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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의문들과 삶 속의 문제들을 두고 누구도 말해 주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해답을 찾는다. 누구나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고, 명쾌한 해답을 듣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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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한 내용은 2014년 5월, 영국 Dailymail의 기사입니다. 당시는 세계 인구를 72억으로 나타냈지만, 2018년 1월 1일의 세계 인구는 75.9억이라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구본(地球本) 중에서 가장 큰 지름 32cm의 지구본은 두 팔로 안아야 할 만큼 그곳에 75억의 인구 더미를 표시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먼지 한 개 크기로 표시해야 합니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75억의 인구나 1,100억의 인류가, 아주 적은 수량· 매우 작은 크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75억의 인구, 1,100억 인류의 세력이 자연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을 소비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영향력은, 광대무변한 자연을 하나의 좁은 지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75억의 인구, 1,100억 인류의 세력이 만들어놓은 이 시대의 현상은 자연으로 하여금 인간의 활동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요구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생겨난 수많은 생명체 중에 최고의 영장(靈長)물인 인간이 자연에서 차지하는 실질적인 위상(位相)은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은 자연의 실체적(實體的)인 주체(主體)인가? 인간은 자연을 소비하는 생명체로서 그저 자연이 소모하는 1회용품에 불과한 것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75억의 인구 중에서 어느 누구도 자연의 미래와 인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대책을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자연의 가르침은 대단히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문제에 대한 해답 또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연에 닥쳐진 현실은 매우 절박한 일이며 대단히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으며, 단순하게 내일의 일이나, 내년의 계획이나, 수십 년 이후의 예측에만 매달려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지식계는 지난 오랫동안 인간의 활동에 의한 자연의 변화를 문제 삼아 왔지만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활동은 쉴 새 없이 이어져야만 하기 때문에, 인간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자연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연의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모든 현상들은 찰나조차도 결코 멈추어질 수 없으며 멈추게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그 자체의 활동으로 인하여 영원히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은 끊임없는 활동을 통하여 변화와 창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변화기는 자연과 인간을 소멸하는 파멸(破滅)적 재앙(災殃)이 아닙니다. 변화기를 알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인간들에게 재앙처럼 닥쳐질 뿐입니다. 자연의 변화기는 자연의 고유한 법칙에 의한 선순환(善循環)의 과정일 따름입니다. 변화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에게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것입니다.
자연의 생명의 세계에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같은 작은 생명체부터 그 수많은 모든 생명체들의 역할은 자신들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 생명체의 역할은 자연의 역할과 똑같이 매우 크게 중요합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생명체의 삶의 힘듦과 고달픔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삶의 힘듦과 고달픔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생명체도 쉽게 생명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유일무이한 영장(靈長)이자 최상위 생명체인 인간이지만 - 삶의 힘듦과 고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신에게 자기를 바치는 사람은 신이 원하는 데로 함으로써 신에게 위안(慰安)받는 대신에 자신과 삶의 진실에 대해 알기를 포기한 채 신에게 자신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 병든 늙은 육체를 의술(醫術)에 기대어 죽음을 연장하고 있는 사람은 생명체의 본질이 쉽사리 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의식체가 육체와 쉽게 분리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00억이 훨씬 넘는 인간들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 사람은 겨우 두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두 분의 말씀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던 인간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를 대비해야하는 시기에 여래(如來· tathagata)가 세상에 온 이유는 가르침이 없어진 생명의 세계에 생명의 사명과 생명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생명체의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달픈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힘들고 고달픈 사람일수록 여래의 말씀은 더욱 필요합니다.
세상의 외로운 사람은 비겁한 자신과 싸워라 성공을 원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바꿔라
이 시대 사람들은, 과연 불행하게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기는 가는지?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지? 하늘 어느 곳에 편안하게 쉴 곳이 있는지?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말을 합니다. 전혀 사실적이지 못한 비사실적인 말은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럴듯한 거짓말로 자신을 위안(慰安)할 수는 있지만,
인간에게 자신의 가치는 자신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 자살은 가장 무지한 자가 자신에게 저지르는 무모(無謀)한 착오일 뿐입니다. - 신에게 바쳐진 자신은 최상위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기 어렵습니다. - 낡은 육체를 버리고 새 몸을 받아 부활하여(다시 태어나서) 새 삶을 살게 되는 법칙을 배우고 익히고 받아들이면,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삶을 순순히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여래의 말씀을 읽고 들을 권리가 있으며, 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여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기사는 이제 너무 식상한 내용에 불과합니다. 인체는 자연의 변화와 창조의 결정체(結晶體)로서 영장물(靈長物)입니다. 인체는 조립품(組立品)이거나 공산품(工産品)이 아닙니다. 인체는 일반 단순 생명체가 아닌 특별한 복합 생명체입니다.
의학이 인체를 다루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참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수준에 머무를 뿐입니다.
인체는 육체와 의식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개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체는 육체의 기능이 정지하면서 의식체가 분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육체가 활동해야 의식체의 활동도 가능하므로 육체의 기능이 정지하면 의식체는 육체에 머무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체가 분리된 육체는 인체가 아닌 자연의 물질에 불과합니다. 의식체가 분리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물질에 원래의 의식체가 재결합하여 다시 활동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재생(再生)은 윤회(순환)를 통해 재탄생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방식입니다.
