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Guidance of Guide 9 - 최신 업데이트 2023년 5월 14일

 

 

 

 

 

 

구도자(救世者 : savior)

 

너희는 먼저 보고 나서

그다음에 진정한 구도자의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가.

 

구도자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남을 가르치는 것이 구도자이다.

구도자라는 것은 바로 스승이다.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좋은 가르침을 남에게 주는 것이다.

 

구도자라 하는 것은

남을 좋은 사람을 만들어 내고

좋은 삶을 찾아 전해주고 이것이 구도자이다.

말 그대로 남을 구하는 것이 구도자이다.

 

그러면 하나의 그 구원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뜻 속에 있다.

내가 세상을 알고 그것을 가르치는 자가 구도자이다.

 

최고의 구도자라는 것은

바로 뜻 속에 있는 행복의 길을 찾아다 주고

사람들을 깨닫게 해서 그 길을 따라오게 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통해서 한이 없는 삶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좋은 그들의 결과를 찾아주는 이것이 구도자이다.

 

 

< 1992년 2월 16일 동대신동(달마원), 구도자.mp3 >

 

 

 

如來께서 말씀하신 한국어 ‘구도자’는

한자어로는 ‘救世者’가 올바른 표기이며,
영어로는 ‘savior’가 올바른 표기입니다.

 

 

 

the Savior, Redeemer : 救世主, 救贖主, Jesus : 예수
a savior : 救世者 : 세상을 구하는 자
a seeker of the way : 求道者 : 길을 찾는 자
a seeker after truth : 追求眞理的人 : 진리를 찾는 사람

 

 


 

 

 

# (道) [truth. the law of Buddha.]

1. 진리.

2.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3. 종교적으로 깊이 깨친 이치. 또는 그런 경지.

4. 무술이나 기예 따위를 행하는 방법.



진리. 진실.


고타마 붓다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세상을 보고, 그 본 것을 말했다.”


‘진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실. 현상. 세상.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지켜야 한다는 말인지?


깊이 깨친 이치, 경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지만
기성 종교에서 사용하는 품격 있는 용어인 것 같습니다.


검술·궁술·유술이 아닌
검道·궁道·유道는 일본식 표현일 뿐이고,
태권道·역道는 있는데 축구道·테니스道·레슬링道는 없군요.

 

 


 

 

# 구도(求道)
  [
seeking (a search) after truth. ~하다 seek after truth.]

1. 불법(佛法)의 정도(正道)를 구함.

2. 종교·예술·기술·운동·사상 등의 깊은 경지를 구함.



‘도’라고 하는 ‘어떤 무엇’을 찾는다. 또는 그리하여 얻다.


진리·진실을 찾는다. 진리를 추구한다.


불법(佛法)을 모르는데 정도(正道)는 어디서 구할 것입니까?
‘고타마 붓다가 한 말의 올바른 뜻을 찾고자 함.’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깊은 경지’는 도(道)가 아니라 도(度)가 맞습니다.
깊은 정도(程度), 수준(水準), 단수(段數).

 

 


 

 

# 구도자(求道者)
  [
seeker. a truth seeker. a seeker after truth.]

1. 부처가 되기 위한 정도(正道)를 구하는 사람.

2. 종교·예술·기술·운동·사상 등의 깊고 높은 경지를 구하는 사람.

3. 진리나 정신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사람.

4. 처음으로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



도(道)를 구하는 분에게 묻습니다.
귀하께서 찾는 도는 어떤 것입니까? 무엇입니까?


진리·진실을 찾는 분에게 묻습니다.
귀하께서 찾는 진리·진실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입니까?


부처의 진실을 모르는데 부처가 되는 正道:바른길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고 언제 어디서 찾을 것입니까?


‘깊고 높은 경지’는 도(道)가 아닙니다. 도(度)입니다.
깊고 높은 정도(程度), 수준(水準), 단수(段數).


세상에는 이런 분들이 흔하디흔하게 매우 많습니다.


기독교라고 하는 기성 종교에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이군요.

 

 


 

 

# 진리[眞理 : truth]

참된 이치 또는 도리.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 또는 사실.

진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행사는 진실하며, 하나님의 판단과 말씀은 진리이다.
하나님은 진리로 인생을 구원하며 보호한다.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리이다.

 

# 진실[眞實 : truth]

거짓이 없는 사실.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
영원히 변치 않고 확실하여 신뢰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자 ‘眞理’를 풀어서 흔히 ‘참된 이치·도리’라고 말합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참’입니까? 무엇이 ‘참’입니까?

