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HOME > 문답

'장님의 세계'란 무엇입니까?

'장님'이란
'있는 일'을 바로 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있는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모든 일'들을 말한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 하고
'모든 일'을 '진리'라 한다.


Published: May 16. 2017  Updated: May 16,17,25,30,31,June 2,29,30,July 2,August 18. 2017


 

'장님'이란
'있는 일'을 바로 앞에 두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있는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모든 일'들을 말한다.

'모든 것'을 '진실'이라 하고
'모든 일'을 '진리'라 한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실'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님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글쓴이 역시도 '장님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님의 세계'에 살았습니다.

현생 인류의 역사 속에 네 사람만 '장님의 세계' 밖에 살았습니다.

 

고타마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

 

이 네 사람 외에 저희들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장님의 세계' 밖에서 살았거나 지금 시대에 살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미처 확인하지 못한 글쓴이의 불찰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장님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양심'이 작습니다.

따라서 그만큼 '진실'도 작습니다.

따라서 그만큼 '지혜'도 작습니다.

따라서 그만큼 '정의'도 작습니다.

따라서 그만큼 '사랑'도 작습니다.

 

그런 반면에 '거짓'이 크고, 많습니다.

그런 반면에 '상상'이 크고, 많습니다.

그런 반면에 '불의'가 크고, 많습니다.

그런 반면에 '정'이 크고, 많습니다.

 

'장님의 세계'에는 이러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진실이 존재하기 어렵고,

정의가 존재하기 어렵고,

자유가 존재하기 어렵고,

평화가 존재하기 어렵고,

지혜가 존재하기 어렵고,

사랑이 존재하기 어렵고,

행복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장님의 세계'는 '정(情)이 크고, 많은 사회'입니다.

정다운 사회는 양심이 작고, 정의가 작기 때문에 거짓과 불의가 활개를 칩니다.

정이 많은 사회는 진실이 존중되지 않고, 사랑이 배척됩니다.

정이 많은 사회는 지혜가 작기 때문에 이론과 상상이 실제를 능가합니다

 

(情)을 우선하는 사회는 개인보다 소속과 서열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생력은 소속과 서열 속에서 거부됩니다.

그러므로 소속과 서열에 영합하는 사람이 먼저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情)의 사회'에는 영웅이나 뛰어난 사람이 나지 않습니다.

 

'정(情)의 사회'는 '양심'이 작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어차피 다같은 '장님의 입장'에서 '약속한 사람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은 꼭 지키지 않아도, 이유만 적당하면 용서되고, 쉽게 허용됩니다.

 


 

다정다한(多情多恨)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요즘은 언론에서 잘 사용하지 않지만,
1950년대 이전까지 많이 사용하던, 우리가 우리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애정이 많고, 애환이 많은 민족이라는 함축적인 표현이었지요.

이 땅에 살아왔던 한민족의 삶에, 흥에, 소리에, 음식에, 예술에, 종교에, 정치에...

우리의 삶과 사회의 희로애락 전반에 다정다한이 표현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특별히 우리 사회는 정과 한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가 유별납니다.

 

다정다한(多情多恨)한 사회는 정(情)이 기준이 되는 사회입니다.

정(情)이 많은 사람을 좋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정(情)이 많은 사람을 인덕이, 의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情)이 개인 활동 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공무에도 최우선의 고려사항이 됩니다.

능력과 실력이 뛰어나도 정(情)이 없으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질시의 대상이 됩니다.

반면에 정(情)을 앞세우면, 안 되는 일도 되게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情)이 이루어지면 욕망은 충족되지만, 결과는 한(恨)으로 남게 됩니다.

정(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恨)으로 변하게 됩니다.

정(情)이 많고, 깊으면, 결과는 한(恨)으로 남게 됩니다.

사랑은 잊으면 그만이지만,(情)은 잊혀지지 않고, 한(恨)으로 남게 됩니다.

 

(情)이 많고, 정(情)이 우선되는 사회는

(恨)이 풀어져 없어지지 않고, 한(恨)이 쌓이기만 해서

(恨)으로 탄(嘆)하는 결과만 남게 됩니다.

 

이런 사회는 특별하게 유별난 '장님의 세계'입니다.

 

 


 

: '장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 '장님'에 대한 여래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내가 어떤 것에 대해 말을 했을 때,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나서, 이제 너희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막상 너희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설명을 할 때는 말이 막히게 된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진 자라면, 말이 막히고, 모르는 것이다.

장님이 어떤 사물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100번을 듣는다해서 그 사물에 대해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양심을 가진 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내용에 대해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질문이나 항의를 하면 당황하게 되고, 말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장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었습니까?

'장님'에 대한 여래의 말씀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1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계속 나의 말을 듣고,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희가 다시 1년 동안 나의 말을 확인하고, 나를 관찰하면,

너희는 그때 비로소 옳고 그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세상 일을 보면, 옳고 그름과 거짓과 참에 대해서 눈을 뜬다는 것이다.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다시 1년을 더 나의 말을 듣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느낀다면,

그때 비로소 너희의 의식이 깨어나서,

자신의 의식 속에 큰 양심과 용기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너희는 세상을 위해서 자비와 공덕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며,

너희의 삶을 빛내고, 너희의 삶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소개한 글에서

'1주일에 한 번씩'은 '매일, 매시간, 수시로'로,
'
1년'은 '수 년, 수십 년'으로 고쳐 이해해야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 '1년'은 '처음 단계'로 이해해야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1년'은 '
다음 단계'로 이해해야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1년'은 '
그 다음 단계'로 이해해야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처음 단계]에 이르기 직전까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가 '깜깜한 장님의 세계'입니다.

