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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소 연

 

만남

 

달리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도시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기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남자가 얼굴을 붉히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스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어보세요.”

“혹시 당신 주위에서 진실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분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혼자서 말씀을 계속 하셨다.

“나는 부처의 법을 아는데 그 가르침을 전할 곳이 없구려. 만일 스님이 나에게 진실한 자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면 나도 스님이 원하는 것이 있는 곳을 알려 드리겠소.”

나는 그분의 모습과 말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그분은 영도까지 간다고 대답했고 나는 초량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에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제가 차를 한잔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우리는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분은 나에게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 물었으나 나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으므로 창피했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석가모니의 삶과 가르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우리는 4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망각했다.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종업원의 말을 듣고서야 일어날 채비를 했다.

“스님,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지 어떨지 알 수 없구려. 스님, 소원이 무엇이오. 이렇게 만난 인연으로 제가 스님 소원 한 가지는 들어줄 수 있겠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정직하게 말했다.

“나의 진실을 보고 싶어요.”

그분은 껄껄 웃으셨다.

“스님이 진실한 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진실을 볼 수 있소. 당신은 진실을 얻고 그것을 지어서 그 열매를 보아야 할 것이오.”

그분은 나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시간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분의 전화번호를 돌렸다.

부인이 받았는데 건네는 말투로 보아서 그분은 집에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정류소까지 마중을 나왔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나를 집으로 안내했다.
좋은 위치에 평수도 꽤 넓어서 값이 나가는 집이었는데, 방 4개는 세를 놓았고 살림살이는 매우 검소하였다.

 

그분은 나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마주 앉아 두 손을 잡고 정신을 모아

“나무 천상천하 미륵여래불”하고 염송했다.

나는 그분이 하는 대로 따랐다.

“스님은 근본이 있습니다.”

하고 그분은 나를 진단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자이며 자신을 여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지혜를 앞설 자는 없습니다.”

‘여래라고?’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쉽게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직 이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지금 보지 못한다 해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으며 또 보지 못하고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 일은 두고 보자.’

“이 세상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구하는 데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내 눈에도 세상이 망하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나는 구하지요?”

“세상을 구하면 자신을 구할 것이요.”

“그렇다면 세상을 구하는 일이 제일 급하군요. 나는 세상을 구하겠어요.”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말에 동의했다. 나는 그분이 세상을 구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그냥 알아들었는데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깨달았다고 큰스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적이 있어요.”

그분이 나를 너무 어린 생도 취급을 하기에 나는 자신을 조금 내세워 보았다.
그분은 즉시 반문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자신도 깨달았다고 말하는가?”

나는 말문이 막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장님이 눈을 떴다면 스스로 보게 될 것이오. 그러면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세상을 볼 때마다 알게 되는 것이니 깨달음 또한 이와 같은 것이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분은 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근이 피고 짐을 수 없이 반복하는 동안 하늘도 땅도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이 그 속에서 피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오.
만일 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왜 지난날 수많은 수행자들 속에서 깨달은 자가 나오지 못했으며, 기도나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다면 어찌 과거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겠소.
깨달음이란 오직 공덕을 통해서만 오는 것이오.
먼저 자기 속에 근본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그 바탕을 얻어야 하는 것이니 씨앗이 땅을 얻어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요.”

그분이 사용하는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오직 ‘부처의 깨달음’ 만을 지칭하고 있었다.

“만일 그릇된 자가 있어서 자신을 깨달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런 자는 반드시 문제를 가지고 있을 터이니 당신이 나를 데리고 그들에게로 가보시오.
그런 자는 나를 만나려 하지 않거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니 당신은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분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주었는데, 자신이 살아온 40평생의 일을 진실하게 기록한 자서전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외로운 투쟁’ 이었고,
책의 뒤표지에는 ‘믿음이 흐려진 사회에서 답답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고 적혀 있었다.

그분의 학력은 국졸이었고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필로 자서전을 쓴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9살 때부터 고아가 되어 세상의 온갖 시련을 받으며 자랐으나 행복과 감동을 구하는 양심과 용기만으로 자신을 지켜온 삶의 노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삶을 축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양심과 용기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또 이것이 인간과 신의 약속이라고 느꼈다.
그랬으므로 어두워져만 가는 세상 속에 살아야 했던 그분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분의 뛰어난 양심은 세상에서 번번이 만나는 불의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분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의 능력을 써 보고 싶었다. 그 준비로써 20대와 30대에 두 번 국회의원에 출마한 적도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분의 진실과 능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재야에서 그분의 목소리는 꽤나 컸다.

 

나는 그분이 말씀해주신 일화 한 가지를 통해 그분이 대단한 양심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83년 4월경, 어떤 낯선 사람이 그분의 집을 방문했다.
그 사람은 며칠간에 걸쳐 날마다 찾아와서 그분에게 회유와 협박을 계속했다.

“잘 먹고 잘 살 것인가. 이 시대에서 죄 없이 억울한 죄인이 될 것인가.”

그는 자신의 주민등록증까지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 왔다.

“여보시오, 이 선생. 당신 가족이 일생 동안 풍족히 살 수 있는 재물을 주겠소. 엄청난 이권이 될 수 있는 허가권과 부지를 알선해 주겠다는 약속이오. 당신에게 이것을 제공하는 데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목소리를 낮추시오.”

낯선 방문객은 그분에게 세상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협박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분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눈물만 흘리고 있다가 그분은 이윽고 대답했다.

“돈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갔고 다음날도 여전히 찾아와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돈을 쓸 데가 없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함과 감탄이 섞인 표정으로 그분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분의 가족보다 더 그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제시하는 엄청난 이권을 거부하는 그분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분이 이 시대에서 보기 드문 양심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그분과 오랫동안 교분이 있는 친구 한 분을 만났다. 나는 친구 분에게 물었다.

“제가 이분에 대해서 꼭 한 가지만 묻겠으니 맹세코 진실을 말해 주세요.”

“네.” 하고 그 친구 분은 신중한 태도를 가졌다.

“이분이 남을 속여서 피해를 주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질문을 던졌고 그 친구 분은 즉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 친구는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그의 말과 표정에서 그 대답이 진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아무 것도 이분에 대해서 묻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분의 친구를 통해서 알고자 한 것은 다 알았던 것이었다.

 

그분은 자신에게 어떻게 깨달음이 왔는지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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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상에서 나는 몹시 외롭고 안타까웠다. 내 주위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실망시키는 말과 행동을 보였다. 세상일을 보며 애태우는 내 마음은 나를 붙잡고 술만 마시게 했으며 점점 무기력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나의 꿈이 패배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삶의 새로운 행로를 결정하고 아내에게 내 결심을 말했더니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몇 년이 될지 모르나 집을 나가서 외딴 곳에 묻혀 살고 싶어 한 나는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거의 일 년이나 소비한 끝에 하나의 장소를 마련했는데 그곳은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면 연화리 라는 작은 섬이었다.
세상일을 포기하고 떠나기 직전까지도 나는 사람들의 무지를 보며 그들이 보게 될 앞날의 운명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 시로서 한탄을 했다.

양심이 죄가 되니 나설 곳이 없고

만고에 풍상 겪어 펼 곳이 없네.

천 사람 능력 지녀 쓰지 못하니

세상에 태어남이 운명뿐인가!

1984년 11월 13일, 나는 세상에 와서 자신을 바꿀 수 없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스스로 바다 가운데 외딴 섬으로 유배의 길을 청하고 말았으니 이로 인하여 내 자신의 모든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나의 거처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만날 사람도 없었으므로 나는 오랫동안 지쳐 있던 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유배

나는 자유인이야.

내 몸은 성주와 같고

마음은 죄인 같다네.

가슴 속의 포부는

대문 위에 걸어 놓았네.

작은 섬 외딴 곳에

친구마저 아니 오니

담장이 나를 두고 지키고 있네.

