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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제자'는 뛰어난 분들을 6~10명 정도 열거하고, 예수의 '제자'는 10명 이상 열거합니다.

이삼한 여래의 제자는 몇 명이나 되며, 그 중 뛰어난 분들은 누구, 누구신가요?

 

지식 세계에서 지식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다른 말로 한 번 더 표현하면,
장님의 세계에서 장님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이며,
지금의 세상보다는 다음의 세상에서 더 비중있게 다루어질 주제인 것 같습니다.

대자연의 변화기를 앞두고 세상에 온 여래는 다음 세상을 위한 주인공을 찾는 혹독하고 험난한 나그네의 여정 속에서 한 여승(비구니(比丘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래는 그 여승에게 '소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첫 제자'를 두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알의 씨앗 -새 창으로 열립니다.-

 

여래의 제자는 '첫 제자' '소연'밖에 없었습니다.

'소연'은 여래의 '첫 제자'로서 그 소명(召命)을 충분히 다했습니다.

소연(小蓮) -새 창으로 열립니다.-

 

여래 주변에는 실상학회라는 명칭을 가진 모임(조직·단체)이 있었습니다.

1992년 11월 15일 설립되어 2011년 2월 12일 종료될 때까지
입회한 사람과 탈회한 사람 모두를 합해서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실상학회는 여래가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정신적인 울타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실상학회에 '회원'은 있었지만 '제자'는 없었습니다.

실상학회 회원이 어떤 이유에서도 여래의 제자로 호칭되어서는 안됩니다.

회원의 자의이건, 타인의 타의이건,
후세에 삿된 자들의 필요에 의해서이건,
실상학회 회원을 두고 여래의 제자라 호칭하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하는 그들의 상상과 착각에 불과하며
세상을 기만하고 여래를 욕되게 하는 무지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억지를 부리고 '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언제든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기록으로 남기는 여래의 제자는 '첫 제자 소연'뿐입니다.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멀고 먼 길 찾아 온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외로운 님 찾아 나선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세상에 찾아 와서

주인 찾는 나그네

 

 

여래는 세상에 '스승'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로 왔습니다.

'나그네로 왔다.'고 하는 것은
할 일을 하러 세상에 왔다가 할 일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나그네'라는 용어의 뜻은
'(목적을 가지고) 제자리를 잠시 떠나 다른 곳에 머물거나
(목적을 위해) 떠도는 사람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축복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저마다 대하고 보니.

만나고 헤어짐도 가르침이 있도다.

만물은 은혜를 지니고 있고

기쁨은 나에게 있으니

축복이란,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도다.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 태어나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은
누구의 글을 읽고, 누구의 말을 듣고, 그것들을 외우면,

상대는 무작정 스승이 되고, 자신은 일방적으로 제자가 된다는
참으로 어리석은 부끄러운 인간성을 무심코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동해의 나라에 삼신산 있고

오천 년 세월에 한이 피었네.

외로운 마음 하나 그 곳에서 피니

새 세상 가는 길을 알게 하셨네.

 

 

지구상에서 가장 정기(正氣)가 혼탁(混濁)한 땅, 한반도.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신들의 난장판, 한반도.

세계 역사상 가장 양심과 정의가 부족한 사회, 한반도.

이러한 한반도의 남쪽 지방에 여래가 출현한 것은
첫째, 하늘의 뜻이며,
둘째, 여래와 세상의 미래를 위한 고육지책
(苦肉之策)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람들의 '스승'으로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나처럼 자성불(自成佛),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는 길, 하나가 있고,
두 번째는 완전한 깨달은 자에게서 깨달음의 길을 얻어서 깨닫는 길이다.

첫 번째의 과정은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
그 길은 수십 만년 혹은 수 억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극히 희박하다.

그 이유는

- 중략 -

그래서 일반 사람들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일반 사람들로서 꼭 깨달아야 한다면, 완전한 깨달은 자를 만나서 깨달음의 길을 훈련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점은 일반 사람이 어떻게 깨달은 자를 알아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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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고 배워라. 그러면 너희는 변하게 될 것이다.

