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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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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종교와 사이비 종교는 무엇이며, 스승과 제자 · 거짓과 위선자는 무엇입니까?
글쓴이: Guide  날짜: 2022.03.22 16:44:33   조회: 2145

 

 

 

HOME > Guidance of Guide 8 - 최신 업데이트 2022년 3월 27일

 

 

 

 

‘Guide’는 누구입니까?

‘Guide’의 정체성을 밝혀주세요.

저는 제가 속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성원의 건전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지도하여, 구성원이 행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구성원 개개인이 자력으로 평화로운 삶과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게 하는 남다른 지혜를 넉넉히 갖추고, 지치지 않는 실행력을 겸비한 한국인 남성입니다.

‘Guide’의 성명을 비롯한 개인정보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세요.

글쎄요, 제 개인의 세세한 정보를 왜 필요로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자연의 가르침 편집부’가 부탁하는 주제의 원고를 작성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Guide’의 글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자연과학연구학회의 유일한 회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연구학회’란 무엇입니까?

나그네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신 如來께서 인간세계 앞에 깨달은 자를 드러내고 소개하기 위해 如來께서 친히 설립하신 간판(주)입니다.

(주) 간판(看板) :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내건 표지.

그러면 ‘유일한 회원’이란 무엇입니까?

如來께서 세상에 오셔서 해야 했던 일의 ‘목표’이며 그 ‘결과물’입니다.
저는 ‘자연과학’에 대해서 70% 이상 정확하게 ‘guidance’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연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자연’이란 ‘존재하는 현상과 사물’을 말합니다.
과학’이란 ‘진실과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과학’이란 ‘자연의 진실과 진리를 탐구하고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 ‘존재하는 현상과 사물’에 인간의 세계도 포함되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Guide’와 ‘운영자’의 글은 문체와 내용으로 볼 때 같은 사람 같습니다.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
저의 원고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에서 편집과 교정을 해서 게재하고,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의 글은 제가 의견을 제시하여 수정하기 때문입니다.

운영자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의 재정과 운영을 책임지고,
저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에 필요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Guide’는 깨달은 분입니까?

가당치 않은 질문입니다.
이 인류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신 성인은 다섯 분이며,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은 고타마 붓다와 이삼한 여래 두 분입니다. 여기서 완전한 깨달음이란 95% 이상의 진실성을 이루신 것을 말합니다. 나머지 세 분은 큰 깨달음을 이루신 분입니다.

과거에도 깨달았다는 분이 많았고, 지금도 깨달은 분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다섯 분의 성인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들 나름대로 크게 깨달으셨겠지요. 저는 다른 어떤 사람의 깨달음에 대해 맞는다 아니다 하고 의견을 말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Guide’는 의식의 눈을 떳습니까?

이 질문은 참 우스운 말입니다. 아니면 트집을 잡으려는 말입니다.
육체의 시력이 없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시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평범합니다.
그러나 의식의 시력이 없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의식의 시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장난이거나 트집 잡기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의 시력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이 의식의 시력이 있다고 해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고, 시력이 없다고 해도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의 시력이 없는 사람이 의식의 시력을 가진 깨달은 분의 말씀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기 자신이 의식의 시력이 없다는 것을 진정(眞正:참으로 바르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식의 시력을 가진 깨달은 분의 말씀을 들을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어렵게 세상에 태어나서 숨 쉬고 밥 먹고 살면서 소중한 시간을 왜 아무런 가치 없는 일에 소모할 것입니까?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생의 공덕이 없는 자는 결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진실을 보지 못하니, 진리는 억지로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인류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시고, 완전한 의식의 시력을 가지신 분은 고타마 붓다와 이삼한 여래 두 분입니다. 이삼한 여래께서는 당신의 이전 생애는 ‘고타마 싯다르타’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란 무엇입니까?

‘사이비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宗敎)’란 ‘근본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낱말 뜻풀이를 한 것 아닙니까? 종교란 신 또는 초인간적인 존재를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 및 지배자로 숭배하고 신앙함으로써, 그 존재를 위하여 예배하고, 그 존재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그 존재의 힘과 능력에 의지함으로써 인간의 고뇌를 해소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정신문화체계.’라고 배웠습니다.