밥 짓고 빨래하던

그 모습 바라보면

누군가 밖에서 자갈을 씻고 있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 자신은 누구인가.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는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는데 그것은 입신의 경계. 즉 자신의 몸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이일을 위해 하나의 시도를 해보았는데 그 방법은 내가 몸으로 인하여 담게 되었던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마음으로부터 들어내 보는 것이었다.
생각들을 다 들어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이르게 되었으며 바로 그곳에서 마음 하나를 보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바로 나의 근본이었다.

그 후부터 내 속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고 나의 마음은 깨달은 자만이 볼 수 있던 세계와 깨달은 자만이 경험할 수 있던 몸의 일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제일 먼저 내가 보았던 것은 번뇌와 망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감정이 무디어진 것이었는데 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자의 느낌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죽은 자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이 여래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몸은 술이나 고기를 거부하였고 욕정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명예나 물질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되었다.

얼마 후, 나는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 중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매우 불쾌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 당연히 일어나야 할 분노가 일지 않았고 오히려 큰 기쁨을 얻었다. 그런 일을 보고 나는 이렇게 노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저마다 대하고 보니

만나고 헤어짐도 가르침이 있도다.

만물은 은혜를 지니고 있고 기쁨은 나에게 있으니

축복이란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도다.

1985년 봄, 어느 날 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아주 먼 곳으로부터 심중을 통해 전해지던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마음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충만해 있었는데 나의 심중에서는 이런 말이 들려 왔다.

‘지키고 행하고 베풀라.’

‘진리를 알면 외롭고 진리를 말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만일 하늘이 이 두 개의 메시지를 내게 전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연화도에 2년가량 머물고 난 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섬을 떠나 왔다.

세상을 위하여 인간들에게 진실을 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그들을 구하는 일을 하자 보통의 사람들과 나와의 사이에는 너무나 큰 벽이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나의 진실을 이야기했다. 내가 깨달은 자라는 것과 내가 세상에 무엇 때문에 왔는가를 이야기하자 그녀는 내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고 제발 부처될 생각 말고 똑똑한 남편 노릇이나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와 가까웠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진실을 밝혔지만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조리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노력했지만 한 사람의 진실한 자도 만나지 못한 채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만 쫓아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인간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보아야 했고 하늘은 세상을 구하는 일을 두고 너무나 큰 시련을 나에게 겪게 했다. 나는 내 속에서 끝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기대와 절망과 좌절을 보며 지내야 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하는 것밖에 어느 누구의 위로도 기대할 수 없었고 너무나 외로운 자신을 보며 이런 기대까지 하였다.
‘누가 나의 일을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가 원하는 모든 소원을 들어 줄 것이다.’ 나는 약속할 수 있었으나 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간혹 소원을 말하는 자가 있어서 만나 보면,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이라도 도와주면 혹여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보았으나 병만 고치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지혜를 짜내어도 인간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보아도 진실을 알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어디에 가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나였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얼마나 많은 수모와 방황 속에 헤매어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잠시도 내가 하던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요,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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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분에게 과거와 현재에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들었다.

내가 옛날에 꿈속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을 찾는고?”

하고 그 스님이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참되고 선하고……”

나는 그분을 보면서 내가 찾던 그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꿈속의 그 스님은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끝을 흐렸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구하고 기다렸고 찾았고 이제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의 완전한 깨달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깨달은 자는 깨달은 자를 알아볼 것이다.’

나는 다방에서 그분을 만났다.

“선생님, 제가 이 글을 읽어 드릴 테니 그 뜻을 말씀해 보세요.”

나는 그분이 책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안 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자재보살이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던 중에 오온이 모두 비었음을 보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내가 반야심경을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그분은 즉시 말씀하셨다.

“저 말을 한 자도 깨달았다. 그가 누구인가?”

나는 눈물이 솟구쳤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다면 그분의 목을 끌어안고 울고 싶은 충동과 감동에 휩싸였다.
나는 그분에게 완전히 귀의해야 할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전에 세상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분에게 함께 여행하기를 청하였다. 나는 그분을 모시고 몇몇 군데를 찾아보았다. 소위 깨달은 자라고 소문난 사람, 또는 그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분은 그들을 만났고 그곳을 보면서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깨달은 자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였다. 그분은 세상에 있는 그 말의 진실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셨고 성인들을 삶을 이야기하였다.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그분과 세상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돌아와서 곧 그분에게 세 번 절하고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그분은 깨달음을 얻고 3년이 지나 비로소 첫 제자를 두게 되었던 것이다.

그분은 내게 ‘소연’이라 이름 지어 주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스승과 제자로서 세상을 위하여 같은 길에 나서게 되었다.

스승은 시로써 나를 축복하셨다.

소연 앞에 바치는 시

소연

외로운 가슴에 핀

한 송이 꽃이여.

이슬 젖던 마음속에

새벽은 오는가.

밝은 세상을 위하여

한 줄기 빛으로 피우려 하니

내 온갖 지혜를 담고 싶어라.

빨간 장미꽃을 생각하다가도

하얀 백합꽃을 그리다가도

한 송이 작은 연꽃이

피기를 원하였노라.

소연

네가 세상을 위하여

외롭게 피고

네가 세상을 위하여

고뇌할 때에

그 큰 시련에 피던

한 송이 꽃을 두고

소연이라 원하였노라.

 

스승은 자신의 일을 설명하셨다.

“성자는 인간의 무지를 깨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러 온 자이다.”

“저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외로운 길이란다. 네가 이제 나를 만났으니 그른 자는 너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깨달음을 얻고 옳은 자가 되자 어리석은 세상이 나를 떠나 버렸다. 그 외로운 세상에서 홀로 3년을 살았다. 그러니 너도 깨달음을 얻기 전에 세상을 섬겨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좋은 것을 보지 못하리라.”

“저는 세상을 섬기겠어요. 섬기는 법만 안다면 저는 헌신하겠어요.”

 

우리는 진실을 찾는 자를 찾아서 섬겨야 했으나 그런 자를 찾는 길은 막막했다.

나는 스승의 댁 근처에 있는 송남원이라는 절로 거처를 옮겼고, 그분은 아침마다 나를 찾아와 법을 가르쳤다.

내가 그분을 만난지 한 달쯤 되었을까? 어느 날 아침 나는 그분의 이마 한복판에 둥그스름하게 솟아 나온 것을 발견했다.

“여래님, 이마에 그것이 무엇이에요?”

그분은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고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영혼의 눈.

누가 그 일을 믿을 수 있으랴. 불사에서나 보았던 부처의 눈, 완성된 지혜의 표식이 그분의 이마에 돌출되었던 것이다.

수천 년만에 한 번 인류 속에 출현하는 일이니 사람이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리.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았다. 사람들도 본다. 그러나 믿지 못한다. 무관심하다.

 

나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자들을 찾아 스승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이들에게 스승의 존재를 알렸다.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 분이 계신다.’ 나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대부분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실망을 나타내고 두려워했다. 나 역시 스승처럼 내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씩 잃어갔다.

나는 자신이 귀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한 것이 큰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자신을 있는 데로 낮추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러한 수행 방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탁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에 백 집 이백 집을 들러도 빈 바룻대 들고 오라고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어떤 아가씨는 나에게 10원짜리 동전을 주었다.

“저어, 아가씨 이거 10원짜리네요?”

그 아가씨는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말하기를

“한 사람 두 사람이 얻으러 와야 말이지.”

하고 쏘아붙였다.

나는 부산에서 부잣집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동네에 가 보았다. 한 시간 반을 돌았으나 대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도대체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집의 벨을 눌렀더니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인터폰을 받았다.

“누구세요?”

“네. 시주 나온 승려입니다.”