같은 것이 참이요, 같지 않은 것이 거짓입니다.
있는 일이 참이요, 있지 않은 일이 거짓입니다.

있는 일과 있는 것을 있게 한 일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항상 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엄연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속성이라는 말은 ‘진리’의 용어의 정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생뚱맞은 언급입니다.

기성 종교의 ‘진리’는 그들만의 이상(理想)일 뿐입니다.
‘理想’이란 ‘거짓 이야기’를 ‘참말’처럼 꾸민 것을 말합니다.


있는 일이 진실이며, 있는 것이 진실입니다.
있는 일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을
‘순수하고 바른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체가 거짓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는 말은 뭔 덧붙이기입니까?

‘순수하고 바름’ 자체가 거짓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거짓이 없는 순수하고 바름’이라는 말은 구차합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참된 진리의 정법’이라던 ‘위선자의 말과 같은 말’입니다.

참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거짓이 무엇인지 알 리 만무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하나님의 성품이나 변치 않는 신뢰라는 말은 ‘진실’의 용어의 정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생뚱맞은 언급입니다.

기성 종교의 ‘진실’은 그들만의 환상(幻想)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과 환상으로 인하여
바로 눈앞에 있는 진리도 진실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 진실’이라는 쉽고 단순하고 편리한 용어가
기성 종교들의 영향으로 누구든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볼 수 없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변질해 버렸습니다.

 

 


 

 

# 수도자(修道者) 또는 수행자(修行者)

1. 행실, 학문, 기예 따위를 닦는 사람.

2.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

3. 생리적 욕구를 제어하고 정신과 육체를 훈련하는 사람.

4. 정신의 정화 또는 신적 존재와의 합일을 얻으려는 사람.

5. 수행자의 궁극적 목적은 득도와 깨달음과 해탈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어떤 무엇’을 닦고 행하고 실천하는 사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


인간의 본능을 제어함으로써 정신과 육체를 억압하여 얻게 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도리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도리어 부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세상에는 이런 분들이 흔하디흔해서 엄청나게 많습니다.


수행자만의 목적이 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삶의 목적과 결과가 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 ‘구도자’는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구도자’ means the person who seeking the truth.
And the word would be used in a religious point of view.

(주) Seek-er : 찾는 사람. 추구하는 사람. 탐구하는 사람.
      수색하는 사람. 무엇인가를 찾고 얻으려는 사람. 진리를 찾는 사람.


‘구도자’라는 용어는 기성 종교에서 그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도’입니다.

인간이 삶 속에서 ‘도’를 찾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찾고 있는 ‘도’란 무엇입니까?

어떤 ‘도’를 찾습니까?

그리고 왜 ‘도’를 찾고 있는 것입니까?

‘도’를 찾는 이유와 목적이 ‘道理’에 어긋나지 않아야 합니다.

 

 


 

 

# 구도자(求道者)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은 보통 세속적 욕망을 끊고, 고통을 참으며,
오로지 진실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구도자(求道者)’라는 말은 어떤 깨달음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을 하는 자(修行者)가 사용하는 용어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도자(求道者)’이건 수행자(修行者)이건 간에

세속적 욕망을 끊고, 고통을 참으며
인간적인 삶을 저버리는 고행을 하면서
진실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道理)가 아닙니다.
세상의 법도(法道)에도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있는 일을 거꾸로 보고, 반대로 판단하는 장님들의 역사가 만들어낸, 가슴이 아프도록 안타까운 말세의 현상입니다.

 

 


 

 

# 구도자라는 말은
흔히 종교계, 불교나 도교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이것은 꼭 불교나 도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보겠다.

오랫동안 수행한 불교인,
오랜 기간 큰 업적을 남긴 기독교인,
그리고 진지한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구도자’라는 용어는 기성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것 같습니다.


기성 종교의 교리에서 그들이 말하는 ‘도’나 ‘깨달음’이란 명확하게 어떤 무엇을 말하는지 흥미롭습니다.

오랫동안 승복을 입었다는 불교인이 어떤 구도를 수행했으며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기독교인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누구인지 우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진지한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소문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이상(理想)을 입증하기 위해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환상(幻想)을 소개하는 정신 활동이 기성 종교입니다.