글쎄요, 귀하의 의견은 ‘종교(宗敎)’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기성 종교의 현상(現象)’을 설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기성 종교’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이며 ‘기성 종교’는 또 무엇입니까?

‘종교’란 인간세계가 알아야 할 ‘기본이 되는 가르침, 근본의 가르침’을 말하며,
‘기성 종교’란 그들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경전과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 종교’는 ‘사이비 종교’에 불과합니다.

‘사이비’란 무엇입니까?

‘사이비(似而非)’란 ‘겉치레는 닮았지만, 속 알맹이는 다른 것’을 말합니다.

왜 ‘기성 종교’가 ‘사이비 종교’입니까?

‘기성 종교’는 신 또는 절대자, 그리고 경전과 교리가 있습니다.
신 또는 절대자, 경전과 교리가 있다는 자체가 ‘근본 가르침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근본 가르침’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진실과 진리가 근본 가르침’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경전과 교리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근본 가르침이 될 수 없습니다.

‘기성 종교’의 경전과 교리는 ‘성인의 가르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성 종교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경전과 교리를 조작했습니다.

고타마 붓다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세상의 법칙을 등불로 삼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성 종교인들은 부처를 의지하고 경전과 교리를 받들고 염송할 뿐입니다.

기성 종교의 경전과 교리를 가져와서 ‘聖人의 가르침’을 보여주면 인정하겠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은 ‘종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이 ‘종교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如來의 가르침’은 ‘세상의 있는 일’이며, ‘자연의 진실과 진리’를 말합니다.
‘如來의 가르침’은 신도 절대자도 없으며, 경전도 교리도 없습니다.

如來께서는 항상 단 한 가지를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있는 일을 확인하라. 있는 일을 확인하라. 있는 일을 확인하라.”

‘있는 일’을 확인해보면,
‘종교’는 ‘세상의 있는 일’을 가르치며, 없는 일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종교’는 ‘산 자의 가르침’이며, 사는 자에게 필요한 ‘삶의 양식(糧食)’입니다.

‘기성 종교’는 ‘세상의 없는 일’을 가르치며, 있는 일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성 종교’는 ‘죽은 자의 가르침’이며, 죽는 자에게 필요한 ‘삶의 마약(痲藥)’입니다.

기성 종교가 왜 ‘죽은 자의 가르침’이며, 왜 ‘삶의 마약’입니까?

기성 종교는 성인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인의 없던 제자를 내세워서 성인의 말이로라 경전을 조작하고, 믿고 복종하고 서약하게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을 죽은 자를 위해 봉사하게 하는 것’이므로 ‘죽은 자를 위한 가르침’입니다.

기성 종교는 없는 신 또는 절대자를 있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없는 신, 없는 절대자를 내세워서 믿고 의지하고 헌신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소중한 삶과 미래를 우상에게 바치게 하는 것’이므로 ‘삶을 망치는 마약’입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존재하는 것을 안 믿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무지한 자입니다.
결국 장님은 존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성인들은 사후에 자신이 사람들의 우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무지한 사람들이 성인의 이름을 팔아서 종교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성인에 대한 모독이다.”


 

‘스승’이란 무엇입니까?

‘제자’란 무엇입니까?

‘스승’이란 ‘자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자’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래는 ‘스승’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如來께서는 할 일을 하러 세상에 잠시 다녀가셨을 뿐입니다.
如來께서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과도 사제(師弟) 간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래가 ‘소연을 제자로 두었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단 한 사람, 윤소연은 예외적인 특별한 신분입니다.
윤소연은 하늘의 여래를 땅의 인간과 연결한 인물로서 유일한 공로자입니다.

여래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받드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까?

‘여래를 스승’으로 자신을 제자로라 하는 것은 如來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래를 스승’으로 자신을 제자로라 하는 것은 如來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여래를 자기 스승’이로라 하는 자는 ‘깜깜한 의식 장님’에 불과합니다.
‘여래를 자기 스승’이로라 하는 자는 ‘대단한 위선자’가 틀림없습니다.

