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
|
▷ HOME > 문답 |
사랑이란 상대를 축복하는 것이다. 축복은 세상⑴을 사랑하는 일로써 이루어지며, 사랑이란 세상⑴을 축복하는 일을 말한다. ⑴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과 모든 일들.
사랑 = 자비 = 도덕 = 공덕 = Love 는 같은 말입니다.
'진실'은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혜'는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양심'은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정의'는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과 정(情)은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큰 사람은 정(情)이 작고 정(情)이 큰 사람은 사랑이 작습니다. 양심이 큰 사람은 정(情)이 작고 정(情)이 큰 사람은 양심이 작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많이 사용되는 용어 중에 '사랑'이 있습니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사랑'이라는 단어는 중·고교생들의 토론 대상이었습니다. '사랑'에는 3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 저마다 믿는 종교의 신의 사랑이고, 둘째,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셋째, 남녀 간의 사랑이다. 이에 대해 저마다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간단없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바뀌고, 장소가 달라져도, '사랑은 그 의미가 광범위하고 위대해서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의미가 갖는 가치의 위상이 매우 높고, 무척 고결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정해진 답도 없고, 제대로 된 결론도 없는 심심풀이 얘기에 불과했지만,
요즘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종교의 집회에서는 당연한 듯이 신의 '사랑'을 들먹였고, 가정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구태여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 가정이므로,
1970년대에 영국의 한 가수가 부른 노래가 유행을 했습니다. 노래 제목이 'Love'였습니다.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Love never fails. But where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cease; where there are tongues, they will be stilled; where there is knowledge, it will pass away. 라는 'Love'에 대한 구절처럼, 그런데 그 노래 가사는 실제로 'Love'의 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가수가 가사를 지었는지 다른 사람이 지은 가사를 노래했는지 모르지만, 또한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Love'에 대한 내용도 'Love'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기록한 말이 전혀 아닙니다. 잘 아는 사람에게 들었던 설명을 자신이 알아 들은 것처럼 덧붙여 설명하거나
언제부턴가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용어를 '애정(愛情)'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애정'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말 '사랑'을 한자로 '愛'라고 하고 영어로 'Love'라고 번역을 합니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Love'도 또 다른 외국어를 영어로 'Love'라고 번역을 했겠지요. 우리말은 '애정(愛情)'에 한자 '愛'를 사용하고 '愛'를 '사랑 애'라고 읽기 때문에 뜻풀이에 혼란이 생겼을 뿐입니다.
우리말 사전에 '사랑'을 찾으면, ① 아끼고 베풀며 따뜻하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② 남녀가 서로 애틋이 그리는 일. 또는 그 마음. ③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④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⑤ 열렬히 좋아하는 이성(異性) 또는 대상. ⑥ 남녀 간에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라고 뜻풀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 우리말 사전을 만든 분들도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感情) 또는 남녀 간의 애정(愛情)이나 연정(戀情)을 '사랑'의 뜻으로 설명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이 써지던 때에 'Love'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그처럼 구구절절이 해야 했다면, 그때 당시에 이미 'Love'에 대한 정의(正意=바른 의미)가 희미해졌거나 올바로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물며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세상에서 과연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면 에로스의, 아가페의, 자애의, 인의 뜻을 알아보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unconditional love는 무조건적사랑이라는 용어이고, unconditional love는 unconditionallove라는 용어로서 그 용어가 가진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거한 용어들과 '사랑'의 의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누군가 '컴퓨터'라고 말하면 누구나 쉽게 'PC'나 '노트북'등을 떠올리듯이 '첫사랑'은 '처랑'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지어서 '처랑'이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남녀 간의 연애를 뜻하는 단어라고 뜻풀이를 하거나 'unconditional love'은 'unconlovy'라는 새로운 단어를 지어서 'unconlovy'는 아무런 조건 없이, 바라는 것 없이 베풀기만 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라고 뜻풀이를 한다면 누구나 알아보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아마 지난 시대에 지식인들이 요즘 인터넷 조어를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사람들보다 어학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니라면 인간 내면의 다양한 심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첨부하여 나열해 놓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덕'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기가 더 어렵습니다. '도와 덕'을 조금 더 알기 쉽게 풀이하면 '세상과 인간'이 되고, '정의와 양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도덕'이란 '한 사람이 스스로 마땅히 행하고 지켜야 할 일과 '양심'은 사람으로 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인데, 사람마다 그 크기가 다양합니다. 