냉동인간의 소생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무지가 자연의 진실을 결코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아직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의식체와 육체의 결합체입니다. 이 의식체는 반영구적인 것이며, 그 육체는 1회용입니다. 이 의식체는 육체가 병들고 노후하면 버리고 새 육체를 받아서 계속 활동하게 됩니다. 이 의식체가 인간의 본질이며 바로 자기(自己)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옥수수에 유전자 변형을 하고, 양을 복제하고, 인간의 DNA를 규명했지만, 실제로 인간의 세계에 가장 중요한 인간의 진실이나 삶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는 일은 더욱더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이룩한 눈앞의 화려한 물질문명으로 인해,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인간 육체의 수명이 100살이 훨씬 넘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 다시 말해서, 실제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다면 인체가 노화하는 시간이 늘어져서 또 다시 말하면,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려면 먼저 시간의 흐름이 늘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자연이 가진 법칙 속에서는 노화의 시간은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는데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첫째, 누군가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고, 섭생과 치료로 인간의 생(生)이 길어졌다면, 자연이 생겨나고 인간이 생겨난 이후로 현재까지 인간의 수명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노화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함으로써 죽지 않으려 하고,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 내세우는 자들은 대단히 무지한 자들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며, 육체의 노화는 당연한 것이며, 이 자연의 법칙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함께, 변화와 창조의 선순환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영원히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무지는 그들의 상상을 현실화하는 것이 언제나 최고의 목표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지식은 지금과 같은 물질문명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로봇이 제아무리 발전을 거듭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로봇을 잉태하여 아기 로봇을 출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자연적으로 성장하거나 변화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능력은 무한하여 언제나 끊임없이 변화와 창조가 가능하지만 인공지능 로봇이란 자연 현상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앞설 수 없으며, 슈퍼컴퓨터와 로봇은 자연의 모조품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공산품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이 인간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이 소멸한다는 말은 가관입니다. 이 시대 지식인들의 의식수준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 위대한 생명체인 인간의 세계는 자연과 인간은 공생을 통해 공존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데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고 애매하기만 합니다. '심판'은 무엇이 무엇을, 왜 어떻게 심판하는 것인지요? 또한 어떤 영혼이 '참되고 순수한' 영혼인지요? 또한 '하늘나라'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요? 또한 '재림· 부활'하려면 육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육체는 어디에 있나요? 종교인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얘기는 그럴듯한데,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현실적인 답변이 궁한 것들뿐입니다. 귀하의 영혼이 '참되고 순수한지'는 누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나요? '참되고 순수한 영혼'인 줄 알았는데 '심판의 날'에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하늘나라'는 어디를 말하며, 어떤 장소에다 어떻게 영혼들을 보관하나요? 귀하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땅을 내려 보다가 새 세상이 펼쳐지면 이런 사실성이 전무한 스토리는 해리포터의 소설보다 훨씬 더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귀하는 자신을 위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귀하가 믿고 따르는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의 절대자라면 절대자가 왜 귀하 같은 무력한 인간으로부터 기도나 찬양을 받으려 할 것입니까? 절대자에게 인간의 기도나 찬양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쓸모조차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절대자라면 하릴없이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는 귀하에게 열심히 일한 대가로 귀하에게 좋은 결과가 없으면 절대자는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결과가 없었다면 귀하는 헛일을 했던 것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귀하의 신념은 인간의 자격으로는 매우 심각한 의식적 결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일은 육체적 노동입니다. 육체적 노동이란 자신의 몸을 직접 활용하여 체력을 소모하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설명보다 쉬운 예를 들면, 이 시대로부터 100년 전의 생활환경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현대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생활습관과 방식, 직업에 따라 직업으로써 일반적인 육체적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체력을 가급적 소모하지 않는 생활을 하려하고 또 그런 직업을 가지려고 궁리를 많이 합니다. 머리를 많이 쓰는 대신 몸은 여유롭고 편한 직업을 가지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육체적 노동은 힘이 들어도 몸과 정신을 함께 건강하게 만들지만
또 다른 설명을 드리면, 알고 보면 현대 사회는 그런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생각(理念· 主義)과 직업과 생활 방식이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잔머리'를 제대로 구별·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화뇌동(附和雷同) :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지 않고 남의 의사에 따라 행동함.
육체적 노동이 필수적인 직업에 종사하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되며, 외식· 배달식을 하지 않고 직접 조리해서 먹으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되며, 자신의 할 일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하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되며,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생활하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 되며, 부동산· 주식· 복권에 투자하지 않으면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것이 되며,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질문은,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살'로서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한정하여 답변하겠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의 '사망'을 조건으로 내걸더라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해결할 수 없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피해를 당한 상대에게 직접 사과를 하고, 피해에 대한 복구· 보상을 하고, 상대로부터 직접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상대로부터 용서를 받았더라도 사회의 법률에 의한 처벌을 피할 수 없으면 응분의 처벌도 감수해야 합니다. 사회의 법률에 의한 응분의 처벌을 받았더라도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상대가 용서하지 않았다면 잘못은 그대로 살아있게 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죄송하고, 미안하고, 속죄하려면 피해를 당한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언론에게, 종교기관에게, 신과 영에게, 만약 피해를 당한 상대가 죽었다면 잘못을 용서 받기가 절망적일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평생 동안 뉘우치고 참회하는 생활을 한다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은 '자살'이 '잘못'을 덮을 수 없으며, 해소(解消)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꼭 유념할 사항이 있습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하고, 복구· 보상하고, 용서를 구하면,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의 사과와 복구· 보상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연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절대 평등하여 잘못한 사람은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지성(至誠)으로 용서를 구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두 사람 사이에 있게 된 잘못과 피해의 인연은 사라져서 없어지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은
사람은 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어떤 피해를 보았다고 하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데도 무시해버리면, 사정을 알고나면 충분히 이해하고 양해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오해로 인한 악연(惡緣)도 피해로 인한 인연만큼, 서로가 꼭 풀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如來의 가르침을 소개하겠습니다.
<©도서출판 자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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