세상에 오기 전에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때는 ‘나는 보람된 일을 하고 간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그랬을까요? ......

 


 

 사이트의 글들을 읽다보니 점점 궁금해지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틀린 말이 없고 여러모로 훌륭한 말씀이라 생각되는데, 왜 그토록 고생을 많이 하고도 뛰어난 제자나 회원을 여러 사람 남기지 못했을 까요?

이 질문에 대한 설명은 사이트의 여러 페이지에 자세히 설명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가르침’을 읽으며 그 내용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여래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레 갖게 되는 의문인 것 같아서 부연하고자 합니다.

뛰어난 ‘여래의 제자’는 윤소연(尹小蓮) 한 사람을 남겼습니다.
뛰어난 ‘자연과학연구학회 회원’은 주공(主公· Guide) 한 사람을 남겼습니다.

이 한 사람 외에도 스스로 뛰어난 제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또 있을 것입니다.
이 한 사람 외에도 스스로 뛰어난 회원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기록하는 제자는 한 사람 뿐이며, 회원도 한 사람 뿐입니다.

여래 생전 주변에 있거나 거쳐 간 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내로라하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여래의 제자’라거나 ‘자연과학연구학회 회원’이라고 내세우는 것에 당당할 수 있던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이 시대가 이 인류의 마지막 세대이며, 인류역사상 인간들의 의식 수준이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 있던 현실이 여래가 고생할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이유입니다.

이 사이트는 글쓴이 개인의 활동으로써 2001년 2월 24일부터 월드와이드웹에 ‘자연의 가르침’을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이후로 이 사이트를 통해 ‘자연의 가르침’이 전파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래를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로 자칭’하거나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염려하는 것은 여래의 가르침은 옳고 훌륭하지만, 뒤늦게나마 ‘여래의 제자로 자칭’하는 사람들이나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정작 생전의 여래를 직접 만났다면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마도, 정말 아마도
‘여래를 스승으로 삼고 자신이 제자로라’ 하는 사람이 실제로 여래를 만나서 여래의 가르침을 직접 경험한다면 질색(窒塞)
(주)을 하고 백에 백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전부 도망을 하고 말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 질색(窒塞) : 몹시 싫거나 놀라서 기막힐 지경에 이름.

아마도, 정말 아마도
‘여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사람이 실제로 여래를 만나서 여래의 가르침을 직접 경험한다면 질색(窒塞)
(주)을 하고 백에 백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전부 도망을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처의 진실은 장님의 정반대 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장님은 부처가 자신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처는 현실을 가리키고 장님은 자신의 생각을 믿고 따른답니다.
그래서 또다시 어느 시대에선가 종교라는 허상이 생겨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므로 글쓴이가 가장 크게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삼한 여래’를 인간의 종교에 내세우게 되는 일입니다.

제발, 제발
‘이삼한 여래’를 모시거나 섬기거나 믿거나 찬양하거나 빌거나 기복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제발
‘이삼한 여래’를 인간의 종교에 내세우는 일만은 절대 결코 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그저 ‘여래의 가르침’을 ‘체크’해두셨다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즐겨찾기’만 해주시기를 충심으로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여래를 위해 온 것이 조금도 아닙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인간의 위상을 높이고 인간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이트의 주목적이 뭡니까? 이삼한의 생애와 말들을 소개하면서 변화기를 강조해서 사람들이 변화기를 믿고 뭔가 대비하라는 겁니까?

장님들의 풍부한 상상력은 현상의 진실을 손쉽게 훌쩍 뛰어 넘어 버리는 군요.

이 사이트는 여래를 소개하고, 여래가 자연의 진실을 말한 것을 기록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광활한 상상과 현명한 추측이 내린 판단에 적절히 맞아 떨어지는 호응을 해드리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사이트가 소개하고 있는 여래(如來)의 과거는 이삼한(李三漢)이며, 여래를 소개하기 위해 과거의 이삼한을 인용할 뿐, 이 사이트는 이삼한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삼한’은 ‘여래’가 되었으며, ‘여래’는 ‘이삼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이트는 ‘여래’와 ‘여래의 진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래의 진실‘은 ‘자연의 진실· 자연의 가르침’으로 쉽게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가르침’은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은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가르침’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알려 주는 것’은 ‘나타내거나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은 알려는 사람,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은 제자가 있고 없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자연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을 위해 ‘여래가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가 알려 주는 변화기’는 하고 많은, 수많은 자연의 진실 중에 있는 한 가지 현상일 뿐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변화기의 진실’보다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한
‘우리들의 삶의 진실’
에 대해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말세, 심판, 휴거, 재림, 천국과 지옥에 깊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사이트의 '변화기'도 심판의 확신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귀하께서 가지고 계신 깊은 믿음에 심심(深甚)한 경의를 드립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수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그 생각을 믿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상상에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면 그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사람은 현실을 기준으로 살도록 자연이 창조해낸 최상의 생명체입니다.