 

 


 

 

# 구도자 : 진리를 찾는 사람

출가자 : 도를 구하기 위해 속세를 떠나 법을 찾는 사람

재가자 : 속세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도를 수행하는 사람



구도자가 찾는다는 진리가 어떠한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출가자가 구하는 도와 법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3가지의 분류는 참으로 가소로운 코미디 같습니다.

기성 종교의 교단에 있는 자들이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들만의 위계질서에 불과할 뿐입니다.

‘재가자’라는 용어는
일반 사람을 ‘비 구도자·비 출가자’ 계층으로 구분함으로써
교단에 있는 자보다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진실을 알고 보면
이 3가지 분류는 거꾸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 세계는 생활인이 기본이고
기본인 생활인의 밑에
생활인이 되기 위한 수행이 필요한 자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 필요한 자들이 자체적으로
그들의 등급을 수행자와 구도자로 구분한 것입니다.

 

 


 

 

# 구도자(求道者)
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
이를 추상적으로 비유한 것이 "길을 찾는 사람"이다.

직업상으로는 수도승이 이러한 의미와 가장 부합한다.


구도자(求道者)라는 용어는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하는 사람을 두고 진리를 찾는 자 또는 길을 찾는 자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수도승’을 ‘직업’으로 해석한 부분이 놀랍습니다.
실제로 ‘수도승’은 생존의 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이 맞네요.

 

 


 

 

# 참된 구도자

도(道)를 수련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는 길은 많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태권도라든지, 세상의 많은 종교의 '도'라든지, 명의가 되는 과정의 '길'이라든지, 하물며 요가의 정수를 터득하는 길까지 모든 도에 이르는 길은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터득하는데도 그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구도자는 자원해서 예수를 따르겠다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구도자는 첫 번째 구도자와는 다르게 자진해서 예수를 따르지 않고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구도자는 예수를 따르려는 열심도 있지만, 동시에 이 세상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구도자’라는 용어에 ‘참된’이라는 수식어를 유난히 앞세워서 말하는 기성 종교의 문장입니다.

‘거짓된 구도자’가 워낙 많은 단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짓된 구도자’는 구도자가 아니라 ‘위선자’입니다.

그러므로 구태여 ‘참된 구도자’라고 구분하는 자체만으로
그 ‘참된 구도자’조차 ‘위선자’가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그리고 기성 종교의 ‘신앙의 진수’를 설명하는데
태권도, 많은 종교, 명의의 길, 요가의 정수를 예시합니다.

참된, 도, 길, 정수에 진수까지 터득해야 하는 가르침이라면
배우지도 따르지도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될 것입니다.

평생을 따르고 배워도 결코 터득할 수 없을 테니까요.

기성 종교에서 예수의 진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진실을 모르는데 예수를 따르는 자를 참된 구도자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참되지 않습니다. 모순이며 위선입니다.

 

 


 

 

# 구도자(求道者)

도를 구한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나 법칙 등을 찾으려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구도자로서 세속의 흥미와 쾌락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깊은 곳에 입산하여 밤낮으로 자신을 수련할 것입니다.

도를 닦는 수행을 하고, 인생을 구도자로서 살고자 합니다.


읽는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는데 공식도 없고 답도 없이
혼자서 자문자답하는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세속의 흥미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세속의 쾌락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탐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즐기는 것과 다른 점은 압니까?

왜? 깊은 곳에 입산하여 밤낮으로 무엇을? 수련합니까?

구도자라면 먼저 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진실도 모르고
삶의 진실조차 모르는데

구도자라면서 무엇을 찾아서 어떻게 수련한다는 것입니까?

 

 


 

 

# 구도자(求道者)

1. 진리(道)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2. 영적인 갈급함으로 생명의 도를 찾는 자를 말합니다.

3. 예수교 대한성결교회에서 교회에 처음 등록하여 출석하는 교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구도자(求道者)라는 용어는 기독교라는 종교 계통에서
유독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다중으로 검색되었습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기독교가 전파될 때 Christ(그리스도)를 한자어 기독(基督)으로 음역한 것처럼, 정신적 사상으로서 예수의 도(예수道)라고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평범한 사람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라는 종교 단체만의 독창적인 해설인 것 같습니다.


이 내용도 평범한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해설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계통에서 이렇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구도자란 깨달음을 구하는 자,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킨 자이다.