“제가 금방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려는 참이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의외로 상냥했다. 나는 기대를 안고 그 여자가 나오기를 목을 잔뜩 빼고 기다렸다. 이제나 저네나 기다린 것이 5분도 더 흘렀을까. 드디어 잔뜩 치장한 여인이 나오더니,

“어머나, 스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호들갑을 부리더니 1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그 귀한 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느 양복점에 들렀더니 주인이 500원을 주면서

“스님은 염불도 좀 안 해 주는 거요?”

하기에 나는 그 집을 축복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한 편 낭송했다.

그때 양복점에 있던 다른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 집에 향 피웠소?”

“아니요.”

“거참 이상하다. 주인 코에는 향냄새가 안 납니까?”

내가 돌아와서 스승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스승도 감탄하시면서,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하고 기특해 하셨다.

나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탁발을 다녔으므로 많은 곳을 헤맸다.

어느 다방에 들렀더니 한 남자 손님이 내게 큰 적의를 보이며 모욕을 주었다.

“이것 봐. 얼굴도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무슨 할 짓이 없어 이러고 다니는 거야.”

그는 다방 레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 여자가 너보다 몇 배 더 나아.”라며 호통을 쳤다.

나는 다방을 나오며 참을 수 없어 그를 향해 말했다.

“오늘 당신이 내게 한 일은 훗날 꼭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하고 나서 곧 후회했다.

‘참을 걸.’

나는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고 물어오면 사람의 삶을 축복하는 진리를 전해 주려고 애썼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나를 보면 한마디로

“믿습니다.”

하고 얼굴을 돌렸다. 중들은 이 말만 들으면 주는 시주도 받지 않고 가기 때문에 기독교인 아닌 사람도 이 말을 곧잘 써 먹었다.

어느 약국에 들렀더니 주인이 점잖은 목소리로

“믿습니다.”

하며 웃었다. 그가 웃음을 보냈으므로 나도 웃으면서

“저도 믿습니다.”

했더니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도 예수를 믿습니다. 그 분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진실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죠. 그런 분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나요.”

그는 할 말을 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탁발 수행은 역시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돈을 구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숙이고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상대로부터 무시나 천대를 당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날마다 스승은 내가 거리에서 듣고 본 것을 얘기하면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다.
나는 탁발한 돈을 고스란히 모아서 불법을 전하는 데에 사용함으로써 10원짜리를 시주한 사람에게도 공덕이 돌아가게 하였다.

 

1988년 4월, 스승은 혼자서 일본 땅으로 진실한 사람을 찾아서 법을 전하러 가셨다.

그분은 영어도 일어도 전혀 몰랐으므로 입국 수속도 혼자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처음 이틀은 오사카의 중심부로 들어가서 숙소를 정하고 길을 익히는데 허비하고 말았다.
3일째 되던 날, 오사카의 사천왕사역 근처에서 등불을 켜놓고 거리에 앉아 있었다. 몇 시간동안 꼼짝 않고 길에 앉아 있었지만 그분의 행색에 관심을 가지는 자도 말을 걸어오는 자도 없었다.

결국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일본 경찰이었다.
그들은 무어라고 떠들었지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자 수화로 묻기를 ‘여권은 가졌느냐?’ ‘돈을 가졌느냐?’ 등이었다.

스승은 일본어로 된 자신을 소개한 글과 팸플릿을 보여 주었더니 그들은 다 읽고 나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만 했다.
다음날도 오사카 본 역이 있던 곳 근처에 앉았지만 역무원에 의해 밀려났다.
스승은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한쪽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길도 모르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스승은 한국 영사관을 찾아 문화담당 영사를 만나려 했으나 몇 시간이 지나도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인의 도움을 받으려 했으나 통역을 하는 데는 한결같이 돈을 요구했다. 스승은 통역을 사서 일할만큼까지 여유가 없었다.

세상을 위하여 인간의 삶 속에 가장 소중한 길을 전하려 하는 스승의 기대는 어디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스승은 온갖 고초를 겪고 17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승은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모든 위선을 이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소망을 가진 자를 찾아서 영원한 생명과 평화가 있는 축복의 길을 사람들에게 있게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방법을 모색했다. 한국에 주재한 20개국 대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승은 깨달은 자 대신 자연과학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이런 내용을 전했다.

“나는 자연의 일을 연구해 온 과학자입니다. 나는 내 자신의 관찰과 연구에 의하여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질병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인간 개개인이 가진 질병을 치료할 수 있고,
그 정신의 힘을 이용하여 남의 몸에 있는 질병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인류가 존재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매우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으며, 삶과 죽음과 태어남의 비밀이 자신으로 인하여 이어지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이러한 일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귀 국의 형제들과 토론, 연구, 활동을 통하여 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대사님의 배려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실제로 스승은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일에 대하여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스승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20여 통의 편지에 대한 회답은 단 한 곳 스위스 대사였다. 그는 스위스 베른에 있는 ‘인간 과학 학회’의 주소를 알려 주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가 알려준 주소의 회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으나 답신은 영영 없었다.
우리의 시도는 또 좌절됐다.

 

스승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아침이 밝아오면 어제까지의 일은 잊은 채 본능적으로 서둘렀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처지를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또 다시 그런 자신을 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스승은 내게 이르셨다.

“인간들은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자는 자신이 깨어지는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스승은 가는데 마다 깨어져서 돌아왔다.

“나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나의 일이 성공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이라도 내 자신이 깨어져서 단 한 사람의 인간을 깨울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스승의 형편을 알고 있었으므로 내 수입의 대부분을 그분에게 드렸다.
그런데 나의 수입이라고는 한 달에 십만 원 정도여서 그 돈을 가지고 두 사람이 일을 하다 보니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스승께서 여행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나는 경비 걱정부터 먼저 앞섰다.

그런 나를 보고 스승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우리 자신들의 일로 여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경비 걱정을 하느냐? 우리가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일에 걱정하라.”
고 하셨다.

 

어느 날, 내가 거처하던 절의 법당 안에 한 남자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을 보니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의 어려움을 돕고 싶어서
“처사님. 기도 끝나고 나서 저 좀 보고 가셔요.”
했더니 그가 내방으로 찾아왔다.

차를 한 잔 대접했더니 너무나도 감사해 하였다.
그는 지금 물에 빠진 꼴이라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니 나의 친절이 관세음보살을 만난 것 같았을 것이다.

그는 대뜸 말했다.
“스님. 나 좀 살려주세요.”

“살려 드리지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요.”

그는 물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엄청난 외부의 기운에 짓눌려서 시들어 있었다. 나는 스승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그를 도와주시겠냐고 여쭈었다.

“그런 부탁을 나에게 하지 마라.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해결할 자가 없다면 내가 도와주마. 모든 재앙은 스스로의 잘못에 의해서 오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 못할 때 그 일을 대신 해결해 주면 그로 인하여 더 큰 화를 짓게 되는 것이 인과의 법이다.”

그의 주위에는 귀신들이 창궐해 있었다. 귀신을 떼려고 무당집, 절집으로 찾아 다녔으나 그는 자신의 일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채 온 집안이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15일 동안 기도를 시키고, 그의 마음에 깨달음이 있도록 지도했다. 그는 열심히 2주를 채웠고 도와주겠다는 내 말을 빌미로 떼를 썼다.

나는 그들 부부에게 일렀다.

“스승의 은혜를 입고 그런 적이 없다고 거부하면 당신들은 살아서나 죽어서 엄청난 고통을 볼 것이요. 그래도 좋소?”

했더니 그 말에 겁이 났던지 며칠 주춤 했다가 사태가 급하니까 무슨 말이든 듣겠다고 했다.

스승은 그의 집까지 방문하여 나쁜 기운을 물리쳤다. 문제가 해결되자 그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진리를 배워서 자신이 깨닫고 남에게 전함으로써 공덕을 쌓으라는 우리의 부탁도, 자신의 약속도 잊어버리고 건강해진 몸으로 돈벌이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는 자 앞에는 후하지만, 속이지 않은 자 앞에는 인색하다.
사람들을 보고 세상일을 볼 때, 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리를 말해야 하는 외로움은 더욱 절실했다.