1년 동안 내 곁에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자신 속에 있는 생각들이 없어지고,
자기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후략 -

 

 

그렇더라도 누군가가 여래를 자신의 스승이라 하려 한다면
어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여래가 제시한 깨달음의 길, 첫 단계에 도전해야 합니다.

여래가 제시한 깨달음의 길, 첫 단계는
보통 사람으로서 장님의 시각을 벗어날 수 있는
절대 불가결(不可缺)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바른 길(正道)입니다.

이 바른 길(正道) 외에 다른 길·다른 방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래를 스승이라 호칭하는 자가 있으나 여래가 제시한 첫째 조건에 충실히 노력하고 있지 않다면 그 자는 거짓된 자입니다. 사기 치는 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여래를 조력자로 내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여래를 이용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하는 전형적인 방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교묘한 화술(話術)로 사람들의 의식에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는 자는 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모든 것을 내놓습니다.

양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주변에 누군가가 아는 것처럼 말하거든 이렇게 확인하십시오.

"선생께서는 여래에게서 깨달음의 길을 직접 이수하셨습니까? 여래 생전에 '너는 이제 예전의 너가 아니다. 너는 이제 달라졌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질문하십시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있게 "그렇소."하고, 짧고 당당하게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자존심도 있고 하니까 더 이상 질문하지 마시고 슬며시 돌아서십시오.

글쓴이가 아는 바로는 여래 생전에 첫 단계를 이수하고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주공(主公) 한 사람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의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여래가 제시한 첫 번째 과정부터 순서대로 이수(履修)하십시오.

이 시대에서 여래를 만났거나 여래의 말과 글을 직접 대할 수 있다는 자체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공짜로 거저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회마저 내쳐 버린다면 두 번 다시 만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여래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여래의 모든 행적(말과 글)들이 100% 온전하게 살아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깨달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식의 고양(高揚)이나 깨달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도박과 같은 행위가 될 것입니다.

 


 

함부로 권장할 수 없는 색다른 의식(意識)행위를 하면서
여래를 스승으로 섬긴다고 하는 이들에게 정중하게 권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래가 한 번도 권하지 않은 의식(意識)행위를 개인의 생각으로 행하고,
여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의식(意識)행위를 제멋대로 행하면서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심정을 보상하고 위로받기 위해서
여래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의 들러리로 내세우는 일은
자신이 가진 무지에 또 하나 더 무지를 덮어씌우는 억지에 불과합니다.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면 먼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그러고나서 오로지 여래의 가르침 그대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하십시오.

양심이 있어서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신은 자기가 지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의식을 왜 여래에게 의뢰하며, 왜 여래에게 책임지우려 하는지 묻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래가 당신을 알아보거나 도움을 주는 일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 정도는 명심(銘心)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은 당연히 여래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장님의 세계를 벗어나고나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면,

여래의 '제자'라고 칭하는 것이 얼마나 함부로 한 말이었는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장님의 세계에서는 그토록 중요하게 취급할 수밖에 없는 '성인의 제자'라는 칭호(稱號)

진실의 세계에서 보게 되면, 얼마나 가치없고 무의미한 허상(虛像)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제자도, 예수의 제자도,
그들 생전에 그들 자신이 '제자'라 칭호했던 것이 아니라

사후에 이론을 만들고 허울의 종교를 만든 자들의 필요에 의하여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허상의 호칭
(號稱)에 불과합니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인의 제자라 자칭(自稱)하는 자들은

허울의 종교를 선구(先驅)하는 기틀을 만들어 전하고,
그 종교의 영화
(榮華)속에서 자존(自尊)하고 안식(安息)
하는 것을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실상을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5-

이삼한 여래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학력도 없고, 지식이나 상식도 일반인처럼 평범했나요?

한 남자로써,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한 사회인으로써 어떤 사람이었나요?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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