如來께서는 장님·위선자 몇 사람의 스승 노릇 하러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땅 위에 사는 자로서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착각은 하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여래가 자비를 베풀어서 ‘장님의 스승’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나요?

이 질문은 듣자마자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확실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如來께서 장님의 스승 노릇을 해주기로 자비를 베푸신다면, 아마도 정말 아마도,
‘교육과 훈련’을 받는 그 즉시로 장님은 맨발로 휑하게 도망을 치고 말 것입니다.

如來께서 활동하시던 때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전부 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비자비의 실상(實相)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릅니다.
자비란 가엾게 여기고 사정을 봐주고 인정상
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랍니다.
한자어 자비(慈悲)의 우리말은 사랑입니다. 자비와 사랑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래는 사람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려면 실제로 몇십 시간을 말해도 부족합니다.

▷ HOME > 근면·검소·정직 > 장인 과정 에서 상세하게 소개할 예정입니다.

如來의 자비(慈悲)로운 교육과 훈련은 세 가지 분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성 교육·훈련, 둘째 생활성 교육·훈련, 셋째 사회성 교육·훈련입니다.

첫째는 한 인간이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자격을 말합니다.
둘째는 한 인간이 배우자와 함께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자격을 말합니다.
셋째는 한 인간이 배우자와 자손과 함께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자격을 말합니다.

이 셋은 한 인간의 성공적인 삶에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 셋의 수행 실력은 곧바로 한 인간의 가치 척도가 됩니다.
이 셋으로써 세상과 인류와 인간세계를 설명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如來께서는 각각 사람들의 근기(根氣)(주)에 맞추어서, 그 사람이 알지도 눈치 채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교육과 훈련을 일방적으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하셨습니다.

(주) 근기(根氣) : 근본이 되는 기운, 힘. 참고 견디는 능력.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교육과 훈련 과정을 허둥지둥 수행하다가, 기진맥진 쓰러지기도 하고, 힘들어서 대들기도 하고, 건성건성 하다가 질책에 넋을 놓기도 하고, 불만이 가득 차서 거부했다가, 如來의 간청으로 다시 곁으로 갔다가, 또다시 좌절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如來의 주변에 있던 어떤 사람도 이러한 교육과 훈련을 원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如來께서는 사람들의 사정과 형편에 맞추어서 그 사람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언제 어디서든지 교육과 훈련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如來께서 한국에 계실 때는 물론이지만, 외국에 계실 때도 시간과 장소는 교육·훈련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如來께서는 각각 사람들에게 알맞은 최상의 삶과 최고의 미래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如來의 慈悲(사랑) 따위는 알 겨를이 없던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어 했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기고 반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如來는 요지부동의 사람들과 악전고투의 줄다리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如來의 쉼 없는 교육·훈련과 기상천외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고수했으며,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힘들고 고달팠던 이는 如來이셨습니다. 如來로서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있는 만큼 온갖 고초를 거듭해야 했으며, 그로 인해 如來께서는 처절한 고뇌와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고, 홀로 감내(堪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如來의 삶은 남김없이 모두 다 慈悲(사랑)를 베푸는 과정이었습니다.
如來께서 인간세계에 사랑(慈悲)을 베풀면서 남기신 소회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세상에 와서 천 번의 맹세와 천 번의 절망을 보았다.”
“최선을 가진 자 앞에서는 진실이 절망 속에도 핀다.”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지식도 어떤 이론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교육·훈련에 대해서 어떤 설명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慈悲(사랑)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如來에 대한 추억은 성동격서, 좌충우돌, 감당 불가, 냉혹한 조련사, 엄격하고 자애로우셨던 위덕(주)한 아버지의 표상(주)입니다.

(주) 위덕(威德) : 위엄과 덕망
(주) 표상(表象) : 본받을 대상. 지각(知覺)으로 의식에 나타나는 대상.

