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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을 때 여러분은 나로 인하여 축복받는 길이 있고
내가 여러분을 축복하는 길도 내가 몸이 있을 때 가능할 뿐입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먼저 위선자들이 나를 섬기려고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을 풀어서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이 말씀 기록의 사음(寫音)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살았을 때 여러분들은 나로 인하여 축복받는 길이 있고 내가 여러분을 축복하는 길도 내가 이 몸이 있을 때 여러분 곁에 있을 때 가능할 뿐이지 내가 떠나버리고 나서 결국 그건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가장 먼저 나를 가지고 놀 사람들은 위선자들입니다. 내가 떠나고 나서 나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알아야 합니다.”

 

 

* “내가 여러분 곁에 왔을 때 여러분은 나에게 축복받을 길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축복하는 길도 나에게 몸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떠나고 나면 위선자들이 나를 섬기겠다고 나설 것입니다.”

* 여래가 인간의 몸을 받아 세상에 와서 사람들 앞에 활동하던 시기에
여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여래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게 됩니다.
또한 여래가 사람들을 직접 축복할 수 있는 기회도
여래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여래 생전에 주변에 있기를 어려워하던 사람들이
더군다나 여래 생전에 주변에 오기를 거부하던 사람들이
여래가 돌아가고 나면 그제야 여래를 섬긴다고 나서게 될 것입니다.

 

* “내가 몸이 없을 때 그때는 여러분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위선자들이 나를 섬기려 할 것입니다.”

* 여래가 돌아가면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축복하려해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있게 되는 세계와 여래가 있게 되는 세계의 차이가 너무나 멀어서
여래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야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래의 말과 행적을 제 것처럼 이용하는 위선자들이
여래가 가고 없는 세상에서 여래를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설 것입니다.
여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서
여래를 섬기는 일을 함께 하자고 유혹할 것입니다.
위선자(僞善者)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뭇 사람들로부터 선인(善人)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깨달은 자의 말에 장님의 생각을 보태면 최고의 이론이 된다.”

 

 

고타마 붓다의 말에도, 예수의 말에도, 소크라테스의 말에도, 노자의 말에도

인류속의 위선자들이 두루두루 생각들을 보태고 빼고 조작(造作)을 해서
지금 시대에 이르기까지 빈껍데기뿐인 지식세계를 진실처럼 이룩해 놓았습니다.

이 시대에 오신 如來님의 말씀조차 벌써부터 조작되어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자연의 가르침은 진실입니다' 를 통해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운영자· 글쓴이
1992년 5월 3일부터 如來님 주변에서 공식적으로 자료와 문서를 작성했으며,
대외적으로 자료를 배포하는 책임을 가진 사람입니다.

운영자· 글쓴이는 실상학회의 설립과 운영 및 활동, 사업조합의 설립과 운영 및 활동, 잡지 자연의 가르침의 발행과 운영 및 활동 그리고 외로운 투쟁· 한탄· 나그네· 깨달음의 전자도서출판의 일들을 모두 책임지고 수행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 외에 어느 누구도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새로 생성(生成)하지 마십시오.

 

이유는 단순합니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수년간 바로 곁에서 듣고 본 사람일지라도
귀하께서 충분한 깨달음을 가진 분이 아니면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귀하께서 듣고 본 강연기록물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들은 말만으로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일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자는 운영자· 글쓴이뿐 입니다.

 

생전의 如來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如來께서는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如來님의 교육과 훈련을 감당하는 일을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如來께서는 각각의 사람에게 알맞은 맞춤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부여하셨지만
교육과 훈련을 받는 각각의 사람 나름대로 무척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如來님의 교육과 훈련의 과정은 혹독하고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좌절과 재기를 반복하거나 저항하거나 포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는 如來님 곁에서 수년 동안 교육과 훈련을 처절한 심정으로 묵묵히 견뎠습니다.

제 자신이 원하고 선택한 교육· 훈련이 아니었으므로 감내하기 어렵고 힘들었지만
如來께서 사람들에게 베푸는 교육· 훈련에서 자신이 열외가 되기는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2001년 봄 어느 날 如來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제 예전의 너와 달라졌다. 이제부터 너는 예전의 네가 아니다.”

다시 4년여가 지났을 무렵 如來께서 저에게 'teacher'의 자격을 주셨습니다.