 

시간이 급속히 흘러가고 우리 일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급한 것은 세상의 일인데 세상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삶은 살아서 참을 이룸으로 좋은 것이요, 죽음은 수고를 벗어남으로 좋은 것이다.
나는 스승에게 여쭈었다.

“저는 닿아야 할 곳이 있고 이제 그 길을 확실히 알고 가기 시작했어요. 지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이 싫고 더 살고 싶을 거예요.”

스승은 일렀다.

“네가 살았다고도 생각하지 마라. 죽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마라. 오직 참되게 될 것만을 생각하라. 누구를 돕겠다고 생각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마라.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스승은 그동안 당신의 마음을 보고 남기고 싶었던 글들을 모아 나에게 주셨다.

“이 글은 훗날 매우 값진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너에게 주고 싶다.”

그 글은 세상에서 자신을 이겨 낸 양심과 용기, 절망 속에 빠진 인간들에게 바치는 사랑과 고뇌, 진실이 없는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말해야 하는 사명이었다.

스승에게 받은 글과 내가 그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적어 두었던 글을 원고로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어느 날 나의 중학교 동창 한 사람이 찾아 왔기에 그 원고를 보여 주었더니 자신이 책을 출판할 비용을 보시하겠다고 하였다.

1,000권을 만들었다. 제목은 ‘나그네’

그러나 스승의 글은 책이 되어서도 갈 데 없는 나그네 신세였다. 그 책을 가져 갈 사람이 없어서 ‘나그네’는 다락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우리는 다시 외국 순례를 계획했다. 물론 무일푼이었는데, 스승은 12월에 그냥 가게 된다고만 했다. 어느 날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던 나의 친척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하는 일을 말했다. 그녀는 얼마 후 몇 백만 원의 돈을 보시했다.

“스님이 제 대신 세상일 좀 해주세요.”

 

1988년 12월 13일,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을 의지해서 우리는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A.A House라는 값싼 여관에 한 달 계약으로 방 2개를 빌렸다. 도착 이튿날부터 나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여관 안내원에게 방콕에서 제일 큰 절이 어디냐니까 왓프라깨우를 가르쳐 주었다.
에메랄드 사원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입장료가 3000원이었다.
나는 검표원에게 다가가서 나는 한국에서 온 중이니까 무료로 들어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냉정하게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돈을 내고 들어갔더니 승려는 한 사람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승려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물었더니, 그곳은 수도처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낸 돈이 아까워서 한 시간을 빙빙 돌며 구경을 하였으나 번쩍이는 절 구경에는 조금도 마음이 없었다.

17일, 태국의 제1왕사 Phra Nyanasamvara를 찾았다. 나는 깨달은 스승과 함께 왔음을 밝히고 참고로 대사들에게 보냈던 스승의 편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천천히 읽더니, 한 부 복사해서 가져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23일 오후 3시30분에 우리를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23일, 약속된 시간에 우리는 왓 보원니웨로  갔다.
그 편에서는 정중하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양인 승려 3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곧 왕사가 들어왔다.

스승이 먼저 말씀하셨다.

“세상은 뜻으로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뜻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스승의 설법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왕사가 물었다.

“당신의 가르침과 석가의 가르침은 다른가? 같은가?”

스승이 답했다.

“그가 깨닫고 나도 깨달았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본다.”

스승께서 다시 왕사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계율과 경전과 명상을 가르친다.”

“깨달은 자가 계율을 어기는 일은 지극히 힘이 든다. 깨닫지 않은 자가 계율을 지키는 일 또한 지극히 어렵다. 경전 속에는 세상이 있으니 장님이 그것을 보는 일 또한 어렵다. 당신들은 어떤 명상을 하는가?”

한 승려가 명상의 포즈를 취했고 스승은 그대로 따라했다. 스승은 곧 그 자세를 풀고 말씀을 하셨다.

“이 방법으로는 완전한 평화에 이를 수 없다.”

스승의 견론은 단호했다.

1시간 이상이 흘렀고 스승의 말씀은 일방적으로 계속 됐다. 서양이 승려가 물었다.

“당신은 자신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한 시대에 눈뜬 자가 둘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는 삼천 년 또는 오천 년에 한 번 세상에 출현한다.

그들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왕사는 스승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나는 양심과 정의를 가르친다.”

왕사는 흡족해 했다. 스승께서 다시 물었다.

“인간의 가르침 속에 존재하는 세상의 근본은 무엇인가?”

왕사가 되물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도덕이다.”

왕사는 나의 통역을 듣자 얼굴에 실망의 미소가 스쳐갔다. 그는 도덕이라는 말을 공자의 moral 쯤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수정하여 통역했다.

“이분의 말씀은 진리와 진실을 말한 것이다.”

스승께서 다시 이르셨다.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있으나 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석가여래는 예언하기를 이 시대에 진실한 자가 나타나서 부처의 길을 다시 있게 할 것이라고 하였고,
예수 또한 이 시대에 진실한 자가 나타나서 세상을 구한다고 했다.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이마에 붉은 점을 찍는데 그것은 이 시대에 제3의 눈을 가진 자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혜의 눈 또는 부처의 눈이라고 하는데 이 눈을 가진 자는 실제로 삼천 년에 한번 정도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나의 이마를 보라.”

왕사는 스승의 이마 쪽을 유심히 보고 나서 물었다.

“내가 만져 보아도 좋은가?”

스승께서 허락하자 그는 스승 앞으로 걸어와서 스승의 이마에 나와 있는 둥근 구슬 모양의 지혜의 눈을 만져 보았다.
왕사는 조용히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스승께서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왕사는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시간이 흘렀으므로 스승은 왕사에게 끝으로 물으셨다.

“너에게 소원이 있는가?”

그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만남을 마무리하는 인사를 했다.

“나도 당신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끝으로 크게 그를 깨우쳐 주셨다.

“너는 듣고 가르치고, 나는 보고 가르친다. 이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이다.”

왕사는 스승에게 인사했다.

“나는 당신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쁩니다.”

나는 왕사를 가르치는 스승의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12월 22일, 태국 제1의 대학 출라롱콘을 찾아가서 총장을 만났다.
한국 승려 소연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나는 진실한 사람을 찾아 왔다. 그런 사람을 좀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총장은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그러나 제가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 분에게로 당신을 안내 하겠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캠퍼스 안에 있는 담마사탄이라는 진리관이었고,
내가 만난 사람은 관장인 라위 박사였다.
나는 그에게 이곳에서 강연을 갖고 싶다고 청하였더니 그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제목은 ‘붓다의 길’로 정했고, 자신들이 홍보하겠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인연을 찾아 인연 닿는 데로 여기저기 쫓아 다녔다.
우리는 솥과 냄비를 사서 밥을 지어 먹었다.
스승은 날마다 시장에 가셨다.
버스를 타고 큰 청과 시장에 가셔서 양배추 한 통, 버섯, 바나나를 사오셨다.
그분은 시장에서 가장 값싸고 양 많은 식품만 사오셨다.
가장 싼 게 양배추와 버섯이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날마다 빠짐없이 양배추를 먹었다.
양배추국, 양배추볶음, 양배추쌈, 양배추샐러드.
돈을 소금처럼 짜게 썼다.

진리관의 설법에는 태국어를 통역할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는 교포회를 통해 사람을 찾았다.
대학원 과정을 밟는 한국 사람이었는데 3시간 통역하는데 7만원을 요구했다.
태국에서는 교수의 한 달 봉급이 십오륙 만원 정도였다.
우리는 통역을 쓰는 일을 포기했다. 돈도 돈이지만 그런 양심을 가진 사람의 입을 통해 진리를 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다시 방콕 근교에 있는 촐라부라탄이라는 큰 사찰을 방문했다.
그곳에 가장 큰 스승을 찾았더니 외출 중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존경받는 스승을 찾았더니 영어를 못해 말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내가 비구니라는 걸 보고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나도 그의 모습을 보고 만나볼 생각조차 사라졌다.
태국에서는 비구니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 비구니는 황색 가사도 입을 수 없었다.
이것은 깨달은 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자들의 편견이었다.