놀라운 점은 如來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 세 분야의 교육과 훈련을 자신이 직접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금 이 시각까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如來께서 불철주야 노심초사하시고 원근을 마다치 않고 지도 편달한 사실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如來의 행적을 후세의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난 세상에 오셨던 여래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왜 여래를 ‘스승’이라 하면 안 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다.

如來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쉽습니다.
구태여 ‘스승님’ 하지 말고, 그냥 ‘여래님’ 하시면 됩니다.
단지 ‘여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如來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열고, 귀 기울여서 들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생활하시면서 如來님의 말씀이 세상의 일들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십시오.
사실을 확인해서 같으면 그대로 하시고, 다르면 왜? 다른지 또 확인하십시오.
이렇게만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더도 덜도 말고 이렇게만 하시면 충분합니다.

구태여 ‘여래를 스승’으로 자기 마음에 두는 것은
如來께서는 동쪽으로 가고 있는데, 당신은 서쪽을 향해서 ‘스승님’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如來를 의지하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았을 때 여러분은 나로 인하여 축복받는 길이 있고, 내가 여러분을 축복하는 길도 내가 이 몸이 있을 때 여러분 곁에 있을 때 가능할 뿐이지, 내가 떠나버리고 나서 결국 그건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如來께서 활동하시던 때에 如來로부터 직접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온갖 핑계를 대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如來가 가고 없자 ‘여래를 스승’이로라 모시고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것은 전후 사정이 완전히 거꾸로 된 어불성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정말 바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불성설의 말과 행동을 태연히 하는 자를 두고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한술 더 떠서 如來의 행적과 말씀에 자신들의 생각을 교묘하게 섞어서 제멋대로 조작하고 책을 만들어서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살아서는 위선자의 삶을 제멋에 겨워 살다가, 죽어서는 지상의 악마가 되는 것이 두렵지 않은 자들’입니다.

석가모니를 ‘인류의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나요?

‘스승’이라는 용어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알맞은 표현입니다.
고타마 붓다는 당연히 ‘인류의 대 스승’입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이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고 배우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고타마 붓다는 자신이 세상의 있는 일에 의지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것처럼 자신처럼 모든 사람이 깨달아서 건강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가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고타마 붓다도 자신을 스승으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제자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고타마 붓다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의지해서 자연의 법칙을 등불로 하여 스스로 깨달아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의 제자’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있는 일을 확인할 때는 역사에서 사실’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볼 때는 알고 있는 지식보다 정확한 사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정확한 사실’이란 기성 종교의 입장이나 학자의 생각이 아닌 ‘진실’을 말합니다.

고타마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는 자신을 스승이라고 말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세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제자를 두지 않은 것이 ‘진실’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에 존재하는 위선자들의 상상력은 참으로 환상적입니다.
위선자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제자를 10명도 만들고 12명도 만들었을 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위선자들의 말을 무작정 믿고 따르고 예물을 바쳤을 뿐입니다.

NAVER나 google에 검색하면 몇천 년 동안 위선자들이 성인의 제자를 어떻게 만들었다가 고쳤다가 넣었다가 뺐다가 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교주를 섬기고 제자를 따르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고위직 종교인이 자신은 예수와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고위직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그 정도의 거짓말은 참말처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고 없는 예수가 진짜로 고위직 종교인과 친구 사이가 되기로 하긴 한 걸까요?

종교인들은 그들을 따르는 무지한 신자들이 가고 없는 예수에게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고위직 종교인이 예수와 친구 사이라는 말을 들은 신자들은 믿고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장님이 생각하는 여래를 자기 스승이로라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이므로 다른 사람이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단지 그것은 개인의 착각일 뿐, ‘如來의 실상(實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좋은 마음으로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하늘의 如來께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셀 수도 없이 많고 많은 의식체가 있는데
그중에 어떤 장님이 ‘여래를 스승’으로 정했다고 해서 ‘實相의 如來’께서 어찌 알아본다는 것입니까? 무지한 자가 ‘여래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고, 섬기면 섬길수록 자신에게는
‘如來’를 모독하고 모욕하는 악업을 끝없이 쌓는 일만 남겨질 뿐입니다.