如來께서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까지도 저에게 교육과 훈련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아직도 선생보다 가이드(guide)의 역할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 한반도에는 남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넘쳐 납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의 일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에 어느 누구도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만약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귀하가 바로 그 위선자(僞善者)입니다.

그래도 기어이 가르친다면 귀하는 전적으로 적악(積惡)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새로이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책임 없는 귀하가 만든 기록은 사악한 자들을 먹여 살리는 양식이 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자격 없는 귀하가 가르치는 자마다 위선자의 자식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께서는 책임이 없는 자가 만든 기록을 보고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독자 여러분께서는 자격이 없는 자의 가르침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인(聖人)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부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연의 가르침>6호>聖人의 가르침실상학회>활동>학회보 제11호>經 성인 어록 -새 창으로 열립니다.-

·

귀하께서 대부분의 사람에 속하는 하급의 분이시라면,

자연의 가르침을 초등학교용 참고서 정도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주는 찾지 마시고 가끔 접속하셔서 몸과 마음에 평안을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

귀하께서 일부분의 사람에 속하는 중급의 분이시라면,

자연의 가르침을 ‘☆즐겨찾기’하셔서 잊거나 잃지 마시고 또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찾으신다면 귀하에게는 새로운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

귀하께서 극소수의 사람에 속하는 상급의 분이시라면,

자연의 가르침을 듣고 본대로 자신을 깨우쳐서 생활에서 그 결과를 확인하십시오.

먼저 자기 자신과 생활에서 좋은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나서
그런 다음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연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전하십시오.

 

어떤 이유로도 자연의 가르침을 제 마음에 맞게 갈무리하거나 변조하지 마십시오.

공개된 자연의 가르침 페이지와 영상 및 녹음을 자료 그대로만으로 사용하십시오.

 

웹사이트 '자연의 가르침은 진실입니다' 에 공시(公示)된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의 기록에 과실과 오류가 있게 되면
그 모든 과오(過誤)에 상응하는 업보(業報)를
운영자와 저, 두 사람이 함께 짊어지고 순순히 감수(甘受)할 것입니다.

 

 

“깨달은 자의 말을 전할 때
그 말에 한 자라도 고쳐버리면 고쳐진 것만큼 그 말에 생명력이 없어진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에 있는 ‘생명력’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순수성’입니다.
‘진실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영문으로 번역하면 ‘pure energy’가 됩니다.

 

운영자와 제가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정리해서 기록하게 되면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의 생명력 즉 순수성과 진실성은 당연히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운영자의 실력과 저의 자격을 최대한 발휘하여 협업함으로써
장님의 절대한계치보다 훨씬 높은 70% 이상의 생명력· 순수성· 진실성을 유지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으므로 왜곡된 기록물을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70% 이상의 수준은 예수나 소크라테스나 노자의 말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생명력· 순수성· 진실성을 가진 기록물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운영자나 제가 그 수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갈무리한 기록물의 수준을 가늠한 것입니다.

 

그런데 책임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가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에 손을 대게 되면
그 기록은 생명력· 순수성· 진실성이 50% 미만으로 뚝 떨어지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장님으로서는 유리천장이자 절대한계치인 50%의 생명력· 순수성· 진실성을
마음처럼 생각처럼 쉽게 넘어설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如來님 곁에서 추상같은 교육과 가혹한 훈련을 이수한 적이 없는 자가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경험한 것처럼, 잘 아는 것처럼 행사(行事)
(주)하는 것은

(주) 행사(行事) : 기록을 만들고 가르치는 것.

그 자가 바로 如來를 가지고 노는 자이며 무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장님으로서는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갈무리하는데 욕심을 내기보다
자연의 가르침에 소개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서 자기 계발과 생활 개선으로 스스로 변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실제로 변한 것도 없고 생활이 바뀐 것도 없는데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은
장님으로서는 손쉽게 겪게 되는 일상적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공을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꿔라.”

이 말씀의 의미를 결코 쉽게 판단하고 넘어가지 마시기를 신신부탁 드립니다.

 

애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떤 부담도 가지지 마시고, 자연의 가르침 자료를
있는 그대로 읽고 보고 행하고 나서 전하기만 하시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하는 일은 전생에 아무런 공덕이 없던 사람일지라도
현생과 내생에 상상을 초월하는 공업(功業)의 과보(果報)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나서 그것을 상대에게 전할 때 이렇게 하라.
먼저 ‘나는 이렇게 보았다. 또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고 말하라.