나를 안내하는 비구승에게 부탁했다.
“영어를 잘 하는 승려에게 나를 데려다 주시오.”

그는 나를 한참이나 데리고 가더니 큰 강당 앞에서 대기시켰다. 강의실에는 200명 남짓되는 승려들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창밖에 서있는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조금 후에 방금 강의하던 강사가 강의를 멈추고 직접 나왔다. 그는 순박한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용건을 말하였다.

“스승과 함께 방콕에 왔다. 이 절에서 한 번 법회를 갖고 싶다.”

그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곧 스케줄을 잡아 왔다.

“방콕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친절하게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안내원은?”

“없어요.”

그는 내가 딱했던지 두 사람의 태국인을 소개해 주었다.
한 사람은 필라이반 부인이었고 한 사람은 슈파방 박사였다.
필라이반 부인은 A.A House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아주 크고 부유했으며, 출라롱콘 대학을 나온 인텔리 여성이었는데 출판 관계 일을 하고 있었다. 영국인 남편과 살고 있었으므로 영어가 아주 유창하였다.

진리관과 촐라부라탄 절에서의 통역을 부탁하였더니 쾌히 승낙하였다. 비록 2중 통역이 되겠지만 한시름을 놓았다. 스승은 한국말로 하시고, 나는 그것을 영어로, 필라이반 부인은 태국어로 통역할 것이었다.

나는 출라롱콘 대학에 있는 슈파방 박사도 만났다.
슈파방 박사는 나를 위해 중국집에서 대여섯 가지의 반찬을 사서 봉지에 넣어 왔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구내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자기 전공이나 불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수차례 온 적이 있었고 불교와 명상에 관한 자신의 저서들도 있었다.
진리관 강연에 자기 친구와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활달하고 거침이 없었으며,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었다.

다음날, 필라이반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어제 오기로 약속했던 슈파방 박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스승을 소개하고 나서 준비해간 메시지를 낭독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인류의 길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깨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나는 영어도 태국어도 전혀 할 수 없으나 이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날 전 인류는 매우 위험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위기는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다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마시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이 현상은 존재하며, 단지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세상을 포기한다면 그대 자신도 망할 것이다. 선택은 그대들의 것이며 그대들의 결정 또한 존중될 것이다.

기적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대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내가 여러분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겠다. 나는 그대들의 환상적인 말과 어리석은 삶을 깨어 부수고자 한다. 나는 그대들이 사실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구하기를 요구한다. 그대들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결과를 볼 수 있다면, 당신의 현재가 당신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알 수 있는가? 당신은 그런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에 있는 미래의 결과도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돕고자 한다. 이 만남은 여러분들과 나를 위해 소중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 진실한 사람이 드문 것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진리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요,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진실이 귀하기 때문이다.

만일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자신을 아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도 볼 수 있게 된다.

무지한 이는 멸망할 것이요, 사실을 아는 이는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

여러분이 그 길을 얻고자 하거든 깨어나시오. 그 길을 가고자 하거든 노력하시오.

만일 여러분이 진실을 얻고자 하거든 먼저 진리를 알아야만 한다.

이제 부처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겠다.

장님은 세상을 의심할 뿐, 자신의 어두움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한 세상에 어떻게 부처가 존재할 것인가?
하늘이 부처를 내는 일은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은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알도록 부처의 길을 만든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 뜻이다.

여러분이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부처의 길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하나의 사실을 들려 줄 것이니,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완성 시키는가?
석가불은 자신을 완성하고 나서 사람들에게로 갔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때 그는 대답했다.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인간의 근본을 섬겨왔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래의 말을 믿어야 하고, 선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며,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부처의 길은 여러분 앞에 열리게 된다.

나에게서 부처의 세계를 듣고자 한다면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이 아닌 석가불의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누구도 부처의 마음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들이 그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부처가 되기 전에는 결코 그의 마음을 볼 수 없다.

여래도 ‘해탈’ 이란 말을 썼다. 부처의 세계에 있는 그를 보았다는 뜻이다.

여래가 가르친 것은 인과의 법칙이다. 그의 진실은 세상을 밝힐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진리를 말해 주어야 했으므로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진실한 마음을 찾아서 온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부처는 장님(중생)의 세계를 알지 못하고 중생 또한 부처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려고 여행을 계속했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이 세상에 다시 부처의 길을 존재하게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과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눈앞에 뻔히 열려 있는 세상의 실상도 보지 못한다. 그들의 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제발 자신을 망치지 말라고 호소했다. 경전 속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도 사람의 무지에서 비롯된 죄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이 인과율을 안다면 자신을 구하는 일이 매우 쉽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쉽게 버릴 것이다.

나는 두 가지를 가르치고 싶다.

네 자신을 섬겨라.

그리고 세상을 섬겨라.

이를 배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영생과 극락을 얻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일은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의 진실을 증거하겠다.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여러분은 가장 정확한 대답을 들을 것이다.

내가 여러분을 찾아 온 것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결코 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해서 부처의 길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라위 박사가 말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승이 물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라위 박사가 사성제를 설명했다. 스승이 말했다.

“당신들이 너무도 아는 것이 없어서 가르치기가 어렵다.”

“우리가 아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스승은 껄껄 웃었다.

“아는 법이 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쉬운 것 하나를 여러분에게 물어보겠다. 물어도 되겠는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은 짧게 물었다.

“진리가 어디에 존재하는가?”

진리관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침묵이 답답했던지 한 여학생이 대답했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잘못 배운 사람은 항상 그렇게 말한다.”

스승은 삶의 의미, 삶을 가꾸는 법, 그리고 세상의 변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많은 진실을 말하였다. 많지 않은 청중이었으나 하나같이 진지하였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필라이반은 나를 격려해 주었다.

“당신들의 가르침은 훌륭합니다. 당신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군요. 나는 당신들을 믿습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승려에 대한 깍듯한 예의로 나를 맞았었다.
이야기가 조금 깊어지자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이곳에도 황색 가사만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스승은 차 안에서 인간의 외면적 진실과 내면적 진실에 대해 언급했다. 필라이반과 슈파방 박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12월인데도 방콕의 날씨는 무더웠다. 필라이반은 연신 땀을 닦았다.

다음날,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차를 몰아 촐라부라탄 절에 도착했다. 필라이반은 비구들을 보자 그대로 엎드려 3배 했다. 그 장면 속에 불교 왕국 태국이 보였다.

강당에는 수많은 승려들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당 안은 꽉 찼고 밖에도 많은 승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사승 반야가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스승을 소개하자 그는 적지 않게 놀랐다. 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승이 으레 승려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매우 난처한 모습으로 강당으로 다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승려들의 납득을 얻었는지 그는 곧 우리를 강당 안으로 안내하였다. 그 절의 전통으로는 파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 남자가 법상에 서고 승려가 듣는 일은.

“나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알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

스승의 존재는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 앞에 아무 것도 비춰주지 않으면 그는 텅 비어있다. 문제를 들이대어야만 거울에는 답이 비친다.
깨달음. 그것은 해답이다. 그를 통해 사람들은 원하는 모든 진실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보기 어렵고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살았을 때 그들은 그에게 무관심하다. 그를 놓친다. 그리고 그는 죽고 난 후에야 세월이 갈수록 신처럼 대접을 받는다.
인간은 이런 어리석은 일을 언제나 반복해 왔다.

한 승려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가?”

“수박에서 수박이 열렸을 뿐이다. 나는 전생에 이미 깨달았던 사람이다.”

“당신은 깨닫기 전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나의 양심과 용기를 바쳐 조국과 동포를 사랑했다.”

