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만사(萬事) : 갖가지 일들에 대해서

(사전) 만평(漫評) :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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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내가 지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 같으냐. 아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던졌다.
글쓴이: 운영자  날짜: 2021.03.03. 16:04:46   조회: 1962

   

 


“나의 말은 인간세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문제

누군가가 “나의 말은 인간세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람이 한 말의 뜻에 가장 ‘알맞은 답’을 고르시오.

① 나의 말은 세상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며 나는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② 나의 말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혁신하여 그들의 삶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축복할 것이다.

③ 나의 말은 인간 세상에 물의를 일으켜서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평화를 깨뜨릴 것이다.

④ 이 사람은 과대망상증을 가졌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알맞은 답

①번이 맞습니다. - 지성이 뛰어나고 생각이 깊으신 분입니다.

②번이 맞습니다. - 양심을 유지하고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③번이 맞습니다. - 감성이 뛰어나고 유행에 민감하신 분입니다.

④번이 맞습니다. - 문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곤란을 느끼시는 분입니다.

 

이 문제가 시험지에 나온 질문이라면 사람들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번호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번호의 답’처럼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손해가 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자신의 처지와 입장, 생각과 기분과 성향과 주의와 이상과 목적과 가까운 쪽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가장 민주적인(대중적인, 유행적인) 흐름에 따르려고 눈치를 보고 애쓰고 노력합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외로운 존재이고 그래서 가족화되었고 사회화되었으므로

외톨이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사에 합세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 같아서 그럴 것입니다.

 


 

<New Testament: Matthew: chapter 10> <신약: 마태: 10장>

34 Think not that I am come to send peace on earth: I came not to send peace, but a sword.

34 내가 지상에 화평을 전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다. 검이다.

 

<New Testament: Luke: chapter 12> <신약: 누가: 12장>

49 I am come to send fire on the earth; and what will I, if it be already kindled?

51 Suppose ye that I am come to give peace on earth? I tell you, Nay; but rather division:

49 나는 지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이미 불이 붙었다면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51 내가 지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 같으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아니다. 오히려 분열이다.

 

<Thomas: 도마:>

10 Jesus says: "I have cast fire upon the world, and see, I am guarding it until it blazes."

16 Jesus says: "Perhaps people think that I have come to cast peace upon the earth.

But they do not know that I have come to cast dissension upon the earth: fire, sword, war."

10 예수가 말했다. “내가 세상에 불을 던졌다. 그리고 그 불꽃이 타오를 때까지 내가 지켜 보고 있다.”

16 예수가 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지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불, 칼, 싸움 등의 불화를 지상에 주러 온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예시한 내용은

약 2천 년 전에 ‘Jesus’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글 중에서 찾아낸 ‘말 같은 말’ 중의 일부입니다.

‘Jesus’가 당시에 이런 내용에 해당하는 말을 실제로 했다면

‘Jesus’가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의지(意志)가 문장에 그대로 정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전) 의지(意志) : 어떤 뜻을 이루려는 마음.

 

‘Jesus’의 말이기 때문에 이 말들은 더욱더 현실적이며 또한 매우 사실적입니다.

‘Jesus’가 그의 주변에 있던 허약한 사람들을 일깨우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외쳤던 말입니다.

 

‘Jesus’가 한 말을 이렇게라도 어설프게나마 흔적을 남겨서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Jesus’를 일반 사람과 전혀 다른 성인(聖人)이라는 극존칭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Jesus’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Jesus’의 말을 진정으로 알아들은 것이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그들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은 ‘Jesus’의 말을 틀리지 않게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면,

 

‘Jesus’의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칼로 저미는 것 같은 고뇌와 갈등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Jesus’의 말은 지식인 종교인일수록 그들의 마음속에 혼란과 분노와 거부감을 일으켜서

‘Jesus’의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 따지고 놀리고 무시하고 항의하고 공격했을 것입니다.

 

‘Jesus’는 자신의 말을 전하던 몇 사람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어서

빠른 시일 안에 인간들의 정신세계가 불타오르고 혁신적인 변화가 있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Jesus’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Jesus’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때

다른 사람이 ‘Jesus’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이해하는 것처럼 들어주고 호의를 나타냈다면

‘Jesus’의 말을 틀리게 전했거나 또는 전하는 사람의 말로 꾸며진 거짓말을 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누구나 기대하고 바라는 것처럼

인간과 세상을 축복하러 온 구세주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인간의 진실과 세상의 진리를 설명해주고

온화하고 너그럽게 사람들을 행복과 평화와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준다면

꿈속에 빠져 있는 눈뜬장님들의 의식을 조금도 깨울 수가 없습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눈뜬장님의 꿈 꾸는 의식을 깨우는 일은

‘Jesus’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Jesus’가 한 말이라고 남겼던 표현처럼

‘Jesus’의 말을 듣는 사람의 자기 마음속에서

불화, 분쟁, 분열, 검, 칼, 불, 불꽃 등과 같은 일들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눈뜬장님들의 생각과 기대와는 전혀 동떨어진 혹독하고 가차 없는 깨우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Jesus’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Jesus’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Jesus’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Jesus’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곧이곧대로 전할 수 있던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Jesus’가 이토록 담대(膽大)한 말을 이처럼 비장(悲壯)하게 말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전) 담대(膽大) :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함.