사람이 비현실을 기준으로 사는 것은 자연을 위배하는 행위가 될 뿐이며, 자신을 최저의 생명체로 전락(轉落)하게 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귀하께서 깊이 믿는 대상들이 자연에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어떤 것도 확인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변화기’는 귀하께서 깊이 믿는 말세, 심판, 재림, 천국, 지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어떤 유사점도 없음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자연의 변화기는 귀하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있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자연의 변화기는 자연의 필요에 의해 자연 자체가 정상화하는 순환의 한 과정일 따름입니다.

자연이 자연을 정상화하는 순환 과정 속에서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모든 현상들이 대부분 소멸(消滅· 掃滅· 燒滅)할 것입니다.

 


 

 이 사이트의 글을 읽고 내 자신과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려면 나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합니까?

먼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글을 읽습니다.

신중(愼重)한 마음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글을 읽습니다.

여래의 말이든 글쓴이의 말이든 굳이 의식하지 않고 글을 읽습니다.

일단 한 페이지의 전체 내용을 한 번, 죽 읽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한 단어씩, 천천히 한 문장씩 끝까지 읽습니다.

내용이 머릿속에 숙지되었는지 상기(想起)합니다.
(한 페이지의 내용과 주제를 머릿속에 정리합니다.)

글의 내용과 주제가 현실과 실제로 일치하는지, 하지 않는지 비교 확인을 합니다.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을 자신이 확인한 내용만 신뢰를 가집니다.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확인을 계속 진행합니다.
(읽은 내용을 무조건 믿거나 함부로 받아들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자연의 가르침’ 페이지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고, 확인할 수 없고, 그대로 믿기도 불편하신 분은

이 사이트를 못 봤던 것처럼 무시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나는 깨달은 사람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하는데, 진실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설명할 때 이미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 시대에 세상 어느 지역이나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이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흔하게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는 깨달은 분· 覺者, 여래· 生佛, 도인· 道士들께서 수천 명 이상 활동하시는 걸로 소문으로 들은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많은 깨달은 분들께서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진실은 말을 하지 않고, 말로 설명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요.
귀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깨달은 분 중에 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깨달은 분께서 지금 막 깜빡하고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진실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귀하께서는 진실에 대해 말씀을 하셨고, 진리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시면서 저에게 진리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아닙니까? 그렇다면 귀하께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귀하는 깨달은 분이 아니십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귀하의 논리 그대로 귀하께서는 스스로 진실과 진리에 대해 모른다고 실토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깨달은 분이 아니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 조차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무지(無知)를 쉽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웹페이지 제작에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다. 저는 문장 편집,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번역(영어, 일어)에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가능한 일이 아니며,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척 송구스러운 답변을 드립니다만 최상급 실력을 갖고 계시더라도 어렵습니다.

여래의 말과 행동을 그 뜻에 맞게(어긋나지 않게) 한글 맞춤법에 따라 문자로 기록하고 또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단순 사무 작업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래의 말과 행동을 그 뜻에 맞게(어긋나지 않게) 사진· 삽화· 동적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단순 사무 작업이 될 수 없습니다.

여래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여래의 말과 행동과 그 결과를 직접 경험하고 확인해 본 사람들도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너무나 어려워하는 작업입니다.

여래의 진실(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전하는 작업은 가치 있는 일이지만, 진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자신의 생각으로 기록을 만들 경우,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를 낳거나 원하지 않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기록을 만든 자신이 전적으로 지게 됩니다.

사무 실력은 하급이어도 상관없습니다만 여래의 진실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조건이며 필수적인 자격요건입니다.

 


 

 지구(地球)적인 심판? 종말? 변화기? 이런 게 정말 있기나 있는 일인가요?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이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고부터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 속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얘기들 아닌가요?

심판(審判)은 자연과 사람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고 처분을 내릴 주체가 애매합니다.

종말(終末)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황폐화 되거나 없어져야 되는데 가능할까요?