“경전으로도 기도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따라 배워라. 너희는 변하게 된다.
1년 동안 내 곁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너희 속에 있는 아상(그릇된 인식)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2년이 지나면 너희는 옳고 그름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3년이 지나면 용기를 얻게 된다. 그 후에 너희들은 비로소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승려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 정도밖에 안 되냐는 듯이 듣는 태도가 흩어져 있었다. 스승은 그런 그들을 향하여 물었다.

“너희 중에 소망과 용기가 있는 자가 있으면 일어서 보라.”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스승의 말은 평범하다. 평범한 것 속에 모든 진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평범한 말을 그가 아니면 아무도 세상에서 할 사람은 없다.

한 승려가 그림 하나를 가져와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종이에는 어떤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깨달은 자가 이것을 그렸다면 내가 알 수 있다. 그러나 깨닫지 않은 자가 그렸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니까 내가 알 수는 없다.”

그 도형 그림은 세상과 영혼의 윤회 그리고 차원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필라이반에게 백화점에 들르자고 했다. 나는 그녀의 용기와 수고에 감사하는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다. 눈치를 챈 그녀는 우리를 곧바로 숙소로 데려갔다. 그녀는 말했다.

“나도 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이곳까지 찾아와서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보상이라니요?”

그녀의 말은 외로운 우리에게 위안과 격려가 되었다.

 

하루는 승려 대학에 다니는 아직 어리다고 할 젊은 중 2명이 찾아왔다.
대리석 사원,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는 벤쥬마보핏에 사는 프라챠 와이크루와 쵸리비트였다. 그들은 과일과 케이크를 잔뜩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구에 서 있었다.

여승이 있는 숙소에 찾아온 게 조금 어색한 듯 부자연스레 웃었다. 나는 그들에게 불교의 본질과 승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프라챠는 존경어린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높은 경지에 있는 스님 같아요. 나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나그네’ 책을 선물하고 그 속의 내용을 영어로 풀어주었더니 흥미 있게 들었다.

그들이 왔음을 알고 스승께서 내 방으로 내려 오셨다.
나는 그들에게 스승을 소개하고 깨달은 분이시니까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그들은 물을 것이 없어서 쩔쩔 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질문하지 못한다. 아는 것이 없으니 물을 것이 없는 것이다.

내가 자꾸 권하니까 프라챠는 가방 속에서 자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이 지갑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 지갑 속에 있는 것을 보라는 것이냐?”

“예.”

“그러면 그 지갑을 이리 가져 오너라. 내가 그 속을 보아야 겠다.”

 

이 일화 속에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깨달은 자는 벽 뒤의 것을 보지 못한다.
깨달음.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의 세계를 본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실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이치를 본다. 원인을 보며 결과를 알고 결과를 보면 그 원인을 안다. 그는 길에 통달해 있다. 깨달은 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보는 자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과 용기를 가진 자를 찾는다.
삶을 통해 자기가 가장 좋은 것을 보고자 하는 자, 그리고 그 일을 끝까지 할 용기가 있는 자이다.
사람이 자신을 바꾸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그러나 더 나은 자신을 원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작은 습관 하나를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자신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일은 바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깨달음으로만 가능하다.
깨달은 이를 만나는 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축복 같은 만남이다.

그를 만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이룬다. 그가 이룩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단, 스승은 그를 이익 되게 하는 법만 가르칠 것이다.
사람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불상 앞에서 온갖 것을 구한다. 당신은 산 부처 앞에서 소원을 말하라.
그는 길을 가르쳐 줄 것이고 당신은 노력해야 한다. 농부가 정성과 노력으로 결실을 얻듯이 축복은 농사일과 같다. 지키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프라챠가 한 것과 비슷한 질문은 나에게도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의 꽤 유명한 포교사였다. 자신은 아직 도인이라 할 만한 사람을 못 만났다는 것이다.
문 밖을 지나가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는 큰 스님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 질문을 내게 하시오.” 그는 내가 시키는 대로 그 질문을 했다.

“스님, 지금 문 밖에 한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내가 대답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 보시오.”

한국 사람들은 곧잘 이런 얘기를 한다.

어느 큰 스님이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 보지도 않고 상좌에게 말했다.

“얘야, 아무개 보살이 산 아래에서 쌀을 이고 올라오는구나. 내려가서 받아오너라.”
내려가 보니 과연 그 여인이 쌀을 이고서 올라오고 있더라고.

그러면 그 스님은 도가 높다고 한다. 분명히 말해서 이런 일은 참된 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깨달음의 길을 잃어 버렸다.
사실 깨달음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깨달음이 오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말만이 난무하고 있다.

 

태국에 있는 동안 발길 닿는 데로 많은 곳을 돌아 다녔으나 우리가 찾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1989년 1월 13일, 우리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향해 떠났다.
비행기가 연착하여 7시간 30분 동안이나 공항에서 기다리는 중에 히말라야 등반을 끝내고 오는 한국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 중 몇 명은 동상으로 손가락이 심하게 상해서 끊어야 할 처지에 있었다.
Mr.진이라는 현직 교사는 우리에게 제발 식수를 조심하라고 열심히 당부하였다. 자기는 물 몇 모금을 마신 즉시 설사를 시작해서 며칠을 고생했는데 아무런 약도 듣지 않더라고 했다.
그리고 카트만두 공항에 내리면 택시비를 40루피만 주라고 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네팔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곳 사정을 대강 체크했다.

공항에 내리니 택시 운전사들이 여러 명 달려들어 자기 차를 타라고 야단이었다.
120루피를 달라, 100루피를 달라, 70루피를 달라는 등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15루피로 잘랐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모두 돌아섰다. 나는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끝까지 버텼다.
손님들이 거의 빠져나가자 한 운전사가 내게로 와서 15루피에 오케이를 하였다.

나는 운전사에게 일렀다.

“값싸고 조용하고 깨끗한 호텔로 데려다 주시오.”

숙박료를 흥정하고 숙박카드를 쓰고 방으로 갔다. 그런데 출입문 안쪽에 잠금장치가 없었다. 손잡이 자물쇠는 있지만 그건 믿을 것이 못되었다. 안쪽에서 잠글 수 있는 튼튼한 걸이가 없으면 우리는 그 방을 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집을 도로 나와야 했다.

밤은 깊었고 나는 너무 피곤하여 하룻밤쯤 어떠랴 했지만 스승에게는 하룻밤쯤이 용납되지 않았다. 스승의 철두철미함은 비길 사람이 없다. 늘 ‘불여튼튼’이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종업원은 “카트만두 호텔은 모두 그렇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우리를 붙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승은 무거운 가방을 끌고 나는 바랑을 지고 낯설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야 했다.
한참을 걸으니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우리는 겨우 타맨가에 있는 3류 호텔 가쥬에 짐을 풀었다.

카트만두의 정월은 꽤 추웠다. 값싼 호텔에는 일체 난방시설이 없었다. 나는 밤새 담요 한 장을 덮고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
날이 새자 까마귀 떼가 새까맣게 지붕을 덮고 요란스레 짖어댔다. 을씨년스러웠다. 호텔 마당에 핀 자목련이 얼핏 한국을 생각나게 했다.

호텔 안에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고 중국 음식도 팔았다. 500원 정도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 값은 공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차 대신 물만 마셨다. 식사 후에 100원짜리 차를 마시는 지출조차 거의 없었다.

태국에서 구입한, 밥을 지어먹던 전기밥솥을 갖고 왔지만 이곳에서는 꼭 식사를 해 먹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밥솥을 팔기로 했다.
태국에서 4000원에 샀던 것을 그대로 다시 4000원을 받고 팔았다.

스승은 밥솥을 팔고 온 나에게 말했다.

“야, 너 무섭구나.”