회장을 이삼한으로 소개하는 실상학회 홈페이지가 있는데요?

如來께서 활동하시던 때의 실상학회(實相學會)는 1991년 11월 23일 如來께서 학회 설립을 천명하시고, 1992년 11월 15일 ‘운영자’가 설립하였으며, 2008년 8월 21일 如來께서 돌아가시고, 2011년 2월 12일 운영과 활동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상학회라는 명칭은 누구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회 회장을 이삼한으로 소개한다면 그것은 거짓(虛僞)입니다.
이삼한은 자연과학연구학회 이외의 회장인 적이 없습니다.

이삼한은 如來의 속명으로써 ‘이삼한은 1984년 11월에 如來로 출현’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이삼한은 如來의 과거 인물’이 되었으며, 이후로 如來께서는 2008년 8월까지 활동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如來께서는 장님들을 회원으로 둔 회장이신 적이 단연코 없습니다.

如來께서 장님 모임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입니다. 세상의 오너(owner)를,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장님 모임의 헤드(head)로 끌어내리는 일은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장님들이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짓입니다.

如來를 두고 스승으로 착각하는 자들보다 더 심한 행패를 부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삼한을 회장’이라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위선자입니다.
‘이삼한을 회장으로 하는 모임’이 있다면 그들은 사이비 종교단체입니다.

백산회관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如來께서 활동하시던 때에 실상학회의 ‘회관’이라 호칭하고 여러 사람이 사용했습니다. 회관은 주로 회원의 생업용 점포와 숙소 그리고 창고의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숙소가 마땅하지 않은 회원 가족의 임시 거처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회관을 사용할 때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생업용 점포로 사용하는 사람은 약속한 임대료를 냈으며,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은 무상으로 이용했습니다.
숙소로 사용하는 사람 중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기한의 정함이 없이 거주할 수 있으나, 결혼한 사람은 임대료를 내고, 단기 3개월 이내 최대 6개월까지만 거주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如來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如來의 주변에 있던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singles' house(독신자의 집)로 호칭합니다.

(참고자료) ▷ HOME > 실상학회 > 연혁 > 사업조합, 공동회관

‘여래의 가르침’을 책으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깨우치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으로서 대단히 영리한 발상을 한 것입니다.
일단 책을 만든다는 가정(假定)을 하고, 그 결과를 추측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如來의 가르침’을 빠짐없이 빈틈없이, 왜곡되지 않게, 말씀 그대로, 100% 정확하게 1,000권의 책으로 옮겼다고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1,000권의 책을 국가고시 준비하듯이, 밤낮으로 열심히, 정독하고 통독하고, 배우고 이해하고, 익혀서 실천함으로써 그중에 여러 사람이 ‘如來의 가르침’ 그대로 행동으로 실현한 것을 자부하게 되었다는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1,000권의 책을 초월하는 노력으로 배우고 익혀서 실천함으로써 ‘如來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현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세상의 진실과 진리에 대해 시험을 쳤습니다. 좋은 교재를 선택한 덕분인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고 좁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천국의 문이 꽉 막힌 것입니다. 1,000권의 책으로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알아보았다는 사기꾼, 위선자들로 천상이 가득 찬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머릿속에 담아둔 책 무게 때문에 천상이 땅으로 고꾸라질 처지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전에 1,000권의 책으로 ‘如來의 가르침’을 공부했던 자들은 천상은 커녕 저승 가는 길조차 찾기가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성인을 스승으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 그리고 경전과 교리를 원하는 자는 사기꾼이거나 위선자, 둘 중의 하나는 틀림없이 맞는 것입니다.


 

‘거짓’이란 무엇입니까?

‘위선자’란 무엇입니까?

한국어를 사용할 때는 우리말과 함께 한자어 공부도 조금 해야 합니다.

우리말 ‘’의 반대말은 ‘거짓’입니다.
한자어 ‘참 진(眞)’의 반의어는 한자어 ‘거짓 위(僞)’입니다.

참 = 진(眞)’은 ‘사실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 위(僞)’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을 말합니다.