변화기(變化期)는 자연과 사람에게서 언제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며, 지구(地球)적으로도 때가 되면 당연히 있게 되는 일입니다.

 


 

 이 사이트는 종교요? 아니면 사이비요? 이삼한 여래는 종교인이요?

아마도 귀하께서 알고 있는 [종교나 사이비]라는 범주에는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삼한 여래는 귀하께서 말한 [종교인]의 범주에는 들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 ‘종교(宗敎)’를 찾으면 ‘신 또는 초인간적 존재를 우주와 사람의 지배자이며 인도자로 믿고 복종하면서, 일정한 의식을 통하여 예배하며 일정한 윤리나 철학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으며, 인터넷으로 ‘종교(宗敎)’를 검색하면 국어사전의 설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어슷비슷한 설명들의 자료만 나열됩니다.

아마 귀하께서도 ‘종교(宗敎)’에 대한 이해가 국어사전이나 검색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상정하고 답변을 드립니다.

‘종교(宗敎)’라는 용어의 정의는 ‘근본 가르침’을 뜻하지만, 지금 시대 인간 사회에 ‘근본 가르침’을 내세우고 가르치는 종교나 사이비나 종교인은 없습니다.

이 시대에서 ‘종교’나 ‘사이비’나 ‘종교인’이라 하는 대상들은 모두 그들의 신과 그들의 이론과 그들의 신성을 얘기하고 찬양하고 기원할 뿐입니다.

이 사이트와 이삼한 여래는 종교나 사이비나 종교인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여래의 가르침이며, 이삼한 여래는 자연의 진실입니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좋아지고 있습니까? 나빠지고 있습니까?

지금 한반도의 정치와 사회는 지리적, 역사적으로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신풀이·한풀이를 하는데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신과 한을 켜켜이 쌓아두는 것보다는 풀어주는 쪽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풀이·한풀이를 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와 사회가 신(神)과 한(恨)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신과 한을 만들지 않으려면 개인양심과 사회정의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양심과 정의를 알지 못하고 배우려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 사이트에 접속하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이 사이트에서 보냅니다. 글쓴이 운영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만날 수 없다면 통화나 이메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글쓴이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이트와 관련하여 낯모르는 사람을 만나야 할 책무(責務· 책임이나 의무)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통화나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할 어떤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만일 저의 숙소로 찾아오더라도 만나지 않습니다.
만일 전화나 이메일을 하더라도 받지 않습니다.

이유는 딱 한 가지뿐입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일을 하느라 24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의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해소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멋진 삶입니다.

 


 

 이삼한 여래를 스승으로 모시는 게 잘못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귀하의 판단에 큰 착오가 있습니다.

이삼한 여래를 생전에 만날 인연도 없던 분인데, 돌아가신 여래를 어떻게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단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래를 스승으로 삼는 것은 실제 상황과는 너무 괴리가 큰 착각에 불과합니다.

떠도는 잡귀가 여래로 위장 변신하여 귀하에게 현몽할 수는 있겠지만, 극락에 있는 여래가 아무 연고도 없는 귀하를 무슨 수로 알아보고 찾아오겠습니까?

착오와 착각으로 귀하의 소중한 삶을 허비하지 마시기를 정중하게 호소 드립니다.

만약 진정으로 이삼한 여래를 받들겠다는 소망이 있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여래가 두고 가신 말과 행동들을 기록하고 있는 이 사이트의 글과 행적 소개를 열심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 자신이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을 만한 여래의 가르침을 가르침 그대로 따르려 열심히 노력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서 숙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그런 과정을 수 없이 반복하면서 여래의 말과 행적에 감동과 깨달음을 갖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 다름 기회에 부처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을 충분히 지으시기를 충심(衷心)으로 권해드립니다.

 


 

 포항 부근에서 지진이 났는데 변화기와 관련이 있습니까?

제가 답해야 할 성격의 질문은 아닙니다만, 변화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한반도에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소?

글쎄요? 가능성은 있겠지요?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는 대한민국과 북한과 미국의 권력자들이 결정할 일이겠지요?

 


 

 업데이트를 할 거면 지속적으로 하세요. 질문은 올려져 있는데 답변은 쓰지 않고, 올린다는 자료는 언제 올리는지 감질만 나게 하네요. 갖고 있는 자료를 빠른 시일 내로 모두 올려 주세요.

인터넷으로 갖가지 자료들을 수집하시는 분이십니까?