작은 '양심'을 가진 사람과 큰 '양심'을 가진 사람이 행하는 '도덕'은 양심이 작으면 도덕을 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양심이 작으면 사랑을 행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양심이란 무엇입니까'에 대한 자세한 문답은 다음 페이지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부처나 예수가 인간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일반 사람이 부처나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존재하지도 않는 부처나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나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무 곳에나 아무렇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여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종교 단체가 하는 일은 세상을 무지하고 혼란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선생들이 '존경'한다고 하니 '사랑'도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아마 선생들도 '사랑'이란 말의 뜻을 전혀 모르고 그냥 인사치레로 흘려 들었을 것입니다. 학생이 선생을 존경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선생을 사랑하는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시대에 스승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시대에는 스승도 없지만 배우려는 학생도 매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 '사랑'을 '깊이 신뢰하고, 매우 좋아해', '깊은 애정' 등으로 착각하고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들·며늘, 딸·사위가 있습니다만 가족 상호 간에 '사랑해'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어서 매우 낯설게 들립니다. 저희들이 아는 바로는 대부분 '진심 좋음', '진심 신뢰', '깊은 애정', '절실한 애정', '몹시 아끼는 소중한 마음'등을 '사랑'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심 좋음', '진심 신뢰', '깊은 애정', '절실한 애정', '몹시 아끼는 소중한 마음' 등은 '사랑'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그런 마음들은 오히려 '애착(愛着)'이라는 용어에 훨씬 가까운 의미입니다.
우리말 사전에 '애착'을 찾으면, ① 사랑하고 아껴서 단념할 수가 없음. 또는 그런 마음. ② 애집(愛執) 이라고 뜻풀이 되어 있습니다.
'애착(愛着)'이란, '애정(愛情)에 대한 집착(執着)'을 말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진심 좋음', '진심 신뢰', '깊은 애정', '절실한 애정', '몹시 아끼고 소중한 마음'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지나치게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과 '애착(愛着)'은 서로 정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과 '애착(愛着)'이라는 용어를 한데 섞어서 사람들은 사실과 정 반대로 사고(思考)를 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눈을 감으니 눈물이 고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뜻'은 앞으로 어떤 단어로 표시해야 합니까? '사랑'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행위'는 앞으로 어떤 단어로 표시해야 합니까?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만약 대자연(大自然) 속에 '사랑'이 무시되고, '사랑'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인류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자연에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실물이 보이지 않는 의식의 주제를 두고, 질문한 내용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상호간에 동일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곤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녀 사이에도 '정'이 변해서 '사랑'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이 깊어지면 '애정'이 되고, '애정'은 '정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애정'은 세상에 모든 동식물들의 종족 번식의 이유와 원인이 됩니다.
다른 용어의 예를 들어서 귀하의 의문점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모든 동식물들이 생존할 수 있는 의지는 '욕망'에서 나오게 됩니다. 질문하신 분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욕망'과 '욕망'과 '소망'의 차이 만큼이나 얕고 작은 '정'과 얕고 작은 '사랑'을 함께 할 수는 있습니다. '정'이 없어도, 깊고 큰 '사랑'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은 깊으면 깊을수록, 크면 클수록 '애착'할지언정,
- '사랑은 말할 수 없다.' - '사랑은 그 의미가 광범위하고 위대해서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 '사랑'의 의미가 갖는 가치의 위상이 매우 높고, 무척 고결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이 훨씬 더 저의 마음에 와 닿습니다.
자세히 읽고 평가해주시는 분에게 이런 답변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만, '사랑은 말할 수 없다'는 말은 마찬가지로 '사랑'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고, 막연하게 머리 속에 갖고 있는 생각만으로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추측은 할 수 있다.'고 우긴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추측조차도 아예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낫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추측이나 상상이 틀림없다는 사람일수록 그러다보면 진리를 들어도, 진실을 보아도, 코웃음 치고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사랑'에 대한 한 가지 진실은 진정한 '사랑'을 받는 대상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람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하는 불가결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세상에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것은 맞습니다. 중요한 점은 '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거의 알고 있지 못하며, '사랑'에 대한 의미를 잊어 버려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었고, 인류에게 끊임없이 전해지던 '사랑'이라는 숭고한 용어와 그 뜻을 변함없이 다음 인류에게도 전하기 위해, 저희들은 '사랑'의 올바른 의미를 알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