그곳에는 전자제품이 귀하기 때문에 중고품도 대단한 인기였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나는 수도원을 찾아 나섰다.
가장 크다는 부다나 스투파에 가서 몇 명의 네팔인 라마승과 프랑스인 라마승을 만났다. 프랑스인 승려는 5년 정도 그 곳에 있었고, 경전을 불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신은 경전을 이해할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번역할 수가 있느냐?”

고 했더니 그는 웃으면서.

“노력한다.”

고 대답했다.

나는 스승을 소개하고 우리 호텔을 가르쳐 주었더니 다음날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날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늘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다. 나는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은 나의 대상이었다.
아침에 로즈가든 식당에서 폴란드 여인 미스 이데스를 만났다. 그녀는 36살인데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불교를 공부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공부하는 불교의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경전과 명상이라고 했다.
그 속에 있는 잘못을 이야기해 주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결론을 말하였다.

“나는 내 길을 가겠다. 나는 스승을 기다리지 않는다.”

장님은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길을 간다. 그러나 그의 생각 속에 놓여 있는 길과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길은 언제나 다르다. 사람들은 늘 말한다.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그 말은 한편 일리가 있다. 내 마음에는 소망이 있고 세상에는 길이 있다.
서울로 갈 뜻이 있으면 서울 가는 길을 알고 서울로 가라. 그러면 너의 뜻은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진정 소망이 있는 자에게 길은 절실히 요구될 것이다.

장님이 앞도 보지 못하고 길도 모른다면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맞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길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나뭇가지는 계속 동으로만 뻗으려 한다. 운명을 바꾸는 데는 깨달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1월 16일 아침, 모나리자 식당에서 미국인 이혼녀 미스 말타를 만났다.
포클라에 있는 고아원에서 봉사할 생각으로 네팔에 왔다고 했다. 그 고아원은 마티 테레사 수녀의 동생이 책임자로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타고 카판 모나스티리로 향했다. 그 곳에 훌륭한 수도승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당히 먼 곳이었고 왕복 400루피의 택시 요금을 물었다. 노승은 없고 젊은 라마승이 우리를 맞았는데 그는 그곳의 총무 격으로 보였다. 집 짓는 공사를 지시하고 다른 승려들을 지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차를 마시며 스승은 가르침을 말씀했다.
그는 조용히 잘 들었다. 듣는 태도가 좋았기에

“우리 호텔에 다녀가지 않겠느냐?” 했더니

그는 바빠서 못 갈 거라고 했다. 스승이 웃으며 대꾸했다.

“너를 구하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이 있더냐?”

다음날 나는 다시 켄첸 트랑구 림포체를 찾았다. 그의 방문 앞에는 그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 달간 불교 세미나를 한다는 리플릿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스승이 오셨다. 만나 보겠는가?”

그는 승낙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스승을 모시고 들어갔다. 스승은 그에게 대뜸 물었다.

“그대는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거지가 되고 싶은가?”

그는 약간 충격을 받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어부 베드로는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제1대 교황이 되었다. 그대는 자신이 베드로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베드로를 잘 모릅니다.”

“아는 것이 있으면 내게 한 가지 말해주고, 알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물어라.”

그는 침묵하였다.

“아는 것도 없고 알고자 하는 것도 없다면 우리는 더 앉아 있을 일이 없구나.
소연, 가자.”

스승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카트만두의 스투파나 수도원에서 내가 만난 것은 더러움과 궁핍, 환상과 무지였다. 그 곳에서 참된 불교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스승은 힘든 나날을 보내셨다. 사실 그분은 영어의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다.
더욱이 타국에서 접하는 그곳의 글이나 말을 읽거나 듣지 못하고,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를 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신지 몰랐다.

나는 나대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찾아서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니는 동안 내 마음속에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어느 날 아침, 스승과 나는 별 것 아닌 일로 다투었다.
바리캉이 고장이 나서 나는 3주 정도 머리를 깍지 못했다. 스승에게 면도칼이 있으면 삭발을 하려고 아침 일찍 면도칼을 얻으러 갔다. 스승은 왠지 면도칼로 머리를 박박 민 내 모습을 싫어하셨다.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발기계가 없으니 면도칼로라도 머리를 깎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스승이 나무랐다.

나는 “머리 깎는 일까지 간섭합니까?”하고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부렸다.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 일을 빌미로 폭발했다.

스승은 성질을 부리는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돈을 몽땅 꺼내어 갈라놓으시며 각자 다른 여정을 갖자고 했다.
나는 오기를 부리면서 그 돈을 받으려고 감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몸을 돌려 침대에 엎어져 울어 버렸다.

외롭고 힘겨운 세상일이었다. 스승은 속이 상해 밖으로 나가시고 나는 침대에 힘을 빼고 누워 있었다. 두어 시간 후에 스승이 급히 들어오셨다.

“소연, 손님이 온다. 빨리 일어나거라.”

손님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티베트인 라마승이었다.

어떻게 이 사람을 이곳까지 데려 왔느냐고 물었다.

“너랑 다투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걸어 다녔는데 이 사람이 눈에 띄었지. 인상도 괜찮아 보여서 내가 가까이 갔거든. ‘할로’하고 부르니까 쳐다보데. 그래서 너 하는 대로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하니까 대뜸 ‘예스’라고 하지 않겠나. 그 다음은 내가 말문이 막혔지.”

그때부터 스승은 손짓, 발짓을 하며 그동안 들어봤던 단어를 총동원해서 말했다.
‘렛츠고. 마이호텔. 유 세임 세임 머리 빡빡. 코리안 부디스트. 잉글리시 베리굿.’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배를 잡고 웃고 그 라마승도 웃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승은 라마 소남에게 3시간도 넘게 설법을 했다.
그는 매우 주의 깊게 경청을 하였으며 간간히 질문도 하였다.

“나도 한국에 가서 당신으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그가 자신의 뜻을 밝혔다.
스승은 물론 그 자리에서 허락하시고 이번에 같이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저는 4월경에 가겠습니다. 왜냐하면 4월까지는 유럽 몇 개국에 설법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당신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가?”

“명상이나 인과법을 가르칩니다.”

스승은 껄껄 웃었다.

“당신이 아는 법이 무엇인지 내게 하나만 말해보라.”

라마 소남은 말이 없었다.

“당신은 법을 알지 못한다.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 꼭 가르치고 싶으면 아는 자로부터 배워서 가르쳐도 늦지 않다.”

소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3년간 정통 티베트 요가를 수련했는데 그것은 매우 엄격하고 고된 일이라고 자랑했다.
그리고 십수 년을 승려생활을 한 사람이었고 3형제가 모두 라마승이었다.

강연을 이유로 함께 가기를 미루는 소남에게 나는 예수의 일화를 들어 깨우치려 했다.
예수 역시 나처럼 사람을 찾아 다녔을 때 말귀를 조금 알아듣는 청년을 만났었다. 예수가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청년은 마침 부친상을 당하고 있던 터라 당연히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가겠습니다.”

예수는 말했다.

“당장 가자.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겨라.”

이와 같다. 나는 그에게 강력히 말했다.

“라마 소남, 지금 갑시다. 당신이 구도자라면 깨달은 스승을 만났을 때 즉각 그를 따라 나서야 합니다. 우리와 멀어지면 당신의 마음은 다시 잠들게 되고 이일은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오.”

그는 쉽게 결심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그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주문시켰다.
그는 수프와 비프스테이크를 시키고 우리는 야채 볶음밥을 시켰다.
그는 스테이크를 반쯤 먹더니 질겨서 못 먹겠다면서 다시 고기만두를 시켰다.

스승과 나는 말없이 마주 보았다. 우리는 언제나 물과 밥만 먹었다. 수프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차도 생략되었다. 우리 두 사람의 3끼 식비를 그는 혼자서 한 끼에 먹어 치웠다.

스승은 소남에게 일렀다.

“수도승이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짐승의 기운이 너의 기운을 탁하게 할 것이다.”