이 사이트 운영자는 평범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먹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살다보면 별 일도 생기고, 별 일이 사이트를 챙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지 싶습니다.

이삼한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사이트 아닌 다른 사이트를 운영하고, 여래의 말과 행적을 글로 정리해서 보여준다면,

나도 편안하게 기대고 누워서 그 사이트의 글들을 읽거나 말거나 하고 싶다는 유혹이 심하게 충동질할 때면, 업데이트를 할 수 있는 의지가 회복할 때까지 휴식을 하기도 합니다.

안 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을,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는 일을, 안하면 안 되는 것처럼 억지로 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어르고 달래서, 삶과 의지가 지속되는 동안, 기력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전기가 공급되는 동안, 차일피일 시나브로 업데이트 하게 될 것입니다.

여래가 남긴 말을 글로 옮기고, 저의 기억이 여래의 행적을 찾아서 꺼내는 만큼 자료는 얼마든지 만들어 질 것입니다.

갖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다른 사람이 보도록 전시하고, 내용을 자기 머릿속에 담아 두는 것은 자기를 기만하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어디선가 그럴듯한 명언이라도 한 구절 보았다면,
남 앞에 전시해놓고 제 것처럼 내세우거나, 머릿속에 담아서 아는 척하기보다,
먼저 그 명언이 갖고 있는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없이 많은 이론을 수집해서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연결하면, 세상의 진실이 구성되고 세상의 진리가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진실이고, 진리는 진리이고, 이론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이론일 뿐입니다.

 


 

 내가 바로 여래가 찾던 그 당사자라고 판단합니다. 확인바랍니다.

글쓴이는 확인해드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 수준도 못됩니다.

귀하께서 그러시다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세상에 모든 사람 개개인이 그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귀하께서 당사자라 해서 귀하의 삶이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귀하에게 달리 해드릴 일도 물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귀하께서 그러시다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당신 스스로 감당하시겠지요.

 


 

 변화기에 대한 나의 생존 가능성과 비상 대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지금 우리는 전기(電氣· electricity)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변화기가 와서 전기가 없는 시대에도 살고 싶습니까?

전기가 없는 시대에 살게 될 자신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남은 시일동안 더 좋은 자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든든한 대비책입니다.

좋은 자기를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여래는 왜 한 사람만 찾으려 했나요? 부처라면 모든 사람들을 구제해야 되지 않나요?

세상에 온 부처가 한 사람을 찾겠다고 하면,
여러 사람들이 너도나도 서로 먼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삼한 여래는 인연 없는 중생까지 구하기 위해 한국과 해외를 떠돌며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따르고 배우려는 자가 없어서 그 한 사람조차도 제대로 다 깨우쳐 놓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수준이 최하한선까지 떨어져 있던 탓입니다.

이제 여래는 돌아갔으며, 말과 행적만을 이 사이트에 글로써 남겨졌을 뿐입니다.

이제라도 부처에게 구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이트에 남겨진 여래의 말과 행적을 정독하시면 될 것입니다.

 


 

 여래를 이제야 알게 되어 유감입니다. 생전에 만났더라면...

가장 중요한 점을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인연 없는 중생은 부처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회자(膾炙)되어 왔지요.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서 부처를 만날 인연을 지으셔야 합니다.

덧붙이면, 부처를 만나 부처인 줄 알아보는 인연까지 함께 지으셔야 합니다.

 


 

 이따위 사이트 왜 하는 거요. 때려치우시오.

이 사이트는 기록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긍정도, 동조도, 호응도, 추종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협조도, 사례도, 찬사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하께서는 ‘봐도 못 본 척’ 그냥 무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대로 기록을 읽거나, 가치 있게 봐 주시는 분은 어차피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기록만 전한다는데 믿기가 어렵네요? 이 사이트의 실제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삼한 여래의 말과 행동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전하는 것이 실제 목적입니다.

이 사이트는 오욕을 탐하지 않으며 관심이 없습니다.

· 명예를 탐하지 말라. - 이 시대의 대세(大勢)인 팔로우(follow)를 배격합니다. 명성과 세력을 바라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것이 다행입니다.

· 물질을 탐하지 말라. - 동조자나 후원금을 바라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는 대상입니다. 동조자나 후원금은 있으면 있을수록 문제만 생길 뿐입니다.

어떻게든 기록은 남겨 놓으려 하는데, 어떻게든 전해지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