(사전) 비장(悲壯) : 감정을 억누르고 씩씩하고 단단함.

 

‘Jesus’의 주변에 몇 사람이 있었지만

‘Jesus’의 위력(威力)과 기상(氣像)에 이끌려서 주변을 맴돌았을 뿐이며,

(사전) 위력(威力) :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

(사전) 기상(氣像) : 타고난 올곧은 마음씨.

 

인간세계를 구하러 온 ‘Jesus’와 같은 인물을 원했던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곤궁한 마음과 생활을 채워주고 해결해 줄 은인이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사전) 곤궁(困窮) : 사정이 딱하고 형편이 어려움.

 

‘Jesus’가 떠나자 주변에 있던 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참혹한 ‘Jesus 주검 형상(形像)’을 ‘Jesus 우상(偶像)’으로 받들고, ‘Jesus 신(神)’을 만들어서

‘Jesus 신을 신앙하는 자는 구해준다.’라는 기상천외한 역발상(逆發想)의 논리를 앞장세우고,

언어도 문자도 내용도 정확하지 않은 글들을 조합해 만든 책을 경전이라 내세워서

기부를 요구하여 얻어 모은 재물로 살아가는 비루(鄙陋)한 삶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전) 역발상(逆發想) : 일반적인 상식과 반대가 되는 상상 또는 그 생각.

(사전) 비루(鄙陋) : 행동이나 성질이 염치가 없고 추함.

 

‘Jesus’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따랐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Jesus’ 자신만이 홀로 세상에 나섰을 뿐입니다.

‘Jesus’의 진실과 그의 가르침은 눈뜬장님들의 철벽같은 냉대와 모욕으로 팽개쳐졌습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으며 하늘의 보호마저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Jesus’는 그가 축복하고자 감당했던 사람들에게 도리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약 2천 년 전에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하늘의 뜻을 전하러 세상에 왔던 ‘Jesus’가

인간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던 사건은 부정할 수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그 당시만이 아니라

이 시대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인간세계에 눈뜬 자가 나타나면 누구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자신이 의식적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또다시 ‘눈뜬 진짜 Jesus’가 나타난다면

인간세계는 2천 년 전과 다름없이

‘눈뜬 진짜 Jesus’를 죽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득달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한반도는

‘재림 예수’가 여럿 났던 지역이며

오늘날에도

많은 ‘재림 예수’들이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나타난 ‘재림 예수’들이

인간세계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왕성하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눈뜬 진짜 Jesus’가 아니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일 따름입니다.

 

이 시대에 나타난 ‘재림 예수’들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기부를 하고 경배를 하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눈뜬 진짜 Jesus’가 아니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따름입니다.

 

약 2천 년 전, ‘Jesus’가 활동하던 시절에

알맞은 답

①번의 사람들은 ‘Jesus’가 처형에 이르던 모든 상황을 넌지시 지켜보고만 있었으며

②번의 사람들은 ‘Jesus’가 처형되고 살해되는 동안 내내 죽은 듯이 숨어 있었으며

③번의 사람들은 ‘Jesus’를 처형하고 살해하는 모든 과정을 선동하고 주동하고 조종했으며

④번의 사람들은 ‘Jesus’를 살해하는 사건에 군중이 되어 관객으로 눈요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양심이 있나? 없나? 누가 이런 양심 없는 짓을 하나?’라고 말합니다.

양심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의무이지만

‘용기가 없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석가모니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눈뜬장님과 같다.”

“그들은 사실을 거꾸로 알아보고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행하기를 예사로 한다.”

 


 

 나는 눈뜬장님은 절대 아니다.

귀하의 확고한 주장에 대하여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귀하께서 눈을 뜨고 있는지 눈을 감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제가 눈을 뜨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쉽지만 귀하께서 눈뜬장님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해 글쓴이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귀하의 긍지와 자부심에 대하여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쓴이가 알기로는

지금의 인류가 살아온 시대에 태어났던 인간의 숫자는 약 1,100억 정도로 추산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실제로 눈을 뜬 사람은 10 사람 이내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 1,099억 9,999만 9,990사람들 대부분은 눈뜬장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귀하께서는 이 인류에서 눈을 뜬 10 사람 이내에 포함되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알기로는