 

여래가 활동하던 때,
여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그 [처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물며, [다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정다한(多情多恨)한 우리 나라, 대한민국.

 

남도민요, 흥타령 중간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장님'과 '장님의 세계'에 대한 표현을 참으로 절묘하게 해냈습니다.

정(情) 많고, 한(恨) 많은 우리 민족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조상님들은 참 지혜로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중에 꿈을 꾸면, 꿈을 꾸고 있는 동안, 꿈을 깨기 전까지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장님'과 '장님의 세계'는 꼭 이와 같습니다.

 


 

'장님'에 대한 여래의 말씀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장님의 진실은 믿을 것이 못된다.

제 마음에 드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거짓과 참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왜 부끄러워하는가?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는 것이고,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장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장님'은 자신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기가 무엇보다 가장 어렵습니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인정하기 힘들고, 가장 듣기 싫은 것이 자신을 일컬어 '장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님'은 사실과 정 반대로 사고(思考)를 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정 반대로 사고를 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장님'은 정 반대의 말과 행동,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지키고 방어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 되었다고 지적을 하면 매우 싫어 합니다.
소위 '자존심(自尊心)'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장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상대는 매우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장님'은 즉각 용서없는 '괘씸죄'를 발동하여 상대에게 반드시 보복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자존심'과 '괘씸죄'는 '장님'의 가장 일반적인 '속성'이며,
'
그러니까 장님'이라는 '장님 증거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장님이 아닌 사람'은 '자존심'이 별로 소용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충고를 쉽게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4대 성인은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또 마호메트도 성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만 장님이 아니었다면, 공자나 마호메트는 장님이었다는 건가요?
기독교 역사에는 성인들이 많고, 불교에도 깨달았다는 스님들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 글쎄요. 세계 4대 성인이라는 기준이 무엇인지 운영자는 알지 못합니다. 인터넷을 모두 뒤져도 세계 4대 성인의 기준이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정규학교 교과과정에서 세계 4대 성인이라는 문제를 다루지도 않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계 4대 성인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5대 성인 또는 그 이상이 돼야 된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어느 언론사에서 국내 저명한 대학교수 몇 사람에게,
세계 10대 성현을 선정해 줄 것을 위촉했는데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마호메트, 맹자,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세종대왕, 용수를 그 10인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수들의 전공이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학자들이었습니다.

인기에 의지해야 하는 교수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학자들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종교의 숭배자를 두고, 무조건 '성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지한 판단입니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을 두고, 숭배·지지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무조건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유치한 판단입니다.

 

인류 속에 나타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의식수준이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매우 높은 진실성을 보일 때,

그 사람을 '깨달은 자'라 하고, 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보다 쉽게 표현하면 '장님이 아닌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 이 4사람에 대해 전해지고 있는 말과 행동을 보면,

'장님의 세계'가 결코 알아볼 수 없는 '세계'의 일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으며,

'장님의 세계'가 알아내야 할 '미지의 세계=진실과 진리의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님'들이 '장님의 세계'속에서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 아무런 장애도 없이 쉽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4사람이 보여준 행적은 일반 사람들로써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4사람의 의식수준은 '장님'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자, 마호메트, 맹자,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세종대왕, 용수 등의 사람들은 뛰어난 인재는 틀림없겠지만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가당치 않습니다.

또한 종교 단체에서 '성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 단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형식일 뿐, 인류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 비종교인들까지 그들을 '성인'이라고 인정해주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 단체에서 '깨달음을 인가'하는 것은 그 단체의 전통을 잇기 위한 종교내적 절차일 뿐, 한 사람의 진실성이나 의식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 장님의 세계와 깨달은 자의 세계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의식수준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는 건지요?

: 글쓴이는 장님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자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래 곁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1998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로열소사이어티를 방문하여 그 곳의 회장을 만나고 온 실상학회 회원 3명이 여래에게 경과를 말하는 중입니다.

회원 : 한참 여래를 소개하고 있는데, 갑자기 로열소사이어티 회장이 '영국에도 세계 최고의 천재가 있다. (벽에 걸린 초상화를 가리키며) 아이작 뉴턴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회장이 우리가 말하는 깨달은 자에 대한 소개를 듣다가 마음이 좀 상한 것 같았습니다.

여래 : 그래? 그 말에 너희들은 뭐라고 했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최고의 천재들 3,000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세상 일에 대해 나와 지혜를 겨룬다면, 내가 가진 지혜는 템스 강 전체라면, 천재들이 알 수 있는 것 모두를 모아도 템스 강에 흘러가는 먼지 한 개에 불과할 것이다."

 

 

그때 당시, 저는 믿기 어려운 허풍에 마음속으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십 수 년간 여래 곁에서 그 말을 확인하면 할수록,
그때 그 말이 매우 정확한 표현이며, 정당한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장님'과 '깨달은 자'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 본문 내용 중에서,

여래가 활동하던 때,
여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그 [처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물며, [다음 단계]에 이르런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전혀 믿겨지지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 제가 알기로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래 주변 사람들의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새 창으로 열립니다.-

 


 

: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

 

 

'종교'란 무엇입니까?

'내가 왜 저 무지한 자들의 모욕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신(神)'이란 무엇입니까?

신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신과 세상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사랑'입니까?
무엇을 '사랑'이라고 말 합니까?
왜 사람들은 사랑을 인류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