길고 긴 고뇌의 시간을 견뎌 낸 구도자는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비록 구도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 내면의 인간적인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예술을 종교의 경지로 끌어 올리자면 예술가는 성직자와 같은 구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 내용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예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구도자라는 이상(理想)의 경지를 설정해놓고,

성직자까지 언급하면서 자기의 예술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기 위해 다짐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기성 종교인이나 예술인, 기예인들이 ‘구도자’라는 용어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뛰어난 예술인이나 기예인이 왜 종교 성직자를 그들의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구도자라 하는 사람들은
도(道)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道)를 찾으려 한단 말인가?
분명 자네는 내가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알아야 그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구도자라 하면서 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찾으려 하단 말인가?
어찌 사람들은 자칭 구도자라 하면서 모르는 것(道)을 찾으려 하고 모르는 것(道)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이것이 자네와 구도자라 스스로 칭하는 이들의 모순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일세!

그때야 청년은 구도자들의 모순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자신도 다른 구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모르는 것(道)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구도자란 자네와 같은 사람을 뜻하지.
모르는 것에 대하여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 말일세.
다만 한가지 내가 자네에게 이 기회를 통해 권면을 한다면
자네가 진정 찾고자 하는 것(道)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그것(道)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세.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고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일세.
하물며 어찌 모르는 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먼저 자네가 찾으려 하는 것(道)이 진정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네.


이 글은 기독교라는 기성 종교의 표지에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대화체 문장으로서 지식인이 읽으면 공감할 만한 내용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 언급하는 도(道)는 예수도(道)를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Guide가 그동안 갖가지 어학사전과 인터넷 검색으로
도, 구도, 구도자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살펴본 결과,

도(道)에 관심을 가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가 바라보는 도(道)라는 이상(理想)을 찾고 구하기 위해 옛부터 지금까지 동분서주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옛부터 지금까지 도를 찾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면
이제 지금쯤은 도가 무엇인지 충분히 명확해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인간 세계에는 도(道)란 무엇인지에 대해 결정적인 해답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각각의 이상(理想)을
도(道)라고 생각하고, 주장하고, 신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알고 보면 그 이유는 당연한 사실에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인간들은
대부분 의식적 장님의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100억 명에 이르는 이 시대의 인간들 속에
의식적 장님이 아닌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Guide는 구도자입니까?

저는 구도자(救道者)가 아닙니다. 구도자(求道者)도 수행자(修行者)도 아닙니다.

저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하고 건강한 생활인(生活人)입니다.

Guide는 이삼한 여래의 제자입니까?

저는 如來의 제자가 아닙니다.

저는 如來를 스승으로 모셨던 적이 없습니다.

Guide는 실상학회 회원입니까?

저는 실상학회를 설립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소임을 수행한 자입니다.

실상학회의 설립 목적은 如來를 세상에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8월 21일, 如來의 실물 존재가 세상에서 없어졌습니다.

설립 목적이 없어진 실상학회는 2011년 2월 12일부로 종료하였습니다.

실상학회의 회원은 이삼한 여래의 제자입니까?

실상학회 회원은 말 그대로 회원일 뿐입니다.
제자라는 칭호나 자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실상학회 회원은 남성과 여성, 청년과 중년, 노인과 어린아이, 개인과 가족,
직업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습니다.

회비를 납입하다가 탈회한 사람까지 모두 합해서 100명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如來 주변에는 실상학회 회원이 아닌 사람도 여럿 있었습니다.

여래가 그렇게 뛰어난 분이라는데 제자가 없었다니 이해가 안 갑니다.

세상에 난 성인들이 제자를 둔 적이 없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입니다.

참고자료 : ▷ HOME > 자연의 가르침 > 8호 > 聖人의 가르침

실상학회 회원 또는 주변에 있던 사람 중에서
개인적으로 如來의 제자로라 주장하는 자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如來께서 생전에 제자를 두신 적이 없다는 것이 공식 기록입니다.

예외로써 ‘윤 소연(小蓮)’을 두고 특별히 제자로 호칭하신 적이 있을 뿐입니다.

누구를 성인의 ‘제자’라고 칭호 하는 것은 지식인들이 붙인 허상에 불과합니다.

여래는 스승이 아니다? 제자가 없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한반도라는 지형적 환경에서 나고 자라고 배운 사람들로서는 그럴 것입니다.

더구나 유교적 풍토의 사회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당연할 것입니다.

如來께서는 누구를 가르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如來께서는 이 시대에 진실을 알리고, 이 시대를 깨우치러 오셨습니다.

如來에게 배운 사람이 있다면 진실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눈뜬 분이십니다.