나머지 약 1,099억 9,999만 9,990사람들은 모두 눈뜬장님이 틀림없지만

글쓴이가 약 1,099억 9,999만 9,990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귀하께서는 의식의 눈을 뜨고 있습니까? 감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크게 혼쭐이 날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글쓴이가 알기로는

누구든지 육체의 눈은 뜨고 뜨지 않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지만

의식의 눈은 뜬 것과 뜨지 않은 것을 알아보기란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글쓴이가 알기로는

“의식의 눈을 뜨고 뜨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두고

눈뜬장님의 허세’라고 표현합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의식적 눈뜬장님이 어느 날 자신이 눈을 떴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의식적 눈뜬 분을 만나서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아니면 착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인류 1만 년의 긴긴 세월 속에서 이 넓고 넓은 세상천지에서

언제 어디서 눈뜬 분을 만나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글쓴이가 알기로는

이 드넓은 세상천지에 1만 년의 긴 세월 속에서

겨우 열 분 이내밖에 나지 않은 눈뜬 분들이

오늘날, 이 한반도에는 여러 분이 계신다고 합니다.

 

종교적이든 수련적이든 개인적이든 경지에 오르셔서

눈을 뜨는 분들이 요즘에는 흔하게 생겨난다고 합니다.

물론 이 한반도가 태생적으로 그런 곳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여래가 말했습니다.

약속의 땅

동해의 나라

삼신산 있고

해마다 사계절(四季節)

돌아오니

하늘의 정기

그 땅에 서려 있네

세상의 악귀들

탐을 내던 곳

핍박받던

민족의 한이 있으니

가슴을 치던 세월이 있네

인심은 마음을

가리니

아직도 약속은

먼 곳에 있는가

누구인가 돌아올 일 알면

엄청난 이곳의 액운을 깨고

하늘의 뜻

전해 오는데

 

 

글쓴이가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봐도

자연의 가르침’을 두고 설왕설래 가타부타하는 분들이나

여기도 또 여래가 있네.’라며 ‘요즘은 여래가 많이 난다.’라고 감탄하는 분들이나

如來 이삼한을 두고 ‘설익었다.’라며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여래가 말했습니다.

“천재들의 글을

바보들이 심사를 한다.”

 

 

인류의 시대를 통틀어서

바보들이 천재들을 앞에 두고 시시비비하는 것을 ‘눈뜬장님의 허세’라고 표현합니다.

(사전) 시시비비(是是非非) : 옳다 그르다, 잘잘못을 따지고 가리다.

 

이성이 잠들어 버린 말세의 시대에는

지성이 이성의 탈을 덮어쓰고 당당히 행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의 탈을 쓴 지성이 벌이는 놀이마당에 흥이 더해지면

기회를 엿보던 감성이 제 세상 만난 듯 춤을 추며 날뛰게 되고

흥에 겨운 감성들 틈에서 지성은 제정신 차리기도 힘에 부칠 뿐입니다.

 

자연 앞에서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이 눈뜬장님들의 놀이마당입니다.

눈뜬장님이 지성이나 감성을 두고 시시비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눈뜬 분의 이성을 두고 시시비비하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말세의 현상’입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평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보면 알지. 올라보면 밑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게 되거든.

밑에서는 산 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산에 직접 올랐을 때 그때 알게 된단 말이야.”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런 사소한 진리마저 통하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눈뜬장님의 세계에는 의식적 아래/위 구분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눈뜬장님의 세계에는 아래에서도 위를 얼마든지 자세히 알아볼 수 있으며

눈뜬장님의 세계에는 아래에서도 위에 있는 것처럼 대접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코 올라설 수 없는, 구경조차 전혀 할 수 없는 곳이지만

얼마든지 올려다보고 설왕설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눈뜬장님의 세계입니다.

 

그래도

이 한반도가 ‘약속의 땅’이 된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여래가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상태를 이렇게 비유한다.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다.

나는 달걀을 던져서 바위를 깨려는 자다.

빗물이 떨어져서 바위에 흠집이 났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달걀을 던져서 바위를 깼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없다.

내가 하는 일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마의 기운을 쓴다면 거기에는 망한 자들만이 올 것이다. 그것은 헛일이다.

오히려 나 자신을 불행 속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유일한 희망은 달걀을 가지고 바위를 깨는 것이다.

항상 깨어지는 것은 나뿐이지만

끝없는 절망과 좌절, 그러면서도 방법은 이것뿐이다.

달걀을 바위에 던지는 것.

달걀로 바위가 쉽게 깨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기필코 성공시킬 것이다.

달걀이 깨지고 깨지고 또 깨져도

언젠가 바위가 깨질 때까지 나는 달걀을 던질 것이다.”

 

 

여래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한 말이 세상에 널리 전해진다면

사람들은 잠을 깰 것입니다.

꿈속에서 깨어날 것이며 그리고 확인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활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확인을 한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악이 무너지고 쓰러져서 소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밝힐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일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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