그러고 나서 내 곁에서 들은 대로 본 대로 그대로 전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이 너희가 자신을 축복할 수 있는 최고의 공덕행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나의 말과 행동을 너희의 생각으로 보태거나 빼서 전한다면,
혹여, 너희 자신에게 누를 끼치게 될까 그것이 염려가 될 뿐이다.”

 

 

나그네>彰 6  한 알의 씨앗>약속의 땅이삼한 여래의 진실 100문·100변>-4- -새 창으로 열립니다.-

 

성인(聖人) 노자(老子)께서는 상급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상급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끝내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 한반도에 있던 참으로 한탄스럽고 불행한 일은
인류에 극소수인 상급의 사람이 너무 흔하게 많이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지구적으로 한반도의 환경이 신과 영들이 머물기에 유리한 지역이겠지요.

한반도에 큰 불행이 닥쳤지만 한편 다행한 일은 자연이 특별히 선택한 것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순수성이 형편없는 한반도에 如來께서 친히 오셨던 것입니다.

 

한반도에 살아 계시는 신(神)과 영(靈)들에게 간곡히 말씀을 올립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如來께서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부디 如來의 말씀과 행적을 있는 그대로 읽고 보고 받아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如來의 말씀과 행적이 당신들을 윤회의 과정 속으로 순조롭게 인도할 것입니다.

 

하급의 사람이더라도
중급의 사람이더라도
상급의 사람이더라도
如來의 말씀과 행적을 대하는 입장은 실제로 별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급과 중급과 상급의 차이라는 것이 그 실상을 알고 보면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오십보백보,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틀림없이 상급이로라 여기는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실상은 최하급이 아닌지 그 실체를 스스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급인 줄도 모르고 상급인양 자기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보다
자신이 상급이더라도 중급이나 하급이라고 과소평가하시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자기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스스로 변화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상 자체가 변화의 활동을 통해 영원히 존재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변화의 활동을 통해 발전하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如來께서 친히 오셔서
여러분을 위해 주고 가신 말씀과 행적을 읽고 듣고, 다시 읽고, 또 듣고,
자기가 자신에게 봉사하는 충실한 생활에 매진하는 동안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보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면
如來님의 말씀과 행적의 뜻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 무지막지한 시대를 갈팡질팡 살아가고 있는 작고 연약한 자신의 양심이
조금씩 조금씩 잘 자랄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지키고 보살펴주십시오.

치열한 노력과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여러분의 간절한 소망을 시간이 어김없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한 가지 긴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래님을 모시거나 섬기지 마십시오.
여래님을 믿거나 찬양하지 마십시오.
여래님에게 빌거나 기복하지 마십시오.

결코 어떤 효용도 되지 않는 상상 속의 기대에 불과합니다.
전혀 아무 소용이 되지 않는 헛일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장님의 간절한 바람이 장님의 꿈속에서 틀림없이 현실로 나타났더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결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상상 속의 헛일을 하는 것입니다.
힘들게 태어나서 밥 먹고 살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모든 내용들을 숙지하시고 꼭 이대로 지켜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여러분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 밝은 미래가 있게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如來께서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가르침’을 보고 듣고 나서 ‘전하는 일’에 욕심은 금물입니다.

무슨 일이든 욕심을 내게 되면 사소한 일조차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공덕행은 양심: 좋은 마음을 옳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바치는 일입니다.

 

자연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을 한 글자도 덧씌우지 마십시오.

자연의 가르침’ 자체만으로 그대로 알리고 권하고 전하십시오.

 

그리고 ‘자연의 가르침’을 전할 때 꼭 이 말씀은 덧붙이십시오.

‘나는 언제 어디서 이런 것을 보았다. 이런 말을 들었다.’
 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여 말씀하십시오.

 

 

 

 

다음 페이지에 인간의 진실, 양심의 진실은 무엇인지? 인간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은 어떤 것인지? 양심은 몸 속 어디에 있는지? 양심은 어떻게 생겼는지? 양심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지? 양심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양심이 좋아지고 나빠지는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지? 나빠진 양심은 좋아질 수 있는지? 좋아지려면 양심의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태어날 때의 양심과 죽을 때의 양심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성인(聖人)의 양심과 장님의 양심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양심의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 페이지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주제를 선정하고,
주공
(主公=Guide)의 원고를 받아,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