눈뜬 분이시라면 이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Guide는 구도자가 아니라면서 왜 여래 주변에서 활동했습니까?

한 사람의 리더가 세상에서 활동하는데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如來께서 필요로 하는 일을 70% 이상 독자적으로 이행하는 실무자였습니다.

제가 如來의 강연에 처음 참석한 이후로 10번 정도 참석하기 이전에
이미 如來께서는 저를 실무자로 낙점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다양한 경험과 실무 능력을 나름 갖추고 있었는데, 그 당시 如來의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인이자 국가공무원 직업으로 여러모로 여유가 있었으며, 나의 경험과 실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봉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러한 제 입장은 如來 주변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Guide는 도나 구도에 관심이 없습니까?

달마원에서 如來의 강연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용어와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如來의 강연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국가적으로 1960년대 말이 되어서야 극심한 빈곤을 겨우 벗어나게 되었는데,
1970년대가 되자마자 우리 사회에는 부흥회와 간증, 선(禪), 도(道), 단(丹), 기(氣), 경(經), 명상, 마인드콘트롤, 뇌호흡 등 갖가지 정신 활동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가 되자 정신 활동 광풍과 더불어서 육체 건강 열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회식에서도 광풍과 열풍이 화젯거리였습니다.

강연·강좌를 듣고, 회원이 되고, 활동하는 것이 사회적 신분처럼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취미인 등산과 사이클링에 관심이 있었을 뿐 전혀 무관심이었습니다.

Guide는 종교에도 관심이 없습니까?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은 일단 불교적이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이 절에 가시니까요.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기독교 재단의 도움으로 수학했으며, 일요일마다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눈 감고 기도하는 재주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교회와 종교인의 실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으며,
바이블과 예수의 진면목에 대해서도 충분한 식견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는 환상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일수록 정신이 더욱 황폐화되어 있다.”

오늘날의 종교는 사회를 이간질하고 혼란을 선동하는 주역이 되고 있습니다.

Guide가 구도자가 아니라면 실상학회 회원은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글쎄요. 실상학회 회원 개개인에게 물어야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如來에게 원하는, 바라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회원이 되었겠지요?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곁에는 문제가 없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문제를 가진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지. 제 일 하기 바쁜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저나 가족도, 우리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如來 주변에서 활동하게 되었겠지요?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곁에 사람이 없잖아. 사람이.”

如來 주변에는 제반 일을 온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이삼한 여래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는데, 제자도 없고, 대를 이을 구도자도 없다는 걸 보면 여래라는 말이 더욱 믿기 어렵네요.

제자나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자체가 如來인지 아닌지의 증거로써 판단할 가치가 있는지는 개인적인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삼한 如來의 말과 행동, 그분의 모든 행적이 증거로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如來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일과 깨달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위해서는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신인 사람에게는 결혼하기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권장하셨습니다.

如來의 주변에 있던 독신 남성과 독신 여성 중에서
如來의 도움을 받아서 결혼한 사람도 있었지만
如來의 도움을 받는 것을 거절하고 결혼한 사람도 있었으며,
如來의 도움 없이 결혼한 사람 중에서 이혼한 사람도 있었으며,
한사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개의 ‘도(道)’가 있습니다. 세상의 ‘법도(法道)’와 인간이 지켜야 할 ‘법도(法道)’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결혼은 인간이 지켜야 할 중요한 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뭔가 착각하는 것 아닙니까? 보통 구도자·수행자는 결혼하지 않지요.

귀하께서는 어떤 구도를 하시는지? 어떤 수행을 하시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생물체와 무(비)생물체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는
만사 만물이 동일한 방식으로 생기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생물체와 무(비)생물체는 번식체와 무(비)번식체로 식별함으로써 구분 짓습니다.
생물체가 번식을 하지 않는다면 그 생물체는 저절로 멸종하게 됩니다.
생물체는 나고 성장하고 번식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영원히 유지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해서 성생활을 하지 않고 성욕이 없어졌다면 수행을 잘못한 것입니다.

수행을 해서 분별심을 없애버리면 옳고 그름이 없어져서 생명을 망치게 됩니다.

귀하께서는 없는 데서 생겨났습니까?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습니까?