라마 소남은 한국으로 나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는데, 법보다는 다른 것을 원해서 우리에게 오려는 그의 의도를 읽고 관심을 버렸다. 깨우쳐 주려고 몇 번이나 편지로 말해주었으나 그의 귀는 몹시 어두웠다.

 

그날 저녁 스승은 낮에 보아둔 이발사가 있다면서 나를 끌고 갔다.
카트만두는 해만 지면 어두웠다.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컴컴한 골목길로 한참을 가더니 작은 가게 앞에 섰다.
나는 안을 들여다 본 순간 돌아가겠다고 했다. 너무 더러웠다.
스승은 나를 붙들고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내가 7살 때 시골에서 본 이발소와도 비교가 안 되는 시설이었다. 더러운 수건, 빗, 가위.
나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찡그린 채 시커먼 가운을 목에 두르고 앉았다.
스승은 내 모습을 보며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자꾸 웃었다.
이발은 완전히 수공이었다.
가위로 깎아내고 그 더러운 수건으로 자꾸만 얼굴을 닦아냈다. 그런데 그 이발사가 너무나도 정성을 들여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나는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 그 와중에 잠이 왔다.
사실 중이 되고 나서 남자 손이 그렇게 정성스레 머리를 만져준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발이 끝났을 때는 나는 아쉬움마저 느꼈다.
‘훗날 카트만두에 다시 가게 되면 그곳에 가서 한 번 더 머리를 깎아야지.’

다음날 오후, 스승은 숨이 턱에 닿아서 헐레벌떡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연, 빨리 가자.”

“웬일이세요?”

스승은 정신없이 채근하였다. 스승은 뛰다시피 걷고 나는 뛰었다.
스승의 보폭은 나의 한배 반도 넘기 때문에 나는 늘 스승 뒤를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10분이나 걸어서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라마 여승이 둘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스웨덴인, 한 사람은 캐나다인이었는데 달라이라마에게로 간다고 했다.

스승은 그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찾아 승려가 되었느냐?”

그네들은 역시 상투적인 대답으로 일관했다. 스승은 승려들, 특히 머리를 깎고 외국에까지 와서 배우려는 승려들을 보면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스승이 없는 곳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삶만 낭비할 것이다.

스승은 그들에게 통사정을 했다.

“소연과 함께 하루나 이틀만 이곳에서 묵어가시오. 호텔비와 식대는 내가 부담하겠소. 당신들이 이 한국 여승과 이틀만 지낸다면 당신들은 놀라운 일을 알게 될 것이오.”

스승은 마음을 모두 쏟아 부어 극진하게 권유하셨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딱한 듯이 웃었다.

“우리는 저녁 5시에 인도로 떠나야만 해요. 표가 예약되어 있거든요.”

스승은 그들의 음식 값을 지불했고 우리는 털레 털레 호텔로 돌아왔다.

“소연, 네 방에 먼저 올라가거라. 나는 마당에 좀 앉았다 갈게.”

스승의 목소리는 가라 앉아 있었다.

나는 3층의 내방으로 올라가서 창밖을 내다 봤다.

스승의 뒷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먼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적막했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사람의 마음만이 저분을 모르는구나.

세상에 온 부처

청정한 마음은 거울과 같고

오욕은 몸을 두고 떠나 버렸네.

세상은 꿈속의 그림 같은데

하늘과 땅 위에는 벗들이 없네.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을 지고 세상에 온 부처는 갈 곳도 없고 머물 곳도 없다.
부처가 가진 보물을 원하는 자가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
날만 새면 그 보물의 주인을 찾아 세상을 헤매건만 아무도 그것을 찾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는 천하의 보물 짐을 혼자서 지고 무거워서 쩔쩔 매고 있다.
누가 부처의 짐을 덜어 줄 텐가! 누가 부처의 주인이 되겠는가!
하늘이여. 오늘은 나에게 의인을 찾게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있게 하소서.
눈뜬 자는 세상의 앞일을 보고 걱정이 태산 같은데 정작 세상의 주인들은 깊고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붓다. 그는 누구를 위해 그토록 고뇌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 얼굴은 눈물로 젖었고 스승의 어깨에는 해그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열흘을 묵은 후 우리는 인도를 향했다.
오후 7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다음날 새벽 6시에 네팔과 인도의 국경지 수라타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 옆에는 벌써 소매치기가 붙었다. 한 남자가 내 좌석 팔걸이에 엉덩이를 기대고 앉았다. 나는 예사로 생각하고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앞을 보니 내 손가방의 지퍼가 반쯤 열려 있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너 여기서 무엇하고 있는 거야?”

그는 슬쩍 일어나더니 버스에서 내려 버렸다. 다행히 빼낸 것은 없었다. 버스 속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소매치기를 주의하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검표원에게 사실을 알렸다.

버스 속은 어둡고 춥고 불쾌했다. 버스 안에는 여행객의 가방을 실을 곳이 없었으므로 지붕 위에 모든 것을 실었다.
스승은 이 일이 매우 불안하였던지 그날 밤 내내 차가 설 때마다 밖으로 뛰어나가 짐을 지켜보곤 하셨다. 스승은 짐 걱정 때문에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않는 것 같았다.

이튿날 새벽, 차디찬 안개 속에서 수라타니에 내렸다. 호롱불 밑의 나무의자에 앉아서 2시간을 더 기다려서 8시가 되어서야 네팔 출국 수속을 밟았다.
다음은 인도 입국 수속을 할 차례였다. 우리의 여권을 조사하던 관리는 비자를 챙겼다. 우리는 비자를 받지 않았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외국여행자 교육을 받을 때 정부가 발행한 여행자 수첩을 받았는데 그곳에는 분명히 인도는 3개월 이내 체류자에 한해서 노비자로 되어있었다.

스승은 그 수첩을 꺼내 들고 급하니까 한국말로 소리 쳤다.

“이건 한국 정부에서 발행한 수첩이다. 인도 입국은 분명히 노비자라고 되어있다.”

나는 통역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소리를 질러 대니까 그들도 화를 버럭버럭 내었다.

‘무슨 수가 없겠느냐.’ 하니 오직 ‘노우’ 뿐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이든 직접 확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스승도 나도 인도행 비자관계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인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하늘의 도움이었다.

우리는 그 길로 다시 돌아섰다.
네팔 출국을 취소하고 다시 카트만두로 향했다.
마침 카트만두로 간다고 소리를 지르며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다.
맨 뒷좌석에 자리 2개가 남아 있어서 그 버스에 올랐다.

그날 다시 1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되돌아왔다. 버스가 어찌나 쿵쿵 뛰던지 머리를 몇 번이나 버스 천정에 쾅쾅 부딪치고 허리도 몹시 아팠다.
몇 시간 동안을 버스는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돌았다.
지난밤에는 몰랐는데 낮에 보니 매우 험한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두 번이나 추락과 충돌 사고를 목격했다.

스승도 나도 아무런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25시간 이상 계속해서 버스에 시달렸고 꼬박 하루를 거의 굶은 상태였다.
자정이 다 되어서 호텔 가쥬에 다시 도착했을 때 종업원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반가워했다.

결국 우리는 인도여행을 포기했다.

그렇게 해서 네팔 땅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순수한 마음을 찾는 여정은 끝이 났다.

우리는 꼭 한 달 보름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남은 얼마간의 돈을 다음 여행을 위해 은행에 곧바로 저금하고 내 손에는 겨우 2만 원이 남겨졌다.

나는 송남원도 떠난 처지라 친척집에 당분간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어느 공덕주의 도움으로 법을 전할 장소를 얻게 되었다.

 

깨달음의 집 달마원 개원

 

1989년 3월 5일, 달마원(깨달음의 집)이 문을 열었다.

스승은 천상과 천하에 있는 보살과 선신들에게 이 일을 고하고 그들의 공덕과 은혜를 이 일에 바치라고 일렀다.

이곳에서 다시 부처의 길이 열리고 하늘의 정기가 이곳에 다 모여든다 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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