한자어 ‘위선(僞善)’은 ‘사실을 허위(虛僞)로 꾸민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거짓’과 한자어 ‘위선’은 같은 의미를 가진 낱말입니다.

‘위선자(僞善者)’란 ‘허위(虛僞)를 사실처럼 조작하는 자’를 말합니다.
‘위선자’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미는 자’를 말합니다.

위선자’란 ‘거짓말을 참말처럼 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위선자’란 세상의 있는 일을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기’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위선자’입니까?

이 시대의 종교인들은 대부분 위선자입니다. 다음으로는 정신 분야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위선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다음으로는 학자들 그리고 정치와 언론, 문화계에 종사하는 자들이 위선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고위 공직자들이 위선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통틀어서 고학력 지식인들이 위선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기술 노동이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 농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위선자인 경우가 적습니다.

우리가 위선자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있는 일을 알아보기 전에는 위선자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이 깨닫는 것입니다.
있는 일을 알아보려 노력함으로써 작은 깨달음을 꾸준히 많이 쌓아야 합니다.

기술 노동을 하거나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머리(생각)를 굴려서 입(말)과 손(글)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위선자는 머리에 담아둔 지식을 내세워서 지혜로운 자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위선자를 알아보는 방법이 어렵기만 한데 위선자는 왜 이렇게 많을까요?

지금 세상에 위선자가 많은 이유는 진실성이 없는 지식인을 우대하는 시대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대에 위선자가 활개를 치는 이유는 진실성이 없는 지식인을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자연의 변화기’를 통해서 ‘위선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부분 소멸(消滅·掃滅·燒滅)(주) 할 것입니다.

(주) 소멸(消滅): 사라져 없어짐.  소멸(掃滅): 싹 쓸어서 없앰.  소멸(燒滅): 불살라 없앰.


 

가이드의 글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마음에 잘 와닿지 않습니다.
공감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확실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Guide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 시대는 이성(理性)이 무시되는 이성의 정지(停止)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는
감성(感性)을 존중하는 감성의 전성(全盛)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이성(理性)’은 무엇이며 ‘감성(感性)’은 무엇입니까?

‘이성(理性)’은 인간성(人間性)을 떠올리면 별달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성(感性)’은 동물성(動物性)을 떠올리면 별달리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감성의 전성시대이성이 정지한 절망의 시대입니다.

근본 가르침을 아는 자가 없고, 진실한 가르침을 원하는 자가 없는 시대입니다.
종교를 아는 자가 없으니, 허울을 덮은 사이비 종교가, 종교가 되는 시대입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온데간데 없고, 믿음과 기도·경배와 예물을 우대하는 시대입니다.
잔머리 잘 굴리는 양심 없는 무지한 자들이 한사코 구원에만 매달리는 시대입니다.
진실과 진리는 알아보기 어렵고, 변질한 허구(虛構)는 이해하기 쉬운 시대입니다.
세상의 진실과 진리는 돈이 안 되고, 조작해서 책을 만들면 돈이 되는 시대입니다.

감성의 정치, 감성의 언론, 감성의 사람들-감성의 세력이 주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성의 민주주의는 냉대하고, 감성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성적이면 구닥다리가 되고, 감성적이면 깨어있는 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철학인의 말은 메아리조차 없고, 연예인의 말은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시대입니다.
이성적인 대화는 졸음이 오고, 감성적인 얘기는 솔깃하고 열 오르는 시대입니다.
理性을 말하면 男女性인 줄 알고, 聖人을 말하면 成人物로 알아듣는 시대입니다.

이성의 정지시대에는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경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성의 정지시대에는 동물 같은 사람이 사람 대접받는 경우가 일상사입니다.

감성의 전성시대에는 동물이 사람 대접받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감성의 전성시대에는 동물을 사람 대하듯이 해야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절망시대, 감성의 전성시대는 곧 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이성을 존중하는 순수한 시대가 오게 될 것입니다.

 

 

- 이 페이지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주제를 선정하고,
주공
(主公=Guide)의 원고를 받아,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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