참고자료 : 1992년 7월 5일 장전동(찻집), 파자소암(婆子燒庵).mp3

참고자료 : 1992년 7월 5일 장전동(찻집), 부처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mp3

여래 주변에 제자가 없었다? 이해가 안 갑니다. 실상학회 회원이 수십 명이 있었다면서요. 그중에는 구도자나 수행자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자연인 이삼한은 1984년에 如來로 출현한 이후로 25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으며, 만났던 모든 사람을 상대할 때마다 如來인 당신 곁에서 함께 활동하자고 열과 성을 다해서 간곡하게 말씀하시고, 간절하게 유혹하셨습니다.

그러나 구도자·수행자를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이삼한 如來의 도움을 실제적으로, 진정으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如來 주변에 있던 사람 중에서
본인 스스로 자신을 구도자 또는 수행자라고 직접 말한 사람,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구도자 또는 수행자임을 부정하지 않은 사람,
당시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보이지만, 과거 또는 한때 구도자 또는 수행자였던 사람,
당시는 아니지만 앞으로 구도자 또는 수행자가 되려는 의중을 가진 사람이

제가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남성이 11명, 여성이 8명 정도 있었습니다.

실상학회 회원이 많지 않았다는데 구도자·수행자가 꽤 많이 있었네요.

제가 如來 주변에서 15년가량 활동하면서 관찰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如來께서는 구도자·수행자들이 가진 문제 해결에 압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如來께서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여러 사람에게 문초를 받고 있었습니다.
如來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밤낮으로 고뇌하고 애태웠습니다.

如來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외로운 사람, 한 사람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如來께서 찾고자 애썼던 사람은 구도자(救世者)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세상을 구원할 자를 찾는다고 해야지.”라는 질문이 생깁니까?

如來께서 처음부터 세상을 구원할 자(救世者)를 찾는다고 말했다면,
자격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던 남성 11명, 여성 8명뿐만 아니라
如來께서 25년간 만났던 구도자·수행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대부분이
본인이 ‘적임자’라 주장하고, 내로라 앞장서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본인의 생각만으로 구도자(救世者)가 될 수 있을까요?

如來께서는 처음부터, 구세자를 찾으러 왔다는 시(詩) ‘나그네’를 발표하셨으며,

如來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세자를 찾는다는 말씀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如來의 말씀을 읽고, 듣던 눈뜬 장님들이 제대로 못 보고, 못 알아들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조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구도자(救世者)로서 충분한 실력을 진정으로 갖추신 분이 계신다면,
당당하게 앞장서서 구세자의 능력을 현실에서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어 ‘구도자’를 영어로 ‘A seeker after truth’라고 번역합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A seeker after truth’를 보여주면,

기성 종교의 ‘하나님과 예수의 진리’를 ‘찾는 자’라고 쉽게 이해합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구도자(求道者)가 셀 수 없이 많고도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修行者)도 셀 수 없이 많고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한 시대, 마지막 세상의 끝자락에서

(道)’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구도자(求道者)가 계신다면,

(戒)’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수행자(修行者)가 계신다면,

자연의 가르침[즐겨찾기]하셨다가 차근차근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진정한 구도자(救世者)’가 있다면, 자기가 자신부터 먼저 구해서,

자기가 있는 일을 알아보는 자가 되어서,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구하러 나설 것인지 ‘깊고 깊은 고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구하지도 못한 사람이 세상부터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모순입니다.

자기 자신이 남 앞에 나설 수 있는 ‘진짜 실력 있는 생활인’이 되는 것이 순서입니다.

참고자료 : 1992년 2월 16일 동대신동(달마원), 삶과 깨달음.mp3

참고자료 : 1992년 2월 16일 동대신동(달마원), 스승.mp3

 

Guide는 평범한 생활인이자 상급의 달인으로서

이 글을 읽으시는 소중한 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두시는 도(道)가 있을 것입니다.

너무 먼 곳에 있는 도를 찾으신다면 생애 내로 찾는 데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현실에서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도를 찾으시기를 충심으로 권해 드립니다.

如來께서는 구도자나 수행자를 위해 스승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如來께서는 이 세상을 구하러 외롭게 나설 구세자를 찾아서 헤매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장님의 세계에 세상을 구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如來께서는 다시 한번 장님의 세계에 간곡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세상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선각자(先覺者)가 되기를 요구한다.”

구세자의 길에 나설 자가 있다면 먼저 선각자의 길부터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오셨던 如來께서 돌아가신 지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如來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과 행적을 있는 그대로 미래에 전달해주기를 나는 원한다.”

이런 일은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소중한 분들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가 한 일이 자신의 현재와 내일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반드시 꼭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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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
(主公=Guide)의 원고를 받아,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